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윈슬렛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의 원작, 독일어권 소설 최초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1위,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도서..이렇듯 화려한 경력의 <더 리더>를 나는 영화보다는 책으로써 접했다. 대부분의 성공을 한 영화의 원작은 그 영화못지 않은 재미와 극적인 여운이 남는 경우가 많아 많은 기대를 갖고 책을 읽게 되었다.

 

열다섯 소년 미하엘과 서른여섯살의 한나의 만남은 시작된다. 미하엘은 한나의 작은 배려에 대한 감사로 한나를 찾아가면서 둘의 운명은 시작된다. 성숙한 여인과 미성년자의 육체적인 만남속에 서로의 내면을 보여줄 대화도 필요없고 군더더기도 필요없다. 아니..차마 물어보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다. 두 연인의 만남은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그리고 나란히 누워있기의 의식대로 이어진다. 한나와의 사랑전에 읽어야 하는 책은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집중하여 책을 읽는 도중에 욕망은 어느덧 사라진다. 하지만 그녀의 손길에 소년은 뜨거운 남자로 여인을 마주 대한다. 비밀스러운 사랑에 모든것이 한나에게만 향하고 있는 미하엘은 그녀에게 속하려고 하면서도 또한편으로는 부인하고 있다. 비밀스러운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내면에서는 부인하고 있다. 한나 역시 소년을 밀어내고 만다. 이유는 모른다. 소년을 만나 육체의 뜨거운 사랑을 하면서도 감정의 뜨거움은 보이지를 않는다. 그녀는 그녀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 소년을 그것을 깨어버리고 싶은 엄두조차 내지를 못한다.

어느날 갑자기 한나는 사라지게 되고, 미하엘은 온갖 혼란과 질문속에 성인으로 커간다. 과연 진정한 사랑을 한 것인지. 사랑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비정상적인 육체의 사랑만을 원하고 주었던 것인지..끝없는 질문과 자신에 대한 합법적인 결론을 반복하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법학을 전공하는 미하엘은 나치 전범으로 재판을 받게 된 한나를 재판장에서 만나게 된다. 재판을 보게 되면서 미하엘은 한나의 과거와 비밀을 알게된다. 하지만 역시나 나서지 못한다. 자신과의 과거를 연관지으면서 한나의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것때문에 한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지지만 한나는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만다. 미하엘은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내면과 세상과의 교류를 정지시켜 버린 듯한 삶을 산다. 그녀가 떠났던 그 순간부터 소년의 인생은 주어진 인생에서 다른 방향을 택하게 된 것일까.

미하엘은 수감된 한나에게 책읽기를 녹음하여 보낸다. 어느 여름날 수영장에서 그녀를 외면했던 기억, 재판장에서 그녀를 향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어리지만 한 남자였던 그의 죄책감이었을까..아니면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배려일까. 개인적인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이 그저 책만 녹음해서 보낸다. 소년의 모든 삶에 한나의 존재는 늘 있었다. 다른 여인들을 만나면서도 미하엘이라는 존재 안의 또다른 미하엘은 늘 한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에 나서지 못한다. 이것은 도덕심에??국 만남과 죽음이라는 결론이 이어지지만 미하엘 자신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오랜 여운이 남는다. 어린 소년과 성숙한 여인의 육체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외설적인 일임에도 후반부에서 보여지는 미하엘 자신에 대한 끝없는 질문, 그리고 물어보지 못하면서도 한나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들..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선택이 옳았을까에 대한 질문은 복잡한 미하엘의 내면과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한나가 도망치려 했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과 맞서왔던 것이고 그것에 지쳐가는 것이고 결국 그것에 동의하면서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까.

나치전범이라는 세계적인 범죄아래 이유없이 그냥 그 위치에 있어야 했던 한나의 모습은 여전히 아련하게 남아있다. 모든것을 밝힐 엄두조차 못내게 했던 그녀의 수치심, 그것은 타인이 보기에는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산이었으나 한나 자신은 세상 무엇보다도 어려운 산이었을 것이다.

여인이 소년에게 주었던 육체의 향락은 그녀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서 아닐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감추기 위해 싸웠기 때문에,  삶에 지쳐 소년에게 인생의 그 무엇도 말해줄 수 없는 그녀였기 때문이 아닐까.

비정상적인 사랑을 끌어냈던 그녀를 혐오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바로 질타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그녀를 이해한다고는 말 못하면서도 그건 아니었다라는 말도 바로 못하는 나의 생각이 그저 가슴이 아련해옴을 느낄 뿐이다.

<벤저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의 원작이 피츠제럴드의<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에서 이어진 이야기라는 점에 기대감과 함께 책을 접했다. 피츠제럴드는 여러 사람이 알고 있듯이 192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적인 작가이다. 재즈시대라고 일컫는 이 시대의 미국은 향락과 시가연기와 회색빛의 재즈바등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 시대를 그린 영화도 오랜 사랑을 받기도 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회색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산업화와 공업화로 물질 축적에 대한 욕망들이 가득했고, 이것을 잡기 위해 갱들이 출현하였고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끈적하면서도 우울한 재즈의 선율이 퍼지던 그런 시대였다. 즉 세계대전후의 미국 사회는 금전적인 풍요로움을 갖는 자와 그의 그림자에 가려진 자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회였다고나 할까.

이 시대를 살았던 피츠제럴드 자신이 "나는 완전한 호사스러움에 열망했고..."라고 말한점을 볼때 글쓰기로 부를 얻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일상과 그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욕망을 글에 담아내는 모습이 느껴진다.

 

160여편의 작품이 거의 단편소설이라는 점에서 피츠제럴드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호평과 함께 뛰어난 창조적인 에너지를 쓸데없는 단편에 쏟아부었다는 비판도 함께 듣는 작가이기도 하다. 피츠제럴드의 생애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고 살았던 탓에 단편에 매진할 수 밖에 없던 그의 창조력이 단편이지만 탄탄한 짜임새로 이루어진 그의 글은 읽은 이로 하여금 이야기속에 빠져들게 한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에서는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6편을 소개하고 있다. 유명한 영화의 원작인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비롯하여 <얼음궁전> <해변의 해적>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집으로의 짧은 여행> <해외여행>은 위에서도 언급했든이 단편소설이지만 매우 짜임새 있다는 느낌이 드는 글들이다. 피츠제럴드에 대해 모르는 독자들도 이 단편을 읽고 있는다면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더라고 그가 택한 획기적인 소재의 선택만으로도 피츠제럴드가 뛰어난 작가임을 알 수 있게 되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 모음집이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과 <집으로의 짧은 여행>은 환상소설로서 작가의 번뜻이는 창의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 즉 인간이 나이가 들어서 탄생한다는 것과 인간의 혼을 빼앗아 혼란스럽게 한다는 상상을 글로 표현한 점은 굉장하다.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와 <해외여행>에서는 당시 시대에 보여졌던 갑부들의 경박함, 비뚤어진 도덕성, 그리고 부에 대한 환상과 또다른 허망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얻은 풍요로움은 가치의 잣대가 없이 무분별한 향락으로 이어지고 그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결국은 피폐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더구나 해외여행에서 보여지는 도플갱어라는 소재는 그 당시에 생각할 수도 없었던 소재였지 않나 하는 점에서 작가의 대단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피츠제럴드 단편선2>를 통해 1920년대의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맹목적인 부와 이상만을 쫓아가는 인물들을 읽으면서 당시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다. 여러 영화를 통해 보왔던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어두운 골목길을 이 책을 읽어가면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좋은 이야기는 저절로 써지지만 나쁜 이야기는 억지로 써야 한다"라고 말한 피츠제럴드는 아마도 스스로의 재능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