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추크슈피체의 겨울산 속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로만예거는 산악구조대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눈 덮인 산속에 놓인 발자국을 무심히 들여다 본다. 등산객이나 관광객이 아닌 죽음을 담은 발자국을 보고 그는 가녀린 발자국을 따라 산을 올라간다. 살리려는자와 죽으려는 자가 맹렬한 지옥계곡위에 서있다.

	이 발자국은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었다. 산악구조대에서 10년 동안 일한 경험만으로도 어떤 직감이 발동했다. 지금 이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리라는것. 로만은 이미 몇 번이나 위험상황을 피하게 해준, 그리고 지나치게 과감한 행동을 막아준 자신의 직감을 믿고 있었다.
페이지 : 15

 시간이 멈춘듯 그는 소녀를 살리고자 손을 뻗는다. 그의 손을 뿌리치는 그녀의 눈빛, 두려움에 빠져있는 그 소녀의 눈빛을 그는 잊을 수 없다. 자신을 살릴까봐 두려워 한 그 눈빛을.

죽은 소녀의 장례식 후 그는 죽은 소녀의 주변인들에게 이상한 인상을 받는다.

소녀의 자살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 비밀을 감춘 듯 서로를 살피는 불안한 친구들, 그녀를 사랑했던 한 청년. 타살 같은 자살의 흔적들!

로만은 그녀의 죽음에 더욱 의구심을 품게 된다. 마지막 순간 소녀에 곁에 있었다는 죄책감일까? 연민일까? 로만은 고뇌한다.

그러던 중 그녀의 절친 마라의 이야기를 계기로 사건의 실마리는 풀어지는 듯 한다. 그리고 단하나의 단서!! 그녀가 죽은 자리에 있던 "성 판크라티우스" 메달.  모든것을 이기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그 메달의 진짜 주인을 찾기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두 남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산악구조대 로만과 비밀에 쌓여있는 라우라를 사랑했던 한 남자. 그리고 그들의 시각에서 본 라우라와 네친구들의 이야기.

한 여자를 살리고자 했던 남자,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본 로만의 시각과 한 여자를 지키고자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한 비밀스런 남자의 시각.

마지막 그녀의 모든 비밀이 숨겨진 곳을 찾아 다가갈수록 지옥계곡의 눈보라는 더 거세진다. 친구들의 죽음, 비밀의 실체, 친구들의 배신...비밀스런 그남자의 과거.

보름에 걸쳐 벌어진 숨막히는 사투에 비밀스러운 남자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사건은 더 빠르게 진행된다. 

또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범인의 눈에서 보는 모든 시각들이 날렵한 칼등을 걷는것처럼 차갑고 온몸에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을 준다는 거다. 즉, 독자로 하여금 관찰자로써 모든 사건을 주시하게 만드는 놀라운 표현력과 마치 자신이 범인의 다른 인격체가 된 듯한 오묘함을 담고 있다.

	전진. 하얗게 소용돌이치는 이 세계에서, 사납게 울부짖는 이 곳에서 계속 전진하기. 다음 한 걸음만, 다음 1미터만 생각하기.
페이지 : 332

로만예거의 거친 숨소리와 지옥계곡의 눈보라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범인을 알게되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사건들,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본 듯한 긴장감과 여운이 남는 매력적인 책이다.

 

지옥계곡, 안드레아스빙켈만, 빙켈만, 비채

사람들의 발자국이 가장 많이 찍혀있는곳을 찾으라면 서울에선 고속버스 터미널일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늘의 끝자락에서 온 발자국, 긴 숲속에서 온 발자국, 바다를 건너온 발자국들.

남겨지는 자와 떠나는 자들의 사연이 있는 가장 복합하고 가장 혼잡한 그곳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귓가에 솜털이 남아있는 아직 보송한 한 소녀가 공중화장실에서 아이를 낳는다. 태어날때부터 고아의 인생으로 삶을 부여받은 제이와 거울을 보듯 서로 통하는 동규의 이야기.

	마음에 서리가 낀다고 해야 할까. 심장이 차갑게 식으면서 눈가가 시렸다. 나는 MP3플레이어의 볼륨을 높였고 그들은 그다음 역에서 일제히 내렸다. 수회를 하는 아이들의 손에서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 올랐다.
페이지 : 57

화려하고 빛나는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꺼진 도시의 어둠속으로 흘러드는 아이들의 이야기. 어른들의 부끄러운 폭력과 무관심속에 더 어두운곳으로 숨어드는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

아이들의 폭력속에서 제이는 그 모든게 슬픔과 분노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것을 알게 된다.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에 순수한 분노.

	성난 개떼처럼 으르릉거리기는 했지만 막상 내가 다가가면 꼬리를 내리고 받아줄 것 같았어. 그리고 어떤 목소리도 들었어. 가서 그들과 하나라 돼라. 그들을 이끌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라. 뭐 그런것이었어.
페이지 : 153

 이 책에서 너무나 많은 아픔을 품은 아이들이 나온다. 엄마의 외도, 부모의 이혼, 아빠의 재혼, 태어날때부터 버려진 아이. 장애를 갖은아이. 세상으로부터 고아가 되어가는 아이들.

우리가 모두가 고아인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상처받고 상처주고 고통에 익숙해진 그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거야." 라는 문장이 자꾸 맴돈다.

 

 

너의목소리가들려, 김영하, 문학동네

1988년 데뷔작으로 야마모토 슈고로 상 최종후보로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다.

하드보일드 형식의 글, 사와자키라는 탐정의 움직임으로 사건이 시시각각 전개되는 형식이다. 표지가 인상적이다. 필터없는 담배 연기가 투명한 가운을 걸친 여인의 모습으로 자태를 뽑내다가, 조용히 책속으로 스며드는 형태이다.

삭막한 도시의 아침, 낙엽마져 외롭게 서성이는 그 곳에 사와자키가 있다. 그와 닮은 겉으론 굴러가는지 의심스러운 오래된 블루버드를 타고 그는 등장한다. 뜻모를 손님의 방문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와자키 그의 직업은 탐정이다. 자신에게 모든걸 가르쳐준 동료의 배신으로 신용과 의지를 잃은 탐정. 그런 그에게 오른손을 숨긴 한남자가 나타난다. 르포르라이터 사이키의 행방을 찾아 20만엔 이라는 돈을 맡기고 사라진다. 이미 자신에게 충분히 더 많은 문제가 보이는 의문스러운 의뢰인. 사이키의 흔적을 찾아 그는 사리시나슈조를 만나게 되고 사라진 그의 아내 나오코의 의뢰를 받게 된다.

사건에 관련된 주변인들을 만날수록 그는 사라진 르포라이터의 실종과 도쿄도지사 저격사건의 연결 고리를 하나씩 찾아낸다.

그리고 5년 전 자신을 배신한 동료의 사건으로 앙금이 있는 니시고리 경부를 만나, 의문의 사나이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듣게 된다. 그리고  사와자키라는 탐정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 열정적이며, 믿을 수 있고, 솜씨가 좋고,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탐정이라? 게다가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탐정은 없느냐고 물었다?
페이지 : 90

 모든 연기가 진실속에 사라질 때 사건은 결말을 맺게 된다. 저격사건의 이야기, 사라진 르포라이터, 오른손을 보여주지 않는 남자, 도신 그룹의 이야기 등.

	직업상 서로 기쁨을 나눌 수 없는 사람들의 배반을 보는건 일상 다반사지만 괴로움 또한 서로 나누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고 오히려 커지는 모양이다. (중략) 진실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왔지만 나 자신 그런이야기는 믿지 않았다.
페이지 : 412

 마지막 결말은 솔직히 예상을 벗어났다. 간결한 문체와 사와자키의 움직임과 같이 진행되는 사건들, 그만큼 스토리 진행속도와 가독성이 뛰어나다.

가장 놀란건 1988년에 쓰여진 작품이라 믿기지 않을만큼 리얼리티와 세련된 스토리다.

인간의 욕망엔 반드시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욕망이 클수록 대가도 커진다는걸 사람들 알고 있다. 다만, 욕망에 눈을 가린채 애써 외면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밤은되살아난다, 하라뇨, 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