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열하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완역본은 아니리란 생각이 들지만 그 땐 그다지 재밌게 읽지 못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고미숙 씨의 말처럼 '포복절도'란 말이 많이 나온 것 같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도 함께 포복절도를 하지는 못했다. 그 유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 저자가 읽어주고 설명을 덧대주는 책을 읽어보니 <열하일기>가 참 매력있는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시대의 경직된 문체들을 볼 때 박지원의 글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박지원이라는 인물은 18세기의 서태지가 아니었을지.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 말하자면 글이란 읽는 이들을 촉발하는 '공명통'이어야 한다. 찬탄이든 증오든 공명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글은 죽은 것이다. (133쪽)

 

-글을 쓰는 자세에 대해 일침을 놓아 주는 말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밋밋하게 쓰는 글보다는 차라리 아프게, 가렵게 하는 것이 백번 낫다.

 

 

만일 괴상스럽고 잡스럽고 우습고 괴이하며 거룩한 것을 구경하려면 먼저 신무문 안에 있는 상방에 가봐야 할 것이다..... 몸뚱이는 소 같고 꼬리는 나귀와 같으며. 약대 무릎에, 범의 발톱에, 털은 짧고 잿빛이며 성질은 어질게 보이고, 소리는 처량하고 귀는 구름장같이 드리웠으며, 눈은 초생달 같고, 두 어금니는 크기가 두 아름은 되고, 길이는 한 발 넘어 되겠으며,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이 자벌레같고, 코의 부리는 굼벵이 같으며, 코끝은 누에등 같은데, 물건을 끼우는 것이 족집게 같아서 두루루 말아 입에 집어 넣는다.(상기(象記)) (193쪽)

 

 -코끼리에 대한 묘사가 참 흥미롭고 기발하다. 특히 코가 자벌레 같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경험과 문자 사이의 엄청남 괴리. 그러나 연암의 연행록에는 이런 사건들이 어엿하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진심으로 이런 농담과 해프닝들을 즐겼고, 게다가 한술 더 떠 가감, 첨삭, 윤색까지 시도했다. 따라서 누군가 <열하일기>를 이렇게 규정한다 해도 지나친 과장이라고 탓할 수는 없으리라.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펼치는 '개그의 향연'이라고.(213쪽)

 

-전형적인 태양인에 유쾌통쾌한 박지원이 그의 기질을 맘껏 펼치기에 그 시대는 너무나 좁은 틀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든 그렇다. 연암과 함께 움직이면, 혹은 연암의 시선에 나포되면 누구든지 '익명의 늪'에서 돌연 솟아올라 그만의 특이성을 분사한다. (264쪽)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가 생각난다.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아껴 여롱(驪龍)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 또한 여의주를 가지고 스스로 뽐내고 교만하여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319쪽)

 

-그 모습이 화려하건 소박하건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동네 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더니 읽는 데 싫증을 내더이다. 그래서 꾸짖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하늘을 보면 새파란데 하늘'천'자는 푸르지 않잖아요" 그래서 글을 읽기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은 문자를 만든 칭힐(한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상고시대의 인물)을 기죽일 만하외다. (담창애)(295쪽)

 

평행선의 운명을 아는가? 두 선분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다만 서로 바라보며 자신의 길을 갈 뿐. 하지만 그들은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평행선이 되기위해서는 서로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절대 헤어질 수도 없는 기이한 운명! 아, 연암과 다산은 마치 평행선처럼 나란히 한 시대를 가로지른 것인가? (403쪽)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상과 문체를 가졌던 박지원과 예와 법도를 중시했던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다. 너무나 다르지만 똑같이 동시대를 주름잡았던 이들이다. 두 사람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사상을 가졌던 사람들이나 후대의 우리는 두 사람을 모두 높이 평가하고 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쪽로 치우친 사람이 있다면 저쪽으로 치우친 사람도 있어야 세상은 균형을 이루어 갈수 있을테니 말이다. 세상에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어주니 그 모래알같은 자유와 개성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지. 

 

책을 덮고 나서 주인공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한동안 맘이 아팠다.

젊은 시절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데이지를 잃고 한맺힌듯 닥치는대로 돈을 모아 대 부호가 된 개츠비.

화려하고 남부러울것 없어 보이는 그도 가슴 속에 숨겨 놓은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그는 예전에 이루지 못한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배신과 쓸쓸한 죽음 뿐이다.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그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이 소설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1920년대 미국의 모습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그 때 미국은 1차 세계대전 후 대 호황을 누렸고 그만큼 타락해가는 사회였다고 한다. 그래고 책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동부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이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를 알게 된 후 삼자대면(?)을 하는 상황에서 남편과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누구를 사랑하는지를 다그친다. 여기서 우리와는 정서가 참 많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우리나라였다면 데이지가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단지 여자의 부정한 행동 자체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일텐데, 외도한 아내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남편의 모습이 참 생소하다.  

 

왜 '위대한 개츠비'인가? 이처럼 초라하게 퇴장하고 마는 개츠비가 왜 위대한 거지?

모두가 물질적인 부를 좇던 시대에 끝까지 순수한 사랑을 간직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완벽해 보이는 개츠비가 알고보니 허당이더라 하는 역설적인 표현인가. 

 

영화를 보기위해 구입한 책인데 결국은 책만 읽고 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다지 인지도가 많지 않은 영화였는지 상영하는 영화관이 많지 않아 때를 놓치고 말았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꼭 책을 읽고 영화를 봐야하는 나의 고지식함 때문에 벌어진 일.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책을 읽으며 내가 그려낸 세상과 영화감독이 그려낸 세상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먼저 본다면 나의 상상력으로 채울 부분을 빼앗기는 기분.

 

이 책은 우선 그 두께에서 '허걱~'할만큼 압도적인 책이다. 거기다가 러시아 이름들은 왜 그렇게 길고 어려운지 이름 외우는 데도 꽤 애를 먹었다. 단순히 '상류층 유뷰녀인 안나가 사랑을 찾아 도발하는 이야기'라는 사전지식만을 가지고 시작한 책이었는데, 안나의 이야기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하나의 사건일 뿐 그 주변에 파생되는 거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이야기는 안나의 이야기와 레빈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흘러간다. 두 사람의 선택과 삶을 들여다보며 그 시대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모습이나 사상, 고민들을 짐작해 볼수 있었다.

안나는 책의 타이틀을 거머쥘 만큼 작가에게 인정받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안나에게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반란을 일으키는 안나. 틀에박힌 상류사회의 진절머리나는 풍습과 결혼을 생각하면 사랑을 위해 용감한 선택을 한 안나에게 박수를 보낼만도 하겠지만, 안나의 남편이 그다지 나쁜 사람도 아니었으며 자식까지 버리면서까지 주체적인 선택을 한 안나가, 오로지 브론스키의 사랑에 노예가 되어 전전긍긍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반면에 결혼을 하는데도 신중하고 진지한 태도롤 보인 레빈과 키티에게 더 마음이 간다. 물론 결혼 후 생각과 다른 결혼생활에 갈등을 느끼기도 하지만 형의 죽음, 출산 등을 겪으며 서로 이해하고 성숙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고뇌하는 지식인 레빈은 마치 톨스토이가 책 속에 들어간듯한 착각을 준다. 만약 이 책의 제목이 안나 카레니나가 아니라 레빈이었다면 어땠을까. 레빈의 시선으로 안나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것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책 속의 장면 중 레빈이 키티에게 청혼하고 키티가 받아들이는 장면을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 부분이 가장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