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친구에게 반가운 책 선물을 받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어울릴만한 책이라고 장담 하더니, 역시 친구다. 오랜 시간 지기로 지낸 티가 난다. 내가 좋아하는 글과 사진으로 가득채워진 책은 어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나의 여행병을 조금 낫게 해주었다.

 

파키스탄에 2번째 학교를 짓기위해서 10년 동안 모아온 아이들 사진과 글로 책을 펴게된 그는 스무살때 해난구조요원으로 모은 돈을 가지고 처음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어떤 유명한 문학상을 받은 작가보다 가슴 메이는 감성글로 나의 가슴을 울리게 했다.

 

그의 글을 읽다가 예전에 다녀왔던 배낭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오랜시간 혼자 버스 기다리는 내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아이와 함께 옆에서 기다려 주던 아주머니. 우린 서로 자기 나라 언어로 얘기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눈짓 손짓으로 알수있었다.

타임머신처럼 그때 그 길위에 서 있던 나로 돌려놔 책장은 덮었지만 긴 여운으로 눈가에는 눈물이 입가에 미소가 남았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자꾸 화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때 메마른 감성을 채워줄 따뜻한 책이다.

 

마음의 화상 - 47p

몸에 화상 자국이 있는 아이는 장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마음이 건강합니다. 나는 화상 자국이 없지만 마음에 그보다 심한 장애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무서운 나라보다 무서운 편견 - 175p
가보지않고 무서운 나라라하고, 만나보지않고 나쁜사람이라고 하는것보다 무섭고 나쁜것은 없습니다.

 

내 친구 녀석은 한번 꽂힌 작가의 책은 모조리 읽는 탐독증이 있다. 에쿠니 가오리에 그랬고 이번에 박완서 선생님이였다. 타계하시고 마지막 소설이라는 수식어와 선물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구매했다. 차례를 보고서야 단편집인 줄 알았으니 참 무식하게 책을 샀구나 싶었다.  사실 단편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장편만큼 여운이 오래가지도 않고 알쏭달쏭한 단편의 마무리 느낌에 단편집이라고 하면 고개가 저어졌다. 그래도 내 책장에 박완서 작가의 책들이 몇권있는데 글 안에 오르내린 어휘가 좋았던 기억에 편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이번 단편집에서 신경숙 작가 추천작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것' 은 이런 내생각을 참 보기 좋게 뒤집었다.증조모의 제삿날을 잊고 넘어간 것에 대해 형님과의 전화 통화 내용이 독백처럼 이어졌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고 주변사람들 눈치보느라 크게 슬퍼하지도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듯 행동했었다며 너희들도 내가 신경이 쓰였겠지만 그동안에 어떻게 힘이 들어었는지 하나하나 나열하고는 앞으론 기를 쓰고 꾸미지 않겠다고 울고 싶을땐 울겠다며 선언하는 내용있었다. 글 어디에도 점하나 단어 하나가 허투로 쓰이질 않았다. 그중에 나를 울컥하게 만든 구절이 있다.

 

"저는 별안간 그 친구가 부러워서 어쩔줄을 몰랐어요. 남의 아들이 아무리 잘나고 출세했어도 부러워한 적이 없는 제가 말예요. 인물이나 출세나 건강이나 그런 것 말고 다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그렇게 부럽더라구요.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견딜수 없는 질투가 다있을까요? 형님, 날카로운 삼지창 같은 게 가슴 한가운데를 깊이 훑어내리는 것 같았어요. 너무 아프고 쓰라려 울음이 복받치더군요."

 

단편에서도 사람을 절정으로 치닫게 할수있구나, 내 감정이 나도 모르게 울컥 쏟아 낼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고 이런 글을 더이상 볼수 없다는 사실에 모두 안타까워 했음을 알게 되었다. 총여섯편의 단편집과 추천자의 글 그리고 해설 까지. 인간미가 있고 정서가 담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박완서, 기나긴하루, 나의가장나종지니인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은은한 홍차를 한 모금 마신것처럼 가슴속에서 향이 난다. 홍차에 대해 무지했었던 내가 책을 읽으면서 알지도 못하던 얼그레이 티백을 사다가 책상위에 놓고 마시게 되었다.

 

처음 홍차를 접했던 건 노래방에서 먹었던 실론티라는 붉은색 캔이였다. 달지않고 은은한 향과 시원하게 해서 먹을때 탄산없이도 청량한 느낌이 좋았다. 제품명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스리랑카의 식민지 때 명칭이였다는걸 이책을 통해 알게되었다.(상식부족) 홍차를 너무 어럽게만 생각했던것 같다. 커피솝에서 커피가 지겨울때 먹었던 복숭아 아이스티가 복숭아향이 첨가된 홍차란 것도 발효에 따라 녹차, 홍차, 우롱차, 보이차로 나뉘는것도 참 재미있었다. 홍차하면 다도를 지켜가며 마셔야 할것 같은 느낌이였는데 책을 읽고 난 뒤에 홍차는 가볍게도 즐기수 있을만큼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이렇게 홍차에 빠진건 프랑스 유학중 걸린 향수병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서울에서 맛본 과일 홍차가 아른거려 무장정 들어갔던 잡화점에서 만나 수많은 종류의 홍차 그때부터 천천히 그녀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 맛있는 향을 더 많은 이들이 즐겼으면 하는 그녀의 마음이 이책을 쓰게 했던것 같다.

 

글에서도 향이 난다면 이런 느낌일까? 눈으로 읽어가며 입안에 맴도는 글들이 달콤하게 퍼진다. 홍차에 대해 알고 싶다면 선택해도 괜찮은 책이다. 맛있게 홍차를 즐기는 법을 알려주고 홍차와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까지 맛깔나게 담아놓은 글들이 흥미를 끌어 낸다. 느릿느릿한게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그것 조차 홍차스러웠다. 읽고 난뒤 어쩌면 당신 책상에도 나처럼 얼그레이 티백이 놓이고 콧끝에 차향을 달고 다닐지도 모른다. 정말 느리게 매혹되는 그이름 홍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