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삼국지는 일본 코에이사에서 11번째 시리즈까지 출시한 pc게임 삼국지와 10 여년 전에 4번 정도 완독했던 이문열의 삼국지 10권이 전부였다. 그 동안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다시금 장연 편역의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를 접하게 되었다.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560페이지의 길지 않은 분량(규격 또한 이 책이 128*188mm인데 비해 일반 서적은 153*224mm이다)의 한 권짜리 책이다.

편역자인 장연은 머리말에서 방대한 분량의 삼국지에서 역사적인 진실에서 벗어난 부분은 생략했고, 반복되는 전투의 세세한 묘사도 가능한 한 압축했다고 말한다. 한 권으로 삼국지를 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책은 어느 정도는 그러한 편역자의 의도를 잘 소화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다만 나처럼 일반인들 가운데 이문열의 삼국지, 본 삼국지, 정사 삼국지 등 한 권으로 요약한 삼국지가 아닌 삼국지의 모든 내용을 담은 시리즈 가운데 하나라도 다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2% 부족한 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 고전 번역본은 원본의 내용으로부터 가감이 없는 상태여야 된다는 편견을 가진 독자로써 장연 편역의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는 읽기 전부터 어느 정도의 실망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먼저 전투장면을 지나치게 줄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읽으면서 이야기의 전개가 끊기는 느낌 또한 빈번하다.

 

한가지 더 지적해야 될 부분이라면 삼국시대의 세력도에 등장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지도는 남북조 시대와 일치한듯한 인상을 주어서 실망스럽다. 비록 중국역사가 전공은 아니지만 중국의 삼국시대가 184-280년의 시기를 다룬다는 것을 참고로 했을 때 지도상의 고구려의 세력판도가 지나치게 확장되었다는 것을 누구도 알수있을것이다. 3세기경 위의 관구검에게 고구려가 침입을 당할 때의 왕은 동천왕이었는데 그때의 고구려는 이 책의 지도에서처럼 만주일대를 장악한 세력을 드러낸 나라가 아니었다. 지도로만 보면 5세기의 고구려의 세력지도를 보는듯하다(3세기와 5세기의 고구려의 지도는 동북아역사재단의 홈페이지를 참조).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에는 각 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삼국지 깊이 읽기'가 있어서 나처럼 역사의 사실성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부분은 이 책의 장점이라고 보고 싶다. 예를 들어, 276 페이지에는 적벽대전의 진실에 대한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논의가 등장한다.

“방통은 정사 삼국지의 기록을 보면 당시 적벽대전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풀더미를 실은 배의 양쪽에 화살 10만여 대를 박히게 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최근 실험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조조군의 참패가 과연 동오군의 화공 때문이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학계에서는 전염병의 창궐을 또 하나의 유력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한가지 더 예를 들면 초선이라는 이름은 민간 전설에서 창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얼마전 블로그 친구가 정사 삼국지에 관해서 쓴 리뷰를 읽고 처음 알게 되었고, 이 책에서도 정사 삼국지를 들어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초선이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처럼 편역자는 각 장을 마무리하는 페이지에 정사 삼국지와의 비교를 통해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에 대한 역사성을 논의함으로써 독자에게 단순한 소설이 아닌 역사서로써의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는 바쁜 직장인에게 그리고 시간이 부족한 청소년에게는 쉽게 접근이 가능한 책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삼국지의 세계에 빠져들고자 하는 독자라면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정사 삼국지나 본 삼국지와 같은 시리즈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와 같은 시리즈는 이 책보다 훨씬 도움이 안되겠지만….  

영국에서 역사학자 이언 커쇼(Ian Kershaw)와 군사학 전문가 존 키건(John Keegan)은 꽤 알려진 인물들이다. 존 키건이 1,2차세계대전사에 관한 책을 저술하는 반면, 이언 커쇼는 특히 그의 저서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이나 특별히 히틀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일반인에 관계없이 추천하는 책의 저자에 그의 이름이 꼭 오르곤 한다. 히틀러라는 인물은 한국의 역사 인물보다도 더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의 인물 가운데 들으면 생소한 이름은 있을지라도 히틀러에 대해서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히틀러가 어떻게 독일의 총통이 되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결국에는 무슨 이유에서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는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찾을 수 있는 히틀러 관련서적 대부분이 2차 세계대전중의 일들, 즉 체코슬로바키아 침공과 뒤이은 전격전, 그리고 프랑스점령 등 전쟁시뮬레이션게임과도 같은 전개로 일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 서평자는 무언가 다른 것을 원했다. 분명히 역사학에서 어떠한 사건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밝히는것이 역사학이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하는데 2차 세계대전을 독일이 일으킨 데에는 히틀러와 관련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짐작에서였다. 그와 관련해서 그 많은 히틀러에 관한 책 가운데 어떤 책이 나한테 맞는지, 혹시 너무 어려워서 읽다가 실증 나는 것은 아닌지, 또는 지나치게 비학문적인것은 아닌지 등등의 물음을 책을 고르며 하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어느 독자라도 이러한 질문들을 가슴속에서 반복하며 책을 고르지 않을까?

 

현대사나 전쟁사가 전공이 아닌 내가 히틀러에 관한 책을 고를 때 위의 질문들을 마음속에서 되풀이하며 서점을 며칠간 들락날락했었던 기억이 난다. 고대역사라면 누군가에게 추천할 도서목록을 생각하는데 그리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서 전공자들의 분야가 따로 있는 거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곤 했다. 우리 모두가 모든 분야에 전공자일순 없으니까…

 

이언 커쇼가 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라는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그의 책 ‘히틀러’ 2권(hubris’오만’, nemesis ‘파멸’)을 4만원 정도에 영국에서 사게 된 건 그렇게 거의 우연이었다. 최근에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비록 영어원서를 먼저 접하긴 했지만 책을 읽은 소감을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두달 정도 읽으며 느낀 점이라면 제1권 hubris(한국어 번역본은 ‘의지’로 번역했으나 hubris의 그리스어 의미는 일반적으로 ‘오만’이라는 뜻)를 넘기기가 꽤 어려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역사학자가 쓴 히틀러 서적이 쉬운 말이나 간단하게 요약해서 대충 일반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책들과는 거리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었지만 전쟁발발전까지의 히틀러의 권력상승을 다룬 1권은 꽤 지루했던 것은 사실이다(2권은 그나마 좀 덜하지만). 물론 지루했다는 것은 곧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철저하게 조사하고 고증을 거친 좋은 책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전쟁사를 전공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나 같은 비전공자가 2000페이지가 넘는 양의 책을 읽으려고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두 권에 11만원이라는 가격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영어원서가 온라인에서도 구입이 가능한 것을 감안하면 2배정도로 가격이 비싼 편이다. 양장이 아닌 페이퍼백으로 출간하고 책의 가격을 낮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공자에게 이 책은 필수이지만 일반독자들에게는 지루함을 감수할 용기가 없다면 다른 책을 찾는 것(예를 들어 KODEF 에서 나온 전쟁사시리즈)도 현명한 방법일수 있다. 그러나 걸작이라고 불릴만한 책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언 커쇼의 ‘히틀러’는 읽고난뒤의 희열감에서 어느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뿌듯함을 안겨주는 좋은 책이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기적의 90분’(90 minutes in heaven, 2004)을 처음 접한 것은 2005년경으로 외국에서 살고 있던 중에 영국인 친구로부터 우연히 이 책에 관해 알게 되었고,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라는 인기와 기독교서적 가운데서 최고의 판매를 올렸다는 등의 호평이 이어지던 때였다. 물론 그때는 한국어 번역본이 없었고 곧이어 ‘천국에서 90분’이라는 한글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외국의 베스트셀러가 곧 한국에서도 같은 인기를 누리는 법이란 없다는 징크스(헐리우드 영화 '백 투더 퓨처'의 마이클 제이 폭스가 쓴 ‘Lucky man’도 그러한 경우이다)를 남긴 채 한동안 잊혀졌었다.

 

귀국한 뒤 ‘천국에서 90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한국어 번역본을 3년 전쯤에 아는 지인들에게 이야기하고 또 선물을 한적이 있었다. 몇몇 분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책을 읽은 뒤에도 그 책이 주는 감동을 나와 공유하고자 했던 반면에, 다른 분들은 책의 제목이 주는 제목에 미리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 한국교회의 역사를 돌아볼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예수 천국 불신 지옥’과 같은 일방적인 선교운동의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가 낳은 결과로 천국에 대한 잠재의식 속에 있던 거부감 같은 것이 기독교인들에게도 아직 남아있는 것인지…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그런 책이 2010년 다시금 새로운 제목을 가지고 등장한 데에는 어떠한 배경이 있었는지 출판사의 의도는 모르지만 최근 오츠 슈이치가 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죽음이라는 예민한 소재가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제는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서 친한사람들간에도 죽음에 대한 논의나 대화가 더 이상 실례가 되거나 먼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되는 사회현상인지도 모른다.

 

‘기적의 90분’은 제목이 주는 첫인상이나 내용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저자이자 책 속에서 천국을 경험한(경험했다고 저자가 믿고 있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이가 목회자이고 그를 많은 수술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그가 가진 신앙심이었다. 임사현상(near-death experience)이 의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것인지, 또는 정말로 저자 돈파이퍼뿐만 아니라 비슷한 체험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의 신뢰성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 또는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한 사람들의 체험담은 더 이상 남의 일로 여기고 흘려들을 이야기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현대인 누구나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또는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돈 파이퍼의 ‘기적의 90분’을 단순히 천국을 믿는 기독교인들 만을 위한 책이라고 무시해야만 할까? 아니면 저자가 그의 경험을 나누고자 했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흔히들 사고를 당하거나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이후에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신문이나 미디어상의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사실 언제 어느 순간에 죽을 지도 모르고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돈 파이퍼는 잠깐 멈추어 서서 나의 인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방향이 옳은 것인지 잠시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본다. 이 책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서의 정신적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로는 충분한 것은 아닐까? 굳이 임사현상의 경험담이 신빙성이 있는가 혹은 천국이 정말 있는가 등등의 물음들에 집착해서 이 책이 진정으로 주고자 하는 의미를 놓친다면 그것이 삶에서 더 귀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일은 아닐는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