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보았던 '킬링필드'는 나에게 영원히 남아있는 감동의 영화이다.

비오던 거리, 널려진 전쟁의 참혹한 모습, 그리고 존 레논의 '이매진'. 베트남 전쟁속에서 만난 뉴욕 타임스지 특파원 시드니 쉔버그와 현지 채용 기자 캄보디아인 디스 프란의 모습과 끈끈한 인간의 정은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장면이 고스란히 떠오르곤 한다.

 

추억의 팝송으로 이매진이 흘러나오면 우울한듯, 삶에 찌들어 있는 듯, 그러면서도 삶에 애착을 강하게 표현한 캄보디아 기자인 디스 프란의 모습은 늘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반전을 표현하던 이매진이라는 곡을 제목으로 설정했고, '아빠와 나, 존 레논을 구하러 뉴욕으로 떴다'라는 부제는 고민할 것 없이 이 책을 접하게 만드는 이유다. 영화를 통해 얻었던 그 가슴 저린듯한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고 싶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다.

 

21세기에 사는 쇼고는 아버지와 소원하다. 편하게 살고 자신의 주장만이 먼저인 젊은 세대와 세상의 규칙속에 정해진 룰대로만 사는 구시대의 대립. 엘리트 대학 출신의 승승장구하는 아버지는 아들의 자유로운 인생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와의 껄끄러운 상황때문에 쇼고는 혼자 자취를 하고 있고, 풀지 못하는 갑갑함으로 불평불만이 가득하려던 즈음 쇼고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1980년대로 '타임 슬립'이 된다. 새로운 세상에서 쇼고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대면하게 된다. 모든것이 완벽해 보였던 아버지였지만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은 사기당해 돈이나 뜯기고 여자에게나 차이는 한심한 사람이다. 21세기의 영악하고 꾀많은 젊은이 쇼고는 적절한 변명으로 젊은 날의 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되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엘리트 출신의 아버지 다이스케는 정해진 룰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좋은 대학, 일류 기업, 그리고 그 속에서의 승진등의 성공 보장등. 그렇기 때문에 공부와 거리가 먼 것에 관심을 보이는 아들을 제대로 봐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아왔던 세상만이 옳다는 신념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대해 아들의 소극적인 행동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미래의 아들과 과거의 아버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컴퓨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그리고 그에 따른 스파이의 등장, 그리고 아버지의 추억의 하나인 존레논의 존재..이야기는 나름 각각의 주제를 갖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현실에서 불만이 많던 쇼고가 과거에서는 모든 이들을 이끄는 천재적인 젊은이로 둔갑한 상황은 좀 억지라고 해야할까. 어른들이 공감하기에는 가벼운 내용으로 전개됨이 아쉽다.

더구나 존레논의 암살을 막으러 미국으로 떠나는 과정과 거기서 만나는 스파이에게서 벗어나는 상황은 마치 무슨 초등학생용 만화를 보는 듯 하다.

존레논의 암살을 막으러 떠났으면 그에 대한 확실한 이야기와 확실한 결말이 있어야하나 뭐..흐지부지이다.

 

모든 상황을 임기응변으로 대하는 아들의 태도 역시 과거로 갔기 때문에 천재로 둔갑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순진하고 미래는 영악함인가? 과거의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쇼고의 말을 의심도 없이 다 믿는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쇼고가 정해진 결말대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오지만 과거에서 천재적인 생각을 가진 자라면 과거에서 한번쯤 다시 살아봄직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비딱한 시선을 갖게 된다.

 

아버지와 세대차이가 크다고 어긋나던 아들이 아버지의 과거속에 뛰어들게 되면서, 아버지의 순순했던 젊은 시절과 자신이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또다른 면을 다시 보게 되었고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와 뭔가 모른 자신의 성장을 이루었다는 어쩌면 흔한 결말이겠지만, 이 소설을 통해 나 자신의 부모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기성세대라고 하면서 또는 세상에 안주하고 산다고 치부하기 전에 나의 부모 역시 나처럼 젊은 나이와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나이가 있었음을, 그리고 순진한 눈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할 때가 있었음을 생각각하게 하는 작은 계기를 주는 글인지도 모르겠다.

 

존레논과 그의 히트곡 이매진이 이 책에서 그닥 큰 자리를 차지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단지 존레논의 암살을 이유로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 그것에 큰 의미를 두어야 맞는 책이다. 장황하게 설명하는 다이스케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는 오히려 지루함을 주는 편이다. 컴퓨터를 접하고 있는 요즘의 사람들이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너무 장황하게 이끌어 가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금기에 도전한 특별한 여인의 흥미진진한 인생사'-책소개

'비스마르크 시대에서 바이마르 공화국 사이 의학의 황금기와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지적 충동, 삶의 진보를 위한 욕망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예스24 소개

 

이런 문구만 믿고 시대적 기본 지식이 없이 책을 접했다. 결과는...어렵다..난해하다..하지만 빠져들 수 밖에 없다..희곡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마틴 클루거 덕분에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빠른 호흡의 빠른 전개.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의미가 여운이 남는 연극의 한편을 보는 듯하다.

 

19세기 독일이 소설의 배경이다. 사실 의학 발달의 기반이 되었던 독일을 모른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더디다. 19세기 여성들의 활동을 상상하면서 읽는다면 그나마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

'헨리에타'

목수와 집시 여인의 딸로 태어난다. 당시의 의술등에 미루어 볼 때 출산과 동시에 목숨을 잃는 것은 다반사이지만 헨리에타의 아버지 파울은 알콜중독자이며  딸아이를 방관하는 자로 비춰진다. '엄마를 죽인 아이'라며 스스로를 상처 내면서 커가는 헨리에타 역시 인생에 대한 밝음 보다는 어둠이 익숙한 아이다.

자선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되는 아버지와 함께 헨리에타는 학문연구과 실험에만 몰두하는 의사들의 마스코트가 된다. 보고 자라는 것이 그리고 늘 접하는 것이 세균과 실험과 연구인 헨리에타는 당연히 그것들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다. 헨리에타의 목표는 세상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의학에 대한 목표이기에 아마도 헨리에타는 스스로의 운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책속의 등장인물이 상당히 흥미롭다. 아주 정확한 의학지식과 의학 업적의 발견 당시를 너무나 상세히 그리고 있다. 결핵균의 발견자이며 투베르쿨린을 발견한 로베르크 코흐, 디프테리아 혈청요법을 완성한 파울 에를리히, 병리학자인 루돌프 피르호, 세균학자 에밀 베링등의 등장은 우리가 몰랐던 19세기 당시 세균에 대한 연구에 대해 알게하고 의학의 한 획을 긋게되는 역사적인 장소에 함께 있는 듯함을 느끼게 해준다.

 

헨리에타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때론 나와 비슷하고 때론 갑갑하기도 한 인생의 면들을 보게 된다. 겉으로 용감한 척을 하면서도 결국 안전한 그늘 속에 숨어버리는 율리아,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에 순응만 하는 안나. 그리고 헨리에타의 재주를 알고 총명함을 알면서도 그것뿐이라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 이해를 하지만 더 나은 길로 인도할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 그속에서 헨리에타는 몸부림을 친다. 밤새도록 연구를 하게되며 변장을 하게되고 사랑을 선택하지 못하고 현실의 상황을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된다.

헨리에타의 이중적인 삶이 드러나면서 당시의 순종 해야했던 남성만의 우월주의를 깨칠 수 없었던 여성으로 남아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에타의 사랑은 늘 한가지 뿐이다. 의학이란 길에 하나의 점을 남기는 것. 하지만 돌아오는 배신, 살기 위한 처절함, 자식에 대한 방관과 집착,,

 

여성으로서 남성에게 한정된 학문을 들여다본다는 자체만으로도 죄악이었던 삶. 하지만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던 그 몸부림. 시간이 지날수록 헨리에타의 삶에 빠져들게 된다. 과연 그녀가 꿈꾸던 세상은 자신의 세상인지 대신 죽은 엄마의 세상이었는지, 있는자에 대한 또다른 반론이었는지..아직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많은 등장인물과 각각의 뚜렷한 개성속에서 많은 감성을 볼 수 있다. 그 감성이 바로 나라는 인간 하나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보여지는 똑같은 감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까 저럴까에 대한 고민, 소신에 대한 두려움, 숨김, 그리고 숨김에 대한 책임감.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늘 겪는 것이지만 늘 새로운 것을 헨리에타를 통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깨어있는 생각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이면에는 그에 대한 무지로 똘똘뭉친 인생. 인간.

이것에 대한 오랜 여운과 깊은 생각이 남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