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책은 역할이 나뉘어져 있다. 책을 만들어내는 건 지은이고, 읽는 건 독자다. 근데 언젠가부터 독자가 같이 만들어 가는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책에 따라 독자에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찍거나, 방향을 돌려보라고 요구하는 책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일러스트 다이어리북이라고 해서 뭔가 싶었는데 보니 어떤 건지 이해가 된다.
지은이 미라 리 파텔은 뉴욕 브룩클린에 사는 삽화가 겸 작가라고 한다. 두 가지 직업을 살려 책을 냈다. 버지니아 울프, 셸 실버스타인, 랄프 왈도 에머슨, 아나이스 닌 같은 사람들의 짧은 명언을 아름다운 캘리그라피와 그림을 곁들여 소개하고(지은이가 삽화가니까 그림도 지은이가 그렸으려나?) 명언과 연관된 질문을 던진 다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적을 여백을 두었다. 그래서 일러스트 다이어리북이다. 우리가 사춘기 때 일기장에 그림도 그리고 스티커도 붙이고 살면서 꼭 해 보고 싶은 거나 앞으로의 꿈 같은 걸 적는 것처럼. 예를 들어 '하지만 내가 아는 마법은 모두 내가 만든 것들이다'라는 셸 실버스타인의 명언을 소개한 후 지은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요구한다. '내가 창조한 것들을 떠올려 봐요. 우정, 사랑, 노래 한 토막, 시 한 줄, 세상에 없던 생각, 세상에 없던 관점, 무엇이든 좋아요. 그중 하나를 여기 써보세요.' 자판기처럼 대답이 바로 나올법한 질문은 아니다. 대부분의 질문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말 제목을 [나를 찾아가는 질문들]이라고 한 것 같다.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지만 아직 대답을 찾아본 질문은 하나도 없다. 그냥 알록달록한 그림과 색감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으니까. 내가 제일 좋았던 명언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었다. '자기 자신이 되라. 다른 건 남들이 이미 하고 있다'라는 말. 그 페이지의 코끼리 그림도 아름다웠다. 초상권 때문에 그림을 소개할 수 없는 게 아쉽다.
지난해 미국에서 이 책이 발표된 후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여전히 다이어리 분야에서 1등이라고 한다. 책의 띠지에 있는 글이 맞다면 오프라 윈프리도 이 다이어리북을 봤나 보다. 오프리 윈프리가 좋았다고 나도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큰 의미를 둘 건 없다고 생각한다. 좀 있으면 여름 휴가를 많이 갈 텐데 이 책이랑 색연필 들고 가서 햇볕 쨍쨍한 오후에 뒹굴거리며 끄적거리면 좋을 것 같다. 친구들끼리 놀러갔다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주제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나와 친구가 아는 나, 내가 아는 친구와 친구가 아는 친구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 본 포스팅은 인터파크도서 활자중독 1기 서평단 활동으로 체험도서와 굿즈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