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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는 흔들리지 않고, 유혹도 없으며,
이를 능히 견디고, 이겨내는 지혜도 생기는줄 알았다. 저절로.
그러나, 내일 모레 마흔이란 나이를 바라보면서도 난 여전히 흔들리고, 작고, 사소한
유혹에도 심하게 움직거린다.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해도, 그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해도,
나는 내 삶의 길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고 싶었다.
심리학이 전하는 내 안의 나를 진단해보는 시간은 그래서 흥미로웠고 즐거웠다.
내가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지, 왜 내 주변의 그 사람을 힘들게 했는지,
조금 이해하게 됐고, 나를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었다. 벼랑끝에 서 있는 것 같은 외로움,
커다란 벽을 마주하고 선듯한 통증과 고독.
그 속에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냥 그대로의 나를 들여다보는 심리학과의 만남을 통해서다. 그래서 김혜남 선생의 책이 고마웠고, 선생님의 작은 글씨를 책 머리에 담고
5번을 넘게 그 책을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또 다시 나의 못나고, 일그러진 어린 아이와 만난다. 그리고, 이제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이제 그만, 자라렴. 괜찮다. 다 괜찮다, 하게 된다.
공지영의 말이다.
대한민국 대표 이혼 선수면 어떤가, 수영 배우러 수영장 근처에 가지 않으면 어떤가
딸과 맥주를 마실 수있는 건강한 나이,
그의 말대로, 조금 넉넉해진 주머니.
그의 삶이 부럽고, 한없이 그리워지고, 샘난다.
살다가 만난 사람들 중에 돈에 대한 구애 없이 자란 사람들의 맑고 티없는 심성을
마주치게 되면, 난 얼굴이 붉어진다. 숨을 곳을 찾게되고,
나의 어리석은 치기를 부끄러워하게 된다.
아직도 다 자라지 못한 아이는 이럴 땐, 어린 기억의 습관처럼, 부끄러움을 먼저 만나게 된다.
양처럼 살지 말고, 늑대처럼 살라는 말도 듣는다.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한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기쁨주는 행동과 말과
칭찬을 통해서 성취하라고 한다.
착한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고도 했다.
나는 이렇게 최근에야 조조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된다.
세상은 날 버릴 수 없지만, 나는 세상을 버릴 수 있다, 라는 말에 가득 찬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유전자가 천하를 통일할 기운을 그에게 내려준 것이리라, 그에 비하면
우리의 영웅, 유비는 얼마나 유약하고, 교묘하며, 생명력 긴 잡초 같은지...
그 길을 따라 징기스칸을 다시 만나고, 그가 한 약속을 믿고 따르던 수만의 몽골인을
떠올린다. 육포가 베낭에 있고, 다리는 짧지만 두 마리씩 같이 달리던 기마병들의
벅차 오르는 가슴 속엔 사막의 모래가 삼킬 수 없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징기스칸이 바라본 그 지점을, 똑같은 시력과 소망으로 바라보던 그들!
내 사람들과 그 비전을 공유하고 싶어서 아침을 열면서도
나는 뛰는데, 그들의 가슴은 멈춰있거나, 작고 약하게 뜀을 알게 된다.
내 말은 씹히는가? 먹히는가?
그렇게 2008년도 저물어가고 있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세계금융자본가들의 장난이 불러일으킨 토네이도 같은 경제 파장을 지켜본다.
친구가 실직했고, 내 지갑의 두께가 얇아졌다.
사고 싶었던 것들의 목록을 지웠으며, 아들에게 주고 싶었던 공부방, 이사가겠다는 약속을
더 미뤄야 할 거 같다.
그래도 난 열심히 뛰었고, 치열하게 사랑했다. 일과 사람들, 그리고 술과 같이 한 시간들.
돌아보지 않았으나, 후회도 많겠지만, 더 이상 성장을 멈춘 어린 아이의 칭얼거림을
오냐오냐하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미안해 내 안의 아이야,
불혹, 은 흔들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흔들려도 그 자리를 지키는 거야
미안해 내안의 나야,
지금까지 널 신경쓰지 못한 것이 미안해.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늘 울고, 웃고, 떠들고, 먹으면서
다시 또 좋은 기억 하나 만들기 위해 걸어가는 길.
나는 그 아이를 안고, 내 아들을 꼭 끌어안고,
내 가족의 안녕과 나의 웃음과 행복을 위해
오늘도
서점에 들를 것이다.
행복하다.
내가 살 책들의 목록은 그득하고, 술을 조금 줄여서
그것들을 주문하고, 받아볼 때 그 행복이 내게 좀 더 남아있음을
정말,
행복하다.
좋은 책들을 만나는, 긴 겨울이 또 깊어가고 있어서,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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