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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의 글씨와 김구 선생의 글씨 (p.104~110)
이완용의 글씨는 육과 혈은 있지만 신과 기가 없고 골은 약하다.
김구의 글씨는 언뜻보면 어눌한 듯하나 자주 대하면 달빛에 매화 행기가 떠다니는 것처럼 은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수집은 우리의 인생살이와 닮았다. 때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도 하지만 낭패를 볼 때가 많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나와 인연이 없는 글씨는 슬며시 빠져나간다. 이럴 때 나는 이것이 글씨와 나의 운명이려니 한다. 그래도 확실한 한 가지는 실력을 쌓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좋은 작품을 얻게 된다는 것. 형설지공이나 와신상담 같은 옛 교훈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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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하나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낸다. 구본진 검사가 필적을 수집하는 취미를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늘리면서 ‘항일 운동가의 필적’이라는 커다란 의미 있는 집합체를 만들어 냈다. 수집이라는 취미가 단순히 소유하는 즐거움만 주는 것만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필적 수집을 통해 여러 가지 배울게 많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컬렉션을 모으려면 간단히 돈만 있어 해결 되는 게 아니라 공부도 해야 하고, 전문 지식도 쌓고 안목을 기르며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 한다. 거기다 간절한 마음으로 인연이 닿아야지 원하는 작품을 컬렉션에 얻을 수 있다. 옛 조상들의 필적에서 나타나는 삶의 행적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은 물론 사람을 보는 눈까지 기를 수 있다. 수집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주제를 가지고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흩어져 있을 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구슬들을 꿰어 하나의 멋진 목걸이로 탄생시켜 가치를 창조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진가를 알아봐주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목적 없는 수집보다 친일과 항일 운동가들의 필적이라는 주제를 갖고 하나의 계보를 만들어 분류된 자료들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미개척 분야라 할 수 있는 필적학에 대한 연구 자료가 많지 않음에도 원서와 연구 자료들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독보적인 전문성을 기른 저자의 집요한 끈기와 탐구심도 본받을만하다.

이 책의 자료들을 보면서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하려면 자신의 능력을 알고 무리하지 않게 묵묵히 한길을 걸어가야 한다’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떠올랐다. 저자는 1천여 점의 작품을 수집하여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데 개인으로서는 쉽게 모을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그는 공무원의 월급으로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비싼 미술작품보다 상대적으로 의미가 낮게 평가되고 있는 간찰이라는 분야를 선택했다. 저자는 이정도로 컬렉션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자신의 능력을 알고 기준을 정해서 수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흥미를 갖는 일을 개인의 만족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열정을 갖고 의미를 창조해내어 일반 사람들과 후학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취미가 의미를 가지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단순히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의미를 창조하는 취미를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자신의 분야와 관련되어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보적인 분야의 일들에 흥미를 붙여, 열정을 갖고 목표를 세워 자료 수집을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필적학은 글씨를 쓸 때 머리에서 손과 팔의 근육에 메시지를 전달하여 선, 굴곡, 점 등을 만들기 때문에 필적이 내적 세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필적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외국에서는 성격 결함, 정신병자나 이상 성격의 규명, 교정 등 정신병리학 측면을 알아내고 범죄 수사에도 활발하게 응용되는 분야로 알려져 있는데, 필적감정을 하는 것을 보며 과연 간단한 글씨체로 어떤 정보를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수많은 필적과 연구 결과를 살펴보니 삶의 궤적이 뇌의 지문인 필적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보통 글씨를 쓸 때는 의식하지 않고 습관대로 손을 움직여 쓰는데, 이는 걸을 때 어느 쪽 발을 먼저 디딜지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글씨를 쓰는 것 자체가 무의식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행위가 된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언제나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으며, 그것에서 무의식적인 인격특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큰 매력은 단순히 필적학과 수집품들을 나열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친일과 항일 운동가를 통해 역사인식을 재조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주도했다가 친일로 돌아서 반민특위 법정에 선 최린과, 형과 달리 나중에 친일로 돌아선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 등의 필적에 드러나는 삶의 궤적을 통하여 올곧은 신념을 삶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개인의 안위보다는 높은 뜻을 가지고 절개를 지킬 때 진실이 알려지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시대에 굴복한 나약한 지식인의 아픔이 여기까지 느껴져 와서 씁쓸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선택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고, 친일이라는 평가는 바꿀 수 없다. 올곧은 신념을 갖고 부단한 자기 경계를 통해 실천으로 옮길 때 지조 있는 삶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이 필적에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옛 조상들의 실수를 통해 그냥 단순히 현세를 사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미래를 예견하는 연속선상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컬렉션 십계명과 진품판별의 단서를 찾는 노하우를 제시하고, 부록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필적과 성공하는 사람들의 글씨체를 통하여 필적에서 나오는 인격적 특성을 분석한다. 일반인에게도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주제를 다루어 필적학에 대한 분석자료를 알기 쉽게 제시하는 배려를 잊지 않는다. 저자는 돈을 덜주고 산 작품은 다시 찾아가 추가로 값을 지불하기도 하고, 김구선생님의 경충묘 글씨를 구했을 때 눈물이 날뻔 했다는 솔직한 감동을 표현하기도 한다. 항일 운동가의 올곧은 신념의 궤적을 따라가는 저자의 인격적 됨됨이를 말해주어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올곧은 신념을 갖고 자신을 경계하며, 의미를 만드는 일을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필적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까지 어우러져 버릴 내용이 없는 절묘한 책이라 생각한다. 숨은 가치를 알아볼 줄 아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저자의 수집품들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작게 쓰는 사람은 과학자, 작곡가, 작가, 수학자 들에게 많고,
크게 쓰는 사람은 배우, 세일즈맨, 정치가들에게 많다.
예민한 감성과 지적능력,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천재들은 작은 글씨를,
넓은 시야와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 필요한 사람들은 큰 글씨를 쓰는 것이다. (p .64)

토끼와 거북의 교훈은 컬렉션에도 적용된다. 컬렉션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숨을 몇만 번 토해내야 이를 수 있는 마라톤과 같다. 컬렉션은 천천히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되는 인생과 같다. 그래서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생의 교훈과 아름다움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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