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우가 숱하게 일어나곤 한다. 하루동안 서로 전혀상관 없는 영화와 도서를 동시에 접한 그날은, 영화의 주인공이 도서의 주인공으로 투영되어 버린다는 것 말이다.

어제는 오후나절에 류승범, 황정민 주연의 [사생결단]을 보았고, 그 여운이 식기도 전에 [동경만경] 도서를 완독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인지, 동경만경의 남자주인공인 료스케가 류승범의 얼굴로 내 상상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여 되었던 것이다.

또하나, 내가 난독증이 아닐까라고 의심했던 계기가 바로 일본 도서의 모음중심의 주인공들 이름이었다. 도무지 그 이름이 그 이름 같아서, 책을 읽다가도 헷갈려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A 라는 주인공의 말을 B 라는 주인공의 대사로 착각하여, 내용을 180 도 바꿔, 왜곡한채 이해한적도 더러 있었던 것이다.

무튼, [아쿠타가와상 수상 요시다 슈이치 신작 장편/ 일본 후지 텔레비전 드라마 방영 화제의 원작소설] 이라는 화려한 카피가 인상적인 이 책을, 나는 난독증이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가진 채 어렵사리 완독을 하였고, 어찌어찌 후기를 남겨 볼까 이래저래 고민도 해보았다.

료스케와 미오라는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불신을 주제로 이어지는 끝이없을 것 같은 사랑이야기. 항만을 배경으로 하는지라, 낯선 관련 용어들에, 그 배경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 또 답답해도 하였지만, 그래도 쉬운 내용의 줄기를 따라, 수월하니 완독의 출구까지 엉금엉금 기어 갈수 있었다.

내 상상속 류승범, 료스케는 한때나마,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 뜨겁게 사랑을 하였던 경험이 있다. 그러한 상처의 증거물이 가슴팍에는 열꽃의 섬뜻하지만, 아름다운 화상자국을 남겨주었고, 말없이 떠나버린, 상대방의 뒷모습에서, 사랑의 회의를 느끼며, 다시는 사랑같은 것은, 믿지도,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의 다짐을 받아내게 된다.

미오?! 투영할 만한 또다른 현실적 배우가 없었던지라, 내 상상 속 그녀는, 얼굴 한복판에 퀘스천마크를 찍어놓은 채, 그려지곤 했다. 이상하게 여자주인공들을 잘 대칭되어줄 인물을 찾아내기가 버겁던 말이다. 무튼, 그녀 또한 사랑앞에 나자빠지고, 그로 인해, 감정낭비를 해가며, 추해져가는 그런 모습들에 자신을 투영하기 싫어서, 이래저래 핑계를 대면서, 이 세상엔 진정한 사랑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끊임없이 지루한 변명을 쏟아내는 인물이다.

이들은 첫 만남에서, 그리고 두번째 만남 정도에서, 미약하나마, 자신들의 진짜 사랑을 만나버렸다는 야속한 함정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애써 변명한다. 그러한 감정 자체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 말이다. 그래서인지 끊임없이 상대방의 몸에만 탐닉하여 가면서, 그러한 서로의 모습으로 또 자기변명을 해대고, 그러한 억지논리 앞에서, 자신들이 맞았노라, 끊임없이 비아냥대며, 진정한 사랑에 대하여 끊임없이 헤매이고, 헤어나올줄을 몰라한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세대가 겪고 있는 세태가 그들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런지 조금은 아쉽기도 하였다. 그들이 폰미팅으로 일회성 만남을 종용하였듯, 인터넷 만남이 범람하는 요즘도, 사랑이라는 보기좋은 허울을 미끼로,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 말이다. 마치 사랑을 파는 다단계 판매의 그것처럼, 본질은 점점더 퇴색해감과 동시에, 허무함과 무가치한 만남만 숱하게 양산해내는 그런 자가번식 말이다.

나 스스로도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이렇다할 확실한 정의를 내리기가 버거운 편이다. 드라마나 영화, 책 속에서 너무나 쉽게, 아무렇게나 차용되어 사용되어지는 사랑이라는 진부한 소재가, 가끔은 오물을 닦아내고 버려지는 휴지더미의 그것들 처럼, 왜곡되어 보여지기도 하였기에 더더욱 말이다.

이야기를 더더욱 흥미롭게 끌어나가는 주인공 하나가 바로 [작가]라는 (어쩌면 요시다 슈이치 자신의 모습을 어줍잖게 반영해 놓은 것은 아닐까?) 직업의 아오야마 호타루 이다. 더이상의 소재 발굴이 힘들어진 그는, 료스케와 미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겨 담는 작업으로 자신이 맡은 여성잡지의 연재소설을 꾸역꾸역 소화하곤 한다. 취재라는 목적으로 료스케와 그의 주변인물을 염탐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난 그 작가라는 그 사람이, 막판에는 상황도 아름답게 종결하고, 나름으로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나레이터로 변신하리라 예측도 했더랬는데, 되레 그가 진정한 사랑의 모습앞에서 충격을 받은채 나가떨어져 버린다.

아오야마 호타루 말따나, 누군가 한두명이 소석 막판에 동반자살이라도 해줘야 그 감동이 극대화 되어, 독자를 만족시킬꺼라던 말, 어쩌면 나 같은 독자에게도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의아해도 해보았다. 정말 죽기를 바랬으니까, 왠지 사랑은 죽음이라는 극단의 조치가 없다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채, 식어가는 수학공식 같은 거라고 착각해 와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참 어이없는 몰개념으로 점점 사랑이라는 단어를 좀 먹어가는 것은 아닐런지 불안하기도 하더란 말이다.

후기글이 정말 두서없이 써내려져 간다. 책 속의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기존의 내 생각들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질 못해서, 허덕이는 것도 같은데... 무튼, 몸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라는 허울좋은 포대자루에 감싸인 사랑이라는 단어, 이해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사랑 하나 쯤, 인생을 살면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더라는 생각을 간절하게 느끼게 만드는 도서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