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이별의 대답 없는 저 편 너머에서……
모든 삶과 죽음 사이에는 남은 평생만큼 길고 사람이 가진 무한의 감성을 잠재워버릴 만큼의 깊고 강한 슬픔이 공허하게 찬다. 그리고는 남은 이들의 눈에서 샘솟아 오르는 눈물이 마를 새도 없이 그 공허함을 채워간다. 하지만 어째서 나는 그 눈물이, 그 슬픔이 남은 이들만의 것이라고 단정 지었던 걸까. 죽음은 대답이 없지만 저 어딘 가에서 똑같이 슬퍼하고 울부짖으며, 살아 있을 때 차마 못 다한 말을 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아침이 두렵다. 아침이 되면 아이들이 올 거고 그러면 나는 죽은 사람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아는 게 무섭다. 빈 목소리로라도 소리를 지르고 빈 몸짓으로라도 허우적거리며 사랑한다고 영원히 잊지 않고 사랑한다고 외쳐야겠다. 그게 진짜 소리가 되고 몸짓이 되었으면 좋겠다. - P.238
범인들의 손에 순직한 경찰관들, 화재 진화 하다가 순직한 소방관들의 뉴스가 때때로 스쳐지나갈 때, 나는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에 짠한 가슴을 부여잡을 때가 많다. 더구나 죽는다는 것의 의미조차 모를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 속에 머지않은 미래에 알게 될 그들에게 너무나 빨리 다가온 이별의 아픔이 더욱 짙게만 느껴진다. 사람을 구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그들은 너무나 멋진 사람들이지만 사랑하는 가족에게만큼은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마음껏 할애하지 못한 채 떠나는 '그'의 마지막 발자국, 이별을 잃다.
삶이란 게 참 가볍고도 무겁다. 죽는 것은 이렇게 가볍고 간단한데, 죽고 난 사연은 너무 복잡하고 무겁다. 내게 얽힌 인연이 무거워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 P.212
비 내리는 길바닥에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그'를 '그'가 내려다본다. 저 너머엔 우산 없이 학교 앞에서 자신을 기다릴 아들과 예쁜 옷 입고 예쁘게 율동하며 꼭 올 거라는 아빠를 눈으로 찾는 딸, 그리고 함께 기다리는 아내가 있다. 얼마 안 가 자신의 차 앞 유리에는 조금 있다 딸에게 안겨 줄 예쁜 장미 한 다발과 카드가 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살아있는 몸으로 갈 수 없게 된 그는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의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청년으로 두 아이의 아빠인 지금까지 '놓을 수 없는 시간'들을 가슴에 새기는 마지막 여행을 시작한다.
그가 나인 것 마냥 한 순간 한 순간 놓치지 않으려는 안타까움이 배어드는 담담한 문장마다 나는 그의 못 다한 눈물을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눈물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글자 속에는 자신으로 인해 슬퍼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곁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더 사랑해주지 못해 하늘로 안고가야 할 사랑까지도 진하게 묻어난다. 지극히도 평범하고 행복했지만 비디오처럼 돌려 다시 거슬러 올라올 때는 차마 보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많은 미소와 슬픔과 감정, 마음이 모든 순간에 담겨 있다. 그래서 더욱더 살아있는 삶을, 순간을 감사히 살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의 한편에는 이별의 슬픔을 간직하는 법을 새기게 된다.
아직 지상에 남은 모든 나의 슬픔의 물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의 대답 없는 저 편의 마지막 한 방울이 서려있음을. 우리는 이별을 잊어야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없이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기에 그저 남은 삶에서 곁에 없음에 슬퍼말고 언제나 그 누군가를 잊지 않고 사랑하며 그리워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