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변경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젠 이 첫 문장만 봐도 몸서리칠 것만 같은, 마지막.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끝을 맺는 이 마지막 메일에 나는 쿵 하고 주저앉을 뻔했다. 거대한 통신 세계의 극히 일부분인 기능을 이용한 이런 식의 이별방식으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 허무함과 참담함을 여기서 느끼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이게 끝이 아니어서, 이 둘의 관계가 이대로 끝이 아니어서. 용기 있게 ‘일곱번째 파도’에 몸을 맡길 레오와 에미의 멋진 ‘바깥 세상’에 다시 초대될 수 있어서 난 그것만으로 너무나 기뻤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마지막 그날 밤 사건 이후, 거의 1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시작된 레오와 에미의 메일 주고 받기. 어쩌면 시스템 관리자의 딱딱한 말투가 보기 싫어서라도 난 정말 ‘끝’을 내고 말았을 테지만, 역시 우리의 ‘에미’는 그녀답게 레오의 부재중인 그 1년 동안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해 ‘에미식 번호매기기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질문도 척척 하는 등 요지부동한 시스템 관리자와 끈질기게 메일을 주고 받는다.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에미’식 일방적인 메일이 몇 번인가 오고 갔을 즈음, 보스턴으로 훌쩍 떠나버린 ‘레오’가 다시 돌아왔다. 호흘라이트너가세 17번지 맨 꼭대기층으로.
보스턴에서 돌아오자마자 ‘에미’의 메일을 확인한 ‘레오’는 황당하기 그지없어하고, 현실의 사랑과 삶을 완벽하게 이루기로 마음 먹은 그는 냉랭하기만 하다. 당황하는 ‘에미’와 혼란스러운 ‘레오’는 그렇게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첫 번째 만남을 가진다. ‘품위 있는 끝맺음’을 위한 만남은 도리어 영원한 연장선이 되어버리지만 말이다. 현실과 환상의 간극을 메울 수 없을 거라는 아주 당연한 두려움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버린 듯, 현실에서의 ‘에미’와 ‘레오’는 서로가 더 마음에 들었나 보다. 여느 때의 두 사람처럼 새침하게, 그리고 아주 자연스레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지만 말이다.
전작 못지 않은 팽팽한 밀고 당기기 메일 릴레이는 계속 되지만, 가상에서 현실로 옮겨오는 둘의 묘한 관계는 순탄치 못한 과정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사이사이 이뤄지는 현실 속 다섯 번의 만남. 그러한 과정 속에서 발하는 ‘일곱번째 파도’로의 여정을 향한 ‘새김’의 감성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좋은 방향이든 좋지 않은 방향이든 상관하지 않고 털어놓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새겨놓은 감성 그대로 서로에게 닿아 톡 터질 것만 같다. 이렇게 멋진 언어와 흘러 넘치는 감성을 소유한 ‘에미’와 ‘레오’는 필연적인 한 쌍이 아닐는지.
일곱번째 파도 사전에 ‘예전’이란 없어요. ‘지금’만 있을 뿐. 그리고 그뒤에는 모든 게 달라져요. 더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그건 그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 그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길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겠지요. – P.256
이 후속작이 없었어도… 그 나름대로 결말의 씁쓸함을 음미하며, 이 둘을 나의 무한한 상상의 나래로 데려가 살게 했어도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일곱번째 파도’가 이들을 휩쓸었을지 피해갔을지, 혹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그 너머로 갔는지 어떤지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랑스러운 두 사람에게 차가운 북풍이 아닌 따뜻한 남풍을 불어 보내며, 고마움의 인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