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지금까지 고교야구를 좋아한다. 황금사자기, 청룡기 등 전국고교야구 대회에 야구장을 가는 것은 물론 고교야구 주말리그 결과도 항상 확인하고 있다. 내가 고교야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중 ·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던 영향이 큰 것 같다. 아직 기억나는 것은 당시 야구부였던 친구 녀석이 4교시까지 내리 잠만 자다 점심시간만 되면 야구부 훈련을 갔다는 사실이다. 학교 운동장은 우리 학생들의 공간이 아니라 야구부의 공간이었다. 야구부 덕분에 학교 운동장에서 한 번도 마음 편히 놀아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우리 학교 야구부 성적이 좋았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목동 야구장에 응원이라도 가면 콜드게임으로 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 야구에서 한 회 11점을 내주면 전광판에 A로 표시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모든 장비를 갖추고 매일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는데도,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책 <끝나야 끝난다>의 무대가 되는 가이세이 고등학교 야구부는 내 모교 야구부와 환경이 전혀 달랐다. 전용 야구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내 친구 녀석처럼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가이세이 고등학교는 30년 넘게 도쿄대학 합격률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일본 최고의 명문 학교로, 공부벌레들이 모인 야구부이다. 아오키 감독은 항상 그들이 일반적인 야구로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네들만의 필승 방법을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었다. 그 필승법은 단 하나, 닥치고 풀 스윙. 아오키 감독은 방망이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볼넷으로 걸어나가느니 풀 스윙으로 파울 열 개 치고 삼진아웃 당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못 박는다. 우리가 파울이라고 부르는 것이 홈런과 차이가 있다면 '방향' 뿐이기에 계속 풀 스윙으로 파울볼을 치며 두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도 아무것도 안 하고 소극적으로 살아간다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다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사실 이 책을 표지만 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몇 장을 넘겨보니 기억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마음을 고쳐먹고 진지하게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의 부제는 전세를 뒤집는 약자의 병법이다. 가이세이 고등학교 야구부는 분명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머리가 좋은 건 사실이나 야구 한 가지만을 놓고 보면 분명 약자임이 틀림없다. 그들보다 야구를 잘하는 고등학생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 야구에 약한 이들이 일반적인 연습이 아닌 실험과 연구를 통해 전세를 뒤집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머리가 좋은 놈들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린 학생들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을 고치려고 창의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많을 걸 배우게 되는 책이다. 작가가 읽는 즐거움이 있도록 구성하려 애쓴 모습도 느껴진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아오키 감독이 남긴 말로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다. 내게 꽤 인상 깊은 말이었다. '나는'이라고 말하면, '나'는 내 안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예를 들어, '나는 친다'는 내 안의 '치는 나'가 있어서 그 '나'가 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친다'라고 하면, 남들을 압도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나'는 나의 밖으로 작용한다. 공을 때리는 것도,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끝나야끝난다

 

상어 뛰어넘기. 처음 책 제목을 보고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상어 뛰어넘기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상식을 벗어난 장면을 집어넣거나 이야기의 전개를 바꿔서 프로그램 질이 떨어지더라도 시청률 내림세를 만회하고자 하는 것. 즉, 어떤 사람이나 상황이 최상의 상태를 이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명성을 얻으려고 터무니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저자가 책의 제목을 '상어 뛰어넘기'로 정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말 책 내용과 어울리는 제목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로맹 모네리는 지기와 멜린 커플을 통해 SNS, 블로그, 댓글에 빠져 지내며 인터넷을 통해 쉽게 만나는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인 지기라는 인물은 독특하고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인물로 보일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인터넷과 게임을 좋아하고, 친구와의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시대 쿨한 젊은이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 속의 지기가 조금 과한 감이 있지만,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평소 외모에 자신이 없던 여자 주인공 멜린은 지기와 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다. 지기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십계명을 읊으며 두 사람의 연애 조건을 내건다. 이건 뭐 사귀지 말자는 식이지…. 하지만 이미 지기에게 빠져 있던 멜린은 그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멜린은 지기에게 점점 지쳐갔다. 나 같으면 안 만난다. 그녀는 직장 동료 노에미에 연애 상담을 하다 다른 남자를 만나보라는 조언을 듣게 된다. 여기서 웃긴 건 멜리가 노에미의 조언대로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 멜린의 마음과 외모는 점점 변하게 된다. 지기는 멜린의 심경 변화를 깨닫고 쿨한 이미지를 버리고 찌질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다행히 멜린의 마음에는 아직 지기가 남아 있었고 찌질한 구애 속에 멜린은 지기를 다시 받아준다. 하지만 예전에 그녀가 사랑했던 지기의 쿨내 풍기는 모습은 사라지고 찌질한 지기만이 남아 있었다. 오로지 멜린을 위한 딸랑이가 된 지기. 그런 지기의 모습에 매력을 찾을 수 없게 된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위기가 오고 멜린의 또 다른 남자 파브리스가 두 사람 사이에 본격적으로 끼어들게 되는데…. 과연 지기와 파브리스 중 멜린은 누구를 선택하는지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귀찮아지더라는 사실이다.

상어뛰어넘기

 

조금 창피한 이야기지만 독서 끈이 짧은 나는, 톨스토이는커녕 고전 문학에 대한 지식은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온 것이 전부이다. 물론 그것마저도 지금은 희미해지고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 헤르만 헤세 작품이라든지, 톨스토이 작품이라든지 유명한 필수 고전 문학을 전부 읽는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지만 가능한 한 많이 고전 문학을 읽어보려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13편의 톨스토이의 중단편 소설을 선정해서 모아놓은 이 책을 읽는 동안이 내게는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 일인지, 안타깝다고 말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담긴 13편의 이야기는 내가 전부 모르고 있는 내용이었다. 흐흐. 말해놓고 보니 창피하긴 하다. 그치만 뭐… 지금은 비록 중단편이지만 톨스토이의 작품을 13편이나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크게 부끄럽지는 않다.

 

이 책에 수록된 13편의 이야기 모두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바보 이반>을 인상 깊게 읽었다. 나를 제외하고 다들 익히 알고 있던 유명한 작품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가난한 제화공 세묜이 벌거숭이 미하일을 보고 안타깝게 여겨 집으로 데려가 아내를 시켜 밥을 차려주는데, 이후로 미하일은 세묜에게 구두수선일을 배워 세묜을 돕는다. 미하일의 소문을 듣고 한 신사가 비싼 장화를 주문하러 온다. 주문을 받은 미하일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문받은 장화 대신 슬리퍼를 만들었고, 이를 본 세묜은 크게 당황하며 그 이유를 물어보려는 순간, 장화를 주문한 신사의 하인이 찾아와 신사가 죽었다면 고인에게 신길 신발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두 여자아이를 데리고 한 부인이 찾아오는데 그 부인은 부모가 죽어 고아가 된 아이를 친자식처럼 사랑으로 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미하일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두 여자아이와 부인을 보면 이 책 마지막에 수록된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한 어부의 아내 잔나가 생각난다. 잔나는 옆집 아낙 시몬이 죽은 것을 발견하는데, 죽은 시몬은 마지막 순간까지 숄과 자기 옷으로 자신의 두 아기를 덮어주는 일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잔나 역시 다섯이나 되는 아이가 있어서 자신의 아이들로도 생활이 힘들지만, 남겨진 두 아기를 데려가 자기 아이들 옆에 누이는 그녀를 보니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제목도 그리고 내용도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라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다. 요즘 미스터리 스릴러를 즐겨 읽어서 약간 조급(?)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에 작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바보 이반>은 간결하면서도 교육적인 내용이었다. 한 번쯤은 들어본 것 같은 제목인데도 막상 읽어보니 전혀 생소한 내용이었다. 쩝…. 똑똑하고 계산적인 사람들을 이기는 바보로 가득 찬 이반의 왕국. 모든 국민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바보 이반이 세운 왕국의 풍습이 꽤 인상적이다. 손에 물집이 생긴 자는 식탁에 앉고 그렇지 않은 자는 남이 남긴 밥을 먹는다. 짧은 동화책 같은 이야기로 아이들도 그리고 어른들도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하는 작품이다. 열린책들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나처럼 고전 문학을, 그중 톨스토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톨스토이 단편 모음집이라 생각한다.

사람은무엇으로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