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려령 작가는 영화로 히트를 친 "완득이" 의 원작을 쓴 작가인데요.
저는 그 유명한 완득이를 아직 못봤고 김려령 작가의 책으로는
"우아한 거짓말" 을 먼저 만났습니다.
우선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역시 영화화 되었고 캐스팅 된 배우들이
제 관심속에 있던 사람들이어서 였어요.
김희애, 그리고 아역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연기력의 배우들이어서 기대도 됐구요.
그런데 영화보다 원작을 먼저 접하게 되었네요.^^
역시 원작을 다 읽고 나니 영화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읽는 내내 책 속의 천지엄마 현숙, 천지, 만지, 화연, 오대오 추상박 등등의 인물들이
영화에선 어떻게 비춰질까 호기심을 갖고 보게 되더라구요.
요즘 제가 책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생기게 된 버릇이 원작속의 캐릭터들, 장면들이
이미지화 되면서 영화로는 어떨까? 어떤 배우가 저 캐릭터에 어울릴까?
책속에서 그려지는 장면들을 상상하게 되고 그려보게 되는거예요.
물론 영화로는 함축되고 생략되고 원작과 다른 느낌이겠지만요.
저도 10살, 7살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이 작품은 그냥 넘길 수 없게 만듭니다.
내 딸이라도 천지같은 상황이라면 저런 결정을 내렸을까?
기본적으로 주어진 환경도 다 다르고 아이마다 갖고 있는 기질이나 성격도 다르기에
똑같은 조건일 수도 없겠지만 정말 저렇게 궁지에 몰리고
아이가 혼자서 해결하려고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았다면
엄마로서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을텐데
천지 엄마는 어떻게 앞으로 살아갈지 저도 모르게 실제 인물인것처럼
감정이입되서 몰입할 수밖에 없었어요.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천지는 밝게 살아가려했고 나름
엄마와 언니를 아우르는 포용력도 있던 어린 아이 같았는데,
어쩜 그런 성격때문에 걱정 안 끼치려고 다 짊어지고
"점점 흐려지는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가 버린 천지가
너무나 가엾습니다....
같은 사춘기의 언니 만지는 늦게나마 동생의 죽음과 자살하게 된 원인을 알아내려 하고
알게 되면서 겪었던 일들 속에서 퉁명스럽지만
동생에 대한 사랑이 아주 절절하게 베어나오는 장면들은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구요.
거침없이 표현하고 똑부러졌던 만지의 말들이 주변 친구들과
엄마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칠 만큼 촌철살인을 보여준.....만지의 역할을 맡았던
고아성 양의 연기가 더욱더 기대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괴물" 때 봤던 고아성 양이 여전히 아역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성인이 되었네요....
앞으로의 필모그래피도 기대됩니다.
편지지를 접어만든 실패를 하나씩 주면서 죽기 전에 용서를 하고 떠나는 천지.
그 글들을 받은 당사자들은 섬뜩하면서도
용서를 했지만 결코 용서가 아니라 철퇴로 더 혼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거예요.
그래서 남은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법인가 봅니다.
그런 남은자의 고통을 보여준 절정은 천지엄마 현숙이
보신각으로 찾아가 화연엄마를 만나서 화연이 천지 살아있을 때
서로 교환하자고 했던 MP3 플레이어를 주는 장면인거 같아요.
"우아한 거짓말" 이 천지가 엄마에게 MP3 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조르면서
모녀의 싸움으로 시작되는데요.
참 작품의 시작과 끝을 이렇게 다 읽고 나서 보니 구성을 하는것 또한
중요한 거구나... 이렇게 임팩트를 주는구나 싶더라구요.
천지엄마가 화연엄마에게 MP3 플레이어를 주면서 천지가 화연에게 주고 싶었던 거라며
건네주는데 정작 화연엄마는 섬뜩해 하지요.
죽은 아이가 건네주는 선물이라니.....
화연이가 천지의 죽음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고 미안해하지만
사실 이런 선물은 화연엄마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꺼림칙한 선물이니까요.
그런 화연엄마의 입장을 천지엄마가 모르고 줬겠어요....
조용히 복수를 하는 듯한 천지엄마의 마지막 말이 화연엄마 입장에서는 참 무섭고
보는 이로 하여금 통쾌하게 하기도 합니다.
사과하려는 화연엄마에게 천지엄마가 말하지요.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 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오래전 학원 원장으로부터 화연과 천지를 떼 놓으라는 충고를 들었던 천지 엄마.
그때 좀 더 민감하게 천지를 살펴보고 원장 말대로 했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안 왔을수도 있을텐데 천지 엄마가 되서 생각하면
얼마나 후회스럽고 억장이 무너질까요.....
모든 순간순간들이 후회스러운 천지엄마가 같은 엄마입장에서 보면
남아있는 사람으로써 또한 가엾어요....
아빠도 없이 두 딸 키운다고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천지를 알듯 모를듯 괴롭히고 자기한테 편리할대로 이용했던 화연은
만지의 얘기와 행동으로 인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천지의 죽음에 대해 미안해하며 진짜 괴로운 날들을 보내게 되는데요.
또 어찌보면 화연 또한 가정환경 속에서 부모님들의 관심도 못받고 자라서
주변 친구들에게 관심받고 싶었고
그런 와중에 천지가 들어온거고
막판에는 화연도 좀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하더라구요.
왕따를 만드는 가해자가 또한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더니
친구들에게 점점 왕따가 되어가는 화연도 많은 생각이 들었을 테구요.
화연 같이 왕따 가해자인 아이들이 이 책을 한번쯤 봤으면 싶어요.
그들도 무척 외롭고 상처가 있기에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아이들이 대부분 그랬을거 같아요.
넘치게 사랑을 받았던 아이들은 뭔가 비뚤어지고 어긋난 사랑을 받았던가요....
왕따 문제는 청소년만의 문제가 결코 아닌거 같아요.
부모님과의 사랑, 나아가서는 사회적인 문제로도 충분히 보호를 받지 못했기에
이런 문제들이 생겨나는거 같고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곳곳에서는 눈물도 나려하고 울적했지만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고 자녀를 둔 부모라면 꼭 읽었음 싶습니다.
책이라는 건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접하기 전과 후, 한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니까요!!!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는 없지만 작년인가, 제작년인가 파주 민음사 까멜레옹 매장에서
패밀리 세일할 때 싸게 업어왔던 "가시고백" 도 책장에 꽂아만 뒀었는데
이렇게 김려령 작가의 책도 첫삽을 떴으니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