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쪽

나는 삼촌처럼 순하디 순한 사람이 왜 새삼 순화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달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순화에 목적이 있는 교육이니 내 짐작엔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맑은 삼청 지역에 교육 대상자들을 모아놓고 아랑훼즈 협주곡 같은 폴 모리아 풍의 경음악을 틀어주면서 지리산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 녹차를 제공하고 김남조나 유안진 같은 여류시인들의 아름다운 시를 읽어주고, 때로는 안병욱이나 김태길 교수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을 초빙해 자아의 발견이라든가 예술의 의미와 그 이해, 인격의 고양과 이타심에 대해,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 하는 강연도 들려주고, 물론 체력단련을 위해 가끔 봉체조도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미삼아 한번 해보는 것일 뿐 대개는 낙엽이 떨어지는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잔디밭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포크댄스를 배우거나 모닥불 가에 둘러앉아 통기타 반주에 맞춰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아름다워, 노래를 부르는게 일과이며 교육 말미쯤엔 한경직 목사나 조용기 목사 같은 저명한 종교 지도자의 인도 하에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를 드리다보면 어느 결엔가 짐승 같은 불량배들의 거칠고 황폐했던 영혼이 오리 앞가슴 털같이 부드러운 무언가에 둘러싸인 듯 따뜻해져 지난 삶을 뜨겁게 반성하다 마침내 강복의 시간이 되어,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임재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하며 축도를 하는 동안 덩치 큰 사내들은 자신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ㄴ물을 줄줄 흘리며, 목사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전 정말이지 죽일 놈입니다, 엉엉 울다 급기야 바닥에 머리를 짓찧는 자해와 고백의 한바탕 퍼포먼스를 끝내고 나면 죄 많은 영혼이 정말로 정화가 된 듯 뿌듯한 기쁨에 콧구멍이 저절로 벌렁대며 자신이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라도 되는 양 하루 종일 온화한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아 마침내 카스텔라처럼 폭신폭신하고 햄스터처럼 앙증맞은 사내로 순화되어 룰루랄라 엉덩이를 씰룩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교육이 아닐까 상상했다. 물론 그것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박달봉으로 두들겨 맞아 머리가 깨지고 얼음장 위에서 구르다 뱃가죽이 찢어지는 것보다 더 끔찍한 고문일지는 모르겠찌만 말이다.

: 작가는 이런 문단을 창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통을 느꼈을까? 이러한 문단의 창작이 한때 작가가 되어보고자 마음을 품었던 나이지만, 이런 문단을 볼때마다 과연 이런 문단과 비슷한 것들을 내가 창작해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항상 고개를 갸우뚱하게된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라 적었는데 상당히 길다. ㅎㅎ

 

58쪽

그 형님은 하관이 빠르고 눈이 한가운데로 몰려 있어 스스로는 내심 독사나 살무사와 같은 그럴 듯한 별명을 기대했지만 사람들은 무정하게도 그만 그에게 토끼란 별명을 붙여주고 말았다. 눈이 늘 빨갛게 충혈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전파 조직원으로서 참으로 모양 빠지는 별명인 데다 토끼라는 별명이 밤일과 관련해 매우 치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된 토끼는 누구든 자신을 토끼라고 부르는 놈이 있으면 거시기를 잘라버리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미 한 번 붙여진 별명을 무를 수는 없는 노릇, 사람들은 모두 뒤에서 그를 토끼라고 불렀다.

: 이 저자다운 표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단락이다. 아무도 없는 새벽근무시간에 낄낄대야만 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ㅋ

 

62쪽

찐빵처럼 잔뜩 부풀어오른 입에서 뻥튀기가 터지듯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양의 토사물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구경꾼들은 미처 예상치 못한 장면에 모두 인상을 찡그리고 뒤로 물러서며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러댔는데 바로 앞에 있던 토끼는 불행하게도 소방차에서 물대포를 쏘듯 엄청난 압력으로 쏟아지는 그 많은 토사물을 고스란히 얼굴에 뒤집어써야 했다. 이에 토끼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러댔지만 흑설탕이 섞인 끈적끈적한 토사물이 얼굴에 들러붙어 눈을 뜰 수도 없고 숨도 쉴 수 없어 입을 벌렸는데 그만 도치가 게워내는 토사물이 고스란히 입으로 들어가 기도를 막는 바람에 닭 뼈가 목에 걸린 개처럼 연신 캑캑대는 와중에 도치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린 토사물이 대로 한복판에 지름 3미터가 넘는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어 토끼는 죽 그릇에 빠진 파리처럼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레미콘에서 거푸집으로 콘크리트 반죽을 들어붓듯 가엾은 토끼 위로 끝도 없이 토사물이 쏟아져 연신 그위에 미끄러지고 자빠지는 통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사물에 코팅이 되어 마치 꿀에 버무려놓은 강정 꼴이 되고 말았다.

: 첫번째 장 클라이막스 부분인데... 천명관 답다라는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기대되는 작품이다.

 

79쪽

이날 공중 삼회전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삼촌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박 감독과 스태프들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멋진 공중회전을 선보이고 바람처럼 사라진 한 청년에 대해 내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그 공중 삼회전을 다시 본 것은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뒤였다. 그날, 텔레비전에선 동계올림픽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는데 한국의 한 어린 여자피겨선수는 빙상 위에서 그 옛날 삼촌이 보여줬던 바로 그 놀라운 기술을 재현해 냈다. 훗날, '트리플악셀'이란 멋진 이름으로 명명된 그 기술은 그 여자피겨선수를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공중에서 정확하게 세 바퀴 반을 돌아 빙판 위에 내려앉는 것으로 소녀가 한 번씩 회전을 할 때마다 마치 빙판 위로 꽃다발이 쏟아지듯 엄청난 돈다발이 쏟아져내렸다. 하지만 그날 삼촌이 피겨도 신지 않은채 시연한 트리플악셀은 그에게 겨우 인조가죽재킷 한 벌만 안겨주었을 뿐이었다.

 

46쪽

몇 해 전 나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안았음을 알면서도 더 열정적으로 살고 사랑한 한 소년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는 아홉 살 인생 중 여섯 해 동안을 암과 싸웠습니다. 나는 병원에서 그를 한 번 보고는 그가 그 싸움을 끝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가 퇴원하는 날 나는 작별 인사를 하러 병원에 들렀습니다. 그는 뜻밖에도 나에게 집에 같이 가자고 청했습니다. 내가 시계를 훔쳐보며 망설이자, 그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집 앞 도로에 차를 세웠습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3년 동안 버려 둔 채 차고에 세워져 있던 자신의 자전거를 꺼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소원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었지만 그때가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전거에 보조 바퀴를 달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린 소년이 그 말을 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래들이 앞바퀴를 들고 뒷바퀴만으로 달리거나 자전거로 온갖 재주를 부릴 때, 자전거에 보조 바퀴를 달고 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이에겐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소년은 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엄마를 붙잡아 주세요."

엄마들이란 다 그렇습니다. 항상 자식을 보호하고 싶어합니다. 엄마는 소년이 동네를 한 바퀴 돌 동안 계속 아이를 잡아 주고 싶어했습니다.

-중략-

끔찍할 정도로 파리하고 창백해서 아무도 그가 자전거를 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밝게 미소 지으며 우리에게 달려왔습니다. 잠시 후 아이의 아버지가 보조 바퀴를 떼어냈고, 우리는 자전가와 아이를 위층으로 옮겼습니다. 아이는 말했습니다.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 방으로 오라고 해주시겠어요?"

2주 뒤 소년의 1학년짜리 동생은 우리에게 형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동생의 생일에 자신이 곁에 있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나 봅니다. 삶의 시간도 기력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 용감한 소년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동생에게 자전거를 물려줌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룬 것입니다.

: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책. 슬프다.

 

117쪽

우리는 자신의 길에 집중해야 합니다. 돈이나 물질적인 부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본질적인 것들로 우리를 데려가는 길에.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대신 "이만하면 충분해." 하고 만족해야 합니다. "이걸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을 중단해야 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그것으로 충분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충분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날들이 '충분할' 때, 그 기분은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은 이대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런 기분이 드는 걸 막습니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충분하다는 느낌이 낯설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게 바로 삶이고, 난 더 이상은 필요 없어."하고 말할 수 있다면 큰 힘과 행운을 손에 넣은 것입니다.

: 이러한 류의 책에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 행복은 만족에서 온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