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준비한다.
그러고 나서 포털 사이트에 뜬 인터넷 기사를 확인한다.
기사 밑에 선동, 어그로, 맞춤법 장난(낳느냐, 나으냐...), 훈장질 등 댓글이 달려있다.
​댓글 보러 왔다고 쓴 사람도 있다.
기사 내용보다 달린 댓글이 더 흥미롭다.

 

 

 

지난 대선 국정원 댓글 선거개입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조사가 진행 중이다.
또한, ​최근 강남구청 댓글부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댓글이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작년 말, 서점가에 조용히 등장한 책이 있다.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
조용히 등장했지만(적어도 내 기억에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을 다룬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책은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을 모티브로,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몰이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지방대 출신, 20대 청년 세 명으로 구성된 팀-알렙.
이들은 주로 ​상품평과 후기 등을 지어내거나 조작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다 어떤 의문의 조직과 함께 일을 하면서 점차 판을 키워나가게 된다.
진보성향 사이트 파괴는 팀-알렙이 의뢰받은 일 중 하나였다.
​​제아무리 철옹성 같은 사이트들도 그들이 손을 데기 시작하면 버텨내질 못했다.
사이트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뿌듯한 뭔가를 느꼈다.
지방대 출신이라고 무시당하던 그들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어떤 위기에 처하였는지도 모르고.​

저자는 '출처에 대하여'를 통해 이 소설이 전적으로 허구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기분이다.
커뮤니티에 퍼온 인터넷 기사들, 영화 후기들, 맛집 포스팅들이 오늘은 다르게 보인다.​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어.
​사람들은 절대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뭔가 배우려 들지 않아.
대신, 애착이 가는 커뮤니티를 두세 개 정해놓고 거기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지.
​그런데 그 커뮤니티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크게 편향돼 있어.
그런 데서 오래 지내다 보면 어떻게 되겠어?

혹시, 내가 찾는 커뮤니티도?!
오늘부터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생각이다.
댓글부대가 어떤 방식으로 여론몰이하는지 이제 조금씩 보인다.
이 책을 읽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노련해진 것 같다.

댓글부대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혹자는 너무 가볍다고 싫어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표지가 좋다.
추억의 시간을 수리한다는 제목도 흥미로웠다. 추억을 어떻게 수리한다는 건지 궁금증이 컸다.
그래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쓰쿠모 신사가 있는 일본의 작은 동네.
이제는 찾는 사람이 뜸한 상가 거리.
그곳에 '추억의 시(時) 수리합니다'란 간판이 걸린 시계방이 있다.
원래 간판에 있던 글자 '시계(時計)'에서 '계'자가 떨어져 나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시계방을 운영하는 슈지는 간판이 마음에 드는 지, 고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덕분에 이를 오해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그들은 가슴 아픈 추억을 수리해달라고 의뢰한다.
품성이 착한 슈지의 연인 아키라는 그들의 의뢰를 거절하지 못한다.
결국, 남다른 관찰력과 섬세함을 가진 슈지가 그녀와 함께 그들의 추억을 '수리'해준다.​

이 책은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단편 구성이라 굳이 전 책을 읽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4편의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결국 큰 주제는 아키라 가족에 대한 비밀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아키라 아버지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네 번째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풀고 다가가는 아키라의 모습에 마음이 동했다.
다음으로 몰입할 수 있었던 이야기는 이쿠미가 슈지와 아키라 사이에 갈등 요소로 등장하는 세 번째 이야기였다.
이쿠미 때문에 혈압이 ㅡ0ㅡ!!!

이 책을 읽고 생각나는 건 딱 한 가지다.
​세상에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
그게 가족이라도 말이다…….

생각 없이 지니고 다녔던 시계에도 추억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며칠 전, 새해맞이 집 정리하다 어머니의 오래된 시계 하나를 발견했다.
고장이 난 것인지 멈춰있는 시계를 보고 '못쓰겠구먼, 이제 버려~'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다시 보관함에 넣으셨다.
그땐 생각 못 했는데, 아무래도 어머니도 그 시계와 함께한 추억이 있으셨나 보다.

​미스터리 요소가 있지만, 정통 미스터리에서 한 발짝 정도 물러선 작품이다.
정통 미스터리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분 좋게 따뜻한 책이고, ​왠지 모를 그리움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서 다음 편이 나오면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추억, 힐링, 미스터리소설, 추억의시간을수리합니다3

 

 

 

미제로 끝난 14년 전 유괴사건.
일명 '64'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시효만료를 1년여 남겨둔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주인공 '미카미'는 형사부와 홍보부, 두 부서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때문에 두 부서에서 믿음의 존재가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닮은 얼굴이 싫어서 가출한 딸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형사부에서 홍보부로 밀려나 낙인이 찍힌 그는 그만두고 싶어도 가출한 딸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그러는 중에 신임 경찰 정창의 홍보를 위해 유족의 집을 방문하는 행사를 맡게 된다.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피의자 '아마미야' 집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사건 당시 경찰들과 유족들 사이에 마찰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이 D현경을 없애버릴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

이 소설의 갈등은 4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주인공 미카미와 딸 아유미의 갈등
둘째, 홍보부와 형사부 사이에서의 주인공 미카미 내면 갈등
셋째, 주인공 미카미와 신문사 기자들과의 갈등
넷째, 주인공 미카미와 상사와의 갈등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 살짝 놀랐다.
하지만 몰입해서 읽어나가 이틀 만에 책의 결말을 볼 수 있었다.
미카미와 그의 동료들이 경찰과 언론을 조율하며 전략적으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짜릿했다.
7년 만에 작가가 선보인 소설답게 독자의 마음을 들어다 놨다 하는 글솜씨는 대단하다.

일본에서는 2013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일본 서점 대상' 2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64 육사>.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내가 볼 땐 추리소설을 가장한 결국 경찰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만족스럽게 읽은 소설이다 : D

요코야마히데오, 64, 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