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이라는 주제로 철학자 인류학자 정신분석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명한 15명의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전에는 필연적이라 생각되었던 자연적 법칙들이 과학의 개입으로 인해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인권과 윤리, 개인적, 사회적 이익 등 여러 가지가 복합된 것이라 무엇이 더 효과적인가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 생각해봐야 할 만한 주제이다. 1장에서는 자연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는 출산의 역사를 조명하고, 2장에서는 문화와 사회에서의 성역할을 비교하며, 3장에서는 영화와 작품을 통해 상상속의 혈통에 대해 예상될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4장에서는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과 부모가 되고 싶은 욕망을 정신분석과 철학적 관점으로 분석한다. 성과 도착을 가르는 종교적 질서로 본 성의 역사, 주체성과 관련된 상상속의 혈통, 미래의 산업화된 생식전망, 전통적인 도식의 예외를 허용하는 다양한 문화 등 풍부한 소재거리들로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남성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얼마 전 해외토픽에서 아이를 낳은 남자가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최초로 아이를 낳은 남성으로 유명해진 그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했지만 자궁을 남겨두어 부인이 아이를 갖지 못하자 대신 아이를 낳아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는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에서부터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는 행위이며 유명해지려는 쇼에 불과하다고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많이 받았지만 그와 같은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은 소망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고.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호르몬 요법이나 독특한 사례로서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는 원치 않는 유명세 등 몇 가지 우려하는 바가 있었지만,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가지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과 성인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고려한 중대한 결정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실험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새로운 성의 역사에 도전하며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행할 수 있는 모습에서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인 신념이나 기존과 배치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라며 비난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이제까지 자연의 법칙을 얼마나 거슬러 왔던가! 아이가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누군가의 선택을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발전과 다양한 선택에 따른 가족구성의 열린 가능성과 예기되는 우려

성욕의 제한을 통해 산아제한을 주장했던 맬서스주의와 피임법의 발전 등으로 선택권이 넓어진 오늘날 사람들은 의학과 과학의 도움으로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합리적인 가족계획을 세운다. 이미 인공수정으로 성적 접촉이 없이 임신이 가능하고 미래에는 인간복제도 가능할 것이다. 아이를 갖기 위해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자연의 법칙으로 여겨졌던 성의 역할에 점차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우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에 나온 베로니크 나움 그라프라는 인류학자는 ‘총몽’이라는 일본 만화를 통해 산업화된 생식의 우울한 전망을 분석한다. 출산이 기술에 따라 기계적으로 대체되면 인간의 성욕이 대체되거나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여성학자의 추천 글 에서도 성과 출산의 영역에 기술이 개입함으로써 산업적인 기계화의 대상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 착잡한 심정을 밝히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이 남용되거나 악용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유전형질을 변형하거나 선택할 수 있을 경우 우월한 후손을 만들려는 욕망으로 우생학이 다시 고개를 들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아일랜드 같은 영화에서처럼 복제 인간을 대체물이나 소모품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의 기회와 가능성이 확장되는 좀 더 긍정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이고 싶다. 현실에서는 예기되는 문제들에 따라 법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만 한정적으로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기술을 어느 선 까지 허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아이는 단순히 혈통과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이미 이혼과 편부모가정, 입양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반드시 전통적인 한 아버지 - 어머니 - 자식이라는 도식을 꼭 따라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단순히 집단무의식상에 내재화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종족보존의 기능으로만 보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결핍된 것을 보상받으려 하는 욕망, 자신이 죽더라도 역사를 이어나갈 세상과 이어진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존재와 공유할 수 있는 끈을 만들고, 내가 태어나 다른 이들에게 받은 것처럼 나보다 결핍된 존재를 위해 세상에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갚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단순한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적인 존중과 합의에 따른 선택을 바탕으로 아이를 하나의 개체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에게 혈통과 종족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결핍을 만족시켜 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그 아이의 결핍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완전한 자격을 가진 주체로서 소망되는 모든 아이는 그 부모의 바통을 이어받아 앞으로 다가올 역사의 단편을 만드는 존재라는 철학자 미셸라 마르자노의 견해에 공감한다.

변하고 있는 가정의 의미 -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추세는 점점 다문화가정의 열린 형태로 변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부부관계로 결합되지 않은 비정통적인 커플의 다양한 가능성을 존중해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출산신기술(NTP)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전보다 선택권이 넓어지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자유로운 선택권을 누릴 수 있는 권리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책임의 의무 또한 중요시 되어야 한다. 평등한 배우자들 간의 진실성과 합의가 우선시되는 민주적이고 계약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현시대에 기술의 도움으로 부모가 되고자 하는 인간적인 소망을 법적으로 제한한다면, 가치관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심각한 사회 부조화 현상인 문화지체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개인적 바람과 사회적 가치관의 조율을 통해 머지않아 PACS(‘시민연대협약‘ 이라는 말로 결혼하지 않고 사는 모든 형태의 동거 부부에게 법적인 지위를 줌으로써 각종 법률이나 사회보장 측면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취지에서 만든 법안)등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날이 올 것이다. 오늘날 가정은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존재로서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남용을 경계하며 기술의 발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은 보다 행복한 삶을 가꾸어나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아이를 원하는 것은 뭔가가 결핍된 뭔가가 부족한 그곳에 자리할 수 있는 ’대상’을 자기 둘레에 두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아이는 절대 단순한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결핍을 채워서 부모가 충만함이나 완전함에 이를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아이는 그 자신이 결함과 결핍을 가진 인간으로서 복잡한 가족의 역사 안에 자리하며 부모의 역사의 ’흠’을 고쳐줄 수도 부모의 개인적인 결함을 ’가려줄’수도 없다. 완전한 자격을 가진 주체로서 소망되는 모든 아이는 그 부모의 ’바통’을 이어받아 앞으로 다가올 역사의 단편을 만드는 존재다
페이지 : 188 (욕망, 철학의 두통거리 - 미셸라 마르자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