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붓이 지나간 흔적. 먹의 멋스러움이 표지부터 눈길을 끌었다.
책을 마주함에 있어, 선택의 시작은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분명, 빼곡하게 자리 잡은 남의 이야기들보다,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을
찾고 있었다.
새벽부터 장대비가 무섭게도 쏟아진다.
밤과 새벽을 지나오면서 읽던 구절들은, 외부의 북적임마저 잠시 뒤로 밀쳐두게 만든다.
종교인들을 내세워 잠시 잠깐의 잇속을 챙기는 책들이 출판되면, 나는 화를 낸다.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텐데, 그 다른 것을 눈여겨 보지 않고, 시기에 맞지 않는 책들.
내심, 이 책을 펼치면서도 그런 염려가 되었다.
산 속에 찾아들며, 종교와 상관없이 어느 암자건 두손 모아 합장하게 되는 평온함을
사랑하는 내가, 오늘 또 다른 것을 배우고 돌아온다.
"공부다하 죽어야겠다. 그러니 나랑 같이 지내자. 내가 잠이 들었는지 늘 잘 살펴라.
잠들었으면 흔들어 깨워라." 입적 하시기 전까지 공부를 놓지 않으신 모습,
신비화의 일면이 아니라, 수행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마무리가 처음과 다르지 않음에 존경한다.
하심 2 / 상대에게 나를 낮춘다는 것은 반쯤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밑줄을 그으며, 나는 얼마나 내 자신 내 마음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타인을 배려한답시고, 마음을 사용해도, 본연의 마음 속에 내가 이해하고 싶은 만큼의 타인만 바라보았다. 하심을 가질 때 이다. 진짜의 하심.
하루를 가지런히 열고 닫는 법 /
신발을 흐트러지게 벗어놓은 사람은
가지런한 신발을 신을 수 없습니다.
신발 벗어놓은 걸 보면
그 사람이 매순간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른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의 기준 안에,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속일 수가 없다. 매순간 하루를 가지런히 열고 닫는 일에 게을리
한 날들이 떠올랐다.
스님이 일깨워 주시는 나에게 가는 길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단 한권의 책으로 단 몇줄의 글귀들로 다 흡수하기엔 깨달음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 깊은 울림은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흔들고, 일깨워줄 화두가 된다.
오늘처럼, 바깥은 심란하고, 마음은 어지러운 때. 특히나 읽으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