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를 잃은 날부터>라는 제목에 끌려 왠지 달달하면서 슬픈 멜로 영화 같은 내용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주인공 준성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보았다. 바보같이 왜 그녀를 끝까지 감싸주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다.‘남자들은 예쁘고 착해 보이고 어리면 모질지 못하고 저러는 거야? 에구 한심하기는….’하면서 말이다. 현실이 아닌 소설일 뿐인데 거기에 너무 몰두해버린 것이다.
여자 주인공 오서진은 아직 뜨지 못했으나 한 번에 스타가 되기를 희망하는 모델이다. 지금은 비록 홈쇼핑에 간간히 등장하며 속옷 모델 일을 하지만 감독들과의 친분으로 금방 스타가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스타가 되기 위해 명성이 높은 광고 영화 감독에게 몸을 내주는 행동도 한다. 그리고 버는 것보다 소비가 더 많은 그녀다. 쇼핑 중독이라고 할 만큼 사치스러운 그녀다. 여기 저기 사채를 쓰기도 하고 몇 번 본적 없는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도 거뜬히 돈을 빌려 쓴다.
남자 주인공 준성과 서진의 첫 만남은 준성이 선배를 만나기 위해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오서진이 창백한 얼굴로 앞 자리에 앉으며 자신의 집까지 데려다 주라고 하면서 시작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단 번에 거절할 것 같은데 주인공 준성 또한 여러 가지 생각 끝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 그녀는 광고 영화감독 육정수의 아이를 낙태하고 오는 길이었다. 며칠 뒤 그녀는 준성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둘은 사귀게 된다. 그리고 준성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그 후 준성의 집으로 사채업자가 들이닥치기도 하고, 몇 번 보지 않은 선배의 와이프 돈도 빌려 쓰는 등 돈으로 인한 일이 계속 벌어진다. 준성은 이런 일이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부채를 다 해결한다. 가장 황당한 사건은 준성이 어떤 일로 유치장에 있는 동안 그녀는 스타를 꿈꾸며 다른 감독을 따라 홍콩에 갔다가 일이 잘못되어 호텔에서 돈이 없어 체크아웃 하지 못하고 묶여 있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준성은 홍콩까지 달려가 그 돈도 갚아준다.
준성은 소비문화를 괴물로 칭하면서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서진이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밟아가기를 권한다. 준성이 원하는 것은 행복, 즐거움, 안정감, 자신감, 편안함 이런 것들이라고 한다. 서진은 준성의 권유로 단역 오디션을 보게 되고 행복에 대해서 알아간다.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교도소를 나오게 되면 아마도 그녀는 달라져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최인석의 날카롭고도 매혹적인 문체로 풀어낸 이 작품 속으로 차가운 이 겨울 함께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