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나쓰카와 소스케
1편에서 보여주었던 유머러스하고 단촐하면서 유쾌한 이야기는 다소 줄어든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1편이 더 좋았던 듯한 느낌이지만 마지막 감동은 2편에서 더 진하게 다가왔다.
의사 개인의 삶을 포기하며 의사로서의 역할을 해오던 옛친구의 갈등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심정이 잘 묘사되있다.
이 세상 많은 직업이 있지만, 인간을 살리고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 자기 직업이라는 점은 그 어떤 직업들과 비교하면 정말 행복한 직업이고 존경받을 만한 직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들이 반대급부가 있듯이 이러한 직업의 단점은 개인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것과 어떤 사명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갈등을 의사입장에서 잘 풀어 놓은 것 같다. 이는 저자가 의사이기 때문에 이렇듯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공감할 만한 좋은 작품을 낳은 배경이라.
과연 내가 저러한 선택의 경계에 섰을 때 어떤 방향으로 자세를 잡을지 궁금해진다.
내 아이를 위해서 무엇하나 해주지 못하는 아빠로 남을 것이냐, 의국 내에서 무능한 의사로 남느냐 어려운 질문이다.
치료법이 없어 죽어가는 환자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
의사는 사람의 병을 고치기만 하는 역할이 아니라 삶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이라는 다른 시각에서의 의사를 보여주었던 작품으로 남겠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느껴지는 감동도 있고 만족스러우나,
너무 일본적인 내용이 많이 있다. 지역이라든가, 산의 이름, 신사, 기모노 등등 일본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던 내용들이 많이 있었고 작중 주인공이 일본 고전을 탐독하고 말투나 어휘등이 상당부분 그런 영향을 받아서 인지 작중 평소 볼 수 없던 한자합성어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번역에서도 약간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고전의 언어를 어떻게 번역을 해야하는지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읽기 쉬워서 반나절이면 금새 읽을 수 있는 간편한 책이다.
아래는 책의 원문이오니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222쪽
"의사는 환자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해야 한다고 하지. 이 나라의 의료는 미쳐 있어. 의사가 생명을 갉아먹으며 가족을 버리고 환자를 위해 일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세계. 밤에 잠도 못자고 몸이 망가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세계. 조치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 스물 네 시간 자신의 담당 환자를 위해 뛰어다닌다니,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인간이야.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중상모략을 하지. 밤에 뛰쳐나가지 않은 의사에게 왜 오지 않았냐고 소리를 질러. 모두가 미쳐 있어. 그런데 모두가 자신은 옳다고 착각을 하고 있어. 구리하라, 내가 틀렸어?"
: 인간적인 삶과 의사로써의 삶 사이에서 방황하는 다쓰야의 말이다. 가족을 방치하고 오로지 의사의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문제의 부분이자 핵심이다.
298쪽
다쓰야가 엄격한 말투로 말했다. 그가 이런 엄격한 말투를 사용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선생님은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그 사실만은 잊지 마십시오."
-중략-
그리고 늙은 여우 선생님에게 인사를 한 후 병실을 나갔다.
"친절한 분이시군요."
중얼거리듯 말한 것은 치요 부인이다.
고개를 드는 남편을 향해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가 늘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저렇게 확시히 말씀해 주시니 정말 친절한 분이시네요. 신도 성생님은..."
"치요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은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라는 말. 너무나도 당여한 말인데, 계속 하지 못했어요."
: 공감이 가는 글귀라 적어보았다.
345쪽
이윽고 왕너구리 선생님이 그대로 홱 손을 들고 부장실에서 나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나는 말없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복도로 나가 조용히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쾅, 하고 둔탁한 소리가 바닥을 울린다. 나는 깜짝 놀라 안을 들여다보았다. 소파에 앉아 있던 왕너구리 선생님이 주먹을 쥔 오른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눈은 똑바로 뜨고 입은 온화하게 다문 채였지만 탁상을 치는 주먹만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다시 주먹을 들어올려 테이블을 내려쳤다.
쾅.
무거운 울림이 복도까지 전해진다. 다시 쾅, 쾅. 계속해서 테이블을 내리치는 소리만이 들리는 가운데 왕너구리 선생님은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고 그저 주먹만을 내리치고 있었다.
: 눈물이 글썽이는 장면이라 한번 적어 보았다. 깊은 슬픔의 표현을 잘 묘사하고 있다.
98쪽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것, 그것만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수이다."
"시어도어 소렌슨이군"
"네가 좋아하는 말이었어"
"케네디는 전쟁을 위해 이 연설을 했지만 우리는 의학을 위해 이 말을 자주 사용했지. 백만명을 죽이는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을 구하는 범인이 되자고 말이야"
: 소렌슨은 케네디의 핵심참모로 연설문 작성가였다고 하는데 그가 말한 그 한마디가 작중에서 여러번 인용된다. 마지막 한 사람을 구하는 범인이 되자는 말에는 작중 주인공 구리하라의 인생관이기도 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