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가. 의궤란 무엇인가
조선시대는 기록의 나라이다. 국왕의 혼인, 세자의 책봉, 왕실의 혼례 및 장례, 궁궐의 건축과 같이 국가나 왕실에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모든 사항을 기록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즉시 의궤청을 설치하여 의궤를 편찬하였다. 즉, 의궤청은 국가적 행사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전담 기구이고 의궤는 행사의 전말을 기록한 일종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이 바로 '의궤'이다. 의궤는 경비가 많이 소요되는 국가 행사를 대상으로 제작되었으며 행사의 내역 일체를 빠짐없이 기록하여 공개하였다. 의궤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아름다운 기록화이다. 행사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반차도나 각종 건물 또는 물품의 모습을 그린 도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궤는 기록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적인 행사 보고서이다.
이렇게 왕실의 주요 행사를 의궤로 남기는 전통은 우리나라에서만 작성된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나. 의궤의 역사
의궤는 조선이 건국된 직후부터 국가의 주요 행사를 거행할 때마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왜란과 호란의 전쟁으로 많은 의궤가 손실되어 현재는 규장각에 1600년대에 제작된 의궤가 가장 오래된 의궤로 남아 있다. 17세기 전까지는 손으로 직접 그리고 쓴 필사본이었으나 18세기 정조대의 <원행을묘정리의궤>나 <화성성역의궤>를 시작으로 활자본 의궤가 만들어 졌다. 가장 마지막에 나온 의궤는 1926년 순종황제의 국장을 기록한 <순종효황제어장주감의궤>와 1929년 순종황제와 순명황후의 삼년상을 치른 후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과정을 기록한 <순종효황제순명효황후부묘주감의궤>이다.
왕조의 쇠망과 함께 의궤의 기록도 초라해져 갔다. 그 후 나온 <전묘궁원단묘의궤>나 <종묘영녕전의궤>는 특정 행사에 관한 기록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이왕직이 관장하던 왕실 제례의 축문을 정리한 장부로 전락해 버렸다.
다. 왕실의 주요 행사와 의궤의 종류
의궤는 국왕의 일생과 관련된 의궤, 국가행사와 관련된 의궤, 편찬사업과 관련된 의궤, 건축과 관련된 의궤 등으로 나뉜다.
국왕의 일생과 관련된 의궤는 태어나 태를 보관하는 내용부터, 왕세자 책봉, 혼인, 국상 등과 관련한 기록으로 <원자아기씨장태의궤>, <태실석난간조배의궤>, <세자책례도감의궤>, <왕세손책례도감의궤>,<고종대례의궤>, <가례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부묘도감의궤>등이 있다.
국가 행사와 관련된 의궤는 국가 제례 및 다른 나라와의 외교와 관련된 내용으로
<종묘의궤>와 <사직서의궤>, <친경의궤>, <영접도감의궤> 등이 있다.
편찬 사업과 관련된 의궤는 실록 편찬 및 수정할 때 기록한 <실록청의궤>, <실록수정청의궤>가 있다.
건축과 관련된 의궤는 궁궐이나 성곽의 건축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영건도감의궤>, <화성성역의궤>가 있다.
이 밖에도 궁중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벌인 것을 기록한 <진찬의궤>와 <진연의궤>,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제작하는 과정을 기록한 <어진도사도감의궤>, 국왕와 신하가 성균관에서 활쏘기 시합을 했던 행사를 기록한 <대사례의궤>등이 만들어 졌다.
라. 의궤의 제작과 구성요소
먼저, 왕실의 각종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도감(都監)이라는 임시 기구가 설치되었다. 그 다음 행사의 과정을 날짜에 따라 기록한 전교(국왕의 지시 사항)와 계사, 이문 등 각종 공문서를 비롯하여 업무의 분장, 담당자의 명단, 동원된 인원, 소요된 물품, 경비의 지출, 유공자 포상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행사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반차도나 건물 및 기계의 설계도, 사용 물품의 도설 등을 첨부하였다.
반차도는 왕실 행사의 주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오늘날 결혼식 기념사진 또는 비디오테이프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반차도는 행사 전에 미리 예상하여 행사 당일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대한 줄이는 기능을 하였기 때문에 도상연습과도 같은 성격을 띤다. 반차도의 제작은 당대의 유명 화원들이 담당하였다.
의궤에는 행사의 내용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여한 관리와 장인들의 실명을 기록한 것이 눈에 띈다. 의궤에는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양반, 천민의 구분 없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책임 소재를 밝히는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사명감을 가지고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독려하는 뜻도 담겨져 있다.
2. 본론
가. 왕실의 태를 봉안한 기록<태실의궤>
예로부터 태는 태아에게 생명력을 부여한 것으로 출산 뒤에도 소중히 보관되었다. 특히 왕실에서는 태가 국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여 더욱 소중하게 다루어졌다.
현재 규장각에는 <정종대왕태실석난간조배의의궤>, <원자아기씨장태의궤>, <익종대왕태실가봉석난간조배의궤>, <태조대왕태실의궤> 등이 있다.
이 의궤로 통해 궁중의 산속(産俗)문화를 알 수 있다.
왕비나 세자빈이 임신하여 출산할 시기가 가까워 오면 출산 전 5개월부터 3개월 사이에 산실청이 설치된다. 출산이 임박하면 순산을 기원하는 부적을 붙이고 왕자 출산을 바라는 족제비 가죽을 둘러 멘 산석을 깔았다. 아기가 탄생하면 국왕이 친히 산실을 방문하여 문 위 중방에 달아 놓은 방울을 흔들며 경사를 알렸다. 출산한 후 태는 바로 깨끗이 씻겨 항아리(백자)에 태를 봉안 후 기름종이와 파란 명주로 봉한 다음 빨간 끈을 묶어 밀봉하였다. 왕세자나 왕세손 등 왕위를 직접 계승할 위치에 있는 사람의 태는 태봉으로 봉해지기 때문에 석실에 묻었다. 태어난 지 생후 5개월 째 안태(태를 안치한다)한다. 풍수설에 따라 태봉이 선정되면 궁궐에서는 태봉출(태를 봉안하여 나감)의 의식을 행하였다. 태를 묻는 절차가 끝나면 다양한 제사의식이 베풀어졌다. 그 후 사후 관리에 만전을 기하였다.
태봉지로 선정된 곳은 백두대간의 지맥이 명당을 이루는 곳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서삼릉 한 곳으로 되었는데 이는 일제 총독부의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일제는 왕실과 지역민의 연결고리가 되는 태실을 없앰으로써, 조선인들이 조선 왕실을 떠올릴 만한 여지조차 아예 없애고자 한 것이다. 또한 태실이 대부분 풍수 지리적으로 명당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이 터를 차지하려는 계산도 숨어 있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에는 태실의 상당수가 도굴까지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 조선시대 왕실 결혼의 이모저모<가례도감의궤>
조선시대에도 결혼은 인생에서 최고의 경사였다. 특히 왕실의 결혼은 국가적 행사로서도 매우 크고 중요한 경사의 하나였다. 왕실의 결혼을 가리켜 '가례(嘉禮)'라고 칭하고, 이 가례의 의식 절차와 진행에 대해 소상히 기록한 의궤를 <가례도감>이라 하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가례도감의궤>는 1627년 소현세자의 가례에 대한기록인 <소현세자가례도감의궤>으로부터 1906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가례에 대한 기록<순종순종비가례도감의궤>까지 20여 건이 있다.
<가례도감의궤>에는 왕실 혼인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왕실의 혼인 과정 중에서 첫 번째로 시행해야 하는 것은 간택이었다. 간택은 왕실에서 규수를 선택하는 절차로 대개 3차에 걸친 간택의 과정을 걸치면서 최종적으로 1명을 선발한다. 간택을 받아 별궁에서 왕실의 법도를 배운 규수는 곧이어 왕실 혼인 의식의 기본이 되는 육례에 의거하여 국왕과 혼례식을 치르게 된다.
육례의 절차를 보면 납채- 납징- 고기- 책비- 친영- 동뢰연의 순이다. 납채는 청혼서 보내기로 간택한 왕비에게 혼인의 징표인 교명문을 보내고 왕비가 이를 받아들이는 의식이다. 납징은 혼인성립의 징표로 예물을 보내는 의식이고 고기는 혼인 날짜를 잡는 의식, 책비는 왕비 또는 세자빈을 책봉하는 의식으로 왕비가 혼례복인 적의를 입고 책명을 받는 자리로 나간다. 친영은 국왕이 친히 별궁에 있는 왕비를 맞이하러 가는 의식이며 마지막 동뢰연은 혼인 후의 궁중잔치, 국왕이 왕비를 대궐에 모셔 와 함께 절하고 술을 주고받는 의식이다.
다. 국왕의 장례에 관한 기록<국장도감의궤>
유학을 국가 기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는 흉례, 즉 왕실의 상례를 오례-길례, 흉례, 군례, 가례, 빈례-의 하나로 정하여 왕도 정치를 실천하는 방도로 삼았다.
국왕의 즉위식은 국가적으로 매우 큰 경사에 속하는 행사이지만 전 국왕이 사망한 경우에나 새로운 국왕의 즉위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정중하면서도 간략하게 진행되었다. 즉, 국장 중의 즉위식이었다. 국왕의 즉위식은 전 국왕을 위한 성복(상주들이 상복을 입음)이 끝난 후에 사망한 국왕의 시신이 안치된 빈천의 문밖 공간에서 치러졌다.
국상(國喪)의 범위는 태상왕(비), 세자(빈), 세손(빈)인데 이 중 국왕과 왕비의 장례를 국장(國葬)이라 일컬었다. 국왕이 사망하면 당일에 장례의 집행을 담당할 관서인 도감이 설치된다. 국장관련 도감으로는 장례를 총괄하는 국장도감, 시신을 안치하는 빈전을 설치하고 염습과 복식을 준비하는 빈전도감, 무덤을 조성하는 산릉도감이 설치된다. 국장의 절차는 국장도감 설치-빈전 마련-성복-발인-하관-반우-국장도감 해산의 순이다.
국장이 끝나면 총 3종의 의궤가 작성된다. <국장도감의궤>는 재궁, 각종 수레, 책보, 각종 의장, 제기의 제작에 관한 내용이 정리되었고 <빈전도감의궤>에는 예조판서의 지휘하에 염습, 상복, 혼전에 소용되는 물품이, <산릉도감의궤>에는 공조판서와 선공감 제조의 지휘하에 산릉 일대의 토목 공사, 각종 석물, 정자각 건축, 식목 등에 관한 내용이 정리되었다.
<국장도감의궤>는 여러 개의 의궤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도청의궤>는 장례 일정과 국장을 담당한 관원의 명단, 장례에 대한 국왕의 명령, 국장도감에서 국왕에게 올린 각종 보고서, 국장도감과 다른 기관 사이에 오간 공문, 시호의 책봉, 장례 절차, 소요 비용, 장례 후 시상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일방의궤>에는 대여, 견여, 요여와 같은 가마와 향로를 실은 향정자 등을 제작하고 조달한 내역을 밝히고 있다. <이방의궤>에는 각종 의장과 혼전에 배치하는 물품, 제기, 상자, 깔개, 우비의 제작에 관한 내용이, <삼방의궤>에는 시책문, 애책문, 정자각 상량문, 만장이 수록되어 있다.
라.『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보관에 관한 기록<실록청의궤>
『조선왕조실록』은 의궤와 함께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진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실록청의궤>는 이 실록 편찬의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역대 왕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것으로 1대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 472년간의 기록을 편년체로 서술한 조선왕조의 공식 국가기록이다. 이 실록은 역대 국왕의 사후에 전 왕대의 실록을 편찬하는 방식을 취한다. 국왕이 사망하면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하고, 실록청에서 실록 편찬을 공정하게 집행한다. 조선시대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을 사관이라 칭하였는데, 이들은 국왕의 동정을 항시 지켜보고 국가의 모든 회의에 참여하여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사초로 남겼다. 사초는 사관이 국가의 모든 회의에 참여하고 보고 들은 내용과 자신이 판단한 논평까지를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서, 역사적 사실과 함께 당대 사관들의 역사 인식까지 담겨 있다. 이 사초는 사관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볼 수 없게 하여 사관의 신분을 보장하였고 자료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만전을 기하였다.
실록의 편찬 과정은 실록청의 설치 - 초초의 작성(시정기와 사초 요약) - 중초의 작성( 추가, 삭제, 수정, 편찬) - 정초의 작성(정본 인쇄) - 실록의 봉안(1부는 춘추관에, 4부는 지방의 사고에 봉안) - 세초 및 세초연 이다.
<실록청의궤>에는 이런 실록이 편찬된 구체적인 과정과 실무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조선왕조실록』이 세계의 기록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자료라면, <실록청의궤>는 바로 최고의 기록 유산을 대상으로 한 또 하나의 기록 문화라 할 수 있다.
마. 왕조의 통치 질서를 표현하는 제사기록<종묘의궤>,<사직서의궤>
성리학적 이상사회의 실현을 위해 예악의 정치를 펼쳤던 조선시대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오례가 있었다. 그 중 국가의 제사는 길례라 하였으며, 사직과 종묘는 길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제사, 즉 대사(大祀)였다. 사직과 종묘의 제사는 조선이 농업을 주산업으로 하고 전주 이씨를 왕실로 한 국가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행사였다. 이는 바로 국가와 왕실을 말하는 것이다. 경복궁을 중앙에 놓고 보면 동쪽에는 종묘가, 서쪽에는 사직단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종묘는 양에 해당하는 사람의 신주를 모신 곳이고, 사직은 음에 해당하는 땅의 신주를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종묘 정전은 현 국왕으로부터 4대까지의 가까운 조상과 국가를 창업하거나 중흥시킨 공적이 있는 국왕들의 신주를 모셨고, 영녕전은 본묘에서 옮겨진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다.
사직은 토지신인 사(社)와 곡물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다.
종묘에는 국왕의 신주가 계속해서 추가되었기 때문에 종묘의 증축이나 제도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종묘의궤>가 새로 만들어 졌다. 반면에 사직은 1359년에 완공된 이후 제도상에 큰 변화 없이 그대로 내려왔고, 임진왜란 때에 불탄 이후 한 차례 중건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최초의 <사직서의궤>는 1783년 정조의 명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종묘의궤>의 맨 처음에는 종묘의 본묘와 별묘의 전경과 부속 건물들의 위치, 제사의 음식 배치, 제사를 올릴 때의 악기와 악기 배치도, 일무, 제기, 국왕과 왕세자의 복식, 악공들의 복식 등을 알 수 있다. 본문에는 종묘의 창건과 중건에 관한 기록, 각 신실에 모신 신주의 기록, 국왕의 시호와 묘호에 관한 논의, 신주의 봉안과 이전 사실, 존호의 추가, 국왕의 친제 사실, 제례에 사용되는 악장, 제사 물품, 축문의 양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사직서의궤>의 맨 처음에도 사직단의 전경, 사단과 직단의 신주 배치와 주변 담장의 모습, 제사별 음식 배치, 제기, 악기, 악기의 배치, 일무, 일무에 사용하는 도구, 국왕과 왕세자의 복장 등이 상세하게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다.
바. 왕실에서 사용한 도장에 관한 기록<보인소의궤>
'보인'이란 조선시대의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한 도장을 말한다. 보(寶)는 어보라고도 하여 국왕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도장이며 인(印)은 보를 제외한 일반 도장을 말한다. 보인은 오래 사용하면 식별하기 어려울정도로 글자의 획이 문드러지고, 국왕의 호칭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관청이 창설되면 이에 해당ㅇ하는 보인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에 이때 보인의 제작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기관이 보인소이며, 보인을 제작하고 난 다음에 관련 기록을 정리한 의궤가 <보인소의궤>이다.
<금보개조도감의궤>는 1705년 종묘와 영녕전에 있던 금보를 새로 제작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책보개수도감의궤>는 인조의 비인 장렬왕후의 책보를 제작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옥인조성도감의궤>는 1735년 효장세자의 세자빈 조씨를 현빈으로 책봉하면서 내린 옥인의 제작에 관한 기록이다.
<보인소의궤>는 1876년에 경복궁 근정전에 보관하던 국왕의 보인과 세자궁의 옥인을 새로 제작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보인을 전면적으로 다시 제작한 것은 경복궁의 화재 때문이다. <보인소의궤>는 총 9건으로 작성되었는데 그 중 7건이 보관되었다.
첫 머리에는 보인을 제작한 일정이 나와 있다. 이어서 보인의 제작을 담당한 관원의 명단과 국와의 지시 및 해당 관청의 보고서가 나온다. 다음에는 작업에 필요한 재원의 조달 및 작업자의 급료, 보인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인원과 물품을 해당 관청에 요청하는 문서 등이 있다. <보인소의궤>의 상당 부분은 도설이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보안을 비단이나 각종 옷감을 싸서 보관하는 방법인 봉과식, 작업에 소요되는 물품을 국왕에게 요청하고 소요 내역을 기록한 품목, 작업이 끝난 후 각종 물품의 실제 소요량과 남은 양을 보인소에서 호조에 통보한 문서인 이문 등이 정리되어 있다. 마지막에는 의궤 작성에 과한 기록이 나온다.
사. 국왕과 신하가 함께하는 활쏘기 시합<대사례의궤>
우리 민족은 동이족-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 고구려 고분 벽화, 이수광의 지봉유설 등에서처럼 활과 인연이 깊다. 전통 사회에서 활쏘기는 단순한 무예만을 시험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주례』에서 활쏘기는 육례의 하나로 중시되었으며, 유교 경전에서도 심신의 수양을 가져오는 행위로 여겼다. 또한 활쏘기는 왕권의 강화나 국방 강화를 위한 기본적인 덕목의 하나였으므로 국왕은 문무 관리들과의 활쏘기 행사를 정기적으로 베풀었는데, 이 활쏘기 회동이 곧 대사례(大射禮)이다. <대사례의궤>는 대사례의 과정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책이다.
대사례는 국왕과 신하가 회동하여 활쏘기 시합을 통해 군신간의 예를 확인하는 행사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에서 대사례는 총 4차례 진행되었다. 대사례는 왕권의 과시와 군사적 필요성,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가적인 행사였으며 민심 수습책이기도 하였다.
<대사례의궤>는 1743년 성균관에서 대사례를 행한 과정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책이다. 대사례가 성균관에서 열린 것은 국왕이 친히 성균관에 행차하여 유생들을 격려하고 이들에게 심신의 수양을 쌓을 것을 권장하려는 취지에서였다.
<대사례의궤>의 도설 중 어사례도는 왕이 활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시사례도는 왕과 함께 활쏘기에 참여한 사람이 두 명씩 짝을 지어 활쏘는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시사관상벌도는 활쏘기를마친 후 시상하고 벌주를 주는 방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처럼 <대사례의궤>에 그려진 그림들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행사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활쏘기 행사가 끝난 후 무과가 진행이 되었는데 6명을 뽑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 정조의 화성 행차, 그 8일간의 장대한 역사<원행을묘정리의궤>
1795년 정조의 화성 행차는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성대하고도 장엄한 행사이다. 정조가 그동안 이룩했던 자신의 위업을 과시하고 신료와 백성들의 충성을 결집시켜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려는 정치적 행사였기 때문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을묘(1795년)에 현륭원에 행차한 내용을 정리한 의궤로 63면에 걸친 반차도로 정리되어 있다. 이것은 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의궤이다. 대부분의 의궤는 필사본이었으나, 이 의궤를 널리 알리기 위해 활자로 인쇄하였다. 이 책에는 화성 행궁의 전경, 봉수당의 잔치, 잔치 자리에서 공연된 무용, 잔치 자리에서 사용된 조화, 그릇, 복식, 화성에서의 주요 행사 장면, 행사에 사용된 가마의 모양과 세부도, 그리고 행렬 전체의 모습을 그린 반차도가 나온다. 특히 경비의 수입과 지출을 항목별로 정리한 재용에는 모든 비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의 물가 동향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자. 조성왕조 문화 절정기의 대역사 <화성성역의궤>
1794년 정조는 수도권의 남쪽 요충지인 수원에 화성을 건설하였다. 정조가 화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조성한 1989년부터였다. 화성 축성 공사는 집권 20년이 다되어 가는 정조의 안정된 왕권과 절정기에 이른 조선왕조의 문화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과시하는 대역사였다.
<화성성역의궤>는 정조가 화성의 성곽을 축조한 뒤에 그 공사에 관한 일체의 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화성의 축조 공사는 1794년부터 1796년까지 계속되었다. <화성성역의궤>는 거금을 투입한 대공사의 종합 보고서였으며 그 내용이 상세하고 치밀한 것이 특징이다. 본문 처음에는 화성 건설의 기본 계획서라 할 수 있는 「어제성화주략」이 있다. 이 글은 정약용이 작성한 초안에 정조가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으로 일종의 설계안이다. 의궤는 정확한 기록이 생명이다. 그래서 1975년 정부는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을 바탕으로 화성 성곽의 복원 공사를 벌여 대부분 복원했다.
차. 궁중잔치의 화려한 멋 궁중잔치의궤
궁중잔치의 규모와 내용을 보여 주는 의궤로는 <진연의궤>, <진찬의궤>, <진작의궤> 등이 있다. <진연의궤>는 조선 시대에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푸는 잔치의 내용을, <진작의궤>는 왕․왕비․왕대비 등에 대하여 작위를 높일 때 행한 의식을, <진찬의궤>는 왕․ 왕비․왕대비의 기념일을 맞이하여 음식물을 올린 의식을 기록한 의궤이다. 이 의궤들은 왕실의 경사를 맞이하여 존호와 음식물을 올리면서 행한 궁중 잔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명칭은 다르지만 궁중잔치의 멋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의궤라 할 수 있다.
궁중잔치의 모습을 정리한 의궤에는 잔치에 올린 음식물을 비롯하여 잔치에 필수적으로 따랐던 궁중음악과 궁중무용, 각 무용을 공연한 기생들의 복장과 명단, 왕실에 바쳐진 꽃 등 조선시대 궁중 의식의 면모를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들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잔치 때의 참여자들의 위치를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그려 놓은 반차도와 궁중무용의 구체적인 모습, 연주된 악기와 복식, 그릇 및 상위에 올린 꽃 등에 관한 자료는 귀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궁중 잔치 의궤는 1795년 화성 행차를 기준으로 차이가 있다. 그 전까지 의궤에는 반차도나 행사도와 같은 그림이 없었으나 <원행을묘정리의궤>와 같이 반차도나 행사도와 같은 그림이 예외 없이 첨부되었다. 궁중잔치 의궤를 통해서 궁중 잔치인 연향에 대한 내용, 궁중 무용, 정재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으며 궁중잔치 의식을 통하여 왕실의 위엄을 더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궁중의 잔치 의식은 의궤로 정리되는 한편 계병(병풍)으로도 제작되었다. 계병은 천연색으로 그려져 있어서 의궤의 도식에 그려진 흑백 자료의 한계성을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궁중잔치의 의식을 정리한 의궤와 병풍은 조선시대 왕실 문화의 멋과 화려함이 최고조로 표현되어 있는 기록이자 그림이었다.
카. 조선시대의 악기 만들기 <악기조성청의궤>
조선왕조는 유교의 이상인 예악의 정치를 실현하려고 한 시대였다. 예는 상하를 구분하여 그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악은 상하를 조화시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모든 국가 전례에는 반드시 그에 수반되는 음악이 있었다. 특히 국가 제례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제례에 사용되는 음악을 정비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만약 종묘나 사직과 같은 제례 공간에서 사용하는 악기가 부족하거나 파손되었을 때에는 임시로 악기조성청을 설치하여 악기를 새로 제작하였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의궤는 인정전의 악기 제작에 관해 기록한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 경모궁의 악기 제작에 관한 기록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 사직단의 악기 제작에 관한 기록 <사직악기조성청의궤>로 3종이다.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의 내용을 살펴보면, 악기 제작을 담당한 관리 및 장인의 명단, 보고서, 악기 제작을 위해 소용된 물품 및 소요량, 악사, 악공, 무용수의 관복 등을 기록하였다.
타. 국왕의 초상화 제작 기록, 어진의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무엇보다 정확성에 그 초점을 맞추었고, 이물의 외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 사람만의 특징이나 내면의 성격까지 정확히 파악하여 화면에 담았기 때문에 형상을 통해 정신을 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진 관련 의궤는 어진 제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국왕의 모습을 직접 그리는 과정을 국가적 기록인 의궤로 남겨서 하나의 모범적인 전례를 만들어 놓았다. 숙종의 어용을 그린 <어용도사도감의궤>, 태조대왕, 세조대왕의 어진을 모사한 과정을 기록한 <영정모사도감의궤>가 있다.
이 중 도사도감의궤는 국왕이 생존해 있을 때 그 모습을 담았다. 숙종 생존 시에 그 모습을 직접 그린 과정을 기록한 <(숙종)어용도사도감의궤>는 숙종의 초상화 제작 과정은 있지만 어진에 관한 도설이나 반차도가 그려져 있지 않다. 고종의 어진과 황태자의 예진을 그린 과정을 기록한 <어진도사도감의궤>는 다른 의궤에 비해 내용이 자세하고 그림이 풍부하다.
어진 제작과 관련하여 또 하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어진을 제작하여 봉안하는 행렬의 반차도이다. 어진 관련 의궤에는 어진이 직접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를 통해 조선시대 국왕의 초상화 제작이 계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과 어진의 제작 과정, 어진을 보관한 장소, 화원들의 참여 과정과 포상 등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또한 어진 제작에 참여한 당내 최고 화원들의 시대별 활동사도 찾아볼 수 있으며, 어진 제작에 필요했던 각종 도설과 어진을 봉안하는 행렬 모습의 반차도를 통해 당대인들의 행사 모습을 생동감 있게 접할 수 있다.
3. 결론
가. 요약하면
의궤는 우리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기록유산으로서 국제화 시대의 문화사절로도 손색이 없는 자료이다. 오늘날 정보가 풍부하고 어디서나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여도 조선시대처럼 정확하고 세밀한 자료인가 라고 물었을 때 쉽게 확신을 할 수 없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의궤를 통해서 그 당시는 문화를 알 수 있고, 각 행사에 관련된 절차 및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즉, 가장 정확한 역사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의궤의 중요성을 깨닫고 보관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의궤는 편찬 방법에 따라 필사본과 활자본으로 구분되었다. 이는 다시 열람자나 보관처에 따라 어람용(국왕이 친히 열람하는 의궤)과 분상용(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한 의궤)으로 구분되었다. 어람용 의궤는 주로 규장각에서 보관하였고 분상용 의궤는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국가 전례를 관장하던 기관과 서울과 지방의 사고(史庫)-주로 선원각-에 분산, 보관되었다. 조선 전기의 4고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서울과 지방관이 거주하는 읍치에 위치해 있었으나 화재와 전쟁으로 소실되어 사고의 위치가 험준한 산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방의 4사고에는 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의궤를 보관한 또 하나의 장소는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이었다. 정조는 강화도 행궁 자리에 외규장각을 신설하였는데 이는 강화도의 지리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화도의 외규장각은 1866년 프랑스의 침입을 받아 보관 중이던 어람용 의궤들을 집중적으로 약탈당했고 나머지 책들 역시 불타 버리고 말았다.
현재 조선시대의 의궤는 규장각, 장서각, 일본의 궁내청, 파리국립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나. 제언
의궤는 중국 도서로 분류되어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1975년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조선 시대의 어람용 의궤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목록을 정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프랑스 측의 '등가교환'의 원칙-프랑스가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주는 대신에 그에 상응하는 한국의 도서를 프랑스에 제공하여야 한다-에 의해 의궤를 돌려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는 불행했던 과거 역사로 인해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를 되돌려 받기 위해 국력의 성장,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국제 관계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누구나 책을 가까이 하면서 살았던 문화 민족이다. 이러한 문화에 관심을 갖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저력을 계승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