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포르코 로소(Porco Rosso ; '붉은 돼지'라는 뜻)’. 주로 하늘의 ‘공적’(空敵 ; 하늘의 해적이라는 의미에서)이나 현상금이 걸린 도둑들을 잡으며 살아가고 있는 일종의 ‘현상금 사냥꾼’입니다. 그는 자유롭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그의 아지트인 무인도에서 혼자 여유롭게 지내고 있죠.

다만, 어쨌든 그는 돼지입니다. 음, ‘그냥’ 돼지라기 보단 여하건 ‘돼지의 얼굴’을 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래 그의 이름은 ‘마르코 파곳’. 1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여 많은 전적을 세웠지만 동시에 많은 동료를 잃었지요. 그 후로는 군대를 떠나 이렇게 ‘돼지’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왜 돼지가 되었냐구요? 글쎄요. ‘마법’에 걸렸다느니, 자신이 스스로 ‘변신’한 거라느니 여러 가지 추측성 내용들이 난무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끝까지 그 이유가 확실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붉은 돼지>의 제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을 ‘중년의 자신을 위해 만든’, 가장 개인적인(자전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그래서인지 그의 많은 인기작들 중에서도 이 작품은 그다지 인기가 많은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의 말 속에서 하나의 숨겨진 ‘의도’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예술가의 작품은 사실 ‘개인적’입니다. 그것은 설령 누군가를 위해 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주관적’인 의도가 투영된 결과물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붉은 돼지>가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라면 동시에 그것은 하야오의 ‘가장 의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붉은 돼지>의 시대적 환경에는 역사적 사실이 많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는 1차 세계대전의 잔혹함과 세계적 ‘파시즘’, 그리고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개발을 선두로 일약 ‘하늘의 시대’가 열리던 격동의 시간들이었던 것이죠.

이 시대적 상황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미래-현실적)얼굴’을 발견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가장 개인적이며, 따라서 가장 ‘의도적인’ 하나의 극적 ‘장치’를 말이지요. 그래서 <붉은 돼지>는 가장 개인적이자 동시에 가장 ‘사회적인’ 하나의 풍자극입니다. 개인에 대한(자기 자신에 대한) 자조와 경멸, 그리고 그러한 얼굴을 만든 사회/시대적 ‘책임의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부정되지’ 않고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입니다.

포르코는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었지만, 동시에 잔혹한 전쟁의 현실을 깨닫게 되지요. 국가의 ‘개’로서 일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함께요.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현실인식’이기보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환상’에 대한 인식입니다.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의 인식으로부터 ‘비껴나가는’, 그래서 언제나 우리들의 현실로 인식되고야 마는 ‘환상’인 것이지요. 더불어 그것은 동시에 ‘인간성’에 대한 하나의 삐딱한 고찰이기도 합니다. 포르코의 시대에서는 어떤 삶의 양식에의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파시스트’가 되거나, 전쟁에 끌려 나가거나, 도시 빈민이 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돼지’가 되거나.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아니 그것은 과연 선택의 문제일까요? 포르코에게는, 이미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죠.

그는 결국 자신의 얼굴을 하나의 ‘공백’, 혹은 ‘거울’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아니기에 ‘국가’도 ‘법률’도 필요 없는 돼지가 된 것이지요. 즉, 그것은 하나의 ‘투영된 이미지’입니다. 그것(포르코)을 바라보는 우리들 자신의 얼굴인 셈입니다.

르코가 전쟁당시 경험했던 하나의 ‘환상’(비행정의 무덤)은 우리들의 현실 속,

환상의 내부를 보여준다.

                 2. “날지 않는 돼지는 그저 돼지일 뿐이야.”             

이러한 포르코의 귀여운(?) 돼지로서의 모습은 과거의 ‘반추’를 통해 ‘현실성’을 만들어갑니다. 다시 말해 그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부여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과거인 것이지요. 함께 하던 소중한 동료들은 어느덧 모두 전장이나 하늘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이제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은 단 한 사람, 어린 시절 그가 사랑했던 여인 ‘지나’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의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포르코에게 ‘과거’는 현재의 근거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우고 싶은 ‘기억’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가끔 어찌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지요. ‘돼지’와 ‘파시스트(인간)’ 중에서 ‘돼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포르코로서는, 그러한 ‘과거의 회상’이란, 자신의 현재적 삶에 대한 ‘괴로움’일 뿐입니다.

그래서 돼지는 항상 ‘날아올라’야만 합니다. 그러한 현실(지상)에서의 존재적 괴로움 때문에. 혹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날아오르지 않는 돼지, 즉 평범한 돼지로서의 삶은 그의 ‘선택’을 의미 없게 만드는 것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요즘처럼 구제역이 횡행할 때는 사실 ‘하늘에 있는 편이’ 좋을지도. -__-;;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하지만 하늘도 그다지 안전한 장소는 아닙니다. 포르코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공적들은 위축을 느끼게 되었고, 생존권을 위협받게 되었죠. 궁지에 몰린 그들은, 미국의 뛰어난 조종사인 ‘커티스’를 이용하여 포르코를 제거하려 합니다. 그리고 마침 엔진고장으로 밀라노로 향하던 포르코는 결국 커티스의 공격으로 비행정이 파괴되고 맙니다.

겨우 밀라노를 찾아간 포르코는 우수한 제작자인 ‘피콜로’에게 비행정의 수리를 의뢰하게 되고, 그녀의 손녀인 ‘피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과 인간미를 바라보면서 포르코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요. 즉, 이러한 포르코의 인식적 변화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신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그의 모든 작품에 스며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피오. 지브리의 소녀들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우여곡절 끝에, 파시스트 당원들을 피해 비행정을 수리하고 날아오르게 된 피오와 포르코. 하지만 포르코는 결국 아지트까지 찾아온 공적들의 위협과 ‘커티스’와의 재대결을 멋지게(?) 성사시킨 피오의 활약으로 재대결을 펼칠 기회를 잡습니다. 여기에는 피오의 ‘결혼’이 걸려있었는데 “저랑 결혼해주세요.”가 취미인 핸섬가이 커티스에게 피오를 뺏길 위험에 처했던 것이지요. 왠지 모를(?) 열정이 불타오른 포르코는 결국 커티스와의 대결을 승낙합니다.

(핸섬가이 커티스. 취미는 결혼신청)

수많은 군중 아래에서 펼쳐진 둘의 대결에서 ‘사람을 (더 이상) 죽이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포르코와 나름의 집념의 의지로 싸우던 커티스는 결국 비행기의 고장으로 ‘맨 주먹’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레프트 훅과 라이트 어퍼가 난무하던 그들의 대결은, 결국 힘겹게 포르코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과연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작품은 이후의 포르코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지나친 사족인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저는 그의 비행이 오래 지속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어쨌거나, 미래는 오래 지속되는 것이니까요.

‘히사이시 조’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감상하는 두 조종사의 대결은 <붉은 돼지> 최고의 명장면이다.

             4. 우리들의 비상飛翔구,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돼지의 얼굴을 가진 그였지만 가끔은 인간의 얼굴로(?)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몇 명의 캐릭터에게 인간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커티스와의 대결을 앞둔 밤 그를 사랑스레 바라보던 피오의 눈에, 그리고 대결이 끝나고 함께 남아 몰려오는 공군의 비행정들을 유인하고자 합심했던 커티스의 눈이었지요.

그들의 ‘눈’은 누구를 본 것일까요? 정확히 누구였는지는(‘마르코 파곳’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포르코를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는,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으며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환기하던 우리에게 하나의 ‘필연적 물음’으로서 작용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한 ‘(휴머니즘적)환대’의 시각만이 반대로 우리를 속박하고 있던 세계에 대한(그리고 타인에 대한) ‘억압적 시선’을 해체시켜 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러한 해체의 작업 후에야, 우리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시도해볼 수 있겠지요. 그것이야말로 이카루스의 좌절을 넘어선 인간의 근원적 ‘비상飛翔구’는 아닐까요?

자, 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재미있으셨나요? 그동안, 너무 고루하거나 너무 감상적인 글들은 아니었나, 하고 자책해보기도 한답니다. 더불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이야기였을 따름입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또 다른 색깔의 하늘 속에서 무궁무진하게 펼쳐지겠지요. 다가오는 봄, ‘영원한 시작’의 움틈 속에서 여러분만의 행복, 여러분만의 색깔을 찾아나가는 계절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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