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분명히 장편소설이라고 적혀져 있다. 앞의 목차에는 네 개의 카테고리가 나누어져 있다. 소설의 소제목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두 번째 이야기를 읽는데 어라.. 연결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 읽어가다 보니 첫 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주인공의 이야기도 또 나오는 듯 하다. 분명 장편소설이라고 했는데 단편소설을 네 개를 이은 그런 장편소설의 느낌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리고 또 이야기 속의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내 자신이 어느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건지 몽롱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읽기를 시도해도 나는 어느 틈엔가 작가가 지어 놓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 또는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빠져 들어가고 있고 내 정신 상태는 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인 어리마리한 상태가 되어 간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경향을 띠고 있다. 여섯 명의 카페회원이 하루를 보내기로 하고 산장에 모였는데 정작 주최자는 등장하지 않고 한 명씩 죽어간다는 밀실살인사건의 전형적인 케이스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은 채 꿈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다는 암시만을 던져준 채 이야기는 두 번째로 넘어간다. 사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을 기대한다면 이 부분에서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뻔한 이야기,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그런 스토리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그 상태에서 허무하게 끝이 나버리기 때문에 누가 범인인가를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긴장감이 한 순간에 풀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일종의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가미한 소설로 봐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실망하지 않고 두 번째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다섯 개의 이야기와 다섯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각각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점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묘하게 얽히고 섥혀서 뒤로 가면 갈수록 이 이야기가 실제로 누구의 이야기였는지도 모른 채 점점 변형이 되어간다. 예로부터 전해오던 전래동화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실제로 자신의 이야기인 듯 늘어놓지만 그 이야기는 자신이 누군가에서 들었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한 사람도 자신이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도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어떤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가장 정확하게 맞을 것 같다. 

세 번째 π는 이 네 개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느낌이었다. 오히려 첫 번째 이야기보다도 더 묘한 흥미가 느껴졌다. 번역 일을 하고 있는 주인공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부분이라던가 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 M의 이야기라던가 또는 그 M의 직업조차도 번역가여서 그가 번역하고 있는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와 맞물려 있고 그와 같이 지내는 여자의 이야기는 하루라는 주인공의 또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헷갈릴 법 하지만 묘하게 헷갈리지 않는 내가 어느 시점에서 읽고 있는지 알듯 말듯한 그런 묘미가 전해지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 책이 영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이 된다면 이 책을 읽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정말 원어민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 드는 이야기이다. 이래서 번역이 되지 않는 책을 읽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가장 확실히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 이야기인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이 책의 제목과도 같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미스터리소설 한 권. 아무런 표시도 없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은 계속 읽고 싶은 느낌을 받고 빌리려고 하지만 연체된 다른 책 때문에 빌리지 못하고 결국 어딘가에 숨겨두게 된다. 이것은 나도 도서관에 갔을 때 가끔 하곤 하는데 내가 읽고 있던 책을 다른 사람이 빌려갈까봐 일부러 뜬금없는 곳에 놓아두는 것이다. 나만이 알 수 있는 어떤 한 곳. 그러나 주인공도 나도 결국 실패하고 만다. 항상 책들은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던가 또는 누가 빌려가 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병으로 갑자기 한동안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주인공이 그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내용이 된다. 가끔 상상하는 모든 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주로 그러한 경향은 꿈에서 일어나는 편인데 그 모든 꿈들이 사실이 된다면 아주 굉장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꿈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작가는 꿈을 통해 또는 이야기를 통해 꿈과 사실의 연관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전에 여러 개의 동화를 이어서 생각해 본적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길을 가다가 회오리에 휩쓸려 캔사스로 날아가버리고 그곳에서 마녀를 만나서 저주에 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가 일곱난장이의 도움으로 되살아나서 제비를 고쳐주고 박을 탔다던가... 이런 식으로 계속 연결되는 이야기는 내가 동화를 알고 있는 한 계속되는 이야기였는데,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읽으면서 나는 그때 내가 생각했던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끝이 없는 이야기. 내가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한 계속 되는 그런 이야기. 이 소설은 그 이야기들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리고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고전 추리소설에서 등장하는 폐쇄적인 장소를 현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플롯의 전개가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랜슬롯이라는 웃긴 이름을 가진 한 남자가 있다. 길을 걷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이힐에 머리를 맞고 따지러 올라간 빌라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 그날로 집에서 나온다. 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운명의 상대는 이리나... 이리나는 랜슬롯이라는 이름을 듣고 너무 웃긴 이름이라고 하면서 폴이라는 자신만의 이름을 랜슬롯에게 명명한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가진 부인이 있었지만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 편집일을 하는 그로서는 교사 일을 하는 부인과 그다지 다툴 일도 없었고 성격은 달랐지만 각기 그냥 자신의 일을 하면서 지내왔는데 어느 날 운명적인 상대를 만난 것이다. 아니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리나를 만나서 다시 결혼하고 살아간 지 2년여. 그가 공항에 이리나를 데려다 주고 삼십 분이 지나지 않아 경찰로부터 전화가 온다. 이리나가 죽었다고. 그것도 공항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나신의 차도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의 차를 타고 강에 빠져 죽은 것이 확인되었다고. 어찌 된 일일까? 운명의 상대였다고 생각했던 이리나에 관해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느끼기도 전에 죽었다고 말하던 이리나의 아버지가 찾아온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며 이야기를 짧게 끊내지만 결국 그를 다시 만나러 가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이리나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자친구와 도망을 치고 물건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이야기들. 한국판 홍길동이라고 해야 하나. 랜슬롯은 점점 알지 못한 공허감에 빠지고 자신이 알던 이리나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집을 부동산에 내놓는데 중개인으로부터 이리나가 집을 보러 다녔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도 중개인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자신의 남편은 교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큰집을 얻길 원했다는데 도대체 그 교수는 누구이며 나란 존재는 무엇인지 헷갈리던 랜슬롯은 결국 마지막으로 이리나가 보았다던 그 집을 보러 간다. 그러나 중계인과 같이 보러 간 그 집은 하루아침에 폭파되어버리고 흔적도 없어지고 경찰에서는 이리나가 차에 앉아 빠져 익사된 것이 아니라 뭔가에 중독되어 죽었다는 말을 전해준다. 그렇다면 이리나를 죽인 것은 누구란 말인가...

 

번역자는 이 소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느낌을 준다고 후기에 적어두었다. 랜슬롯이 주위에 있는 물건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는다던 지 또는 자신이 혼자만의 상상을 즐긴다던 지 하는 것 자체가 비교될 수 있겠다. 초현실주의라고 해야 하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속의 줄거리가 독자로서 처음에는 따라 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다만 딱 떨어지는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환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매력이 있다. 랜슬롯이 그렇게 알고 싶고 따라가고 싶어했던 이리나는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삶이 있었고 랜슬롯과 겹쳐지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랜슬롯과 이리나, 두 인물의 캐릭터 묘사가 섬세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심리소설이 가지고 있는 오묘한 긴장감이 소설 전반에 흐르는 점이 ‘그리고 투명한 내 마음’을 읽는 독자를 사로잡는 프랑스 소설 특유의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카모메 식당’. 그냥 처음 듣기에는 별 특징이 없는 조금은 촌스러운 식당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카모메라는 뜻은 일본어로 갈매기를 뜻하기도 하니 결국은 갈매기 식당이라는 엄청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식당이지만 정작 이 곳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은 따뜻하다. 추운 나라 핀란드에 뚱보 아줌마가 하고 있던 식당이 문을 닫고 다시 열린 식당에서는 아이처럼 보이는 사람 한 명이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것도 동양사람이... 흔하지 않은 동양사람에 낯을 많이 가리는 핀란드 사람들은 가까이 가지 않고 동정만 살피며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그 여자의 이름을 따서 어린이 식당이라는 별칭을 붙인다. 가게의 주인은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나이가 지난 서른 후반의 사치에. 그녀는 도장을 하는 아버지로부터 무술을 배우며 소질이 있어서 상도 받았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요리를 하게 되면서 자신이 요리에도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계속 공부를 한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돈을 벌기도 하지만 목표는 하나. 바로 자신만의 따뜻한 음식이 담긴 식당을 내는 것. 그러나 돈은 모이지 않고 요즘의 퓨전음식과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자 사치에는 결국 외국에서 음식점을 낼 생각을 하고 아버지의 제자였던 핀란드의 젊은이를 생각하고 연락을 해서 일이 잘 풀리게 된다. 문제는 결국 돈인데 그러던 어느 날 당첨된 복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기 전날에야 아버지한테 알리고 떠난다. 그렇게 떠나온 핀란드에서 카모메 식당을 열었던 것인데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일본어를 배워 조금 할 줄 아는 토미만 단골로 와서 놀다가는 카모메 식당은 개점휴업 상태를 유지한다.

토미가 좋아하는 독수리오형제의 주제가 가사를 알기 위하여 찾아간 서점에서 우연히 같은 일본인인 미도리를 만나서 주제가는 물론이거니와 그날로 사치에는 미도리를 데려와서 같이 살게 된다. 마흔 초반의 미도리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학교를 다니고 시키는 대로 회사를 다녔고 선도 봤지만 결혼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나이만 들어서 회사가 문닫고 부모님은 요양원에 계시고 자신은 낙동강오리알 신세가 된다. 그러나 형제들은 저마다의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집에는 오지 말라는 암시를 하고 그렇게 남겨진 미도리는 오기가 생겨 지도 위에 아무거나 찍고 떠나온 곳이 핀란드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치에와 미도리는 함께 생활을 하게 되고 작은 몸집의 사치에와는 달리 등치가 큰 미도리는 묘하게도 어울리는 한 쌍이 된다.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카모메 식당의 일도 도와주게 되고 그렇게 둘이서 잘 살고 있던 어느 날 가게에 또 다른 일본여자가 한 명이 등장을 한다.

핀란드에 여행을 온 마사코는 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짐을 잃어버리고 그 얘기를 하면서 식당에 있었던 것인데 다행히도 며칠 후 짐을 찾게 되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녀는 부모님이 하시던 맨션을 물려받아 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다 날려버리고 작은 집 하나만을 자신에게 남겨주어 화가 난 나머지 그냥 무작정 나온 것인데 텔레비전에서 한 프로그램을 보고 이곳에 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답답함을 털어버리게 된 마사코도 이제는 완전히 자리가 잡힌 카모메 식당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남게 되고 이렇게 세 여자가 모이게 된다. 세 여자가 모여 운영을 하는 카모메 식당은 처음엔 사치에 혼자만의 것이었지만 토미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또한 한 사람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된다. 사치에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카모메 식당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 세 명의 여자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사치에는 혼자 남겨진 아버지가 계시고 미도리도 요양원에 부모님이 계시고 마사코는 동생들이 있다. 이 모든 가족들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이들은 언젠가는 일본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식당은 팔렸을 수도 또는 문을 닫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핀란드에 가서 카모메 식당이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식당에서 처음부터 사치에가 모든 사람에게 권했던 오니기리는 사치에에게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음식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모든 음식을 해야 했던 사치에에게 아버지는 운동회나 소풍날이면 꼭 오니기리를 만들어 주셨고 그 마음이 담긴 일본전통의 음식을 사치에는 그 머나먼 곳에서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고국을 떠나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핀란드에 와서 식당을 하지만 굳이 핀란드 음식이 아닌 오니기리를 메뉴로 고집한 데에는 아버지와의 끈끈한 정을 잊지 않으려는 숨은 가족애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문득 오니기리가 생각이 난다. 전통적으로 만든 가다랑어 포가 잔뜩 묻혀진 그런 오니기리를 수수한 카모메 식당에서 먹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