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읽기
일본 문학만큼, ‘고양이’라는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 분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고양이와 친근하게 되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만, 분명한 것은 일본인과 고양이는 어떤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뭐랄까 일종의 ‘공존’의식 같은걸 가지고 있는 듯해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일본인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일본문학의 셰익스피어로 추앙받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1905>입니다. 소세키는 이 작품을 그의 처녀작으로 발표하며 일약 문단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지요. 그의 약력은 꽤 화려한 편입니다. 원래는 영문학자로서 영국으로 국비 유학을 가기도 했고, 이후 중고교 영어교사를 거쳐, 아사히신문에 입사하게 되지요. 하지만 그는 꽤 ‘굴곡 있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평생을 신경쇠약에 시달렸으며(<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또한 그의 불안 증세와 신경쇠약의 처방을 위해 써내려간 소설입니다.), 유년시절의 가정 또한 화목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그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통해 문단에 등단한 후, <마음>, <도련님>등 우리들이 한 번쯤 들어보았던 ‘영향력 있는’ 작품들을 통해 일본의 대표문학가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학가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일본의 지폐 1만 엔 권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그가 일본에서 얼마만큼의 입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겠죠? 자, 그럼 작품 속으로 고고!
(나쓰메 소세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2290438)
1. ‘이름 없는’ 고양이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작품 첫머리는 이렇게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독자에게 선사해 줍니다. 당황을 추스른 독자는, 이 문장에서 몇 가지의 사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먼저, 고양이가 말을 한다(!). 이 녀석은 이름이 없다.(버려진 걸까?) 게다가 기억을 잃은 것 같다. 자 이쯤 되면 독자들은 상황을 대강 간파해낼 수 있습니다. 지금 화자가 되어 말하고 있는 이 고양이는, “불쌍하구나!”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이 불쌍한 고양이의 말들은 전혀 ‘동정표’를 살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보는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실소를 하게 만들지요. 그는 자신을 ‘이 몸’이라 추켜세우더니, 인간을 굉장히 하찮은 존재로 인식하거든요. 게다가 이 고양이는 ‘쥐를 잡지 않는’ 참으로 요상한 녀석입니다. 그리고는 중학교 영어교사인 ‘구샤미’ 선생의 집에 슬쩍 들어와서는, 그와 어울리거나 관계된 인간들을 자유분방하게 ‘관망’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행태를 마치 탐정처럼 ‘고발’하고, 또한 자신이 가진 나름의 잣대로 ‘평가’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고양이의 무례함이 결코 무례함 그 자체로 우리들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 속에 인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주인공 고양이가 말해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코 현재의 우리와도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런 고양이를 상상했다간, 큰 코 다칠 듯.)
(출처 : http://blog.naver.com/beaver5542?Redirect=Log&logNo=20118659890)
더불어 여기서 우리는, 왜 고양이가 ‘이름이 없는’ 지에 대해서 잠시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비단 소세키가 이 작품을 애초에 ‘단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뿐만 아니라(소세키는 원래 단편을 목적으로 신문에 작품을 개제했으나, 인기로 인하여 편수를 늘려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이 작품이 가지는 ‘풍자’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컨대 코미디 프로를 생각해보자면, 사회를 풍자하는 대부분의 코미디에서는 ‘풍자의 대상’만이 부각됩니다. 즉, 풍자의 주체, 코미디언 자체가 부각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코미디언의 말을 통해, 그리고 그가 선사하는 웃음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상을 다시금 짚어볼 수 있는 것이죠.
이렇듯 이름 없는(nameless) 고양이의 존재는, 소세키가 그려내고자 했던 1900년대의 사회상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작품이 발표될 무렵의 일본은, 러·일 전쟁의 승리와 한반도의 식민화가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이 때 일본은 ‘제국주의’에 대한 욕망을 강력히 드러내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이름’을 가진 각각의 개인들은 국가의 부름 앞에서 하나의 ’도구‘가 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즉, 모든 것은 ’국가‘라는 ’큰 이름‘의 소용돌이로 흡수되었고, 개인이 가진 ’작은 이름‘들이 상실되어가던 시기였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소세키는 ’이름 없는‘ 고양이를 통해 시대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고양이의 주인인 ’구샤미‘ 선생을 그의 현실 모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는 동시에 ’그 자신‘과 사회를 조롱하면서, 고양이를 통해 그의 ’진심‘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모르지요.
2. 근대인의 거울
앞서도 밝혔듯이, 이 소설은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근대인의 형상과 사회상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고양이가 바라보는 ‘구샤미’선생과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보여주는 그야말로 ‘지리멸렬’한 삶의 양태는, 마치 봉준호 감독의 초기 단편영화인 <지리멸렬>의 한 장면, 장면을 보는 것처럼 우리를 때로 ‘부끄럽게’ 만듭니다. 더불어 이것은 사회의 모든 권위적 모습들을 ‘해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의 주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자칭 미학자이자 언어의 마술사인 ‘메이테이’. 구샤미와 앙숙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가네다’, 그리고 그 집안의 딸 ‘도미코’와 결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박사학위를 위한 논문준비로 ’개구리 눈알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와 광선의 영향’이라는 어이없는 연구를 하는 문리학자 ‘간게쓰’. 그리고 간게쓰와 가네다의 딸 결혼을 위해 구샤미의 집을 찾은, 인생의 목적은 극락(極樂 ; 일종의 쾌락주의?)의 방법으로 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인 ‘스즈키’군 등이 있습니다.
이들이 벌이는 ‘인간만상’은, 고양이인 ‘나’의 눈에 과연 어떻게 들어오게 될까요? 때로는 고양이의 입으로, 다른 주인공들의 입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의 구성적 특이함은, 결국 사회를 비추는 고양이의 눈이 일종의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컨대 “지구가 지축을 회전하는 것은 무슨 작용인지 모르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돈”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왠지 근대인의 형상이 아니라 물질주의적인 ‘현대인의 형상’을 바라보는 듯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또 “인간을 정의하는데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오직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서 스스로 고생하는 자’라고 하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왠지 인간의 내면뿐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까지 낱낱이 고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의 기질이 바둑돌의 운명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인간이란 끝없이 넓은 세계를 스스로 축소해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제외하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딛고 나갈 수 없도록 손칼로 세공하듯, 자기 영역에 새끼줄 치듯 세계를 좁혀놓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한마디로 일부러 고통을 만드는 동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다음과 같은 고양이의 말은, 왠지 세상을 분석하는 철학자 같은 느낌이 베어나오기도 하네요. 이렇듯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진행구조는 근대인을 바라보는 ‘눈’들의 생성-변화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 말한 ‘거울의 눈’이지요.
3. 모든 인간에게는 슬픈 소리가 난다.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기형도, 「밤 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형도 시인의 시 ‘밤 눈’입니다.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는 작품 속 소세키의 유명한 말을 생각해보다, 기형도 시인의 이 시가 생각이 나더군요.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다’는 시의 구절은, 비록 ‘눈雪’에 대한 감상이지만, 그 비유가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소세키가 말한 구절과 연결되는 접점이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가 보냈던 불우한 유년시절(여기서도 기형도와 약간 겹쳐지는 것 같지만)과 힘든 유학시절은, 그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슬픔’을 간직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유약한 인간의 형상과 그보다 더 약한 그들의 ‘마음’이야말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 시대의 ‘자기중심적’인 개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작품에서의 표면적인 ‘웃음’이나 ‘풍자’의 구조와는 달리, 조금 더 심층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듯 인간에 대한 그의 ‘연민’은,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 이렇게 손꼽아 세어보니 대개가 동류인 것 같다. 의외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어쩌면 이 사회는 모두 미치광이들이 모여 사는 곳일지도 모른다. 미치광이처럼 모여서 아옹다옹 물어뜯고 으르렁대고, 욕설을 퍼붓고 빼앗고 하면서, 그 전체가 통틀어서 세포처럼 무너졌다간 다시 올라오고 올라왔다간 다시 무너졌다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사회라고 일컫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것은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기형도) 세상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듯 보입니다. 즉, 모두가 그림자(시뮬라크르 ; 복제물)인 세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고, 상처 입히는 사회라는 것이지요. 전체주의적 현실, 그리고 반대로 자신의 이름을 잃은 개인의 ‘텅 빈’ 개인주의가 횡행하는 시대에서, 소세키가 바라본 ‘사회’란, 어딘가 두드려보면 ‘슬픈 소리’가 울려 퍼지는 집단의 공허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에도 충분히 유효한 의미를 전해주는 것 같아요.
(고양이들의 사회에도, 우리들의 사회에도, 상처 입은 ‘빨간 고양이’는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candlefish?Redirect=Log&logNo=140119208783)
4. 고양이의 죽음과 소세키의 꿈
주인공인 고양이는 소설의 말미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녀석의 죽음은 꽤나 ‘드라마틱’한데, 주인의 남은 술을 마시고는, 물독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결국은 담담히 죽음을 택하는 ‘대인배’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죠. 하지만 이 대인배의 죽음에는 조금 특별한 구석이 있습니다. “절대로 오르지 못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독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이 고통을 당하는 것”임을 알고 저항을 멈춘 고양이는 “나는 죽는다. 죽어서 태평을 얻는다. 죽지 않고선 태평을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마운지고. 고마운지고.”라고 나지막이 말합니다.
고양이보다 ‘고등동물(?)’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어느 누가 이런 식의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태평을 주는 죽음’에게 누가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고양이의 죽음이 보여주는 이러한 ‘종교적’이며 ‘자연적’인 가치관과 자세는 소세키가 가진 시대의 자화상에 대한 관조의 자세와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와 분열된 개인들에 대한 소세키만의 ‘방법론’인 셈이죠.
결국 소세키는 시대에 ‘맞서는’ 방법보다는, 그것을 곁에서 바라보며 그 모습들을 통해 그 사이 사이의 균열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메워나가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보여준 그의 글이 유머와 위트, 그리고 풍자 넘치는 언어들로 채워진 것은, 그가 살아가던 ‘시대적 현실’의 ‘제 3자’로서, 그것을 ‘치유’하고자 했던 그의 ‘꿈’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해보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소세키의 방법론은, 스펙과 자격증, 그리고 비정규직과 취업대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살아가던 시대와 사회보다 더욱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만약 이 소설을 읽고 ’웃음‘을 뗬던 이들이라면, 고양이의 날카로운 시선과 풍자에 대해 고개를 주억거려본 이들이라면, 소세키가 지금-여기에까지 전해주는 ’의미‘를 가벼이 여기거나, 놓쳐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고양이만큼의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소세키의 ’꿈‘ 만큼이나 새롭고 거대한 ’사유‘가 필요한 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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