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한지처럼, 때론 포근한 세월을 담고 있는 듯한 책표지의 느낌이 손끝으로 서걱거린다.

지금은 엄마의 잔소리가 지긋지긋 감당 안될때가 있는데, 문득, 어느 훗날 그녀의 부재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반문해보게 하던 책입니다.

 

살아가는 일들에 소소한 감정의 이음새를 놓지고 산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일이예요.

그렇게 잠깐 스치고 지날 일들이 나중엔 사무치게 그립고, 그때 적시에 느끼지 못한 이야기들과

전하지 못한 이야기에 대해서 후회가 밀려올거라는 사실.

아련하고, 그립고, 사무치는 일상의 소소함.

 

사람이 참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옆에 아무도 없을 때, 그 쓸쓸함이란 견디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부부라는 인연으로 평생을 함께 지내오다가 한 명이 먼저 떠나면

그 허전함이란 차마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워하기 전에 더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더 그리워해야 합니다.

더 많은 말을 하기보다 더 많은 말에 귀 기울이고, 더 많이 사랑받기보다는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은 원래 혼자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혼자 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야 온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8p

 

내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에 가슴이 콕콕 찌른다.

우리는 그리워하고, 더없이 사랑하고, 간직해야 한다는 사실.

나는그 고비 고비의 감정선들을 잘 쫓아가고 있었던가?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가족에게도,...

마음을 위로해주는 친구에게도,...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타인의 발걸음에도,...

 

나누는 마음도 큰 노력에서 나오는게 아님을,...

 

이 책은 삶의 전반의 조그만 에피소드로 당신의 일상에서 스쳐버리는 한 단막을

보여주는 글들이다. 무겁게 않게, 가벼운듯 또 진지한 장면 하나 하나들,...

 

손끝으로 서걱거리는 책장을 넘기며, 나도 나를 넘겨다 본다. "엄마, 정말 미안해!"

책을 다 읽어내고도, 며칠간 가방에 넣고 다녔다.

커다란 나무 등걸을 베고 자는 느낌. 신이상주의자의 시간 한틈을 엿보고,

나무에 새겨둔 시간을 읽는다.

 

조각가이자, 시인, 신이상주의자.

나는 마지막 타이틀이 마음에 든다.

"정해져 있지 않은 길을 열심히 살다가 그 다음 일들은 다음 시간에 넘겨주면 된다."고 말하는

털털하고, 소박한 이상주의자. 그의 작업과 결과물에 시를 덧붙여 내게 왔다.

 

조각칼로 나무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으로 바람을 새겨넣은 결과물이다.

나의 또 다른 감성을 나타내는 "글"에 대한 갈망과 작업일지 같은 마음의 흔적.

"이 글들을 쓰게 해 준 그 당시의 시간들에게 감사한다." 말하는 나무로 얘기하고, 나무를 꿈꾸는

지극히 나무와 시와 시간을 편애하는 작가.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린 작품들에도 눈이 간다.

저 단단한 결의 무늬. 그리고 자연 그대로 나무의 특성을 살리고자 한 배려.

 

*애화*

 

              정상기

 

그렇게 눈물이 흐른다.

그대가 보고파

눈물이 흐른다.

그대의 채취가

아직 나의 입가에 남아 있는데

그대가 곁에 없어

눈물이 흐른다.

 

사랑스런 꽃들이

내 눈물처럼 진다.

 

바위틈에서 자란

강한 생명력의 그 꽃들이

내 눈물처럼 진다.

 

 

*감사드립니다*

 

                    정상기

 

시간과 공간이 맞아

그대와 소중한 시간을 보내서

감사드립니다.

 

저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것이 오래 지속되길 바라며

그 보다 먼저

 

그대가 그곳에 있기를 바랍니다.

 

 

몇편의 시들을 수첩에 옮겨적는다. 망치와 조각칼이 춤추는 책한권.

시집이기도 하고, 일기장 같은 기록장이기도 하고, 정상기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너이기도 한 시간의 기록장.

 

흔들의자의 나무결을 쓸어본다.

이 나무들이 누군가에게는 시간을 기록하는 결과물이고,

나에게는 손을 얹어둘 마음편한 안락함임을,..

지나고 말 나무들을 쫓아 다닌다.

그리고, 작가의 기록들을 다시금 묻어둔다.

이제 며칠간 자리를 차지하던 공간에서 밀어두어야겠다.

다시금 바람이 불고, 나무의 노래를 듣고 싶을 때 꺼내들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Jazz from italy. 수업이 돌고 돌았을 트랙들,...

 

 12년만에 다시 재출간 된 하성란 작가의 <식사의 즐거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토록 복잡하진 않았을텐데,...미묘한 쉼표와 줄임표들만 늘어

 났다. 그녀가 말한 미래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선물 받고도, 그 과거의 표상에서 그대

 로 수정없이 출판 된 책. "남자"를 기점으로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가고 있지

 만, 나는 그 외의 사소한 등장인물들 모두가 주인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모체로부터 분리된 이후로도 죽는날까지 우리에게 "식사"는 본능과 생존에 직결된 문

 제이다. 그저 먹는다의 개념이 아닌, 살기위해,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그 누군가와 그

 자리를 함께 하는가에 대핸 끝없는 딜레마.

 

 가족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부 포기

 하고, 일부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생활하는 것. 감사하게도 지겹기도 한 사실.  그런데,

 선택되어진 가족이라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식탁 위에서 내 자리는 어디일까? 반문하게

 된다면,...그 자리는 지옥이 될 것이다. 어딘가에 현존하고 있을 나의 또 다른 가족을 찾

 아서,...

 

 반납하지 않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속에 끼워져있던 쪽지 : "그러니 이 쪽지를 보는

 너 젠체하지 마라. 너도 동물일뿐이다." (108p) 가 머릿 속에 맴맴 돈다.

 

 가족이 운명인지, 운명이 또 다른 가족을 영입해서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하성란식의 표현 방법은 아직 내게 영역 밖의 작가세계이다.

 그렇기에 생소하지만, 새로운 다가옴이 있다. 과거에 머물러있던 무기력함이 아닌, 내일로

 향한 용기를 남자에게 부여하는 방식이 앞에 수없이 출현하던 가짜 주인공들을 재치고,

 희망을 긍정하는 새로운 테마를 끌어내니 말이다.

 올바른 해석이길 바라지 않는다. 자살한 소녀로부터 연결된 라디오 창구. 그리고, 새벽두시.

 점점 느려지고 있는 시계. <아직도 잠들지 못하는 그대에게>에서 <웃는 인생 젊은 인생>으로

 전환하는 작가적 유쾌함. 순간 '빵' 터지고 만다. 무겁고 지친 소재에서 새로운 밥상의 출현

 으로 가족을 구성하고, 자기가 끌어 나가고 싶은 밥상의 주인이 되는 것.

 또 다른 포마이카 밥상 앞에서, 가족의 이야기는 시작 될 것이다.

 끝없는 딜레마의 그늘을 벗어나진 못해도, 해볼만한 식사의 즐거움이지 않을까?

 

 우린 어쩌면 이건 나의 운명이 아니야?하는 자기방어적 기제에서 돌출한 어제의 동물이고,

 오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끝없는 식사와 먹고 먹히는 관계. 또 다시 펼쳐지는 말줄임표들,...

 소설의 뒷편으로 숨어있는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지금 당신의 밥상은 따뜻한가? 안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