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가 왜 그렇게 이루어졌는지,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특성이 어떠한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지리적 환경
첫째, 영토이다. 한국의 역사를 4천년이라고 할 때, 한국의 영토는 3천년 전반기에는 한반도와 남만주 그리고 중국동북부(지금의 요령성)까지였고, 최근 1천년간의 영토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반도로 국한한다. 만주지역에서 살던 민족은 밭농사 중심으로 유목민족이었으며 말타기와 기동력이 매우 뛰어난 민족이었으나 한반도는 예맥족이 한반도로 남하하여 토착민인 한족과 제휴하여 벼농사를 지으며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문화는 만주지역의 유목민과 한반도의 농업정착민족적 요소가 합쳐져 독특한 한국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둘째, 한반도의 지형적 모습이다. 한반도의 지형은 북, 동쪽이 높고, 서, 남쪽이 낮으며 산맥을 따라 강이 흘러간다. 이 모습은 인체의 뼈와 혈관의 배합 형태와 유사하여 한국인들은 한반도를 생명체로 보는 특이한 지리관-풍수지리적 지리관-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한국인은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하여 좌우를 산이 둘러싸고, 그 앞에 강이나 하천이 흐르는 곳을 명당으로 인식하고 마을을 형성하며 살았다.
셋째, 기후와 토양이다. 한국의 기후는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다. 그래서 한국인은 어느 기후에나 적응할 수 있는 체력과 계절에 맞는 다양한 의식주 문화 등 다채롭고 풍부한 전통문화를 이루었다. 게다가 한반도의 토양과 집중호우로 인해 수전 농업이 발달하다보니 공동체적 협동을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은 '두레', '계', '향도', '향약(鄕約)'까지 전해져서 오늘날까지도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넷째, 자연재해의 빈도이다. 한국은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자연재해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자연에 대해 낙천적이고, 푸른 산과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밝은 태양을 즐기면서 살아왔다. 한국인의 낙천적 성격과 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성은 이러한 환경에 의해 탄생하였다.
2. 한국인의 정서
한국문화는 춘추전국시대이후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띠고 있지만, 그 보편성 속에서 형식뿐만 아니라 내면에 흐르는 정서가 한국적이기 때문에 한국만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인은 경천신앙(敬天信仰), 삼신신앙(三神信仰),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같이 하늘을 숭배하고 하느님의 후손이라는 자부심과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낙천적 인생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샤머니즘적 성격은 조각, 그림, 공예, 건축, 노래. 춤 등 한국의 모든 예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불상모습, 불종의 음색, 하늘과 대화하고자 하는 춤동작, 처마의 둥근 곡선, 금속화폐의 모양, 하늘․ 땅․ 인간을 합쳐 만든 3박자의 한국의 가락, 즐거움을 표현하는 '신바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을 공경하던 마음은 충, 효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한국인은 음양오행(陰陽五行)사상을 받아들였다. 상생과 상극의 두 원리 속에서 우주만물이 생성, 변화,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한국인은 특히 투쟁적인 상극보다 평화적인 상생의 측면을 선호하는 특성으로 사물의 포용적 조화관계를 중요시 여겼다. 태극무늬나 도덕, 방위, 색깔, 짐승, 오장, 한양의 4대문, 훈민정음, 풍수지리적 관념 등 생활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한국문화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열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은 공부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줄거움으로 여겼으며 선비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목판인쇄술과 금속활자 발명에 기여했으며, 지식을 갖추지 않은 자는 높은 벼슬에 올라갈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학문을 중요시하는 정서는 지금도 이어져 20세기의 빠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3. 한국역사의식
한국 역사는 기원전 열국시대에서부터 기원후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10세기 초 고려라는 하나의 왕조가 통합된 이후 1천년동안 단 두 왕조가 이끌어간 유례없는 일이 있다. 이렇게 왕조들의 장기집권은 기원이후 2천년간 단 한번도 이민족에 대한 정복왕조가 없었다는 사실과 새 왕조가 세워질 때마다 투쟁적인 상극이 아닌 평화로운 상생의 계승으로 새 왕조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고려는 고구려의 영광을, 조선은 옛조선(고조선)의 영광, 대한제국은 삼한의 영광을 계승한다는 법고주의(法古主義)로 역사를 계승해 왔다. 그러나 전통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나라와의 문화 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창신주의(創新主義)가 전통을 계승하는 법고주의와 조화를 이루면서 한국의 역사를 이어갔다.
이렇듯 왕조 교체는 보다 나은 가치를 세우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총체적 변화를 가져온다. 한국의 왕조교체는 무력이 아니라 같은 동포끼리 누가 백성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아 내느냐의 경쟁을 거쳐 이루어지는 체제변화였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가 이루어지는 전후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좀 더 사회가 개방되어지고, 신분 제도가 완화되고, 성리학을 통해 공동체의 도덕성과 합리주의가 확산되었으며, 사회계층간의 협력과 조화의 변화가 일어났다. 즉, 시대가 내려갈수록 국가의 공공성이 높아져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서양의 가치로만 본다면 한국의 역사는 발전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난 1세기간 우리가 주로 의존해 온 사관은 '국수적 민족주의' 나 '사적 유물론'이었다. 20세기의 역사가들은 우리의 역사를 '약육강식'과 '사회진화론'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영토를 잃은 한국 역사는 초라하고 도덕과 평화를 사랑하는 유교문화는 사대주의로 보일 뿐이다. 이제는 국제성과 도덕성을 존중하는 '신민족주의'(新民族主義)시각에서 한국사를 바라보고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을 미래지향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