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놓인 '촐라체'와 마주하는 그 순간.

제일 낮은 곳에 디디고 서서 끝이 보이지 않을 마냥 올려다보거나 검지를 쭉 펴서 뾰족하게 우뚝 솟은 봉우리를 정중앙으로 뚝 잘라버릴 마냥 장난스레 대볼 만큼 먼 거리에 자리 잡은 산, 내가 좋아하는 산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어느 각도로도 바라보는 것만큼 즐겁고 좋아지지 않는다. 단순히는 내가 딛는 걸음마다 곧이 받아주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는 퍽퍽한 마찰이 심술궂게 느껴짐에 있고, 더 나아가서는 산은 우러러보고만 싶다는 나의 엉뚱함에 기인하는 바다.

상상할 수 없는 높이의 봉우리들을 오르는 산악인들을 TV나 인터넷뉴스를 통해 볼 때마다 문득 생각했다. 정말 멋있고 대단하다는 감탄과 동시에 사람은 언제나 그 이상으로 뛰어넘고 싶어 하는 것만 같다고 말이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고지를 누구보다도 자신이 제일 처음 밟아야 한다는 도전감을 넘어선 정복감의 이미지라는 것으로 문득 그려지곤 했으므로. 무엇보다도 '하늘 다음은 인간이다'랄까. 히말라야는 정말 높고 험한 봉우리들이 많지만 그 높고 험한 봉우리 위를 올라 깃발을 꽂는 이들은 우리네 인간이다. 한번쯤은 저 위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햇빛을 등에 짊어진 푸른 산을 올려다보는 목의 꺾임이 좋은 나의 내멋대로 푸념이기도, 산을 넘는 것보다 둘러가는 것을 좋아하듯 모든 일에 있어 제대로 맞서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정당화 하고픈 이기심일지도 모르겠다.

'벽과 나 사이에선 솔직해야 해. 속임수는 안 된다구. 난 할 수 있다. 소리칠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할 수 있긴 개뿔이나, 뭘 할 수 있어? 자신 없음 자신 없다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하는 것, 그 정직함이 뭐라고 할까, 곧 클라이밍의 자유라고 할까.' P.62

촐라체를 펼쳐들기 전에 내가 촐라체를 통해 느끼고 싶었던 것은 내 안에 잠든 젊음의 열정, 도전과 시도에 있어서의 대담함이었다. 나의 '촐라체'를 찾는다는 의미는 희망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펼쳤는데 결과적으로 보자면 책을 덮고 나서 느낀 바는 정반대였다. 그리고 산악인이 산을 타는 그 마음에 있어 정상에 섰다는 단순한 기쁨과 만족이 아닌 산에 맞닿아 힘겹게 한 발 짝 한 발 짝 나아감에 이 세상을 헤쳐 나갈 용기와 대담함을 담는 진지함, 솔직함임을 이제야 마음으로 느낀 것만 같다.

최소한의 장비로 춥디추운 한겨울에 촐라체의 북벽에 맞선 상민과 영교. 아버지가 다른 배다른 형제이지만 서로를 아껴주던 따뜻한 한 때도, 그리고 다시 만나 촐라체 앞에 선 두 사람 사이에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촐라체 만한 벽을 둔 그늘만이 휘감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끌고 생과 사의 중간을 오고가게 만든 걸까. 그늘을 가진 사람들이 북벽의 그늘에 맞선다. 그 기묘함 속에 등반의 첫 발을 내딛고 아슬함과 긴장의 연속이다. 책을 쥔 내 손에 땀이 흥건하고 가슴이 쿵쾅쿵쾅 거릴 정도로 촐라체에 맞붙은 그들의 모습과 그리고 감정까지도 선명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너무나 지독하게 시리고 선명해서 엄청난 고요와 자신과 싸워나가는 그들만의 현실 속에서 나는 그리도 떨 수밖에 없었나보다.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클라이머에겐 적어도 세 가지 용기가 구비되어야 한다는 김선배의 말도 이제 떠오른다. 가정과 사회를 과감히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가 그 첫 번째이고, 죽음을 정면으로 맞닥뜨릴 만한 배짱이 그 두 번째이고, 산에서 돌아오고 나서 세상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의지와 열망이 그 세 번째 용기이다. P.216 

나는 용감하게 촐라체 북벽에 맞서 어쩌면 촐라체만 넘어선 게 아니라 과거를 극복하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또 함께 극복하고만 두 형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본 촐라체는 희망과 용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강한 의지이기에 앞서 두려움과 극도로 시리고 아픔, 그리고 혼자이다. 적어도 이 책을 덮고난 나에게 촐라체가 뭐냐고 한다면 '내가 외면해온 모든 아픔과 두려움'이라고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라는 인간은 내가 애써 외면해오던 모든 것들에 맞서는 정도(正道)보다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 그 너머의 희망만을 그려내려는 데만 급급했다. 웅장한 촐라체 앞에 서기까지의 그들을 주목한 것이 아니라 촐라체에 진정으로 맞닿아 자신을 극복하고 함께함을 알게 했던 그 고난과 강한 의지의 연결에 그토록 전율을 느끼고 감동하며 쫓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이런 나는 아직도 촐라체를 앞에 두고 그 길이 얼마나 길어지든 모로 가도 촐라패스만 가면 되듯이 쭉 돌아서 열심히 의식 속 만족을 위해 걷고 또 걷고 있을 지도 모른다.

피켈과 아이젠에의 의지, 단독자로서 빙벽에 오를 때, 그 빙벽과 나 사이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실존의 존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에서 촐라체 북벽은 그런 것이다. 묻나니, 당신은 어떤 '촐라체 북벽'을 지금 꿈꾸고 있는가, 오르고 있는가. 삶이 공소하게 비어 있다고 느낀다면 인생에서 올라야 할 '촐라체 북벽'을 지금 찾아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그것은 최종적으로 구원이 될 것이다. - 박범신

우리가 외면하고, 외면하려고만 하는 이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촐라체 북벽'이고 되돌아 보는 순간,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스스로가 아니면 맞서지도 꿈꿔보지도, 오르지도 못하는 것이다.  

저자가 내던져준 그 '고통스럽지만 최종적인 구원'이 될 촐라체는 그것을 넘어선 그 다음뿐만 아니라 촐라체를 마주할 수 있기까지의 조심스럽지만 위태로운 의지를 침묵으로 건네주는 다정한 손길, 바로 그것이다.  

그저 희망과 용기, 그리고 의지를 다지려는 나와 같은 젊은이가 아닌 진정으로 내가 어려워하는 모든 것들에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먼저 배우려는 자들에게 이 책을, <촐라체>를 진정 권하고 싶다. 내 앞에 놓인 '촐라체'와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 간직하고픈 이 책을 말이다.

'오냐, 내가 홀로 너를 넘고,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촐라체에 도전할 것이다.' - <촐라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