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나’는 책 속에서 이름이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아마도 저자는 ‘나’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보잘것없는 신분과 현재의 상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야기 속에서 이름으로만 등장하는 레베카와의 상대적인 대조적 효과를 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몬테 까를로에서 맥심 드 윈터와 갑작스런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게 되고, 신혼여행을 마친 후에 그의 저택인 맨덜리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드 윈터 부인으로의 행복한 삶을 기대했던 ‘나’는 그 기대가 꿈이었음을 점점 깨닫게 된다. 사고사로 죽었다던 레베카를 잊지 못하는 덴버스 부인과 다른 하녀들은 레베카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는 편견 속에 ‘나’를 무시하고, 믿었던 맥심 드 윈터도 사실은 ‘나’를진정으로 사랑해서 결혼했다기 보다는 슬쓸한 마음을 달래고 맨덜리의 저택의 안주인이 필요해서 결혼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안 보이는듯하지만 등장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던 그러한 긴장감은 가장 무도회가 맨덜리에서 열리면서 점점 고조되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 있던 초상화에 나오는 캐롤라인 드 윈터의 복장을 가장 무도회에서 똑같이 입고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계획한다. 내가 가장 무도회에 등장하자 기막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맥심은 움직이지 않았다..나는 한 발을 계단에 내려놓은 채 잠시 머뭇거렸다…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오?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맥심의 누나인 베아트리스는 ‘나’에게 맥심이 그토록 놀란 이유를 설명한다.
“그 드레스, 발코니의 그림에서 베낀 그 드레스는 맨덜리의 지난번 가장 무도회에서 레베카가 입었던 옷이야. 아주 똑같이 말이야...”
가장 무도회에서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야기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갑작스런 레베카의 시신의 발견으로 그 절정에 달한다.
“레베카는 물에 빠져 죽은 게 아니야. 내가 죽였소… 자, 이래도 내 눈을 바라보며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소?”
전개되던 이야기의 반전 가운데 하나는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되고 나서야 맥심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고백을 처음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고백은 맥심과 ‘나’의 관계가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을 거라는 그의 생각을 담은 고백인지도 모른다. 맥심이 레베카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여전히 그리워한다고 ‘내’가 그 동안 착각했음을 맥심의 고백으로 알게 된다. 맥심은 레베카를 한번도 사랑한적이 없었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교활함을 미워했던 것이다.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됨으로 인해서 심리가 다시 열리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맥심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온다. 과연 맥심은 레베카를 살해한 것일까?...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는 영화를 먼저 보고 난 뒤에 원작 소설을 읽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히치콕의 유명한 동명의 영화 때문에 원작 소설에 실망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 반 기대 반이었다.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영화에서 느꼈던 감동 그 이상이었다. 영화는 소설을 다소 압축해놓은 듯한 인상을 풍기고 한정된 시간 안에 연출된 장면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한 감이 있다. 히치콕의 영화를 보고 흥미를 느꼈던 독자라면 듀 모리에의 원작 소설이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전, 서스펜스, 스릴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 바로 ‘레베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