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도 작고, 평범해서 그저 친숙하고 편안하게만 느껴지는 한옥에 서양건축 미학을 뛰어넘는 건축 철학이 녹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한옥을 감상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는 작품이다.

우리 것이라고 무조건 추켜세우는 자의적 논리가 아니고, 칸트, 스피노자, 데카르트, 하이데거, 뒬레즈 등 철학자와 모네 등 미술가 등의 철학, 미학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설명해주고 있다. 한옥에 왜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마당, 지붕의 선, 추녀 등과 자연을 복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한옥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한옥의 발전 과정에서 구들이 결정적 역활을 했다는 설명이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었다.

이상현, 한옥, 건축미, 구들

이병주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 느꼈던 "천재"의 면목을 이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방대한 "다독" 만으로 이렇게 풍부한 지식을 습득하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어느 평론가의 의견처럼, 이병주 작자의 작품은 "박물지"와도 같다는데 동의 할 수 밖에 없겠다.

 

지리산, 그해5월, 산하 등과는 다르게 이 작품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시민적인 주인공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지극히 소시민적인(주인공은 이러한 근성을 부정하고 있지만) 주인공의 성향에는 나름대로 뚜렷한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 확실한 목표가 있으며 수긍할 수 밖에 없게하는 논리성이 있다. 그렇기에 그가 성향을 바꿀 수 없을까 하는 독자로서의 기대는 허무하다.

 

갑신정병의 주역 서재필 선생은 십몇세에 장원급제하여 당상관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갑신정변에 실패 후 20여세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우경야독으로 교수의 직을 얻게되나, 그의 가족은 음독, 참수, 배고픔으로 모두 죽고만다. 이름이 같음으로 인하여 이 인물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주인공은, 그와는 다른 인생관을 갖게된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유용인보다는 무용인으로서, 가난하되 궁하지는 않은 삶, 가족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의 근원을 아예 만들지 않은 것, 가장 큰 불행의 처지에서 행복을 찿는 것 등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그러한 삶을 산다고 해서 사회의 부조리, 타인의 불행과 전혀 무관할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한계 아니겠는가. 그의 삶에는 70, 80년대의 시대적 불행이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서울 명문대 출신인 주인공은 500명중 1등 성적으로 신문사 교정부에 입사한다. 그곳에서 담대한 성격의 우동규 부장, 또 다른 인생의 아픔을 품고 상제교를 만든 윤두명 등의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차진희라는 여직원과 연인이 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주인공에게는 뜻하지 않게 많은 여인들과의 짧고도 깊은 인연이 맺어지게 되는데, 대부분 창녀다. 일생만녀를 꿈꾸는 동료 박동수와 같은 호색 방탕아의 기질이 없는 그로서는 그러한 인연을 달갑게 여길 까닭이야 없었겠지만, 인연은 그의 인생을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게 만든다. 동료 안민숙과의 인연이 그렇고 창녀 김소영이나 양공주 김소향이 그렇고, 차민희와의 결별, 아내 정명욱과의 만남이 그렇다.

소설을 써보겠다는 목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주인공은 소설의 역할이나 가치가 무었인지에 대한 문제에 집착하고, 차진희와의 만남이 동기가 된 "행복"이라는 문제에 관심 갖고 행복을 정의 내리고자 한다.

북악산에서 박문혜를 만나 두어번 만남을 가진 후 스웨덴으로 떠나는 공항에서 감옥에 있는 과거 약혼자 서상복이라는 사람을 만나 달라는 부탁을 받아, 형무소에가서 서상복과 면회를 하는데, 현실을 부정하는 그의 태도는 유치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태원 술집에 들른게 인연이되어 하룻밤 같이했던 양공주 김소향. 그녀는 주인공이 결혼하기 이틀전에 그를 만나 둘 사이에 아기가 태어났음을 알리고, 그의 재산을 주인공에게 남긴 후 미국으로 떠난다. 김소향이 남겨주고 간 아파트에서 자살할 결심을 하고 찿아든 임선희를 알게되어 그녀의 정념에 빠진다(이쯤되면 주인공의 여성 편력에 식상하게되고 지겨움까지 느껴진다).

구두닦이 소년에게 동정심으로 주었던 어머니 치료비가 단서가 되어 간첩으로 몰려 두어달간 옥고를 치르게되고, 그 무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간 지나쳤던 많은 여인들이 동원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아내 정명욱도 이러한 정황을 모두 파악하게 된다. 출옥 후 실의와 우울증에 빠진 주인공은 아내와 박문혜의 권유로 스웨덴 우프살라로 유학길에 오른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에서 "어떠한 스캔들도 이병주 작가의 글을 통하면 로맨드로 화한다"는 작중 인물의 대화를 끼워 넣고 있는데, 그 말은 이 작품 주인공의 여성편력기를 빗댄말일까?

 

주인공과 대칭적인 성격의 인물이 조카인 서형식이다. 권력지향적,실천적, 합목적, 단정적, 유머러스한 인물로 묘사된다. 비슷한 학벌과 지적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세상에서 지향하는 바가 서로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지만, 이 둘은 서로를 멸시하기보다는 상호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다. 자신의 결점을 서로 보완하고 있다거나, 잠재의식의 대리만족에 대한 암묵적인 동조일까?

 

차진희와 시작했던 행복어사전 만들기는 미완이다. 행복은 어떠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완성될 수 없는, 상상의 유토피아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인간관계를 도외시한 독자적인 행복의 추구는 허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일까?

 

 

행복어사전, 이병주

 

프랑스인들이 꼽는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누구일까? 지금껏 이런 질문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김병주의 소설 "그해 5월"에서 주인공이 박정희와 대비되는 인물로 드골을 꼽고 그의 군인으로서의 신념과 양심, 애국심, 정치력, 도덕성을 박정희와 비교 평가하는 내용을 접하게 되면서 드골에 관시을 갖게 되었다. 

5.16 구데타가 일어난 1961년에 드골은 프랑스의 대통령직에 있었고,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이었기에 비교 인물로서 적당하였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이 두사람의 철학과 도덕심, 신념, 정의감, 행동방식에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의 등장이 우리나라에는 불행의 시작이었다면, 드골은 현재의 프랑스의 자존심과 자유를 있게 한 마지막 영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양국의 역사적 차이에 있는 것일까? 국민의 민주적 역량 수준에 있는 것일까? 주변 외세의 영향력 때문이었을까?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샤를 앙드레 조제프 마리 드골은 1890년 11월 프랑스 북부 플랑드르 지방의 오래된 도시 릴에서 태어났다. 교육자였던 아버지 앙리 드골과 모친 잔 마리 드골의 셋째로 태어나 카돌릭적 분위기의 가정에서 성장했다.

드골은 학창시절에 학업성적면에서는 그렇게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신념이 강하고 학구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드골은 자신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과 동일시하는 다소 운명론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신념은 그의 처세의 중심적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1차 세계대전, 사관학교, 육군내학을 거치며 미래 전쟁 양상을 연구하고, 이에 맞는 전쟁전략을 정부에 권고하지만, 거만하고 독선적인 성향으로 인해 많은 적을 만들었던 이유로 그의 요구는 모두 무시당한다.

드골의 예상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독일이 기갑사단을 중심으로 맹렬한 기세로 프랑스 방어선을 돌파하자, 프랑스 페탱은 항복하고 친나치 비시정권이 들어선다.

처칠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망명한 드골은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로 부상하지만, 국내 비시정권은 결석재판으로 탈영등의 죄목으로 드골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유일한 군사적, 재정적, 정치적 후원자였던 처칠과도 타협을 거부하며, 프랑스의 존엄성을 지키기위해 여러차례 신경전을 벌이기고 하고, 미국 행정부와도 타협을 거부한다. 영국내 프랑스군과 식민지 프랑스를 규합하여 세력을 확장한 드골은 1944년8월 프랑스군을 이끌고 파리에 입성하는데 성공한다. 이 후 드골은 독일 나치에 협력했던 정치인을 비롯하여 800여명을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하였고, 부역혐의가 있는 수천명이 즉결 처형을 당한다. 비시정권의 핵심인물이었던 페탱은 종신형, 라발은 사형을 선고 받는다.

국민의 영웅이된 드골은 최고의 통치권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선택은 국민에게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은퇴를 하고 다시 정계에 진출할 때를 기다리게 된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독립운동이 격화됨에 따라 정부가 정세 수습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정부는 1958년에 드골을 대통령으로 추대한다. 어찌보면 독재적인 성격이 강한 대통령 중심의 통치체계를 선호한 드골은 1969년에 당시의 정치 분위기를 감안하여 대통령직을 그만둔다. 이듬해인 1970년11월, 80 세 생일을 13일 앞두고 복부 대동맥 파열로 사망한다. 

 

군인, 정치인의 철학, 신념, 도덕성이 한 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가와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었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프랑스는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아닙니다.
페이지 : 211

 

 

  

 

 

드골, 프랑스, 리더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