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인생人生이란 뭘까?' 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자로서 '여자의 인생이란 뭘까? 난 왜 여자로서 태어난 걸까? 여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것들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20대 후반의 여자의 주변에는 미혼인 여자친구들도 있지만, 애인은 물론 결혼을 하는 여자친구도 있으며, 이미 애엄마가 되어 '육아맘'의 삶에 충실한 친구들도 있다. 자연히 20대 후반의 여자에게도 '결혼'이 무엇인지 '자식'이나 '부모'란 무엇인지 하는 고뇌가 밀려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뇌 속에 <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다>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초판한정으로 저자의 음악CD가 수록되어 있다. 10여 년간 유럽 전역을 떠돌았던 인디 뮤지션이었다는 이력에 걸맞게 멋진 곡들이어서 책이상으로 이 CD가 마음에 들었다.)

 

 보통 여자가 아니다.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라니... 그녀는 집시와 같은 삶을 사는 예술가이지만 어딘가 공적인 서류를 써야한다면 '스트리퍼 댄서'란 명명으로 직업 내지 이력란을 채워야 한다. 치장되지 않은 육화된 예술을 열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녀를 표현할 단어란 게 겨우 그정도이고, '스트리퍼 댄서'란 명명 아래에 우리의 평가의식도 겨우 그정도인 것이다. 무엇보다 알몸으로 생과 젊음을 증명하던 그녀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한편으로 사랑하는 자식들을 홀로 키우기 위해 알몸의 임산부들이 있는 산부인과에 간호조무사로 일한다.

  열린 길과 공간에서 자신의 의지로 알몸으로 열정을 불사르던 그녀에게 갇힌 공간에서 갑갑한 간호원의 옷을 입고서 메뉴얼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삶. 그리고 갇힌 공간에서 알몸이 된 여자들을 마주하며 그녀는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삶이란 자유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열정을 불태우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던 여자에게 세상의 안정적, 수동적인 직업적 여성의 삶이란 그녀를 죽음과 가까운 상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없이 '정상적인' 것들 그녀는 견딜 수 없어한다.

 

  그녀가 몸을 담은 산부인과란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같은 축복과 경이로운 감동을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죽은 생명이 탄생하거나 영혼이 죽어버리는 여자들이 탄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고는 하지만, 여자로서의 삶과 죽음이란 게 더없이 가까운 곳이 산부인과란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그녀는 간호조무사 메뉴얼에 있는 단순한 일들을 해야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아이를 유산한 엄마로서 임산부와 환자인 여자들의 '영혼'을 바라보고자 한다. 쌍둥이를 낳다가 한 아이가 죽은 순간부터 영혼을 잃고 2호실의 가구가 된 여자, 아이에게 너무 시달려서 지쳐버린 여자,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게 많은 여자,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성공적인 출산을 한 여자, 죽은 아이를 낳은 여자,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없는 여자, 자신의 임신 사실을 부정하는 여자,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맡기는 여자. 수많은 여자들을 목격하면서 그녀는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이고 죽은 아이를 낳아본 엄마이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이 책은 저자의 반자전적 성격의 책이다. 여자로서의 알지못하는 여자의 이야기. 엄마가 되지않고서는 모르는 이야기. 엄마가 되고서도 모르는 이야기. 이러한 많은 이야기들은 누구에게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이 책을 만난 것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여자들에게, 나아가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세상의 누구나 어머니의 몸을 통해 탄생하는 존재로서 '여자의 인생'을 어느정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삶을 만나보아야하지 않을까?

 

최근에 <이방인>의 역자노트 부분이 일부 수록된 소책자를 받고 읽었다. 그 소책자에 이방인 내용의 일부와 함께 역자가 번역한 이방인과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읽은 번역본 이방인에 대한 비교, 설명글이 있었다．정말 사소한 부분인　것 같지만 번역에 따라서 문장에서 느끼는 바가 전혀 달라서 놀랐다．그리고 얼마후 이 책이 출간되었고 내가 이 책을 잡기 전부터 노이즈마케팅이니 저자의 도덕성논란으로 독자들은 물론 출판계에 입에 오르내렸다． 이러한 분위기를 파악하긴 했지만 그에 휩쓸리지 않고 일단 선입관없이 책을 읽기로 했다．사람에 관해서도 그렇지만，누가 옳고 그르고 소문이 어떻든 일단 중요한 것은 선입견을 가지지않고 논란이 되는 대상을 직접 만나고 경험한 후에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그래서 일단 책을 잡았다.
 

　

　나로선 처음 만나본 <이방인＞. 저자는 작품 속에 주인공과 주인공을 옹호하는 자들에 대해서 특정한 번역자가 인물에 대한 오해를 바탕으로 자기 입맛대로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한다．그뿐만 프랑스의 사회，문화적 이해나 작품의 주제, 인물,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이전까지의 역자들이 저지른 오류들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진다．확실히 저자의 논리나 주장이 설득력이 있고 그의 번역 또한 적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무엇보다 책의 문장이 매끄러웠다． 스스로 완벽한 번역을 추종한 만큼 그가 ＜이방인＞번역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음이 엿보인다．하지만 저자가 특정한 번역자에 대하여 비판을 넘어 공격적인 비난，힐난까지 하는 점에선 역시나 저자의 도덕성문제가 나올만 했구나 하는 상황파악도 했다．그럼에도 저자의 과한 반항적，결벽적인 문장들이 독자로서는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그러한 저자의 과한 발언들이 우리 번역계에 그릇된 답습과 틀을 깨고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물론 저자가 약간 머리를 식히고 책을 펴냈으면 저자 자신에게나 독자 모두에게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뫼르쇠는 자신의 친구를 상처 입히고 자신에게도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아랍인에게 다섯발의 총을 쏜다. 저자는 이 다섯발에 대해서 첫 발은 정당방위로서，나머지 4발은 각각 위장된 도덕，종교，권위，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라고 설명한다．책의 내용을 오밀조밀 읽어보면 그런 의도로 발포된 총알은 다섯개인 게 절묘하다. 그럼에도 그의 번역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저자는 카뮈의＜이방인＞이 소설로서 완벽하다고 하지만‘완벽하다’란 것은 텍스트와 역자 사이에 생긴 이해 내지 감정관계이지 절대 객관적인 판단이라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령 <이방인>이 완벽한 소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주제의식과 문학적형상화의 유기적관계에 대한 저자의 섬세한 노력과 그 결과를 찬미하는 의미일 때‘소설로서 완벽하다’고 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애초에 문학엔 답이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완벽한 작품에 걸맞은 완벽한 번역이 오직 하나로 정해져있다는 건 애초에 모순을 품고 있지 않나 싶다. 문학작품이란 독자 스스로의 경험이나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세계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이방인＞인 뫼르쇠는 사회，문화적으로 남과 융화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았다．그는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도 솔직했지만 불필요한 말은 하고싶어 하지않는 편이라 오히려 오해를 사고 스스로 적을 만든다．또한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인간이었고 남과‘적당히’타협하는 법도 몰랐다．그게 애인이든 친구이든，변호사, 판사든 전혀 모르는　남이든．자신이 진실로 믿는 게 없으니 신을 믿지않는다고 했고，오랫동안 소원했던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이 나지 않았기에 억지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그러한 것들이 기독교사회에서‘인간도 아닌’면모들이었고 그는‘인간이　아니다’라고 지목되어 사형대에 오르고 삶은 마감하게 된다．작품에서도 그렇지만 뫼르쇠 자신의 생명에 위협적이고 적대적인 존재에 대한 다섯발의 총탄이 현실에서도 유죄가 될 확률이 높다．현실에서 총 다섯발은 도덕，종교，권위，폭력에 대한 저항이라　봐 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어찌됐든 소설 안에서든 밖에서든 뫼르쇠는 스스로 저지른 행동상 유죄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가 유죄라고 판단되는 과정에서 부조리한 점들이 많았을 뿐．카뮈가 만들어낸 뫼르쇠란 인물은 저자가 의도했든 안 했든 괴짜라서 조금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다．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카뮈가 전하고자 하는 말들이 조금이나마 내게 와닿았다．

 

 올 2월 초쯤에‘이영애의 만찬’ 이라는 한식 다큐멘터리가 SBS 스페셜 2부로 방영되었다고 한다. 나로선 본 적이 없지만 일단 다큐멘터리 제목부터가 흥미롭다. 아니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랄까 그를 소개하는 안내자가 대장금 ‘이영애’씨니까 말이다. 연예계에서는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는 분인데 그런 다큐멘터리를 했다는 것부터가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을 것 같다. 해당 방송분은 TV로 보면 되겠지만 TV가 전해주지 못하는 이야기들도 분명 책에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호기심만만하게 책을 펼쳤다.

 

 

일단 책에 초점이 맞춰있는‘한식’이란 것. 그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가슴이 뜨거워진다. 역사적으로 동남아권에 문화의 젖줄마냥 문화강국으로 군림하고 실질적으로 그 문화의 힘을 정치적으로 이끌기도 하는 중국. 그리고 동남아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대접을 받으며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는 일본. 실질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의 책을 보면 동남아권에서 언급되는 나라는 크게 이 두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마치 중국의 아류 뻘로 여겨진다. (일본의 경우 타국의 것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고 그를 자기들 나름대로 변형하여 무언가를 창조함으로써 아류가 아닌 무언가로 어필되곤 한다.) 그것이 건축이든 의복 분야에서든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엔 우리나라만의 것이 있기에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린 우리나라만의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것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먹어왔던 음식에 대해서 제대로 깊이 본 적이 있었던가? 이러한 생각에 반성을 하듯이 책을 읽었다.

 

 

책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한식 이야기가 책에 많았다. 책 초반에 ‘첩’에 대한 개념과 조선시대 왕의 밥상,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음식문화. 역사 속에서 조선시대 위정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들을 워낙 많이 보아 온지라 왕의 밥상이나 식문화도 그저 배알꼴리는 내용만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영애씨도 놀랐듯이 조선 왕의 밥상은 의외로 조촐했다. 그 외에도 조선시대 우리 음식에 담긴 ‘소통의 철학’을 발견할 수 있는 사례들이 신선했다. 이영애씨가 그랬듯이 나 또한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에 우리 문화에 조금 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전통적으로 내려운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라 ‘교류와 나눔’을 통해 내려온 우리 음식에 대해 알고자 했기에 독자인 나로서도 배울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오랜기간 사대외교로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진 중국, 고려를 오랜 기간 지배했던 몽골을 직접 찾아감으로써 우리음식의 뿌리를 찾아 가는 여행, 뿐만 아니라 오늘날 다문화여성들과 함께 각자의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음식들도 함께 밥상을 차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 일까지. 모든 부분에서 그녀는 우리의 음식을 알고자 했고 우리 음식과 마주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음식과 문화까지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저 온전히 우리나라 안에서만 과거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음식들만 만들어 내고, 그에 대해서 공부했다면 과연 오늘날까지 통하는 ‘소통과 나눔’의 의미를 전해주지 못했을 것 같다.

 

의, 식, 주. 그 중에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먹는 것은 그 사람들이 어떤 인생을 사는지를 보여주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음식이란 것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조상과 우리의 어머니의 몸으로, 손으로, 입으로 내려져 오는 귀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렇게 귀한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