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책이 이 책인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에게 20대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들이 학생때에는 어떤 생각들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건축책을 읽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결국 다시 찾아온 건축책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20대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어떤 점이 다른지에 대한 사색을 할 가치가 필요하다.

 

 렌조 피아노, 장 누벨, 리카르도 레고레타, 프랭크 게리, 이오밍 페이, 도미니크 페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도미니크 페로의 작품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는 이화여대 ECC를 남겼다. 내가 좋아하거나 혹은 존경하는 건축가들이 겪는 20대는 분명 나와는 다르다. 그것이 어떠한 괴리감을 가져오는 부분도 있었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그들의 업적은 놀라웠다. 장 누벨은 특히 개인사무실을 25살에 설립했다는 이야기나 도미니크 페로, 렌조 피아노는 세계적인 현상설계에서 30대의 나이로 당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단언하건데, 나는 절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앞으로의 문제들이다. 어떠한 길을 선택할 때, 이들이 갈림길에서 고민했던 흔적들을 알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신의 생각,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직업에는 영웅이 될 수도 있는 약간의 행운이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건축가가 되는 것보다는 음식점을 여는 쪽이 훨씬 나을 겁니다. <p.104>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말이다. 나의 가슴을 후벼파는 한마디다. 어쩌면 나의 생각을 이렇게 잘 아는지 그도 이런 고민을 했었던 모양이다. 그는 여행을 많이 다녀라는 말도 같이 한다. 실제로 보는 것과 디지털 매체로 접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여행은 건축가들이 공통으로 꺼내는 화재이기도 했다. 건축과 여행은 말로 표현하려면 입이 아플정도로 중요한 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런 여행을 떠나기전에 역사적 배경이나 주변 관계를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분명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서명의 필체가 다르듯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르기에 자신만의 '영역'을 가다듬어 가야 합니다. [...] 설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언어, 자신의 어휘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평생 자신이 해야하는 가장 강력한 일입니다. <p.132>

 

 분명 잘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프랭크 게리다운 말이다. 그의 스타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면 이오밍 페이의 말에 따르면 스타일을 가진다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잘하는 영역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만의 프로세스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본인의 스타일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주변과의 관계를 못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본인의 스타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건축이 하나의 아이콘이 아니라 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의 초반에 장 누벨의 말이 생각난다.

 

 아마 20세기 말부터 21세기에는, 사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도록 하는 건축가 또는 엔지니어가 가장 앞서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p.77>

 

 그들의 20대에는 대체적으로 대학교와 사무실 일을 함께 했다고 한다. 보통 낮에는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실무에서 배우는 것을 통합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잡지와 같은 매체를 통해 본인의 이론을 성립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철학, 역사책을 통해서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들이 젊은 나이에 성공적인 건축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무명시절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쿨하게 과거의 잘못된 생각들을 인정했다. 그 점에서 놀라웠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다. 그것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말이다.

 

 모든 일은 계단을 오르듯 한 단 한 단 높아지며 서로 연관되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p.171>

 

 건축가가 되려면 이것만은 해야한다는 것이 있냐는 질문에 도미니크 페로는 위처럼 말했다. 엘리베이터로 간다고 해서 건축가가 되는 것은 아니란다. 분명 걸음에는 순서가 있고, 어떠한 책, 행위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질지는 모른다. 나에게도 사실 고민이 많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고민이 이 책을 닫을 즈음에는 조금씩 해결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희미했던 선들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 느낌이다. 그 선들이 조금 더 명확한 면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건축가의20대, 렌조피아노, 장누벨, 리카르도레고레타, 프렝크게리

 

 

 종이가 사라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은 책을 싫어했다. 그래서 불태우기 일쑤였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책은 개인적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지대하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세대 그 이상을 넘어가고 있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였던 과거보다 빠르다. 디지털을 영상매체라 한다면, 아날로그는 활자매체이다. 세상은 영상으로 뒤덮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영상매체가 동물성이라면 활자매체는 식물성이다. 우리는 영상매체에 정신적으로 공격을 당하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빠르다는 함정에 걸려들었다. 영상매체의 빠름은 우리로 하여금 선택불가능한 삶을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세상의 선택을 해주는 이는 남들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나의 지식이 아닌 인터넷의 지식이 필요하다. 심지어 자기소개까지 인터넷의 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활자매체를 멀리하는 삶에서 시작된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는 자신의 독서론 [소설처럼]에서 책 읽기를 보다 친근한 일로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독자의 10가지 권리를 제창하고 있다.

1. 읽지 않을 권리 / 2. 건너 뛰어서 읽을 권리 / 3.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 4.연거푸 읽을 권리 / 5.손에 잡히는 대로 읽을 권리

6.작중 인물과 자신을 혼동할 권리 / 7.읽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권리 / 8.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읽을 권리

9.소리내어 읽을 권리 /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p.28>

 

 책은 우리에게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린다. 이것을 잊으면 안된다. 나는 위에서 '읽지 않을 권리'를 보고 감탄이 나왔다. 아마 다니엘 페나크의 생각은 책을 읽는 속도와 시간도 결국 우리가 스스로 정하는 것에서 저런 말을 했던 것은 아닐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책을 덮으라는 말까지 한다. 저자는 다시금 충격을 준다.

 

 우리는 책 읽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그것을 혼돈하면 안된다. <p.36>

 

 이제 책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젊은이를 만나면 나는 "무엇을 읽을까" "어떻게 읽을까" 묻지 말고 "뭐든 어떻게든 닥치는대로 읽으라"고 권한다. <p.114>

 

 지금의 내가 말 그대로 말하는대로가 아니라 닥치는대로 읽는다. 양이 질을 결정한다는 말처럼 많이 읽어야 좋은 책을 알 수 있다.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많이 읽는 것보다 그냥 마음에 와닿는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좋지 않냐는 말이다. 그 말이 맞다. 그런데 그 한 권을 알기 위해서는 다독이 필요하다.

 

 다독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먼저 여러 권의 책을 많이 읽는 의미의 다독과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 의미정도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 의미가 중요하다고 한다. 사실 요즘들어 그런 점들을 많이 느낀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양심의 가책으로 느껴지는 부분까지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 책을 '읽은'게 아니라 '보았기' 때문이리라 <p.119>

 

 이외수 선생님께서도 그런 말을 하셨다. 책 값이 비싸다고 말하는 독자들에게 책을 한 번만 읽고 안 읽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셨다. 결국 책은 여러번 곱씹어 읽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 책을 쓰는 이들이 대충 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의 고민이 책으로 나왔을 것인데 그것을 한 번 읽었다고 그들의 책을 평가하는 것은 사실 엄청난 오류라는 생각마저 든다.

책을 읽는 것이 무조건 즐겁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분명 영상매체에 비해서 힘든 부분들이 많다. 처음의 텍스트 내용을 기억해서 그것을 끝까지 끌어가야하는 인내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텍스트를 미적으로 구체화하는 상상력마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습관화가 되면 그때는 영상보다 활자매체가 편안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독서에 대해서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책이 미학오디세이라 생각한다. 그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독자는 책을 읽는 가운데 텍스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미적으로 구체화 하게 된다. 독서 행위는 단지 텍스트의 내용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독서는 동시에 미적인 행위다.' 미술을 배우는 나에게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언젠가 방학 때 읽을 만한 책 몇 권 소개해 달라고 찾아온 제자에게 듣기 싫은 소리 좀 했다. "너는 내가 사귀라는 사람과 사귀고, 내가 결혼하라는 사람과 결혼을 할 작정이냐?" <p.150>

 

 책을 진지하게 읽어보려는 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어떠한 책이 좋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결정적 질문이 빠져있다. 그것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이다. 행동을 일으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동기부여이다. 그런데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작심삼초를 이끌기에 충분하다. 중간에 멈추어도 좋다. 그저 생각해보자.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비가 내리고 조용히 방에 있는 날에는 가끔이라도 책을 펼쳐보자. 종이책을 넘기는 촉감과 빗소리의 때문에라도 우리는 토마스아 켐피스가 될지도 모른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토마스아 켐피스

 

종이책읽기를권함, 김무곤

 

모던 예술가들은 일찍이 "새로움은 요소가 아니라 배치에 있다"라고 말한 바있다. 세상은 매번 새로운것들이 나온다. 그런데 그 새로운 것들이 알고보니, 별것아니다. 다 생각해보면 배치에 의해 결정된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을 연관짓는 행위. 나는 이 행위를 크로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무한 상상력을 가져다 주는 책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 이 책은 우리에게 상상할 수 있게끔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조금 뜬금없는 조합이다. 미학자와 과학자의 만남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학은 과학을 바탕에 두기도 하고, 과학은 미학을 바탕에 두기도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같은 맥락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관련성이 없어 보이지만 알고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거미줄처럼 엉켜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하지만 결국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흥미롭다.

 

 주제들도 다양하다. 스타벅스, 스티브 잡스, 구글,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프리 쇼등 말하기도 벅찬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헬로키티를 다루는 부분이었다. 나는 이 생뚱맞음 주제부터 흥미가 안 당길래야 안 당길 수 없는 매력에 빠졌다. 이 책에서 헬로키티의 인기비결은 입모양이 없어 감정이입이 쉽다는 점과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은 다른 시각을 내거는 것이 헬로키티는 입모양이 없다는 것도 맞지만 눈동자가 없어 감정이입이 쉽다는 딴지였다. 그것을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나온다.

 

 서양 사람들은 입모양으로 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주로 눈표정에 변화를 주어 감정을 표현한다.

<p.117>

 

 그러니 헬로키티는 동양과 서양에서 인기가 있는 캐릭터다. 왜냐하면 눈동자와 입모양이 없어 감정이입이 쉽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뜬금없는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새 동양과 서양의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뀌게 된다. 흔히 말하자면, 별것없는 캐릭터가 사실은 이런 심리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렇듯 책은 막연한 주제에 대한 과학자와 미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뉘앙스로 흐르고,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모른다. 이 책은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 그냥 필요한 챕터를 펼치면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니 크로스의 책은 그 주제에 맞게 경계가 없다.

 

 

 

정재승, 진중권, 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