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무거운 면을 바라보는 미스터리 작가 '기리노 나쓰오'
- 그녀의 소설 '도쿄섬' 속 '아나타한 여왕벌 사건'
안녕하세요, Little J 기자단 박미나입니다. 한여름이 되고 극장가에는 슬슬 다양한 공포와 미스터리물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는 역시 공포와 미스터리가 끌리죠~! 저는 날이 더우니 밖에 나가기도 귀찮아 책을 통해 더위를 물리치고 있는데요. 집에서 선풍기와 함께 시원하게 읽을 수 있는 일본 미스터리물의 작가 기리노 나쓰오와 그녀의 작품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이 존재해 더욱 더 흥미로운 소설인데요. 실제 사건도 소설과 함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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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리노 나쓰오(桐野 夏生)
기리노 나쓰오는 1951년 태어나 우연한 기회에 로맨스 소설을 응모한 것이 가작으로 당선되어 작가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93년 '얼굴에 흩날리는 비'로 제 39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하였고 그 후로 미스터리 작가로 본격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OUT'으로 제 51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 상, 1999년 '부드러운 볼'로 제 121회 나오키 상, 2003년 '그로테스크'로 제 31회 이즈미 교카 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OUT'으로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에드거 상 후보에 올라 독자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미스터리 작가의 길을 확고하게 다졌습니다. 이후로도 2004년 '잔학기'로 제 17회 시바타 렌자부로 상, 2005년 '다마모에'로 제 5회 부인공론 문예상, 2008년 '도쿄섬'으로 제 44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2009년 '여신기'로 제 19회 무라사키 시키부 문학상, 2010년 '나니카아루'로 제 17회 시마세넨아이 상, 제 62회 요미우리 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 대중 문학 최고의 영예를 전부 휩쓴 유일한 여성 작가로 등극했습니다.
2. 희망은 없다, 소설에서까지 꿈이나 희망을 찾지 말아주세요.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하나같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입니다. 그녀는 흔히 다른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희망의 씨앗이나 밝은 장면, 혹은 주인공을 어둠에서 끌어내어주는 인물이나 동료를 자신의 소설에 넣지 않습니다. 동료들이 있어도 그들은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닌 함께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오로지 현실적인 부분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사실적으로 써내려가며 우리의 실제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절절하게 적어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지켜보게 만듭니다. 미스터리물이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는 소설 속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두운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며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죠.
특히 그녀는 여성들이 삶에서 겪는 사투에 대해서 주목하고 많은 글을 썼습니다. 보통 사회적 약자로 대표되는 계급인 여성들의 힘든 현실 모습과 그녀들의 심리를 통해 어두운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잔혹하고 무거운 시선 덕분에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재미나 유머감각, 혹은 따뜻함을 포함하고 있는 다른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의 소설보다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넓게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만의 문체와 스타일에서 느껴지는 먹먹함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 속에서 나오는 박진감으로 확고하게 기리노 나쓰오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3.기리노 나쓰오의 대표 작품 <아웃>, <아임 소리 마마>
기리노 나쓰오의 대표작 중 1위를 뽑자면 단연코 '아웃'을 이야기합니다. 아웃은 '타임'이 선정한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에 뽑혔고 일본 추리 작가 협회 상을 기리노 나쓰오에게 안겨 준 작품입니다. 이 책은 인생의 벼랑 끝에 다다른 네 명의 여자 주인공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소설인데요. 평범한 주부들이 위기와 절망 끝에서 탈출구를 찾는 과정을 잔혹한 범죄와 함께 실감나게 묘사했습니다.
남편은 도망가 버리고 언제나 사채업자의 빚에 쫓기는 구니코, 죽은 남편의 시어머니 병수발을 들며 불량스런 딸들과 살아가는 요시에, 도박과 여자에 빠져 모든 재산을 탕진한 남편과 어린 두 아들 때문에 고민인 야요이, 그리고 남편과 아들과 대화하지 않고 서로 남이 되어버린 마사코, 이렇게 설명만 들어도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여자 주인공들 4명은 어느 날 우발적으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됩니다. 꽤 긴 분량의 2권짜리 소설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박진감 넘치고 호기심이 생겨 흥미롭게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답니다.
두 번째 소개해드릴 작품은 '아임 소리 마마'입니다. 일본 최대 추리 소설상인 에도가와 란포 상과 나오키 상을 동시에 석권한 기리노 나쓰오의 화제작인 이 책은 불편하지만 너무나 탄탄하게 잘 쓰여진 묘한 소설입니다. 역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요.
창녀촌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코는 성장기 동안에 아무런 애정도 받지 못한 채 창녀촌의 언니들에게 구박받고 붙박이장에서 잠을 자며 힘들게 자랍니다. 창녀촌의 왕언니가 죽고 보호시설에서 살지만 이미 아이코는 자신을 버린 세상에 대해 적의와 악의를 품게 되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절도를 행합니다. 그러다 시설을 나온 아이코는 자신을 괴롭혔던 언니를 찾아가 불을 질러 죽이게 되고 그 후로 계속 싸움과 살인을 일삼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아이코는 자신이 찾고 싶던 자신의 친어머니까지 살해하게 되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책의 제목인 ‘아임 소리 마마’와 상통하는 부분이죠. 소설은 아이코의 악행을 묘사하며 아이코가 악행을 부리게 된 원인을 추리해 나가는 식으로 진행이 되어 갑니다. 이렇듯 섬뜩한 범죄, 추리 소설 속에서 기리노 나쓰오의 날카롭고도 섬세한 심리 묘사는 독자들을 소설에 더욱 깊게 빠져들게 합니다.
4. 날카롭게 하지만 따스하게, 기리노 나쓰오와 대비되는 시선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
기리노 나쓰오가 세상을 어둡고 냉철하게 바라본다면 미야베 미유키는 날카롭게 현실을 바라보지만 결국 따뜻하게 사람과 사건을 보듬어주는 소설을 쓰는 미스터리 작가입니다. 항상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녀의 데뷔작 제목이기도 한 '우리 이웃의 범죄'이자 현재 우리가 안고 살아가야 할 어둠의 모습입니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 인물의 이야기는 언제나 독자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화려한 대도시의 뒷면에는 개인 파산과 신용불량자를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의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파헤친 '화차'나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위태로운 현실을 들춘 '이유'와 같은 작품은 마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가깝게 느껴집니다. 이렇듯 사회의 어둠을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야베이지만 그 시선 안에는 항상 따뜻함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 안에는 절대 악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악의 뒤편에 있는 갖가지 동기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이 같은 사회파 미스터리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어두운 인물의 심리에 집중하는 스타일과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미야베는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작가인 것입니다. 등장인물이 아무리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고 아무리 어리석은 행동을 하여도 등장인물을 사회 속에 버려두지 않습니다. 연장자가 나타나 도움을 주고 이끌어 주며 사건을 겪은 후에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와 기리노 나쓰오는 미스터리 작가를 소개하는데 자주 대비되는 상대로 나온답니다.
5. 기리노 나쓰오의 '도쿄섬'
도쿄섬은 기리노 나쓰오가 실제 일어난 아나타한 섬 여왕벌 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입니다.
태평양의 한 무인도에 표류한 21명의 사람들, 그 속에 여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남편인 다카시와 함께 섬에 표류하게 된 40대의 아줌마 기요코, 그녀는 섬에 한 사람밖에 없는 여자란 이유로 섬의 여왕처럼 살게 됩니다. 남자들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성보다는 기요코를 차지하겠다는 본능만이 남게 되고 서로 대립하고 다투게 됩니다. 남편인 다카시가 의문의 추락사를 당하게 되고 그 후로는 남편을 뽑아서 함께 살지만 후로도 계속 남자들의 의문사가 계속됩니다. 어느 날 구조선박이라고 생각했던 배는 밀항했던 중국인들을 섬에 버리고 갑니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살던 곳은 도쿄, 새로 온 중국인들이 사는 곳은 홍콩이라고 이름 짓고 그들은 어느덧 섬에 순응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새로 온 중국인들 11명까지 어느새 섬에는 31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살게 되고 이제는 중국인들까지도 기요코를 탐내게 됩니다. 기요코의 4번 째 남편인 모리 군지가 특유의 리더십으로 섬의 우두머리가 되어 섬을 이끌어 가던 중 기요코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산달이 다 되어갈 무렵 섬으로 필리핀 여성 7명이 흘러들어오게 되고 그녀들과 홍콩들(중국인들)은 섬 탈출 계획을 세우고 보트를 만들었습니다. 그 사이 기요코가 출산을 하고, 승선 인원보다 많은 탈출 인원 때문에 갈등을 겪던 홍콩들은 모반을 일으켜 보트를 빼앗아 기요코와 아이들을 태우고 섬을 탈출하려 합니다. 하지만 섬을 배반하려 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겠다며 쳐들어 온 사람들에 의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그 결과 기요코는 딸 치키만을 데리고 탈출하게 되고 아들 치타는 아버지인 모리 군지와 함께 섬에 남게 됩니다. 섬에 남은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나라를 만들고 정비했으며 남은 필리핀 여성들로 인해 섬의 인구도 늘어나게 됩니다. 기요코와 탈출한 사람들은 일본으로 돌아가 다시 자신의 삶을 찾습니다. 책의 마무리는 치타와 치키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도쿄섬에 남은 치타는 모리 군지가 새로 결혼한 여자를 엄마라고 여기고 살게 되며 일본에 돌아와 도쿄에 사는 치키는 기요코의 첫 남편 다카시를 돌아가신 아빠라고 생각하고 동생 치타는 죽었다고 여기며 살게 됩니다.
6.아나타한 섬 여왕벌 사건을 아시나요?
(출처: http://blog.godivers.net/?eid=475183)
기리노 나쓰오의 도쿄섬 속 주목해야 할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나타한 섬 여왕벌'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알고 도쿄섬을 읽으면 조금 더 실감나고 박진감 넘치게 읽을 수 있답니다. 사건은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북서부의 열도 마리아나 제도의 일부로 아나타한 섬(Anataban Island)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에서 시작됩니다.
(출처: http://noblesse-oblige.jp/reco/index.php)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일본 해군에 징용된 어선은 미군 전투기에 발견되어 공격을 받게 되고 이 때문에 배가 침몰했습니다. 승무원들은 필사적으로 헤엄쳐 가까운 섬에 도착하였고 이 섬이 바로 여왕벌 사건의 무대인 아나타한 섬입니다. 따라서 31명의 남자들이 아나타한 섬에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전부터 일본 기업에 의해 야자재배를 하던 아나타한 섬에는 농원 기술자인 남자 1명과 사건의 주인공인 여왕벌 '히가 카즈코'가 살고 있었습니다.
(출처: http://tokkan-kozo.com/bind1-kawashima/yuzo_cn01/anatahan_pg01.html)
섬에 있던 남자와 카즈코가 부부가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고 나서 섬의 하나뿐인 여자인 카즈코를 차지하기 위해서 남자들 사이에선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그 싸움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남자들의 의문의 죽음이 이어졌고 카즈코는 여러 남자와 살며, 후에 여왕벌이라는 호칭을 얻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즈코는 섬의 남자들을 위해 떠나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남자들의 의문의 죽음도 카즈코의 사라짐과 함께 멈추었습니다.
(출처: http://90351113.at.webry.info/201106/article_13.html)
실제로 카즈코는 미군의 배에 의해 구조되었고, 후에 섬에 남은 남자들도 미군에게 투항하고 구조됩니다.
아나타한 섬에서 일어난 이 기이하고도 잔인한 사건은 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카즈코는 자신이 직접 영화에 출연하여 여왕벌, 독부 등 자신에게 붙은 수식어들을 떼어 내려 노력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그 후 카즈코는 '아나타한의 여왕'이란 연극의 주연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다가 52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얼마 전 한국 프로그램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아나타한 섬 사건이 방영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죠. 신기하고 특이한 일인 것은 확실하지만 실제 사건을 알아보고 도쿄섬 책을 읽고 나니 씁쓸하기도 합니다. 섬 안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사회에 나와서도 사람들의 좋지 못한 시선을 받으며 살다 간 카즈코도, 도쿄섬 소설 속에서 결국 혼자가 된 기요코도, 형제지만 서로 다른 도쿄에 살며 서로를 잊고 사는 치키와 치타도 모두 안쓰러운 마음이 드네요. 여름 밤, 기리노 나쓰오의 도쿄섬 한 권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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