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에 일찌기 그의 작품 [점과 선] 을 접했었다.  정밀한 시공간의 배열, 등장인물들의 이중적 정체성,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실.. 당시에 접했던 몇 권의 일본 추리소설 중에 란포의 [고도의 마인] 과 함께 내게 상당한 임팩트를 주었던 작품이었다.  굳이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분류치 않더라도 순수 추리문학의 향기와 미스터리를 가미한 추리문학 역사상 손꼽히는 수작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내가 마쓰모토 세이쵸의 작품을 즐기는 이유는 몇가지가 된다.

 

첫째, 그의 작품에 깔리는 시대적 배경이다.  일본의 근대화가 막 시작되는 19세기 중후반의 메이지시대와 그 후 20세기초 제국주의의 물결에 휩싸여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가 다양한 정체성을 띄고 술렁이는 시기, 그 반세기 정도의 시기에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평범한 일본인들이 부딪는 소소한 일상의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펼쳐 놓기 때문이다.  그건 일본 근대화 역사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두번째는, 그의 작품은 예외없이 마치 작가 자신이 겪었거나 실제 타인이 겪은 체험적 사건을 일기체 형식으로 표현해 놓아 독자로 하여금 작품속에 제 3 의 등장인물로 흡입되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3D 영화같은 감흥을 준다는 것이다.  이번 걸작단편 컬렉션의 대다수 작품이 그런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접한 그의 걸작단편 컬렉션에는 위에서 말한 그의 작품들이 가진 특징들이 가장 잘 표현된 단편들로 포함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의 세편, [사이고사쓰], [국화베게] 그리고 [불의 기억] 은 후대 마쓰모토 세이쵸 상을 수상한 신진작가들이 추천하였듯이 순수문학의 향기에다 추리소설적 미스터리 흥취를 가미한 수작들이다.  우울하고 암울한 시대적 격랑 속에서 평범한 일본인들이 한숨을 쉬며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3D 처럼 선하다.  

현대 일본의 대표적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는 이야기 창작의 천재이다.. 탁월한 소설가 중에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스킬이 뛰어난 경우도 있는데 그는 이야기 자체를 창조하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적인 멜로 스릴러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은 이미 많은 작품을 접해 왔으나 이 작품은 또 다른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3권짜리의 기나긴 여정을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무리했다.  주인공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30세까지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다분히 대하드라마라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도대체 그는 이런 기묘하고 뉘앙스 진한 이야기를 어디서 구상해 오는 것일까.  3권의 이야기가 대단원에 이르면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은 사건들과 그 내면에 깔린 복선,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캐릭터가 뿜어내는 독특한 향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돈하여 하나의 감동있는 큰 이야기로 엮어내는 기량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주인공은 두사람, 유키호와 료지이다.  그 두사람의 캐릭터는 더 이상 어찌 손을 내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뚜렷하다.  사실 2권에 접어들면서 사건의 진상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숨을 죽이고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두사람이 저지를, 혹은 마주칠 사건들이 너무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 두사람에 대한 나의 연민과 안타까움이 하나의 공감으로 승화하여 그들의 마지막이 과연 내가 바라는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어떤 것으로 그리고 있었을까.

 

이 작품에는 작가가 전기, 전자, 컴퓨터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다는 흔적이 녹아 있다.  그런 점에서 더욱 그가 존경스럽다.

 

이 작품이 작가의 작품 중 최고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개인적으로...

공포소설의 대가 기시 유스케, 그의 작품들은 "검은 집" 에서 보았듯이 소름을 돋게 하는 공포와 긴박감 넘치는 스릴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다소 황당한 배경, 호주의 어느 오지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낙오된 9명의 등장인물, 사건의 조종자는 그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고 심지어 서로를 잡아먹는 식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모티브를 제공한다.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 한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고생의 댓가를 지불한다. 

 

언뜻 보면 무슨 환상 판타지, 무협소설이나 단순한 호러소설쯤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말도 안되는 소재와 배경으로 그저 독자를 유치한 생존게임에 몰입하게 하는 만화같은 소설로 보인다.   생존의 방식은 더욱 엽기적이다.  사람이 사람을 뜯어 먹는다.  읽는 내내 찝찝하고 어둡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몇가지 매력이 돋보인다.

 

첫째는 추리소설적인 짜임새가 갖추어져 있다.  우선 주어진 공간적 배경에 독자들은 어리둥절해 한다.  그러면서 이에 어떤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의문을 갖는다.  결국 말미에서는 이러한 의혹에 설득력있는 대답을 내 놓는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행동 하나하나에 합리적인 추리과정이 도입된다. 

 

둘째, 다양한 지구과학의 상식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어 "지식을 습득하는 기쁨" 이 쏠쏠하다.  거기다 일종의 게임기를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는 스킬도 상당히 생소하다.  그런 점들이 잔혹한 장면들을 희화적으로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다.  소설은 모름지기 재미있어야 한다.   엽기적인 내용에 비해 상당히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하여 끝 페이지에 이르는 동안 읽기를 멈출 수가 없게 만든다.  그게 최고의 장점이다.

 

정통 일본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