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더글라스 케네디
빅 픽쳐를 보고 처음 접한 저자이지만 흡입력이 대단하다. 기욤 뮈소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느낌이 들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작가인듯 하다.
글을 읽으시기 전에 책을 먼저 읽어보시라고 감히 추천합니다. 이 글은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작품 감상에 저해되는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작품 초반은 임신경험이 없는 남자들에게는 지루하기 그지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300페이지를 전후로 양상이 바뀌어 300쪽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정신없이 전개되는 진행과 이야기에 쏙 빠져 헤어나기 힘들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하다. 300쪽 이후의 이야기는 누구나라고하긴 뭐하지만, 법정 스릴러 양식을 살짝 표방하고 있어 그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 어퓨굿맨이나 링컨차를타는 변호사 등등에서 봐왔던 법정드라마 형식이 나름 인기있는 양식이 아니던가... 다른 법정이야기보다 더 재미가 있는 것은 이 작가의 묘사능력이라던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른 작가보다 뛰어나다는 것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카이로 주둔 기자의 인생에 한 남자를 만나고 아이를 갖게되고 산후우울증이라는 병에 시달리는 한 여인의 인생을 아주 재미있게 그려놓은 이야기이다. 작중에 나오는 영국인과 미국인의 미묘한 문화차이는 내가 미국/영국인이 아니기에 몸소 느끼고 이해하기엔 역부족인것을 느낀다. 뭐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내가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난 한국인인데... 그렇다고 이게 영국에 3개월 채류 했던 사람이 이걸 느낄 수 있을까? 과연 ... 난 잘 모르겠다만 그런걸 느끼는건 어불성설 같다. 옮긴이가 후기에 캐나다에서 느낀 고립감이 이 여주인공의 고립감과 유사할 꺼라는 생각은 들지만 저자가 작중 내내 말하고 있는 미국문화와 영국문화의 차이, 영국인의 생각과 미묘하게 다른 부분, 이러한 부분들은 저자가 미국에 태어나고 영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기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든다. 이러한 부분외에 작중에 나오는 클래식, 재즈 등 음악에 관한 부분이라던가 고전 소설에 관한 내용이라던가 이러한 깊이있는 소재들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이 작가의 매력이라 하겠다.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은 작가들의 패턴이 이러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작가가 유럽에서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작중 후반은 법정이야기이다. 변호사의 심문 장면, 증인의 진술 장면, 판사의 판결문 등등 법정 영화에서 익히 봐왔던 장면들을 묘사해놓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그려놓은 것 같은 사실감이 있을 뿐만아니라 속고감과 몰입이 언제 나머지 200 쪽을 다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주인공을 도와주는 주위의 몇 안되는 착한 사람들, 특히 생긴건 어리버리 하지만 변호인으로서의 능력은 탁월하게 보여주는 변호사는 인물설정이 압권이고, 주인공과 아들 잭의 교감하는 부분, 다시 아이를 찾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모습, 마지막으로 법정에서 승리한 후 잭과의 평화 등은 어느정도 나에게 감동을 주기도 한다. 막판 법정에선 제발 주인공이 이기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나 자신에 놀라기도 한다. 이렇듯 좋은 작품과 작가는 독자의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흥분과 분노와 동정과 기쁨과 슬픔... 이러한 감정들 중 어느 한가지만이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하고 또 마지막 장면도 상당히 행복하게 끝이 나는 장면이라 더 기분이 좋아지는 소설이라 하겠다.
이 작가의 작품은 두권을 읽었지만, 그 두권 모두 나에게 만족을 주는 작품으로 남았다. 다른 패턴과 다른 이야기로 나의 읽고 싶어하는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준 작품이라 이 저자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두고 두고두고 작품만 나오면 사서 읽어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평소 바람둥이의 비극적 말로를 보고 싶다거나, 바람둥이 남친때문에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거나, 바람둥이 남친을 둔 친구가 고생하는 걸 옆에서 보신 분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뭐 마지막 그 남자의 말로가 썩 비극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통쾌한 마지막이라 생각이 됩니다.
320쪽
"너무 늦어 정말 미안합니다. 정말 끔찍한 하루였어요. 샐리 맞으시죠? 트루디가 차를 드렸나 모르겠네. 투르디 때문에 놀라지 않았길 바랍니다. 제 의뢰인들의 취향과는 그렇지만 우리 고정 고객이라 할 만 한 축구 선수 부인들과는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지내는 편이죠. 그들의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만들거든요. 자, 이제 제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할 겁니다. 약 반 시간 만에 이야기를 끝내야 하지만요. 또, 지긋지긋한 금요일 저녁이니 교통체증이 일어나겠죠. '서식스 다운스' 지역을 아시죠? 주말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죠. 로맨틱한 장소이기도 하고.... "
: 책 내용이 300 페이지를 전후로 큰 전화을 갖고 있으며, 이 시점을 계기로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내용이 자뭇 독자를 흡입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의 지루함에 대한 보상이랄까 그런 점에서 후반부의 몰입도는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재미있다. 이 작가의 매력이 후반부에 여실이 발산되고 있다고 봐야하겠다. 이 때 등장하는 변호사 이 캘릭터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저 대사가 압권이다. 이 대사만으로 이 변호사가 어떤 캘릭터인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대사라 발췌했다. 뭐 왜 미국인들이 변호사를 싫어하는지 공감이 간다. 이 작가 두고두고 볼수록 매력이 넘친다.
348쪽
"주말에 정말로 그 여자의 시골 집을 찾아갔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우리에게 수면제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았죠? 아기에게 가한 협박들에 대해서는요? 제 말은..."
나는 지니 릭스 변호사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녀는 계속 주절댔다.
"당신이 미리 모든 걸 밝혔더라면, 우리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중략-
지니 릭스 변호사에게 무능하기 짝이 없는 영국 부자 계집이라고 쏘아주고 싶었다. 내가 미처 그 부분을 떠올리지 못한 것도 잘못이지만 그녀가 정말로 유능한 변호사라면 내게서 필요한 사실들을 알아내는데 좀 더 적극적이어야 했다는 걸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내 사건을 살인적으로 바쁜 스케줄의 부속물 취급하고, 심리가 시작되기 10분 전까지 내 법정변호사에게 사건 내용을 숙지시키는데 실패해놓고 나를 부실 상품 취급하는 게 괘씸했다. 대체할 법정변호사를 최소한 지난밤에 구했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이제 그녀가 망신당하게 된 책임을 나한테 덤터기 씌우려는 게 정말이지 못 마땅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데어드르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다음 무픔을 꿇고 앚아 5분간 위에 든 내용물을 토했다
: 법정 판결이 난 후 주인공이 그동한 했던 행동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철저하게 전략적인 전 남편의 법정 공방에서 패배한걸 실감한후 무너져 가는 심정을 잘 묘사해주는 대목이다. 변호인에게 불같이 화가 날 것 같은 상황을 독자들에게 감정을 잘 전달해서 그런지 읽는 자신도 지니라는 변호인에게 열이나서 참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나서 발췌해 보았다.
385쪽
'파라다이스'는 신화에서나 개념이었다. 파라다이스는 개인의 한계라는 무자비한 현실에 훼손되어 버렸다. 일상에서 질서와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직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파라다이스의 개념을 망가뜨렸다. 무자비한 현실이...
대부분의 미국인들처럼 나는 신화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자랐다. 열심히 노력하고 끝없이 낙관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에는 가능성이 무한한 만큼 손에 쥐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희망을 버려야 한다.'
영국적인 그 말의 논리가 나로서는 못마땅했다.
: 이 작가의 매력과 장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야기가 흥미도 흥미지만 이렇듯 상당히 철학적이다. 작중 철학적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주인공이 겪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생각들을 서술해 놓아 독자가 주인공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좌절이라던가 슬픔, 기쁨, 허무 등을 체험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래서 이 작가가 인기가 있는 듯 하다. 이는 작가의 철학적 깊이와 폭넓은 지식의 바탕이 있기에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388쪽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이젤 클랩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협적이거나 비정상으로 보여서는 아니었다. 사실 그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완벽하게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길에서 스쳐 지나도 기억 못할 사람. 태어날 때부터 마흔 살로 보였을 것 같은 진짜 우중충한 남자. 평생 우중충하게 살아온 남자. 싸구려 회색 양복에 흰 폴리에스테르 셔츠, 너저분한 고동색 니트 넥타이 차림이라니!
흉한 옷차림이나 누르께한 안색, 숱 없는 머리, 양어깨에 떨어진 비듬은 봐주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또, 그가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도 충분히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게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당부였으니까.
무엇보다 신경에 거실리는 건 나이젤 클랩 변호사와 악수를 나누는 것이었다. 사실 악수라고 할 것도 없었다. 힘없는 손가락 네 개를 내 오른 손바닥에 살짝 대는 정도였다. 마치 죽은 숭어를 손에 쥔 기분이었다. 뭐든 자신 없어하는 인상은 그의 목소리 때문에 더욱 깊어졌다. 그가 낮고 단조롭고 주저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할 때 내용을 이해하려면 귀에 손을 대고 집중해야만 했다. 빈 승강기 통로로 떨어진 사람처럼 놀라는 그의 표정과 힘없는 목소리는 상대방에게 조금도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나이젤 클랩이 내 새로운 사무변호사라는 게 걱정스러웠다. 그가 내 아들을 되찾게 할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왜 나이젤 클랩을 만나게 되었을까? 다시 한 번 어머니가 좋아하던 경구를 읊을 수밖에 없었다.
'없으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 한 명의 캘릭터가 탄생하는 대목이다. 구질구질하게 표현되었지만, 뭔가 한건 해낼 것 같은 포스가 모르게 느껴지는 풍으로 (나만 느끼는 건가?) 묘사되고 있는데 , 인물 묘사가 압권이다. 이러한 인물설정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이런 어려운 캘릭터의 묘사또한 어렵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섬세한 묘사속에서도 저자의 위트가 넘치는 부분 또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재미있다. 막판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가 아쉽기만 하다. 초반 지루했던 느낌의 보상을 충분히 감미하고 있다. 흐흐
408쪽
"오늘 오후 세 시에 법정명령이 나왔습니다. 심리를 주재한 판사가.... 음.... 저 남편분의 변호인들이 강하게 이의제기를 했지만 상호간에 재정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남편 분이 계속 주택융자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나는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 동의 없이는 집이 매매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음... 맞습니다. 그리고 남편분이 주택융자금을 내지 않으면 법정 명령을 어긴 행위로 간주될 겁니다. 그가 부인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로 수감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맙소사!"
나는 깜짝 놀랐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남편분의 변호인은 그가 부인에게 잠정적으로 생활보조비를 지급하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 아 ~ 이 부분 정말 마음에 든다. 독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아는 작가다~! 어리숙하고 볼품없는 캐릭터를 동정하게 만들고 난 뒤의 반전으로 이룰 수 없을 것만 같던 일을 해내게 만드는 아~ 이런 절정의 맛때문에 소설을 읽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