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카사와 나오토는?

 후카사와 나오토는 일본을 대표하는 제품 디자이너입니다. 1956년 야마니시 현에서 출생하여 1980년 타마 예술 대학교 디자인 학부를 졸업했습니다. 그 후 일본과 미국의 디자인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 하다가 1996년 IDEO라는 디자인 컨설팅 회사의 도쿄 지사 설립을 돕고 핵심 멤버로 일합니다. 2003년에 무인양품의 자문위원으로 취임하고 동시에 자신이 디렉팅한 브랜드 '플러스마이너스제로'를 출시하여 생활 용품 및 잡화 디자인 분야에 진출합니다.

 현재는 모교인 타마 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무인양품 자문위원, 21_21 디자인 사이트 디렉터, 디자인 품질 자문위원 등 디자인과 관련된 분야에서 폭 넓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애플, 앱손, MUJI, 스틸케이스, 도시바 등 유명 회사와 일해 온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40여개 이상의 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제품 디자이너로 꼽히고 있습니다.

2. 후카사와 나오토가 디자인한 제품들

 그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간결하면서도 외양적으로 아름답고 사물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잘 알려진 제품들을 몇 가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무인양품의 '벽걸이 CDP'

 많은 분들이 이 제품을 아실 것 같은데요. 무인양품의 벽걸이 CDP입니다. 환풍기 형태로 생긴 이 CDP는 발매 즉시 센세이션을 불러오며 무인양품의 히트 상품이 되었는데요. 줄을 당기면 음악이 나온다는 간단한 조작 방식이 너무나 매력적이죠? 후카사와는 사람들이 반드시 매뉴얼을 보며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한 눈에 사용 방식을 알 수 있는 쉬운 디자인을 지향합니다.

2) 라미의 '라미노토'

 독일의 만년필 회사인 Lamy사의 의뢰를 받아 디자인한 라미노토입니다. 이 볼펜은 클립 부분이 돌출되어 있지 않고, 몸통이 삼각형으로 디자인되어서 쥐었을 때 안정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볼펜의 핵심만 표현하여 가장 편안하고 심플한 물건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3) 플러스마이너스제로의 '아로마 가습기'

 플러스마이너스제로에서 출시한 아로마 가습기입니다. 포트 부분에 아로마 오일을 떨어뜨려 가습과 함께 아로마 테라피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요. 깔끔한 디자인에 참신한 아이디어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2005년 일본 굿디자인어워드의 골드를 수상했고, 2007년 MoMA(뉴욕 현대 미술관)에 영구 소장 컬렉션으로 선정되었습니다.

3. 후카사와 나오토의 디자인 철학

 후카사와 나오토는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에 반대합니다. 물건의 본질적인 특성을 살리는 것 외에 디자이너의 자의식을 담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부엌용품이나 가구 등을 보면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2005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당시 후카사와는 스툴 의자를 출품했다고 합니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보러 갔을 때 그의 의자 세 개는 부스 한 구석에 놓여있었는데요. 사람들은 그것이 전시품인지 모르고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거기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상심해있는 후카사와에게 동료이너가 전화를 걸어와 작품이 너무 좋았다고, "그게 바로 슈퍼노멀이에요!" 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후카사와는 그때부터 '슈퍼노멀'이라는 말을 접수하여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설명하게 되었는데요. 슈퍼노멀이란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특별한 것', '평범한 것 중에 가장 평범한 것' 등을 의미합니다. 관람객들이 스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의자가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다 했다는 의미일 수 있는데요. 전시품인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고 익숙하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그런 평범함과 자연스러움이 좋은 디자인이 아닐까, 후카사와는 나중에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후카사와의 디자인 철학이 드러난 전시가 2006년 일본 액시스 갤러리에서 열린 슈퍼노멀 전시회입니다. 밀라노 박람회에서 후카사와에게 전화를 걸어왔던 영국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과 함께 한 이 전시에는 의자, 유리컵, 마켓 바구니 등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매일 접하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물건들이 완벽한 디자인을 가진 물건으로 '재발견'되어 전시장에 진열되었는데요. 날로 과장되어가는 디자인에 지친 사람들에게 소박하고 평범한 디자인을 제안하는 두 사람의 관점은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이 당시 전시된 물건들과 두 사람의 대담 등을 묶은 책이 『슈퍼노멀』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필독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후카사와 나오토, 재스퍼 모리슨 공저 『슈퍼노멀』, 안그라픽스)

4. 일상과 어우러지는 제품들

 그렇다면 일상과 어우러지는 제품들은 어떤 것 들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위의 사진 속 제품은  받침이 그릇 모양으로 이루어진 스탠드입니다. 사람들은 밤에 스탠드 아래에 시계와 액세서리, 휴대폰 등을 놓아두는 습관이 있죠. 이 제품은 사람들의 일상 행동을 관찰하여 디자인에 반영한 것입니다. 덕분에 아침에 물건을 찾느라 돌아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티백에 고리가 달려있습니다. 이 고리의 색깔은 홍차가 가장 맛있게 우러나온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는데요. 사람들은 이 고리의 색깔을 참고해서 그때그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홍차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오른 쪽에 있는 티백은 마리오네트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티백을 휘저으면서 자연스럽게 마리오네트를 쥐고 움직이며 놀 수 있습니다. 이런 티백이라면 티타임을 좀 더 즐겁게 만들어 줄 것 같네요.

 
 비가 오는 날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이런 자세로 서 있는 것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혹은 손이 모자라서 이런 행동을 하게 되는데요. 여기에 착안한 디자이너는 아예 우산 손잡이에 홈을 파서 가방이나 비닐봉지를 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홈이 파인 우산을 들고 나간 날이면 어느새 우산에 짐을 매단 채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같네요.

5. 기본을 지향하는 무인양품의 상품들

 후카사와 나오토가 무인양품에 합류한 것은 2003년으로 동료 디자이너인 하라 켄야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하라 켄야는 현재 무인양품의 디렉터로서 무인양품의 정체성과 비전에 지대한 영항을 끼치고 있는 사람인데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무인양품의 기본 정신은 후카사와의 슈퍼노멀 디자인과 많은 부분에서 흡사합니다.

 무인양품의 제품을 보시면 하나같이 로고가 없고 심플한 형태로 되어있는데요. 그것은 무인양품이 지향하는 것이 튀지 않고 충분하게 제 몫을 해내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원형이 되는 특징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다보니 자연스럽게 제품은 미니멀리즘한 형태를 띠게 되었는데요. 불필요한 장식 없이 일상과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 이것이 무인양품과 후카사와가 지향하는 좋은 디자인입니다. 그럼 여기서 무인양품의 베스트 상품 세 가지를 살펴볼까요?

1) 에그팬

 사각형 모양이라 계란말이를 할 때 편리한 에그팬입니다. 지르코니아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단단하면서도 열전도가 뛰어난 것이 특징입니다.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간단한 음식을 해 먹을 때 편리합니다.

2) 소파

 대형 쿠션 모양의 ‘몸에 맞는 소파’입니다. 앉으면 중량과 각도에 따라 자유롭게 반고정이 되면서 편안하게 몸을 감싸줍니다. 출시 1년 만에 8만개를 팔아 10억엔(약 142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3) 테이블

 원목으로 만든 기본형의 테이블입니다. 가볍고 단단하며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일 수 있어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제품입니다.

7. 후카사와 나오토와 플러스마이너스제로

 후카사와 나오토는 무인양품의 자문위원으로 취임한 2003년 가정용품 및 잡화 브랜드 ±0(플러스마이너스제로)를 출시했습니다. 노호혼, 플리플랍 등을 만든 장난감 회사 Takara와 출판사 Diamonds와의 합작 브랜드인데요. 우산부터 TV까지 일상에 쓰이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산업 디자인 문화에 공헌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야심찬 프로젝트입니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는 2003년 LCD TV, 가습기, 커피 메이커, 오븐 토스터 등 20여개 제품으로 구성된 첫 번째 컬렉션을 발표했으며 해마다 점진적으로 상품 수를 늘리며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의 상품들은 일본 굿디자인어워드(Good Design Award)에서 매년 수상하고 있는데요. 굿디자인어워드는 독일의 레드닷(Red Dot)과 iF, 미국의 IDEA 등과 함께 세계 4대 디자인 공모전으로 꼽히는 어워드로 2010년에는 후카사와가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2007년 굿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토스터)

(2008년 굿디자인 어워드 명단에 오른 선풍기)

(와이어 시리즈)

 플러스마이너스제로의 와이어 시리즈입니다. 와이어만 가지고 간결하게 부엌용품을 만든 것이 후카사와 나오토의 디자인답습니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는 도쿄에 매장이 있으며 세련된 고가 제품 브랜드로 현지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후카사와의 디자인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번 들러보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시즌별 상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www.plusminuszero.jp)

8. 어포던스적 발상

 후카사와 나오토의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들의 무의식을 탐구해서 디자인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우산꽂이를 디자인한다고 할 때 대개는 어떤 형태의 우산꽂이를 만들 것인지 우산꽂이의 형태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후카사와는 먼저 사람들이 현관 앞에서 우산을 어떻게 두는지 행동 패턴을 분석합니다. 만약 현관 벽에 이렇게 홈을 길게 파게 되면 어디든 우산을 세워둘 곳을 찾던 사람은 그곳에 자연스럽게 우산을 세워두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그곳은 우산꽂이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디자이너가 사용자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것을 '어포던스'라고 합니다. 어포던스 디자인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일상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해결책을 끌어와야 하는데요. 후카사와는 디자인이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먼저 일상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 어떤 화려한 디자인 보다 더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그의 디자인 철학이 잘 느껴지지 않나요?

 요즘 많은 브랜드들이 자사의 제품 차별화를 위해 디자인을 점점 새롭게 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데요. 후카사와 나오토는 제품에 디자이너의 개성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며 자연스럽고 편안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특히 디자인의 역할이 강조되는 요즘 후카사와 나오토의 슈퍼노멀은 많은 점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그럼 오늘 기사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