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에서 출간된 <닥터 슬립>은 스티븐 킹의 전작 소설 <샤이닝>의 후속이라고 한다. <샤이닝>을 읽은 많은 사람이 샤이닝의 그 꼬마(대니)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하며 이 책을 읽고 있을 텐데, 워낙 독서 끈이 짧은 나는 <샤이닝>은 물론 스티븐 킹의 단 한 작품도 읽어보지 못한 상태로 <닥터 슬립>을 만나게 되어 이야기의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려했던 걱정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전작 <샤이닝>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닥터 슬립>을 읽는 데는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왜 사람들이 스티븐 킹 소설에 그토록 열광하는지를 '들어가면서' 부분인 자물쇠 상자와 방울뱀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의 몰입도는 그 어느 소설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정말 책장이 무섭게 넘어갔다.

 

 

 

 

소설 <닥터 슬립>에 등장하는 '샤이닝'이라는 용어는 스티븐 킹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기존에 있는 용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니 ㅡ_-a 긁적. 아무튼, 소설의 서두에서 샤이닝 능력을 지닌 꼬마 대니가 유령을 본다기에 영화 <식스 센스>에서 유령을 보는 능력을 지닌 꼬마(헤일리 조엘 오스먼트) 정도의 능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니 이 샤이닝이란 능력의 활용 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텔레파시로 생각과 그림을 전송할 수 있으며, 영화 <인셉션> 처럼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인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스타크 가문 브랜 스타크의 능력인 감각을 공유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샤이닝 능력을 가진 소년 대니가 자신의 능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걸 보니 이 '판타스틱'한 능력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주인공 댄 토런스(대니)는 자신의 샤이닝 능력에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술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신(코카인은 옵션) 어느 날, 하룻밤을 같이 보낸 여자 디니의 지갑에서 70달러를 챙겨 나가다가 그녀의 아들 토미로를 발견한다. 댄은 샤이닝을 통해 토미가 랜디 삼촌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애써 무시하고 70달러만 챙겨 도망간다. 하지만 망할 70달러를 돌려주지 못한 것과 그녀의 아들 토미는 랜디 삼촌 손에 죽지 않았을까 하는 그날의 일은 벗을 수 없는 후회로 남게 된다. 그는 다시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윌밍턴을 떠나 프레이저의 '티니타운'이라는 작은 마을에 정착해서 호스피스 일을 하며 죽어가는 사람을 돌본다. 사람들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편안하게 눈 감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그를 보고 '닥터 슬립'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래전부터 그의 주변에 맴돌던 '아브라'라는 소녀가 댄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이 소녀의 등장은 책에 다시 한 번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아브라의 어릴 적 기이한 행적의 에피소드를 읽을 땐 "헐 이거 뭐지?!" 하며 호기심 반 놀라움 반으로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브라가 댄을 찾은 이유는 샤이닝 능력이 있는 아이들을 고문한 후 죽여 거기서 나온 스팀(기력)을 먹고 사는 괴집단 '트루 낫'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의 샤이닝은 댄보다도 훨씬 강력했기 때문에 스팀을 먹고 사는 '트루 낫'에게 아브라는 더없이 매력적인 먹이였던 것이다. 댄은 자신이 어릴 적 샤이닝으로 힘들어할 때 도와주었던 딕 할로런을 생각하며 그녀를 도와주기로 결심하는데…

 

두 권으로 구성된 책을 정신없이 읽어버린 후 평소에는 잘 생기지 않던 후유증이 남았다. 왜 그런 경험을 한 적 없는가. 읽고 있던 책의 혹은 다 읽은 책의 내용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계속 생각나는 경우. <닥터 슬립>이 내게 그런 책이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처음 접한 나는 <닥터 슬립>을 읽으면서 그가 만든 독특한 세계관과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속 던져주는 그의 필력에 반해버렸다. 올여름, 이 무더운 날씨에 읽기 딱 좋은 책이다. 기회가 생긴다면 오싹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샤이닝>도 꼭 읽어봐야겠다.

 

 

 

 

닥터슬립, 스티븐킹

 

 

시간이 빚은 예술이라는 위스키. 배고픈 학생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스카치 위스키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만날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위스키는 소위 좀 산다는 사람들의 상징, 그리고 클래식 음악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편견이 세월이 흘러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어도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이런 위스키에 대한 고정관념이 굳어져 위스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즐기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찾아봤지만, 만족스러운 책은 찾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10위 안에 꼽히는 위스키 수입국이지만 위스키에 대한 전문 서적이 부족한 상황이고 서적의 부족은 자연스럽게 체계적인 교육의 부실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장동은 작가가 집필한 <스카치 위스키 바이블>의 2014년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펼쳐 들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스카치 위스키라고 하면 스코틀랜드에서 곡물, 물, 효모로 만든 증류주를 말한다.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스카치 위스키는 코냑과 브랜디의 인기에 밀려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 포도밭을 황폐화한 포도나무 뿌리 진드기 '필록세라'로 인해 스코틀랜드의 민속주에 불과했던 스카치 위스키가 코냑의 생산지인 프랑스에서조차도 12배 넘게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스카치 위스키 바이블답게 스카치 위스키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제조과정, 풍미까지도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가끔 등장하던 오크통 쌓여 있는 저장고를 볼 오크통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냥 위스키를 담아두는 통쯤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오크통이 위스키의 풍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고 품질의 오크통을 사용해야 한다고 해서 오크통이 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위스키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되었는데, 참고로 오크통은 수령이 100년 이상이 된 떡갈나무나 참나무 계열을 사용한다고 하니 상식으로 알고 있길…

 

 

 

 

이번 개정판은 초판 출간 후 변화가 있었던 스코틀랜드 증류소 정보와 현재 주목받고 있는 대표급 바텐더들의 창작 칵테일을 새롭게 업데이트했다고 한다.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창작 칵테일 12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의 가장 눈에 들어오고 시음하고 싶었던 칵테일은 2010년 월드클래스 한국대회 1위, 엄도한 바텐더의 P-스위트였다. 조니워커 플래티넘 위스키에 얼그레이티 그리고 시나몬 스틱과 브라운 슈가의 조합이 어떤 풍미를 선사할지 기대되는 칵테일이다. 이 외에 피크닉 때 잘 어울리는 '크리미 그린키치'와 위스키 초심자나 여성을 위한 칵테일인 '시트러스 스매쉬'도 매력적인 칵테일이라 생각한다. 12가지 창작 칵테일 레시피를 보면서 재료와 베이스만 준비되어 있다면 물론 전문 바텐더 정도의 퀄리티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스키를 즐기는 분들이라면 <스카치 위스키 바이블>에서 소개하고 있는 창작 칵테일을 집에서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작업용으로도 딱~!!

 

 

 

 

 

나는 평범한 삼십 대 직장인으로 위스키를 그다지 많이 접해본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국내 최초의 위스키 전문 문화공간이자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픈한 '조니워커 하우스'가 인상 깊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시트러스가 들어간 칵테일, 다양한 애피타이저와 맛깔스러운 요리 하나하나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직장 동료들과 꼭 한 번 가리라 다짐하고 책 장을 넘겼다. 이 책을 통해 처음에는 위스키의 역사와 제조과정 그리고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다음으로 위스키와 어울리는 요리 맛보고 문화 공간을 탐방할 수 있었으며, 마지막 스코틀랜드를 기행 하는 여유와 낭만의 즐거움을 얻었다. 위스키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책을 덮는 순간 위스키와 아주 친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콜러에게 이 책은 필독서가 아닐까? 위스키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녀석이 아니다.

스카치위스키바이블

 

죄인 이순신은 들어라. 그대는 군왕을 기망하고 왕명에 따라 군사를 내지 않은 죄 죽어 마땅하나 지난 임진년 이래의 공을 가벼이 볼 수 없어 백의종군을 명하니 일신의 안위를 꾀하지 말고 나가 성은에 보답하도록 하라. - 본문에서

 

임진왜란, 왜군이 쳐들어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여 국가 존망의 시기에 누명을 쓰고 파문당했던 이순신 장군이 도원수 권율의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으며 소설 <명량>은 시작한다. 파문당한 이순신을 대신하여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칠천량 해전에서 왜군에 대패하고 그의 아들과 함께 전사한다. 그 시각 수군의 참패소식을 전해 들은 조정에서는 유성룡 등이 새 통제사로 이순신을 임명하라 왕에게 청을 하고 있었다.

 

이전 통제사로 있던 이순신을 다시 임명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병조판서 이항복이 알면서 그러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왕은 김명원과 이항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리하라. - 본문에서

 

이 대목에서 부하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까지 존경받았던 이순신을 시기 질투하고 있던 선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전라 좌수사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칠천량 해전 때 경상 우수사 배설이 숨겨 둔 배를 찾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하였다. 해안선의 길이가 천 리가 넘는 전라도에서 숨은 배를 찾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임무는 비변사의 비밀 낭청인 장호군이 수행했는데, 그가 숨은 배의 위치를 추적해가는 과정은 흡사 인기 미국 드라마 CSI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장호군의 통찰력과 추리력에 감탄했다. 한편, 이순신 장군은 별도로 생각해 둔 작전이 있었던 것인지, 자신의 아홉 무장 중 한 명인 이원룡에게 과거 좌수영과 돌산도를 연결하기 위해 사용했던 쇠사슬(철쇄)을 찾아오라 명한다. 대략 칠백이십 관(2.7톤)의 철쇄를 장정 다섯과 함께 옮기는 과정에서 이원룡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말일세. 미친 짓도 온 세상 다 미쳐 돌아가는 이때 하지 않으면 언제 해 보겠는가? - 본문에서

 

박은우 작가의 소설 <명량>의 주제는 열두 척의 전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울돌목(명량)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한 명량 대첩이지만, 책의 많은 부분을 명량 대첩에 할애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의 명을 받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명량 대첩을 준비하는 과정을 더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 실존 인물과 더불어 이순신 장군의 호위무사 선돌, 비밀낭청 장호준, 의문의 지략가 준사, 이순신 장군 뒤를 바짝 쫓는 척살대 까마귀 부대 등 허구 인물이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이야기에 흥미를 더했다. 현응진과 예화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명량 대첩 부분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울돌목(명량)의 형세를 잘 살린 사실감 있는 상세한 묘사와 흥미진진한 이순신 장군의 작전 전개는 읽고 있는 나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특히, 작전 중 그것은 오지 않았다. 있으면 없는 것이고 없으면 있는 것. 이 대목에서 소름이…. 책을 다 읽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짜릿하고 강렬했다.

 

임진왜란 중 정유년(1597년) 4월부터 9월까지의 일을 한 편의 드라마로 그려놓은 <명량>은 박은우 작가가 영화사의 제안을 받아 쓴 책이라 한다. 책을 읽어보니 작가가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여 남해의 전적지(회령포, 벽파진, 남원성, 섬진강 두치진 등)를 직접 현장 답사하며 구상한 작품답게 허구가 가미된 소설이지만 역사서로도 훌륭한 작품이었다. 영화 <명량>을 볼 예정인데, 소설 <명량>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역사지식이 영화의 배경지식이 되어 보다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실 분들이라면 박은우 작가의 소설 <명량>을 읽은 후 관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아직 내게 열두 척의 전선이 있으니 힘을 다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오. - 본문에서

명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