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이미 그 끝을 보이는데, 늦되게 땅을 비집고 나온 매미 소리가 마당 한가득이다.

이러한 때에 읽기 좋은 책은 무엇인가 책장을 둘러본다. 책장의 한칸은 동화책만을 위한

공간이다. 조카들이 왔을때 읽어주기도 하지만, 내 마음의 간격이 벌어질 때, 시집을 찾아

읽듯 시원시원한 글씨체와 화려한 색체의 그림을 본다.

 

  <책 읽어주는 바둑이> 긴 휴가를 떠나기 전에 도착한 책을 아직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타타타타....외가에만 오면 허락되는 닌텐도 게임에 한쪽벽에 기대어 고개 한번

들지 않고, 게임에 열중하는 조카의 모습이 떠올랐다. 활자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손이 익숙

해져버린 놀이문화때문에, 위인전을 읽던 어린시절과는 사뭇 다른 요즘 아이들이다.

철수도 그 대표주자로 보인다. 동화책을 만드는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이 망태귀신과 바둑이

로 아이들의 마음을 책으로 가까이 당겨 앉게 만든다.

 

  작가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망태할아버지의 노랫말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려서 맛있는 음식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는 인도자가 되며

늙어서는 즐거운 벗이 되네

 

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책은 음미하고

어떤 책은 마셔 버리고

어떤 책은 씹어서 소화시키네

 

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집에서도 친구

산에서도 친구

바다에서도 친구

하늘에서도 친구이네

 

  할아버지의 마법으로 책을 읽을수 있게 되는 바둑이 덕분에 친숙하게 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있는 철수의 모습이 인상적였다. 게임에 익숙하던 조카아이도 한칸을

차지하고 책장 속에서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도록 열어두니, 처음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책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어떤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주변 어른의 몫이라고 본다.

이 책에선 바둑이가, 그리고 망태할아버지가, 그 역할을 열어준다.

 

 "마침내 철수가 책 속에 풍덩 빠져버렸네!" 달고 맛있는 책 속으로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활자에 마음이 끌렸으면 좋겠다. 독서란 끝이 없으니, 그 속에서 참맛을 알아가는 아이들로

말이다.

 

일기장 한켠에 "소리 없는 소리"라는 표현을 자주 써두곤 했다.

그 인연으로 이 책은 내게로 왔다. 최석운 작가의 표지 그림에 끌리기도 했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제목과 표지만으로 끌린적은 많지 않다.

 

유독 마음 다스리는 "명상치유에세이"집을 기웃거리는 요즘이다.

 

그 요즘의 한시성을 생각하면, 잠시의 지나는 과정이겠거니 하겠지만,

소설의 다양한 장면들보다, 내부의 조용한 소리들을 활자화 한 책들에

관심이 가는건 사실이다.

 

이 책을 접하면서 처음 긋게 된 밑줄은 이 문장이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는 인식과 판단은 모두 과거에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각인되어

심어진 것이며 그것이 어떤 계기를 만나 우리의 의식이 표면으로 떠오른 것이다."(24p)

 

분주한 마음들의 시발점은 과거 어떤 회상으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들로 연결

된다. 어느 순간에도 머릿 속에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 중에 하나가 "명상"이라 생각되고, 그 생각을 잡아주는 좋은 글귀들이라 생각한다.

 

선승들의 대화 속에서도, 최석운 작가의 그림 한편에서도, 마음을 바로 잡아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러므로 비록 힘들긴 하여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이다."(189p)

마음을 다스리면, 어떤 현상에서도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게되었다.

 

마음이 번잡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짜증이 난다는 말도 수시로 하는 친구들을 보며, 저 말 안에 마음이 갇히지 싶어,

마음 돌리는 글귀들을 편지에 적어 보내기도 했었는데, 각자의 마음들이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주변의 어떠한 자극도 그냥 지나는 현상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자기 안의 생각들이 자신을 움직이는 것을, 나도 제때 행하지 못하는 진실들을 억지로

깨닫게 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할까 한다.

한장의 편지보다, 한권의 좋은 책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되기도 하니까,...

 

읽는 동안, 편안했고,

읽는 동안, 마음 가까이 다가갔다.

앞으로의 마음 수행에도 도움이 되는 책을 만나 반가운 여름이었다.

 

'서른' 지독한 청춘에 종지부를 찍는 나이인 줄로만 알았다.

스무살에 대한 오해 다음으로 서른도 만만치 않았으니, 모두에게 서른은

피할수 없는 과정으로 인식되나 보다.

이렇게 책의 제목마저 '서른'의 감성을 자극하며, 출판부수를 늘리는 것을 보면,...

심상치 않은 나이임에는 분명하다.

 

유독 서른 전에 둘러보라는 말은 무엇인가?

사회적 통념으로 눌러 박아둔 '서른'이후의 포장된 안정 다음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살아야 할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른전에 열심히 세상을 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진다.

좀 둥그렇게 표현하자면, 이십대의 불온함을 여행과 함께, 자연과 함께, 공부하라는 뜻

으로 받아들여졌다.

 

의례 휴가는 여름에 가야한다는 믿음에서, 시간이 되면, 어느 때고, 밤기차도 탈 수 있

는 경지에 오르기까지, 많은 곳을 둘러본 것은 아니다.

 

프롤로그 다음으로 목차를 보면서, 초록 색연필로 다녀온 곳을 챙겨봤다.

다행히, 영 부끄러울만큼은 아니다. 다녀온 곳을 먼저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행보를 다른이의 추억과 결쳐 읽는 방식은 흡수율이 더 좋으니까,...

 

네명의 느린 여행이 가져다 주는 잔잔한 이야기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내주었다.

 

푸른 들판이 하얀 매화가, 파란 지붕과 빨간 단풍, 청보리뿐만 아니라, 그 길을 따라가는

마음들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지리적 이동에도 "여행일기"를 써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메모 수첩과 엽서 몇장을 들고 출발하던 예전에서, 적극적인 기록들을 꿈꾼다. 이들처럼,...

 

분명 마흔을 준비하는 마음에서도 남과는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이 필요할테니까,...

지금부터 기록해두는 버릇이 필요하다.

 

스물여덟곳의 근사한 공간을 오픈해준 여행 작가들에게도 감사하지만, 그 자연의 한 공간을

청춘들에게 열어준 길에게도 감사한다.

 

"여행이 당신을 진정한 서른이 되게 한다."는 표지 제목처럼,

여행이 진정 자신의 내부를 열어준다고 보태고싶다.

 

여름 북적이는 바다 앞이 아니더라도, 집 밖을 홀로 나설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