전 세계 215개 국가에서 방영되고, 19억 명의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 디스커버리 채널은 미국 4대 방송국인 ABC, CBS, NBC, FOX보다 시가총액 규모가 큰 방송사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편(선호 채널로 등록해 두었을 정도)이라 디스커버리 채널을 즐겨본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채널의 방송편성표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디스커버리 채널이라는 방송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세계적인 방송사가 되었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뭐, 돈 많은 놈이 개국하고 방송하는 거겠지… 하며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디스커버리 채널은 누가 만들었지? 라는 호기심이 들어 읽게된 책이 <디스커버리,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호기심>이다. 이 책은 디스커버리 창업자 존 헨드릭스가 직접 쓴 책으로 자신이 디스커버리 채널을 창립하고 경영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그가 비행기 안에서 디스커버리 채널이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에피소드는 짜릿했다.

 

존 헨드릭스, 그는 사실은 방송 업계에 어떠한 인맥도 없으며 방송 관련한 경험도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냥 일찌감치 교육매체로서의 텔레비전에 매료되었고, 대학 시절에는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며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듀서나 유통업체를 접해 본 것이 전부였단다. 다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경험과 호기심 어린 관찰은 차곡차곡 쌓여 갔고, 자기도 모르게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전략을 구축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준비'가 뒷받침되어 아이디어가 때를 만났다고 말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시리즈만 방영해 주는 케이블 채널이 생기면 어떨까? 라는 단순한 호기심 하나로 그의 그동안 자신이 모은 돈과 아내 모린의 돈을 탈탈 털어 '케이블교육방송사(이때는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를 설립한다. 스무 명이 안 되는 직원들과 함께 목표 운영자금 2,500만 달러에 턱없이 부족한 13만 달러로 방송사 창업한 것이다. 방송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런 도전은 무모해 보이는 한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그의 용기에 솔직히 감탄했다. 계획대로 1차 투자금 500만 달러는 유치했지만, 2차 투자금 2,000만 달러 유치에 실패하며 파산 위기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운도 운이지만 인복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의 말 그대로 죽다가 살아나게 되는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그는 지금의 디스커버리 채널을 완성한다.

 

존 헨드릭스는 인재를 영입할 때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창업 초기 자금이 부족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원을 영입하는 데는 아낌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영입한 직원들의 능력을 믿고 그들의 의견을 수용함으로 디스커버리는 더욱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의 호기심 어린 관찰은 이미 20년 전에 메뉴로 텔레비전의 플랫폼인 '유어 초이스 TV' 를 생각해 내고 주문형 시스템을 설계했다. 또한, 지금 eBook을 볼 수 있는 단말기 역시 그의 아이디어로 디스커버리가 특허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평소에 알 수 없었던 디스커버리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다 보니 배우는 것도 많고, 사람과 사람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호기심도 엄청난 힘이 된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책은 경영과 경제 분야로 분류되어있는 책이다. 하지만 사업을 준비하거나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학생도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라 생각된다.

디스커버리, 존헨드릭스

 

운영전, 이생규장전, 방한림전, 춘향전 등 고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모두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복식이나 생활, 사랑 등 모든 것이 자유롭지 않던 조선 후기 신분 사회에서 하층민, 여성, 시민은 소설을 통해 상상으로나마 자유와 해방을 맛보고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쾌족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일상을 말하고, 욕망을 갈망하며, 일탈을 꿈꾸고, 교화를 전하고자 한 것이 고소설의 속살이라 한다. - 6 페이지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고소설 중 <운영전>과 <심청전>, 그리고 <장화홍련전>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운영전>은 안평대군 사저인 수성궁에 살던 궁녀 '운영'와 김 진사의 사랑이야기로, 신분상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밀회가 발각되자 운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궁녀 운영이 자살한 이유를 김 진사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저자의 해설은 조금 다르다. 운영이 스스로 인정한 죄목에서 그녀는 자신을 인과 의를 상실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자신을 존재 이유를 상실한 인간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라 한다. 즉 자존감의 상실과 다른 궁녀에게 피해를 준 사실이 그녀를 자살로 이끌었다고 보고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고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일반적인 해설과 더불어 저자의 현대적 해설을 덧붙였다. 그래서인지 소설 전부를 읽지 않고도 소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알고 있는 느낌이며, 저자의 해설 때문에 익히 알고 있는 소설도 새로운 결말을 맛볼 수 있었다.

 

고소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심청전>에 대한 저자의 해설도 인상 깊었다. 심청이라 하면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떠오르지만, 저자는 심청이 강한 효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유일한 혈육이라는 점과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자신을 먹여 살리려고 젖동냥하러 다닌 점은 그녀에게 효심이라는 강박증으로 작용하였다고 보고 있다. 아버지를 향한 순수한 효심에 책임감이 덧붙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인당수에 빠지기 전 심청의 심경에는 변화가 생겼으며, 황후가 된 이후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때의 적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지적하는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고소설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앵혈 모티브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앵혈, '꾀꼬리의 피'라는 뜻으로 남녀의 처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붉은 점'을 뜻하며, 순결 및 신분 관련 사건에 법적 증거력이 있는 표식으로 인식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앵혈 모티브는 남성 중심적인 시선이 강하게 담겨 성차별을 조장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배움이 부족했던 당시 사람들이라면 분명 믿었으리라 생각된다. 앵혈이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었다는 내용이 꽤 흥미로웠다.

 

고리타분하며 결말이 뻔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고소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고소설의 등장인물을 현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설한 <쾌족, 뒷담화의 탄생>을 읽고 난 후로 이미 알고 있던 고소설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소설의 재발견이라고 할까…

쾌족, 뒷담화의탄생, 고소설

 

 

백백교. 이름부터 사이비스러운 '백백교'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이비 종교 집단이다.
교주 전용해를 중심으로 그의 심복들로 구성된 집단 '벽력사'가 죽인 사람만 346명이라고 한다. 발굴된 시체 말고 전용해의 명령으로 참수된 교도의 수는 약 2,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시기를 틈타 부와 영생을 추구하며 재산갈취, 강간, 살인 등 잔혹한 범죄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던 백백교 교주 전용해는 1937년, 경찰의 추적을 피하던 끝에 경기도 양평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하지만 짐승이 턱을 뜯어먹은 상황이라 분명하게는 확인되지는 않았다. 아들의 증언으로 전용해가 맞다고 판단한 일제 경찰은 머리를 잘라 '범죄형 두뇌 표본'으로 만들었다. 이 머리는 그 후 70년이 넘도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인수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2011년에야 화장되었다.
전용해의 집안은 대대로 사이비 종교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 전정운은 백도교 교주였으며, 형과 동생은 각각 인천교와 도화교에서 활동했다. 사람 홀리는 매력을 지닌 집안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 책 <유다의 별>은 앞에서 말한 사이비 종교 '백백교'와 현대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접목한 추리 소설이다.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백백교'라는 소재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인지 처음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부터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아마 이 책을 직접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얼마나 마약 같은지를…

 

 

 

 

주인공인 변호사 고진과 그의 파트너 광역수사대 이유현 팀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되어 있는 일제 강점기에 잔혹한 범죄를 일삼던 백백교 교주의 머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이유로 진정을 제기, 당국의 폐기 결정을 이끌어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이유현은 자신을 찾아온 고진에게 '낡은 광목천 끈'을 찾는 강도 집단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다섯 명 중 한 명의 신원은 파악되었지만, 신원이 파악된 용의자를 추적하던 박진우 형사가 토막 살해된 채 발견되었으며, 그가 쫓던 용의자는 컨테이너에서 목을 매어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다. 그런데 컨테이너는 사실상 '밀실'이었고 수사는 다시 제자리라는 이야기에 고진은 밀실 살인의 수수께끼를 이미 풀었다는 듯 행동한다. 하지만 현장 검증에서 보기 좋게 틀린 고진. 그 후로 이유현 형사는 고진을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한다. 결국은 풀어내지만…. 두 남자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 참고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혹시 오해할까 봐. ㅡ_-a 흠.

 

동기 없는 살인이 없듯, 동기 없는 자살도 없어. 상식에 맞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파 보는 수밖에…
컨테이너 밀실 수수께끼를 풀면서 했던 고진의 말이 인상 깊다.

 

그리고 얼마 후 광목천 끈을 찾는 강도 집단에 의해 한 가족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고진은 이번 사건의 생존자 장문오를 통해 강도들이 '대원(백백교 교주를 부르는 호칭)'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사실과 피해자들의 증조부들이 모두 백백교 간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이비 종교 백백교와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들이 광목천 끈을 찾아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안병조에게 찾아갈 것을 사전에 알게 된 경찰은 공항과 항만을 모두 폐쇄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결국 안병조는 살해당한다. 불행 중 다행히도 안병조를 죽인 범인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낸 택배를 추적해 용의자 남기만과 김각수 그리고 용해운을 잡아들인다. 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확실한 물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풀어주게 된다.

 

한편 변호사 고진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번 사건을 풀어가고 있었는데, 명성실업 수전노 김성노에게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김성노의 말에 따르면 이미 80년 전에 사라진 사이비 종교 백백교가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보물(수천억의 채권)이 있으며 강도들이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찾고 있는 '낡은 광목천 끈'에는 그 보물이 있는 위치가 암호로 적혀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고진에게 광목천 끈을 가져다줄 것을 약속한 대신 자신의 변호사 화미령과 함께 암호를 풀어 보물을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제안한 것이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계속되는 살인과 그 뒤를 쫓는 고진과 이유현의 이야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다. 무엇보다 현직 판사인 작가의 풍부한 사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세한 수사 과정의 묘사는 리얼리티를 더했다. 뿐만 아니라 컨테이너 밀실 살인, 김성노 양평 펜션의 시간차 살인 등 중간중간 등장하는 사건과 트릭을 어둠의 변호사, 고진의 추리와 함께 풀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책을 읽으며 내 나름대로 예측했던 모든 것이 마지막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반전 때문에 깔끔하게 배신을 당했다. 그 짜릿한 배신감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책이다.
과연 사이비 종교 백백교가 숨겨둔 보물을 고진과 이유현은 찾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80년이 지난 백백교의 보물을 용해운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누군가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유다의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