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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 기억의 중간에 살고있는 '사람'

우리의 뇌는 기억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어느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까? 가끔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때로는 말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이미지는 떠오르는데 할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아 답답하다. 그래서 잊고 싶은 기억들을 골라 휴지통에 넣어버리고 싶기도 하고 평생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을 추억의 상자에 담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하지만 잊겠다고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고 기억하겠다고 해서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기억'이라는 것도 사람 마음대로 안되는 것에 속하는 것 같다.

리사 제노바의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는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하버드 교수의 이야기다. 평범했던 일상부터 기억들이 하나, 둘 지워지는 고통과 슬픔의 과정들이 2003년 9월부터 2005년 9월, 2년 동안 주인공인 엘리스의 시각으로 그려졌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 뉴런들이 질식해 죽어가고 있었다. 귀에서 멀지 않은 곳의 뉴런들이었지만 너무 조용한 죽음이었기에 그녀 자신에게 조차 들리지 않았다.…뉴런들은 죽기전에 그녀에게 그런 상황에

대해 경고할 수가 없었다.'-p.12

책의 첫머리에 쓰여있는 글귀다. 뉴런의 이야기는 두 번 나온다. 책의 주인공인 앨리스가 걸리게 될 알츠하이머에 대한 전주가 뉴런에 대한 묘사로 표현되어 있다. 뉴런들은 이미 죽었고, 죽어가고 있었지만 자신의 뉴런들이 죽는다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 채 삶을 살고 있는 앨리스. 그리고 우리.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교수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밀려드는 망각의 파도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의사가 하는 말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았다.

악화되어가는 증세 때문이 아니었다, 더 이상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없을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그렇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앨리스는 자신이 그렇게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다.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보았다.'-p.98,99

'80세 환자가 오줌을 싸는건 알츠하이머 때문일까, 아니면 80세의 방광을 가졌기 때문일까?'-p.100

잊을 수 없었던 앨리스의 혼잣말.

이것은 나이가 들어서일수도 있고, 병에 걸려서 그럴수도 있는, 구분짓기 애매한 특징이었다.

만약 80세의 뇌가 비교적 젊다 할지라도 방광이 늙었다면 오줌을 가리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80세의 알츠하이머 환자라면, 내 머리뿐만 아니라 몸도 늙었기 때문이라 얘기하겠지.

'그 이야기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그걸 기억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는 걸까?'-p.172

앨리스는 계속해서 자신이 가진 병의 증상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문을 가진다. 앞으로 자신이 겪게 될 많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궁금증으로 돌아온다.

'뉴런의 운명은 다른 뉴런들과의 의사소통 능력에 달려 있다.…다른 뉴런과 효과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뉴런들은 퇴화한다. 그리고 기능을 잃어 버려진 뉴런은 죽는다.'-p.230

뉴런의 두 번째 이야기다. 대개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다른 감각뿐만 아니라 공간지각 능력, 의사소통 능력들도 감퇴하기 때문에 사회성이 떨어진다.

앨리스도 마찬가지다. 약속들을 간략하게 기록하지만 그것이 누구와 한

약속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잊어버린다. 점점 자신의 업무를못하게 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된다.

사람간의 관계를 뉴런의 소통 능력에 비유한, 이글의 총체적인 부분이다.

'그 생각들은 입 밖으로 나오기 위해 검은 진흙탕을 몇 킬로미터씩 헤엄쳐야 하고 그나마 도중에 대부분 익사해버리는 듯했다.'-p.290

단어를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진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밖에 없다. 결국에는 172p에서처럼 '이야기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그걸 기억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모든 것을 잊은 그 순간,

앨리스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저의 지난날들은 사라지고 있고 다가올 날들도 불확실합니다. 그럼 전 무엇을 위해 살까요? 오늘을 위해 삽니다. 저는 현재를 살아갑니다. 어느 날 저는 여러분 앞에서 이런 말을 한 사실조차 잊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걸 잊게 된다고 해서 오늘 이 순간을 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을 잊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p326,327

이 책에서 가장 감명받은 부분이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 오늘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의>의 원제는 <Still Alice>다. 옮긴이는 치매환자의 보호자가 되는 시기에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읽는 동안 앨리스의 눈으로 책을 옮겨 담아야 했을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신의 모습조차 잃어버린 앨리스의 모습까지 세밀하게 묘사된 부분들은 감동과 슬픔 그 자체였다. 책 속의 달력이 매 달 넘어갈수록 '앨리스의 삶'에 빠져들 수 있었던 책이다.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내기억의피아니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