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기만 한 것은 없소. 하나의 얼굴은 열 개의 얼굴의 총체라오……. (P.172) 두려움에 마주하기 싫은 건 어디 사는 특정될 누군가가 아닌 모두가 가진 본능의 일부다. 그것 앞에서는 움츠러들기 마련이며 내 안의 다른 가면을 꺼내 들고 숨어버리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지금도 여전히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리고 있는 나에게 클라라의 첫 번째 삶, 이어지는 두 번째 여행의 시작은 그 자체만으로 위안이고 격려였다.
한없이 두려워하지만 겉으로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그녀의 첫 번째 삶, 그것이 유지 되기 위한 두 개의 현실의 대비. 흐트러져서는 안될 낮과 밤의 균형이 우리가 알게 될 그녀이자, 그녀가 알게 될 자신이었기에 두 번째 삶을 위한 여행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마냥 놀랍지도 슬프지도 펄쩍 뛸 만큼의 기쁨도 수반하지 않는다. 결말을 알고 간다고 해서 첫 장부터 후반부까지 펼쳐질 그녀의 첫 번째 삶의 이야기, 봉인해 놓았던 과거의 아픔을 한 남자와의 인연으로 하여금 조심스레 여는 그 순간까지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다. 오히려 흥미롭고 (무엇이든) 더욱 깊게 알고 싶어질 뿐이다.
그녀는 소녀 시절 아버지를 뒤로 하고 파리로 와서 20년 째 낮과 밤, 두 현실을 철저한 규칙을 정해놓고서 살아가고 있다. 밤에는 창녀, 낮에는 ‘밤의 클라라’가 절대 침범할 수 없는 평범한 생활을 ‘수행’한다. 두 영역이 서로 침범하지 않고 철저히 지켜져야만 했다. 과거의 두려움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었던,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최적이라고 생각했기에. ‘밤의 클라라’ 생활은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아, 그 삶은 뒤흔들 위험은 아주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의 시작은 어느 날의 ‘특별한 손님’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화가였고, ‘밤의 클라라’와 마주한 그날 밤 이후 그의 작품 속 모델은 그녀였다. ‘낮의 클라라’는 자신과 닮은 그 그림을 어느 화랑에서 보았고, 그와도 대면했으며 모델 제의를 받았다. ‘밤의 클라라’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즈음, 그 제의는 그런 그녀에게 단 하나의 희망이자 위안, ‘두려움’의 돌파구가 된다. 공통된 생활을 하는 그와의 시간들, 그의 그림 속 자신의 여러 얼굴 중 하나를 보면서 닫아두었던 두려운 과거와 마주하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삶으로 내딛는 그녀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길지 않은 이야기의 끝에 도달한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걸까. 같은 ‘두려움’을 봉인하거나 혹은 등에 짊어진 채로 살아가는 또 다른 수많은 내가 필요한 걸까. 내 안의 많은 얼굴들을 알아가야 하겠지. 그런 ‘두려움’ 속에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 마주할 용기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분명 이 현실에서 나아갈 수 있겠지, 클라라처럼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