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쪽

시험에 붙을 때까지는 공부를 해야했고, 공부를 하는 동안은 내가 돈을 벌어야 했다. 일이라면 이골이 난 몸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이 허드렛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쳐 드는 사람이어서 좋았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었다.

 

126쪽

새벽에 들어오는 날이면 나는 남편의 책을 꺼내 한 뭉텅이씩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번 지폐를 책상 위에 던졌다. 다시 나갈 차비를 하는 동안 남편이 일어나 아침상을 차렸다. 나는 이제 밥이나 빨래, 청소를 하지 않았다. 책상 위의 돈을 챙기며 남편이 조금만 더 달라고 했다. 요즘 채소값이....

아껴 써! 나는 한마디만 던지고 일을 하러 나갔다. 남편은 문앞에서 나를 배웅했다. 책을 모조리 찢으면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지. 긑이 나겠지. 남편에게 걸었던 희망이 사라진 것보다, 그런 남편을 믿었던 내가 더 측은했다. 부질없는 희망은 빨리 버려야 했다.

 

187쪽

남편이 체중을 실어 업히자 예상하지 못한 무게 때문에 그만 무릎을 바닥에 찧고 말았다. 무릎이 젖었다. 눈발이 굵어졌다. 다시 업혀봐. 이를 악물고 허리에 힘을 줬다. 나도 모르게 끙, 소리가 났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첫 한 발짝 떼는 일이 어머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처음 한 발짝이 다음 한 발짝을, 다시 한 발짝을 디딜 수 있게 했다. 대여섯 걸음을 가고 멈추어 섰다. 남편은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러워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191쪽

나는 옷을 갈아입고 엄마와 남편 옆에 앉았다. 엄마가 말렸다.

"그냥 자"

말리고 싶은 건 정작 나였다.내가 몸 한 번 팔면 당신들이 한 달 일한 것보다 더 벌어. 그러니 하지마,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나았으니까. 또 방울이라도 다는 것이 엄마와 남편의 최선일 테니까.

: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이랍시고 앉아서 방울을 달고있는 식구들을 상상만 해도 불가항력적일 것 같은 절망이 솟아 넘치는 듯하다.

뭐라 악다구니를 써서 몸부림쳐도 부인하거 회피할 수 없는 현실앞의 서윤영 주인공이 안타깝다.

저자 : 장강명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들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많이 있어왔다. 그래서 서슴지 않고 선택한것. 나름 후회없이 책장을 다 넘길 수 있어서 좋았다.

 

젊은이 태반이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꿈꾸고 도전해야하는지 모를 혼돈의 시대를 살고있다고 봐야하는 이 현실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 세태를 콕 집어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 내내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고 가슴이 아팠다.

그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났다고 싶었을 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세연과 그 세연을 추종하는 주변인들의 이야기. 그러한 자살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이 완벽한 세태를 발칵 뒤집으려는 세연의 시도에 작중 시작은 공감이 가지 않았으나 작중 후반으로 갈 수록 왜 그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공감이 어렴풋이 들기도 한다.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희망을 품고 살아가라. 젊은이에게 꼭 필요한 근성과 도전을 잊어선 안된다라는 상투적인 말로만 늘어놓은 책들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책들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비극적이어서 그런건가? 반문해본다.

 

 

77쪽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느 그 과정을  "표백"이라 불러.

 

너무 완벽해서 젊인이들이 할일이 없는 시대. 저자는 그런 시대적 배경을 은근히 비꼬고 있다. 너무 완벽한 현실. 자신이 어디에도 쓸모가 없이 잉여분이라는 자학을 하게 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 씁쓸하다.

 

하지만 작중의 분위기가 이렇듯 암울한 분위기의 연속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내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모두 누구나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배꼽을 잡고 웃을 만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유쾌한 이야기들 속에서 암울한 현실을 잘 어우러지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이 현실을 너무도 잘 표현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을 살고있는 이 젊은이들이 암울한 경제적 상황과 취업상황속에서도 한줄기 빛의 희망은 어찌보면 이러한 유쾌함과 유머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27쪽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 하는 거잖아요."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빈정대는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거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게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 이 소설의 주인공 정말 맘에 든다.

 

132쪽

버린 물건이 좀 있긴 했어도, 내 짐들이 1톤짜리 픽업트럭 하나도 다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내 또래로 보이는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생은 조립식 간이 옷장을 헐렁하게 모양만 맞추고 도망쳤다. 옷걸이를 몇 개 걸었더니 간이 옷장은 무너져버렸다. 무너진 간이 옷장을 일으키고 다시 너트를 죄면서 나는 투지를 불태웠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애를 낳지 않고 그 대신 남들이 좆같이 양육비에 쓰는 돈을 전부 유흥비로 쓰면서 다시는, 다시는 씨발 이렇게 궁상맞게 살지 않을 거야.

- 나도 공무원시험을 보았지만 정말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내 이 공무원이 되면 어떻게 사는지 봐라 하며 공부했던 날들이 떠올라 이부분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는....

 

144쪽

"어떤 일이 위대해지려면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어야 해.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건 내가 시대정신을 꿰뚫어봤다는 뜻이 되는 거야.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을 할 때 그 동기가 그저 순수하기만 했을까, 아무런 정치적 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도스토예스키가 도박 빚을 갚으려고 <죄와 벌>을 썼다고 해서 그 책의 가치가 달라져?"

- 이렇듯 작중에선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자유로운 발상들이 여럿 등장한다. 저자의 깊은 지식이나 안목을 느낄 수 있어 좋았던............

 

167쪽

정말 추는 내 지갑이 사라진 일과 아무 관련이 없었을까?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추는 가장 강력한 용의자다. 추는 동기도 있었고, 내 통장을 훔치고 비밀번호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으며, 그 정도 알리바이를 꾸미고 다른 친구를 시켜 돈을 인출하게 시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말 추는 아무 관련이 없고 이 모든 게 내 의심의 소산일까? 나중에는 그런 의심이라도 풀릴 수 있도록, 추가 아니어도 좋고 돈을 못 찾아도 좋으니 경찰이 범인을 잡아주길 바랐다. 그러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뤼미에르 빌딩에서 발생한 통장 도난 사건은 서대문경찰서의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 동거녀 추가 용의자로 떠오른 주인공의 지갑 도난 사건. 기자의 경력을 느끼게 해주는 글귀라 눈에 띈다.

 

222쪽

아, 그러는 나도 많이 달라졌다. 나는 욱하는 성미가 줄었고, 말수가 적어지고, 표정이 잘 변하지 않았으며, 눈을 빠르게 여러 번 깜박이는 버릇이 생겼고, 고개를 숙인 채 걸었고, 뱃살을 나왔지만 뺨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그때 그대로 훌쭉했으며, 눈치가 늘고, 비굴해졌다. 내 경우에는 이런 변화를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성격이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나는 대학 동기 모임에서 다른 녀석들에게도 그런 변화가 없었는지 살펴봤다. 잘나가는 대기업 전자회사나 이동통신회사 직원들은 걸음걸이가 당차 보였고, 생명보험회사 직원이 된 녀석들을 세련돼 보였고, 건설회사에 입사한 여자 동기는 터프해진것 같았고, 공인회계사가 된 동기는 쫀쫀해진 듯했고, 세무사가 된 동기는 거만해 보였다. 직장과 직업이 한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결정짓고, 사회적 신분이 그 사람의 내면과 성격을 좌우하는 것 같았으며, 나는 하급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하급 공무원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 이 문장은 100% 공감이 간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느껴지는 비굴함. 이런 기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특히 일반 기업을 다니다가 공무원이 된 나로서는 이러한 글들이 피부에 와닿아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이외에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이라던 그 세계의 섭리등을 묘사하는 부분이 이 책에서 여럿등장하는데 너무나도 현실을 잘 그려놓았다. 소름끼칠정도로 정확하다. 이는 이 작가가 기자이기때문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213쪽

여름철 냉방 기간 72일, 냉방 온도는 외부 기온이 섭씨 28도 이상일 때만이라는 에너지 절약 시행 지침 때문에 에어컨디셔너를 틀지 않았다.

바보 같은 지침이다. 바같의 온도가 28도면 사람과 컴퓨터가 있는 건물 실내 온도는 29,30도를 훌쩍 넘고, 창가는 온도가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 지침을 만든 사람도 그 온도에서 사람이 짜증을 내지 않고 일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시원하게 냉방을 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 효율과 사기를 높이는 게 오히려 더 경제적이라는 것을 모두가 다 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공무원들이니까.

하급 공무원은 사무관의 눈치를 살펴야하고, 사무관은 국 과장의 눈치를 살펴야하고, 국과장은 실장과 차관, 장관 눈치를 살펴야하고, 장관은 청와대와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하는데, 여론은 공무원들이 에어컨 바람 쐬는 행위를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니 냉방 관련 지침을 바꾸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 웃음뿐이 안나오는 정확한 표현이다.

 

오랜만에 의미있는 소설을 읽은것 같다. 자신의 현실과 비슷한 느낌을 보고 읽어서 더욱 기뻤던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 밖에도 작중 공무원 시험을 준비나 기업체 입사준비를 하는 부분에선 이 시대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저자 - 나카야마 시치리

2010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수상작. 그 외 약력은 모름.

 

뭐라 설명해야하나? 이런 책들을 만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대단하다라는 말 밖엔 떠오르는 말이 없다. 항상 책을 덮고나서 느껴지는 잔상들, 느낌들이 휘몰아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표현해야하나? 작가가 짜아놓은 구조들, 복선들, 구성들을 생각하고 읽고난 후 밀려드는 감상들 하~ 정말 좋은 소설이구나를 다시한번 머릿속으로 되뇌이고, 이 책을 누구한테 읽으라고 해야하나?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적극 적극 추천~

 

근래에 이런 작품을 읽었던 적이 있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는다. 어쨌든 상당히 독특하고 짜임새있는 미스터리 소설임에 틀림없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상을 탄 작품을 여럿 봐왔지만 이 만한 작품을 봤던 기억이 없었던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해도 아깝지 않을 그런 작품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작품이 일본 소설이라는 것이 마음이 좀 씁쓸할 뿐이다.

 

우선 미스터리 분야에서 빼놓아선 알될 요소들을 이 책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첫째, 반전. 어디서 봤던적이 있음직한 반전이지만 상관없다. 마지막 반전만이 미스터리를 살리는 길이다. 둘째, 탄탄한 구성. 반전 반전하지만 반전을 위한 억지 구성은 글쎄올시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짜임새에서 혀를 내두를 만큼 탄탄하게 짜여져있다. 눈에 띄게 억지스럽다거나 약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구성이 내눈엔 보이지 않았다. 세째, 미스터리 분야에서 느낄 수 없는 요소가 있을 것. 이 작품에선 타 미스터리분야에서 보지 못했던 그리고 다루지 않았던 클래식이라는 음악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성장소설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고, 더불어 약간의 일본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까지 갖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져 한편의 보석과 같은 소설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절망의 끝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절대 쓰러지려하고 주저 앉으려 하는 자신을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쉽게 현실과 타협하려는 자신을 돌이켜본다. 이젠 나이도 들고 하니 웬만해서 극복하려는 맘은 없고 어떻게 해서든지 어려운 현실을 피해가려 하고 주저앉아 자기합리화하기 일쑤인 나에게 뭔가 느끼게해준 책이기도 하고,,, ㅎㅎ

초등학교 시절 피리부는 시험에서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학생들 앞에서 부는 피리는 소리도 잘 나지 않을 뿐더러 왜이리 손이 떨리던지 밤새 연습했던 피리 연주는 기억조차 아득하고 입에 문 피리가 작대기인지 악기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의 무대공포증이 있던 나에게 이런 피아노 콩클 같은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분야이겠지, 하면서 읽었다.

작중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음악적 표현들 그 음악의 탄생배경, 작곡가의 생애, 그 작곡이 있기까지의 시대적 배경등 적절하게 섞어놓아 나름 그 분야의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좋았고, 이러한 내용들을 잘 비벼서 16살 주인공의 인격적 성장에 비료로 뿌리려고 노력했던 점이 일반 고등학교나 청소년들에게 상당히 재미있고 독후에 뭔가 느낄 수 있던 나머지들을 주었다는 점에서도 개인적으로 높은 평가를 해주고 싶다.

 

책의 마지막 장면도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제목의 안녕 드뷔시로 마지막을 장식한 작가의 의도도 상당히 마음에 쏙 들었고, 클래식과 미스터리와 성장소설의 한 권의 책으로 소화시키려는 저자의 의도와 발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런 좋은 작품으로까지 승화시켰던 것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일본 문학적 배경에 부러움이 한편으로 묻어난다.

다양한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나 문학적 깊이가 깊다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것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이러한 점들이 참 부럽기만 하다.

 

각설하고,

이 책의 가장 큰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던 개인적인 생각은,

마지막 장면이라하겠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라인으로 흐르다 갑자기 빗겨나간 마지막 반전은 가히 전율을 느낄 수 있게해준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작가의 함정에 빠져버린 나를 돌이켜보고 작중에서 나타났던 복선들 별 내용 아닐꺼라 여기며 넘겼던 장면들이 하나하나 되새겨지면서 작가의 덫에 걸려버린 자신을 보게될때의 카타르시스~ ㅋ

아 ~ 이 맛에 이런 책을 읽는게야~ 맞아~ 무릎을 치고 난 후 외친다~

마누라~ 이 책 읽어봐~ 죽이네~

 

38쪽

"세상 그 누구한테도, 세상의 그 어떤 곤란도 이길 수 있는 유일 무이한 방법이 있는데 아느냐?"

"그건 말이다, 이길 때까지 그만두지 않는 거란다. 예끼, 하루카, 그런 얼굴 하는거 아니다. 할아비가 장난치는게 아니야. 대부분의 일은 ㅖ속 싸우다 보면 승기가 찾아오게 마련이거든. 쓰러져도, 쓰러져도 그때마다 일어서면 언젠가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아니, 이기지는 못해도 절대 지진 않아. 지는 건 싸움을 그만 뒀을 때지. 그만 싸우고 싶다 생각하는 자기 자신한테 졌을 때야. 아니, 모든 싸움은 결국에 약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셈이거든, 그러니까 싸우는 걸 멈춰선 안돼. 일어서는 걸 그만두선 안되는 거다. 허나 말이다, 루시아. 그래도 혹시 도저히,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으면 이리로 돌아오려무나. 여기엔 내가 있고, 하루카가 있고, 새 아버지도 새 어머니도 있으니까"

- 할아버지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 공감이 간다. 강인한 생을 살아온 할아버지의 말씀.

 

107쪽

"베토벤은 난청을 지닌 작곡가라서 위인이 된 게 아니야. 그런 대단한 곡을 작곡한 인물이라서 칭송받는 거지. 중요한 건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뭘 성취했는지가 아닐까. 뭣보다도 넌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로 인간을 양분하려고 하는데, 난 그건 잘못이라고 생각해. 사람은 누구든 결함을 갖고 있어. 그저 그 결함이 뭔가, 그 결함이 눈에 보이는 건가, 보이지 않는 건가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래서 다들 그 결함을 수복하려고 하거나 다른 장점으로 보충하려고 하는 거야."

- 미스터리 양식을 빌린 소설이지만 상당히 성장소설적 내용을 지니고 있어서 독특한 느낌이 든다.

 

205쪽

놀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이어서 곡을 듣다가 또 충격을 받았다. <아라베스크 1번>. 이 곡 또한 첫 음을 들은 순간부터 눈꺼풀 뒤에 영상이 떠올랐다. 게다가 더욱 놀랍게도 영상뿐아니라 색채까지 보였다. 그것도 원색이 아니라 미묘한 담채가...

사막에 정적이 찾아들고, 싸늘한 바람 속을 나그네가 걷고 있다. 어둠 속에 꿈틀거리는 짐승도 숨을 죽이고 달을 올려다본다. 음은 흡사 사락사락 흐르는 비단 같다. 비단이 몇 겹으로 포개지면서 우미한 색을 자아내듯, 음 또한 휘감기면서 복잡한 음색을 빚어낸다. 3연음을 다용한, 물 흐르는 듯한 아르페지오. 차례차례 겹쳐지는 음에 혼이 몸에서 이탈했다. 달콤한 꿈을 꾸는 듯한 2분간은 눈 깜짝할 새에 끝나고 말았다. 음악을 듣고 있었건만 꼭 한 장의 그림을 보고 한 편의 시를 읽은 듯한 감개가 남았다.

- 음악 관련 소설답게 음악이 흐르는 부분을 심도있게 묘사해놓았다. 도저히 이런 표현을 듣고 이 음악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아라베스크라는 음악을 그 전에 상당히 많이 들었음에도... 막상 이렇게 글로 접하다보면 이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대체 떠오르지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나는 음악쪽으론 평민도 아닌 하류인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클래식은 상당히 즐겨듣는편이다. 왜 질리지가 않기 때문이다. 모르니까 ㅋ

250쪽

제 1악장, 알레그로. 내림 마장조. 느닷없이 풀 오케스트라의 주화음이 홀을 뒤흔단다. 곧이어 유려한 피아노 독주가 시작되어 서주를 낳는다. 힘차고 춤추는 듯한 타건. 소리 하나하나가 홀 벽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날아든다. 그 소리는 당연히 청중, 그리고 내 가슴에도 깊이 박혔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투명하고 용장한 선율. 겨우 몇 소절만으로 영혼이 사로잡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어서 오케스트라만의 제시부가 시작되고 팡파르가 드높이 울려 퍼졌다. 군대 행진곡처럼 웅대하고 힘찬데, 서두의 피아노 독주가 이끌어 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피아니스트가 군대의 선봉에 서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간다.

오케스트라가 조용해졌다. 속삭이는 바이올린을 호른이 부드럽게 감싼다. 그리고 피아노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고요하게, 경쾌하게. 그러나 타건은 여전히 강해 약음마저도 압도적이다. 피아노를 따르는 오케스트라. 경쾌하게 달려가는 피아노. 왼손이 작렬하듯 뛰어다닌다. 오른손이 그것을 쫓아간다. 바이올린이 따른다. 소리가 뛰어오른다. 하늘로 달려 올라간다. 그에 농락되어 청중의 마음도 홀 안을 뛰어다닌다.

: 오케스트라 협주를 콘서트로 본적이 한번도 없지만, 나름 클래식이라는 분야의 음악을 많이 접하기위해 부던히 애를 쓰며 살아간다. 책에서건 미디어에서건 클래식과 과련된 제목이 나오면 꼭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서 음악을 들어보고말아야하는 그런 인간중하나이다. 이 작품의 가장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음악을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나열했다는 것이다. 이런것이 가능하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어떻게 듣는 음악을 말로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지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작가적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하나의 교향곡을 눈으로 본다는 표현이 맞는 것이겠지? 듣지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한마디로 압권. 베토벤의 <황제>

 

1. John Field / Nocturne No.12

2. Debussy / Arabesque No.1

3. Chopin / waltz Op.64-1 'Minute(강아지 왈츠)'

4. Chopin / Etude Op.10-2

5. Chopin / Etude op.10-3(이별의 노래)

6. Chopin / Polonaise 'Heroic(영웅)' Op.53

7. Rimsky-Korsakov / The Flight of Bumble Bee(왕벌의 비행)

8. Chopin / Etude Op.10-4

9. Anton Rubinstein / Romance

10. Chopin / Etude Op.10-5, 10-1, 10-12

13. Debussy / Suite bergamasque 'Clair de lune(달빛)'

14. debussy / from Prelude Book 1 No.8 'La fille aux cheveux de lin(아마빛 머리카락의 소녀)'

15. Liszt / from Etude d'execution transcendante No.5 'Mazeppa'

16. John Field / Nocturne No.1

17. Schumann / Traumerei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Serenade No. 13 in G major KV 525 'Eine Kleine Nachtmusik)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마장조 황제

리스트 라캄파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