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걸스

 

'시간을 여행하는 살인마 vs 살아남은 소녀' 띠지의 이 문구만 봐도 눈길이 간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다. 초반까지만 해도 스릴러의 대가 피체크의 작품과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닮아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던 것같다.

 사실 이 작품이 본국에서는 꽤 유명했고, 그랬기에 읽는 나로서도 기대감이 컸던 터인데, 물론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내 입장에선 너무 뒤죽박죽 왔다갔다하는 시대배경과, 뒤죽박죽 얽혀있는 매 챕터의 제목, 인물들의 등장에 오히려 작품에 쭉 집중할 수 없었던 것같다. 한마디로 너무 복잡한 소설 몇 권을 짜집기해 한 권에 모아놓은 느낌이랄까. 

커비, 하퍼 등의 스토리 자체는 분명 흥미진진하다. 이런 플롯의 소설을 만나보지 못해서였을까. 하지만 뭔가 모르게 많이 헷갈리는 기분.. 초반까지만 해도 피체크를 떠올릴 정도로 몰입감이 좋았다. 하지만, A에 관해 한 챕터 이야기 살짝 하다 B,C,D,E~Z까지 나열되어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어느순간부터 내가 읽고 있는 것이 맞는가, 여기서 갑자기 왜 이 이야기가 나오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던 것같다.

이런 점들이 이 책의 내용에 몰입하게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이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배로 크게 다가온 작품이 아니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있는 작품이라하니 그만큼 작품성도 있는 것이겠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던 소설이었던 것같아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도 한 번 챙겨보고 싶고, 책 또한 다시 한 번 읽어보고싶다. 그때는 혹여나 나에게 다르게 다가오진 않을까 생각하며...

 

 

연인 심청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런 말이 있다.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이며, 환상이며, 물거품이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어다.’ 바로 이 말이 이 책을 덮은 후 가장 먼저 떠오르면서도 자꾸 뇌리에 남는다. 사실 심청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이 작품이 심청전을 각색하여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는 살짝 다르기는 하나, 결국엔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결국 이 말이 아니었을까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모든 존재는 결국 꿈이며, 환상이며, 물거품일 뿐이라는 것.

 

기존의 심청전과는 약간 다른 내용이기에 일부 독자들은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의 전개에 읽는 중간 중간 살짝 당혹스럽기도 했을 듯하다. 하지만 반면, 오랫동안 다시 읽어보지 않았던 작품을 현대소설로 다시금 읽어보며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스스로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또한 반문해본다.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청이 아버지를 ‘위해’ 몸을 바친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 현실 밖으로 ‘자신’을 위해 현실도피를 택한 것은 아닐까, 과연 그렇다면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뛰어든 효심 가득한 청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에는 마지막까지 꽉 쥐고 있던 끈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 ‘놓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라고 봐야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수고했다고, 그간 고생 많았다고 오히려 토닥여줘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꽃이 한창일 때 그 꽃이 질 것을 염려하지 말고 그 꽃의 즐거움을 만끽하라.’는 대사가 나온다. 결국, 상황상, 성정상 절대로 그 즐거움이라는 것을 만끽할 수 없을 사람에게 이제 와서 하는 말인 것인지, 만끽했어야 할 즐거움을 놓쳐버린 것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새 삶을 갖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염려 다 놓고 그렇게 살아가라는 말인 것인지, 중의적 표현이 담긴 말인지 아직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문득 본문 중 한 대화가 떠오른다. 청이 인당수에 던져진 후 꿈 속 같은 몽환적인 장면에서의 대화가 그것이다.

 

- 세상에 좋은 일이 무엇이더냐?

- 봄날의 도화꽃이 좋았더이다.

- 열흘이 다 못 가서 스러지지 않더냐?

- 그렇더이다. 거기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더이다.

- 헛되고 헛되며 헛되나니 그 모든 것이 헛되지 않더냐?

- 영원한 것이 없어 아름다웠나이다.

 

그렇다. 사실 영원한 것이 없기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기에 이 세상 그 모든 것이 아름다운 법인데, 왜 세상 모든 존재 중 유독 인간이라는 존재만이 그렇게 ‘영원’을 탐하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영원’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영원’을 위해 모든 것을 무참히 짓밟는 사람들, ‘영원’을 위해 영원하리라 믿는 우주에까지 손뻗치려하는 사람들. 결코 얻을 수 없지만, 설사 얻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는 것임을, 결국엔 눈물바람으로 후회할 것을 왜 모르는 것이냐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쓰고 있는 나조차도 실상 본능은 아마 하등 다름없을 것이다. 몽환적 꿈속의 대화인지 꿈속 몽환적 대화인지 모를 이 대화를 보며, ‘과연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히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알고 보면 한낱 미미한 존재의 꿈속일수도 있는 법.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물론, 그 미미한 존재 또한 결코 미미한 존재는 아닐 테지만 말이다. 결국 ‘청이가 바다 한가운데 연꽃으로 올라와 그 이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알고 보니 어떤 이의 꿈 속 이야기였다.’ 로 끝나도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그 또한 맞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은 모든 이야기들 또한 어느 부분이 꿈이고 어느 부분이 현실인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을 지은 지은이조차도 단정 지어 장담할 수 있을까? 그 또한 장담할 수 없다고 나는 장담한다. 또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이렇게도 볼 수 있을 것같다.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하기를 ‘환상’은 환상이라고 아는 순간 소멸하는 것이라 했다. ‘무엇이 내가 아닌가’를 아는 순간 ‘나는 누구인가’의 실체가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환상이 정말로 환상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때부터 청과 심학규는 스스로 ‘지금까지의 자신은 진정의 자신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나는 누구인가’의 실체를 본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렇게 이전과는 다르다면 다른 행동을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 희미한 안개 속길을 잃었다 해도 또 다른 안개에 매혹되거나 길을 탓하진 말아야한다. 길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을 잃은 것뿐이니.

 

때때로 우리는 너무나도 빨리 충격 속에서 다시 무감각 상태로 되돌아가곤 한다. 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고 난 후 심학규의 모습이 어땠는가. 그저 ‘어찌 아비가 되어 자기 하나 살아보겠다고 딸을 인당수에 버려놓고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할 수 있는가, 그것도 파렴치한 행동들을!’ 이 아니라 결국 그도 그런 다른 이들과 똑같았을 뿐이다. 너무나도 깊은 슬픔 속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기를 독자들은 바랐겠지만, 바라겠지만, 그들의 착각일 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본인조차도 그들 자신에게 실로 크나큰 슬픔이 도래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둘 중 하나일 뿐이다. 더 큰 슬픔의 수렁으로 빠져들거나, 표정을 감추고 다시 땅 위로 올라오거나.

 

부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사성제에 있다고 한다. 첫째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고통이 있다고 하는 고성제, 둘째는 고통에는 원인이 있다고 하는 집성제, 셋째는 고통을 멸하여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멸성제, 넷째는 해탈에 이르는 데는 길이 있다는 멸도성제가 그것이다. 이 말은 곧 청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 아닌가. 윤상이 바다에서 연꽃을 발견하고 배로 끌어올리기까지의 부분을 한 번 생각해봤다. 왜 하필 연꽃일까. 그것도 바다 한가운데에서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연꽃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청을 너무나도 그렇게 안쓰러운 눈길로 다들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조차도 늘 고통 속에 있다고 아우성치고 있을 텐데, 그렇기에 다 똑같은 처지가 결국 아닌가.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보통 우리들은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의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다인 반면에, 청의 경우 이 모든 과정을 다 지나온 것은 아닐까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청이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읽어본 것이, 들어본 것이 아니었을까.

 

읽다보면 심봉사가 혼돈이라는 괴물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퍽이나 자신의 모습이 아닐 수가 없다. 그 혼돈이 바로 100% 자신의 모습을 반영, 투사하기에 자신도 그것을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혼돈이란 놈은 머리는 있지만 눈과 코와 입과 귀가 없다거나 눈은 있지만 보지 못하고, 귀도 있지만 역시 듣지 못하는 존재라 하는데 이것은 곧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눈과 코와 입과 귀는 모두 있지만, 눈과 코와 입과 귀가 모두 열려있는 사람이 이 세상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반면 모두 닫혀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모르겠다. 요즘, 시간이 갈수록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실로 피부로 느껴진다. 정말로 자신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지만, 눈과 코와 입과 귀 중 한 군데 혹은 여러 군데가 닫혀있는 사람은 예전부터 늘 있어왔겠지만, 가면 갈수록 그 눈과 코와 입과 귀 중 한 군데 혹은 여러 군데를 ‘일부러’ 닫아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편의를 위해서 혹은 괜히 어디에 휘말려 귀찮아지는 게 싫어서, ‘나의’ 행복이, ‘나만의’ 행복이 세상 그 무엇보다 최우선이니까. 마치 공리주의와 의무주의가 항상 대립할 수밖에 없듯 말이다. 남의 일이라고 계속 방관해도 괜찮은 것일까? 과연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심학규가 혼돈을 떠올리는 부분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는지, 혹은 끝까지 닫아버리고 지나쳤을지 또한 궁금해진다. 시간이 지나 결국 우리 모두가 이 모든 것을 일부러 닫아버리는 사람이 된다면 결과란 글쎄 심히 걱정이 된다.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기 때문에.

 

청이 말한다. ‘밤은 꿈의 시간이요, 낮은 현실의 시간이다. 밤은 번민의 시간이요, 낮은 판정의 시간이다.’ 그렇다면 낮과 밤의 사이는? 밤은 꿈의 시간, 낮은 현실의 시간이라 하지만, 청이에게는 밤도 낮도 밤과 낮의 사이도 결국 번민으로 가득찬 시간이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청과 윤상을 들여다보며 과연 운명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인연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도 든다, 그저 끼워 맞추기식 ‘인연’ 이야기가 아니라 아무리 끊어내려해도 이어지고, 마주하기 싫어도 자꾸만 마주치게 되는 그런 진짜 운명, 진짜 인연 말이다. 결국에는 그와 사랑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 역시 청의 ‘운명’ 일 뿐일까? 세상 그 누구보다 기댈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세상 그 누구보다 아끼며,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존재의 사라짐이란 그 슬픔은 어떠했을까, 그 슬픔을 어찌 말로 다 형용할 수 있으랴. 운명극의 마지막 무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무대란 어디에도 없는 것같다.

 

알프레트 케어가 말했듯, 핵심은 인간에 의해 고통 받는 한 인간이 아니라, 이른바 고통을 주는 인류다. 청이를 안쓰럽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거울 속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 그들이 청이라는 인물에게 붙여놓은 이미지에 왜 남은 사람들마저 구속되어야하는 것인지. 결국 그런 우리 모두가 청이라는 인물에게 더더욱 고통을 주고 있는 그 인류가 되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능적으로 외로운 곳에서 외로움을 안고 태어나기 때문에, 더 사랑을 인연을 운명을 갈망하려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인간이라는 존재에 의해 끊임없이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버림을 받고 또다시 외로움 가득한 곳으로 돌아가곤 하지만, 치이고 치여도 결국은 다시 누군가가 자신에게 손내밀어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살고자함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점차 더 외롭게, 점차 더 비인간적으로, 점차 더 ‘나만’을 강조하는 그렇게 변해가는 세상을 보며, 외로움이라는 것에 면역이 되려야 될 수 없는 존재들에게 더더욱 외로운 세상이 감싸고도는 듯해 갈수록 더더욱 외로워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서로 이렇게 손 마주잡지 않은 채로 다들 얼마나 더 웃으며 이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다 정말 다 같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어딘가로 한꺼번에 사라져버리게 되는 건 아닐는지. 사랑을 인연을 운명을 갈망하려고만 하지, 눈과 코와 입과 귀는 닫아버리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다시 변하고자 애쓰려고 하는 한두 사람이 있다면 그 한두 사람은 결국 외로움 가득한 사회 속에서 당연시되게 소외되는 것은 또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말이 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또한 이 소설에서 의미하는 것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는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맑고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정화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꼭 연꽃이라는 매개체 안에서 청이가 나와야했으리라. 이 ‘연꽃’을 생각하면 청이 인당수에 빠진 그 순간부터, 그 이후로의 이야기들은 전부 어쩌면 모두 환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진 청이에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 아마 이것들도 언젠가는 즐거운 추억이 될 테니, 따듯한 차 한 잔 음미하고 홀짝이며 모든 것을 그대와 함께 증발시키기를. 외로움 없이 따듯함 가득찬 그 곳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책장을 덮으면서,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찾기 위한’ 나 혼자만의 여행을 말이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는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정작 혼자 하는 여행은 아직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나를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자 가장 쉬운 방법이 혼자만의 여행은 아닐까 싶은데, 왜 아직 그럴 용기가 안 났을까? 겁내지 말고 준비를 하나 둘 해볼까나.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

 

 

책 제목을 보고, 책 표지를 보고 길 잃은 어느 고래를 보며 주인공 누군가가 힘을 다시 얻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그릴 것만 같은 왠지 따듯한 소설일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아무 상관 없을 세 사람, 그것도 절망의 끝에서 만난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바로 그런 점에서 세 사람의 사연들에 더 눈길이 간다. 노노카, 유토, 마사코 이렇게 세 사람 각자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서로 맞물리게 되는데, 각자의 사연만 본다면 이 사람들을 향한 사회의 눈은, 세상의 눈은 그리 곱지만은 않을 듯하다. 보는 사람의 눈에는 결코 평범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문득 든다. 그저 10대와 20대, 40대 이 세 남녀의 사연이라는 데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결국 10대, 20대, 40대의 자화상이라 보아도 알맞지 않을까? 이 소설에서는 어떤 이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고 유년기의 아픔을 가지며 어떤 이는 사랑의 아픔을 겪는 모습 등을 보여주지만, 하나의 예시일 뿐, 이 세상 어느 사회에도 이들이 보여주는 외로움과 절망, 아픔, 고독감 안지 않고 사는 이는 단 한명도 없을 듯하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되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공감하고, 말없이 위로해주며 토닥여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노노카이고 유토이며 마사코인 것이다.

 

유토가 우연히 동료의 권유로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으며 의사와 대화를 나눌 때, '“정말 많이 괴로웠겠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흘러나왔다. 응, 나는 괴로웠던 거구나. 괴롭다는 감정조차 봉쇄하고 있었던 자신이 불쌍해서 계속 눈물이 나왔다.' 이런 말이 나온다. 왜 우리 모두는 '행복한 척, 정상인 척'으로 꼭 보이려 애쓰고, 나머지는 정상이 아닌, 예외에 해당하는 것처럼 치부해버리고 바로 배제시키려 하는 걸까? 그러한 시선과 사고방식들 때문에 자신의 감정 한 번 제대로 표출해보지 못하고(유토와 회사 동기들 모두 몰래 각자의 우울증 약을 늘 챙겨먹었듯이), 꾹꾹 억누르기만 하다 누구는 연탄을 조용히 준비하고, 누구는 집을 박차고 나서고 하는 등의 갑작스러운 마지막 선택,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동안 뒤에서 잡아줄 사람이 없어 벼랑 끝에서 한 발, 두 발 앞으로 뒤로 옮기다 자신도 모르게 한 발 잘못 디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길을 잃은지 얼마정도가 된지 가늠도 못하는 고래 한마리가 자꾸만 쓰러질 듯 살아날 듯 꺼질 듯한 불씨처럼 자꾸만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는데, 그런 와중에 박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막대한 돈을 들여 데리고 와 치유하고 다시 바다로 보내는 방법이 있는가하면, 한두마리 정도는 안락사시켜도 뭐라할 이 하나 없다. 자연은 한,두 마리 죽은 것에 큰 영향받지 않는다는 박사의 말 또한 과연 그가 고래를 말하는 것인지, 노노카와 유토, 마사코 즉 우리 인간들을 빗대어 말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막대한 돈을 들여 한마리 치유해 보낸다해도 이 고래가 건강하게 살아날지, 도중에 죽어버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며,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안락사를 시킨다는 점도 과연 틀렸다고만 봐야 할 시선인건지.. 그렇기에 상처입고 길 헤매는 이 고래 한마리는 결국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것임을, 결국 우리 모두가 외롭고 고독한 존재임을 알려준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케 해준 소설이고, 그렇기에 우리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따듯함 한 번이라도 느끼고 책을 덮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 결국 따듯한 소설이라 결론내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