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가. 고구려란 어떤 나라인가
고구려의 건국은 기원전 37년 시조 주몽이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고구려라는 국가의 성립을 주도한 세력은 중국의 문헌에서 맥(貊)으로 전하는 족속이다 고구려는 집안을 중심으로 6세기까지 영토가 확장되면서 남북조 및 동아시아 주요 세력과의 교섭, 불교 유입 등으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좌우하는 4강의 하나가 된다. 이른바 고구려적 천하가 성립이 되었다. 영토가 넓어지고 외교적으로 힘이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고유문화에 중국 문화, 서아시아 문화, 내륙아시아의 패자 유연을 거치는 비중국적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국제적 수준의 고구려적 보편문화가 펼쳐졌다.
그러나 6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 패권이 수당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고구려적 천하는 와해의 길을 걷게 되고 고구려의 중심도 집안에서 평양으로 옮겨진다. 그 두 지방의 세력 간의 정치, 사회가 이원화되고 두 지역을 기반으로 한 귀족세력의 독자성이 강화되면서 문화의 지역적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런 특성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벽화이다. 특히 고구려는 고분벽화가 발달한 나라이다.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는 과연 어떤 나라이고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했으며 무엇을 믿었는지 등을 알아보겠다.
나. 이 책의 내용
이 책은 크게 4 부분을 나뉜다.
첫째, 전쟁과 관련한 고구려의 모습이다.
둘째, 고구려인 고유의 세계관과 사유방식을 담고 있는 신화에 관한 내용이다.
셋째, 고구려인의 종교이다.
넷째, 고구려인의 삶의 여러 모습이다.
이 내용을 쉽게 알기 이해하기 위해 고분벽화에서 보여지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진다.
2. 서론
가. 전쟁과 교섭의 나라
1) 활
예부터 우리 민족은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東夷)라 불렸으며 특히 고구려의 시조는 '활 잘 쏘는 사람(朱夢)'이다. 무용총의 '활쏘기' 그림을 보면, 짧은 활을 사용하면서 말을 타고 달리는 고구려인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안악 3호분의 '활을 멘 병사'에서는 '병사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덕흥리 벽화분의 '마사희'는 기마전투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 놀이를 하는 모습이며, 장천 1호분의 '화살 맞은 짐승'은 말을 탄 사람이 짐승을 뒤 쫓는 그림이다. 이런 그림을 통해서 고구려인은 말을 타면서 활을 쏘는 능력이 탁월했으며 다른 민족과 달리 짧은 활을 즐겨 썼다는 사실과 활을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사냥에서도 널리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2) 창, 칼, 도끼
창, 칼, 도끼는 근거리 전투에 쓰이는 기본 무기였다. 안악 3호분의 '칼과 창, 방패'라는 그림을 통해 그 당시 사용하던 칼, 창, 방패의 생김새를 알 수 있고 , 장천 1호분의 '창사냥'을 통해서는 창을 사냥에 사용하였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안악 3호분의 '부월수' 그림을 보면 도끼가 무관들의 전투용 무기였음을 알 수 있다.
3) 갑옷, 투구, 방패
갑옷, 투구, 방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 장구이다. 고구려는 기병과 보병으로 나뉘는데 보병은 가벼운 차림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기병은 갑옷 저고리 및 갑옷 바지, 투구 등을 중무장하였다. 기병이 탄 말에도 갑옷과 투구를 입힌 기병을 철기라 불렀다.
4) 교섭
이렇게 전쟁을 하는 와중에서도 여러 나라와 많은 교섭을 펼쳤다. 이는 중국 서쪽 변방의 돈황 석굴과 파미르공원 너머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지 벽화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유적의 벽화에는 고구려 특유의 새깃 꽂은 모자를 쓴 사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구려는 5세기부터 6세기 전반 사이에는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에 걸쳐서는 중국의 수당과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다.
전쟁을 해야만 하는 고구려는 삼면이 높은 산이나 절벽으로 막혀 자연방어가 가능하고 다른 한면은 경사가 완만하여 출입이 가능한 곳을 선정하여 산성을 쌓았고, 여러 나라와 외교를 펼친 고구려는 고유의 무덤 형식인 돌무지무덤과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 출현한 흙무지돌방무덤으로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2. 신화의 나라
1) 신앙대상
4세기까지의 고구려사가 주로 기재된 <삼국지> 등에 따르면 고구려 사회에서 신앙대상은 귀신(鬼神), 영성(靈星), 사직(社稷)이었다. 그 후 <북사> 등에는 하백녀 유화를 모신 부여신, 주몽을 모신 등고신이 등장하였고 <구당서>에서는 일신(日神), 고구려의 영웅적인 인물인 가한신(可汗神), 기자신(箕子神)이 등장한다. 이외에도 '동맹'이라는 국가적인 제천행사를 열어 여러 사회 집단 사이의 결속력을 높였다.
2) 신들의 세계
가) 문명을 일으킨 신들: 수신, 신농, 단야신, 제륜신, 마석신
집안의 사신계 고분벽화를 보면 여러 문명신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신농은 농업신, 수신은 불의 신, 단야신의 쇠부리신, 제륜신은 수레바퀴의 신, 마석신은 숫돌의 신이다. 이들은 6세기 이전의 고분벽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고구려에서 이들 문명신에 대한 신앙이 존재하게 된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 하늘의 사자, 땅의 전령: 새, 개, 말
하늘을 나는 새는 신과 사람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전령이며, 개와 말은 죽은자의 영혼을 조상신의 세계로 인도하는 사자로 믿었다. 이는 각저총, 장천1호분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다) 땅과 하늘을 잇는 기둥: 거대한 나무
고구려인은 성스러운 나무에 대한 신앙이 있었다. 각저총의 나무, 무용총, 장천1호분 백희기악도의 나무 등이 그 예이다.
라) 하늘세계를 받치는 자: 역사(力士)
고분벽화에는 눈이 크고 코가 우뚝한 얼굴을 지닌 사람, 심목고비의 역사들이 등장한다. 장천1호분 천장과 삼실총 등에서 발견되는 이 역사들은 하나같이 비슷하게 생겼다. 인도, 중국에서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이들의 모습을 볼때 고분벽화의 역사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고구려에 전해진 서역계 문화의 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마) 하늘문의 통과의례: 씨름
씨름은 생활풍속을 주제로 한 고분벽화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제재 가운데 하나이다. 각저총 벽화, 장천1호분 벽화, 안악3호분, 무용총 벽화에서 씨름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두 남자 가운데 한 남자는 고구려인이지만 나머지 하나는 서역계인 경우가 있다.
씨름은 내륙 아시사의 여러 민족에게는 장례 때 행사는 행사의 하나였다. 고구려의 벽화의 씨름 그림은 새구름 무늬나 자색나무가 함께 등장한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보아 고구려에서씨름은 현실세계의 놀이와 운동이기도 하지만 죽은 자의 영혼을 타계로 보내기 위해 행하던 통과의례의 한 과정이기도 했다.
3) 하늘 세계의 가족들
가) 해와 달, 별자리
집안에 있는 오회분5호묘와 오회분 4호분 벽화에는 해와 달을 머리 위로 받쳐 든 해신과 달신이 그러져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는 해신, 어머니 유화는 달신에 비유되기 때문이다. 고구려에서 시조 주몽을 '해와 달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해와 달은 민족정체성과 관련한 특별한 천체이다. 해와 달은 동과 서를 나타내는 존재로 고분벽화에서 해는 원륜 안에 세발까마귀가 들어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달은 원륜 안에 두꺼비, 옥토끼, 계수나무가 함께 들어 있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벽화고분 무덤칸 천장고임에는 해와 달과 함께 여러 가지 별자리들이 보인다. 그 중 남두육성과 북두칠성을 즐겨 그렸다. 중국 위진시대의 도교에서는 "남두육성은 삶을 주관하고,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한다"는 관념으로 중요하게 여겼는데 고구려에서도 이와 유사한 별자리 신앙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 신선
고분벽화에서 신선은 하늘세계의 별들과 함께 무덤칸의 천장고임에 그려진다. 대부분의 신선은 학, 봉, 용, 기린과 같은 신성한 짐승을 타고 하늘을 나는 형상으로 표현된다.
다) 신령한 짐승: 기린, 새, 말, 상상 속의 짐승
기린은 우주질서의 운행이 바르게 이루어질 때, 곧 현실사회가 이상적인 모습을 보일 때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사후세계의 수호자이자 인도자라고 생각하여 무덤 입구에 놓이거나 그려진다.
고구려인은 모자에 새깃 꽂기를 즐겨하였는데 이는 다른 동물보다 새를 상서롭게 생각하고 동경하였기 때문이다. 신령한 새는 별자리, 신선, 옥녀들과 함께 고분벽화에 표현되었다.
말은 영혼을 나르는 신성한 동물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으며 상상 속의 짐승들: 박위, 길리, 부귀, 영양 등 상상 속의 짐승들은 인간의 길흉화복과 관련된 신령스러운 짐승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고구려의 고분에는 천추, 만세라는 글자가 포함된 명문(銘文)이 발견되곤 한다. 이는 죽은 자와 산자의 천추, 만세를 보장하는 존재를 상정하게 된다.
3. 종교의 나라
1)불교의 전래와 새로운 내세
고구려가 불교를 공인한 해는 372년(소수림왕 2년)이다. 그러나 실제로 불교를 믿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전이다. 357년 제작된 안악 3호분 벽화에 그려진 연꽃무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불교는 국가의 전극적인 후원으로 내세관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재래의 계세적 내세관에서 불교의 전생 및 정토왕생적 내세관으로의 이행이다. 그러나 6세기 중엽부터 쇠퇴의 기운이 보이면서 불교의 영향력 대신 재래의 무속신앙과 신선 신앙이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곧 고분벽화에도 그대로 영향을 끼쳤다.
가) 여래세계로의 귀의: 예불
장천1호분의 '예불'이라는 그림을 보면 여래에 절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래상은 현재 남아 전하는 불교 회화 가운데 가장 오랜 사례로 고구려에서 불교를 수용한 초기에 여래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추정하게 하는 자료이다.
나) 여래세계를 찬미하는 이들: 보살과 미천, 기악천
보살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성불에 이르는 중생을 일컫는 말로 현재 남아 전하는 보살을 나타낸 불교 회화 가운데 가장 오랜 사례로 장천1호분의 보살들이 있다.
비천은 하늘의 꽃잎을 뿌리며 여래나 보살의 덕을 기리며 공양하는 천인을 말하고 기악천은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여 여래나 보살의 설법과 중생 제도를 기리는 천인이다. 이들은 여래나 보살의 자비와 공덕을 하늘의 꽃과 음악 등으로 기림으로써 선업을 쌓는다. 안악 2호분, 강서대묘, 장천1호분에 그려진 모습이 있다.
다) 연화화생
연꽃은 생명과 빛의 상징이다. 화생은 석가불이 말한 네 가지 탄생법 가운데 내세에서의 초현실적 탄생방법을 말한다. 따라서 연꽃화생은 내세 정토에서의 탄생법으로 삼계육도의 생사윤회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장천 1호분 벽화의 쌍인 연꽃화생은 '부부화생'을 추구한 고구려적 정토화생관의 표현이다.
라) 보주의 화생
보주는 지닌 이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여의보주이다. 장천 1호분, 진파리1호분, 강서대표 등의 고분 벽화에서 불꽃에 휩싸인 모습으로 화생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보주를 볼 수 있다.
마) 연꽃
연꽃은 이집트, 인도, 등에서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하였다. 중국은 초기에는 연꽃을 천제로 생각했으나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생명으로 인식하였다. 고구려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런 인식을 고분벽화에 나타내었다. 고구려에서 연꽃은 4세기 중엽부터 고분벽화에 표현된다. 평양지역은 도안적인 형태로, 집안 지역에서는 사실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향을 보인다.
연꽃무늬를 주제로 한 장식무늬 고분벽화는 환인과 집안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천왕지신총의 연꽃 장식 벽화고분은 무덤 주인의 정토왕생신앙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음양오행론과 사신 신앙
가) 음양오행의 세계
오행설은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의 음양가 추연에 의해 체계화된 것으로 음양실적 논리와 함께 포괄적이며 합리적인 우주론으로 체계화 되었다. 이것은 사회 곳곳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다. 전국 제후들은 새로운 정치질서 수립의 이념적 도구로, 사회문화의 각 분야-점성, 율력, 의술, 풍수지리, 민간신앙-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산 자의 생활뿐 아니라 죽은 자의 영역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는 건국 초부터 오행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오행설에 바탕한 덕치주의를 수용하고 천인감응설에 입각해 천재지변을 해석한 것으로 오행설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예를 들면, 5부의 재편에도 오행방위 개념이 적용되었고, 고분벽화의 사신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 쉼터를 지키는 사신
사신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일컫는 말로 동서남북의 4방향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 28별자리와 관련 있는 상상 속의 존재이다. 처음에 사신도는 고분벽화 무덤칸 천장고임의 여러 제재 중 하나였으나 점차 중심적 제재로 자리 잡았으며 청룡과 백호는 벽사의 영물로, 주작과 현무는 음양조화의 신수로 여겼다. 고구려의 사신계 고분벽화에 표현된 사신은 사실상 각각 한 벽면의 유일한 제재이며, 우주의 한방향의 방위신이자 수호신이다.
청룡은 황동 상의 동방7별자리를 대표하는 영물이다. 백호는 자연계에 실재하는 호랑이를 영물시하면서 등장한 신수(神獸)로 서방7별자리를 대표한다. 주작은 황도상의 남방7별자리를 상징하며 신조인 봉항에 그 형상과 관념의 기원을 둔 신수로 무덤의 입구를 지키는 존재이다. 청룡과 백호는 한 마리씩 그려지지만 주작은 거의 예외없이 암수 한 쌍이 함께 그려진다. 현무는 황도상의 북방7별자리를 상징하며 뱀이 거북을 감은 형상으로 그려졌는데 뱀은 양을 거북은 음을 나타내면서 음과 양의 기운이 만나는 형태이다.
4. 사람이 사는 나라
1) 사람들
고분 벽화 맨 처음에 등장하는 사람은 문지기이다. 장천 1호분 벽화에 보이는 문관형 문지기의 키는 153cm, 무관형 문지기의 키는 155cm로 되어있다. 관, 옷깃 여밈, 저고리 무늬 , 공수 모양, 허리띠 등을 통해 그 때 당시의 의상에 대해 알 수 있다. 중기 이후 문지기는 무사, 역사, 천왕, 괴수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데, 이는 문지기를 무덤 속 안식처의 안내자라기보다는 수호자로 여기는 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문지기를 지나면 이 무덤의 주인인 귀족들이 보인다. 귀족부부의 모습은 생활풍속계로 분류되는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다. 초기와 중기의 생활풍속계 고분벽화에서 귀족부분의 모습은 주로 초상형태가 많았다. 그들을 지키는 존재로 현무가 함께 그려지기도 하였다.
고분벽화에서 보면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인간을 차별적으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악3호분, 덕흥리벽화분, 각저총, 무용총 등을 보면 귀족과 그를 모시는 시종, 평민들은 신분과 지위에 따라 거인처럼, 난쟁이처럼 그렸는데 이를 '대상 비중의 법칙' 또는' 위계적 표현'이라 하였다. 그러나 5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고분벽화에는 이러하나 표현이 적용되지 않았다.
2) 건물
안악1호분 벽화에는 귀족 저택의 회랑까지 지닌 대규모 전각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 표현되어 있다. 안악3호분과 덕흥리벽화분 벽화에는 안채의 다양한 부속시설을 볼 수 있다. 안악 3호분과 덕흥리벽화분 벽화로 볼때, 안채에는 부엌, 고깃간, 방앗간, 다락창고, 외양간, 마구간, 차고 등이 있었으며 정원도 있었다. 진파리4호분 벽화는 6세기 귀족 저택의 정원이 어떻게 꾸며졌는지 알게 한다. 무용총, 약수리벽화분, 쌍영총 등의 벽화에서 평상이나 좌상을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선구 1호분 벽화에는 다락창고-곡식저장-가 그려져 있다. 장천1호분 벽화에는 귀족의 연회 등에 쓰인 정자류가 보이고 요동성총 벽화 중의 요동성탑은 고구려 불탑의 모습을 전해준다.
3) 옷입기와 꾸밈새
가) 여러 가지의 옷
고구려의 기본 복식은 남녀에 관계없이 저고리와 바지였다. 무용총의 고분벽화를 보면, 저고리는 아랫단이 엉덩이에 이르는 긴 것으로 깃을 왼쪽으로 여민다. 바지는 오늘날의 한복바지와 형태상 거의 차이가 없다. 바지와 저고리의 너비는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두루마기는 추위를 막기 위해 개발된 옷이었으나 후에 의례용으로 쓰임새가 바뀌어 귀족층이 즐겨 입는 덧옷이 되었다.
여자 복식의 기본형에는 저고리와 바지 외에 치마가 더해진다. 수산리벽화분를 보면 치마는 보통 치맛단에 저고리처럼 선이 더해진 형태이다.
남자와 여자의 옷도 집안과 평양이라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무용총을 살펴보면 고구려 전기의 수도인 집안 지역에서는 비교적 밝고 단순한 색상의 바탕천에 점무늬, 마름모무늬, 꽃무늬 가운데 한 가지를 간결하게 반복하여 장신한 옷을 선호하였다. 이와 다르게 평양 지역에 있는 안악3호분을 살펴보면 보다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바탕 천에 구름 무늬, 물결무늬, 넝쿨무늬, 각종 기하무늬 등을 두세 가지씩 복잡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나) 다양한 머리모양
고분벽화를 보면 고구려 여자들의 머리모양이 매우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안악3호분 벽화의 여자 주인과 시녀에게서 고리튼 머리가 많이 발견되는데 집안 지역 고분벽화에서는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남자 대부분이 머리수건이나 관모를 쓴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각저총의 씨름하는 사람 모습을 보면 곧은 상투가 가장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다) 다양한 모자, 그리고 신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건, 절풍, 조우관, 책, 라관 등 여러 종류의 모자가 보인다. 건은 수건과 같은 형태의 천으로 머리를 싸고 뒤에서 묶는 방식의 초보적인 보자를 가리킨다. 절풍은 고깔과 비슷한 세모꼴이다. 조우관은 절풍에 새깃을 꽂아 장식한 것으로 쌍영총, 무용총, 덕흥리벽화분, 개마총 등 다양한 고분벽화의 대다수에게서 보인다. 책은 문관이나 무관의 의례용 모자이며 라관은 신분과 지위가 높은 인물만이 쓰던 모자로 뒤 운두가 솟은 책 모양의 내관과 발이 성긴 '라'라는 비단으로 짜나 외관이다.
신발은 일상화와 특수화로 나누어지는데 목이 긴 가죽신인 화와 목이 짧은 신인 혜는 일상화이고 바닥에 송곳과 같이 끝이 날가카로운 쇠막대를 촘촘히 박은 못신류는 특수화라고 할 수 있다.
4) 먹거리
안악3호분의 부엌 고분벽화에서는 시녀로 보이는 여자가 시루 모양의 큰 동이를 아궁이 위에 얹은 채 불을 지피고 조리하는 모습과 디딜방아로 곡식을 찧는 모습이 있다. 고구려인의 주식은 조, 보리, 수수 등으로 그 시루에 쩌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깃간 모습을 통해 소, 돼지, 닭, 개뿐만 아니라 멧돼지, 노루, 꿩과 같은 짐승도 육식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고분벽화로 볼 때, 고구려에서 귀족 집은 부엌이 안채와 분리되어 있다. 또한 무용총의 상나르는 모습을 보면 주인과 손님의 상은 따로 차렸으며 상마다 음식을 따로 놓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5) 놀이, 사냥, 악기, 수레
고분벽화에는 여러 가지 형식의 춤이 모두 나타나 있다. 장천 1호분 벽화를 보면 오현금 연주와 독무를 볼 수 있는데 이 외에도 둘이 추는 춤, 여럿이 추는 춤이 있으며 도구를 지닌 춤, 그렇지 않은 춤, 남녀합창에 맞추어 추는 춤, 거문고 등의 악기 연주에 맞춘 춤 등 다양하다.
장천1호분 벽화에는 집주인과 손님의 야유회 장소에서 재주가 펼쳐지는 모습이 있다. 재주의 종류는 말타기, 손놀리기, 발놀리기, 칼부리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팔청리벽화분 벽화에는 이런 재주가 모두 등장한다.
고구려의 생활풍속계 고분벽화에는 사냥 그림이 자주 나온다. 무용총의 사냥이나 장천1호분 사냥은 제의에 쓰일 희생 제물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일 뿐만 아니라 군산 훈련의 일종이기도 하다. 벽화의 세부표현을 통해 사냥방법과 그 대상뿐 아니라 복장, 무기 무장 등도 알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악기가 등장한다. 고분벽화를 통해 확인되는 고구려의 악기는 38종에 이른다. 무용총에는 거문고(현악기), 뿔나팔(관악기), 덕흥리벽화분의 완함, 오회분4호묘의 소, 젓대 등이 보인다. 이 중 고구려에서 중시한 것은 고취악이다. 고취악은 타악기와 관악기 몇종류로 구성된 기악합주의 한 유형으로 평양역전벽화분, 안악3호분, 감신총, 약수리벽화분의 벽화를 통해 고구려에서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레는 말이 끄는 것과 소가 끄는 것이다. 마차는 남자의 전용인 반면 우차는 부인용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삼국위진남북조시대의 영향을 받은 고구려에서는 귀족 남녀들 사이에 우차가 많이 쓰였다.
3. 결론
지금까지 고구려의 중심 도시인 집안과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있는 고분벽화를 통해 전쟁의 모습, 고유의 세계관과 사유방식을 담고 있는 신화, 종교, 살아가는 모습 등 4가지 영역으로 고구려에 대해 알아보았다.
고분벽화에 나타난 고구려의 모습은 다양하였다. 전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진취적인 모습, 하늘을 숭배하고 신성시 하는 모습, 현재 뿐만 아니라 내세에도 정토왕생 하고자 하는 모습, 그들의 의식주 등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역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이 진실한 역사 위에 현재 우리가 세워질 수 있음을 깨닫고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