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생을 누구에게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이해라는 건, 자식이나 마누라가 아닌, 맞은편 막걸리 집에서 몽롱하게 취해 바라보는 어느 손님이 뜻밖에 해 줄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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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란 이름이 생소했지만(알고 보니 제 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었다. 2회는 트렁커와 책 사냥꾼)

대필 작가의 삶이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속도감 있는 문체가 미덕이라는 김윤식 문화평론가의 말처럼 술술 읽혔다. 최근 머리 아픈 책들을 연달아 읽어서 그런가 더 좋았다.

원래는 지하철로 이동하는 동안만 읽으려고 했었는데 집에 와서 나머지 부분을 마저 다 읽어버렸다. 291페이지 분량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도 녹아 있는 듯한 그런 소설이었다. 왜냐면 극중 대필 작가가 길렀던 개의 이름이 태인이"인데,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 마지막 자를 따서 지은 거라고 했다. 이 책의 작가는 임영태, 아내의 이름은 이서인이었다.

실제로 작가가 대필을 업으로 삼아서 하진 않았겠지만 상당 부분 자신의 경험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극중 대필 작가가 아내에게 보이는 미안함과 고마움 그런 것들이나 작가의 하릴 없어 보이는 일상 말이다.

화자는 대필을 업으로 삼아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 아내는 얼마 전에 죽었다. 아내와 같이 기르던 태인이는 그 전에 이미 죽었다.

그는 혼자다. 여러 사람의 인생의 여정을 듣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써주는 일을 주로 한다. 그는 내내 세상과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자신의 숨겨진 실력을 몰라주는 세상에 화가 나서 씩씩거렸고 그런 현실에서 어쩌지 못하면서 괜히 아내에게 화풀이나 하던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나 보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등장한 장 선생이 등장했을 때는 아...이제 이야기의 시작이로구나 했다. 장 선생이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써 주길 바랐고 화자의 이름으로 책을 내길 바랐다. 둘은 며칠 후 같이 여행을 다니면서 장 선생의 인생에 대해 듣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무하게 장 선생은 죽어 버렸다. 뭔가 더 있겠지. 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장 선생이 이 소설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죽은 장 선생과 몇 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것이 그에게서 자격지심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는 장 선생 뿐 아니라, 다른 죽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게 되고 실수하고 후회되는 짓을 했던 자신을 받아 들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그가 겉으로는 전과 다름없이 대필 문의를 받고 상담을 하지만. 못난 자신을 온전히 받아 들이고 새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리라 생각되는 것이다. 태인이가 다시 환생한 듯한 유기견 몽이와 함께. 그 동안 외로웠던 것은 자신도, 아내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앞으로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좋았던 점은 보통 대필작가가 나오면 원래는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꿈이 좌절되어서 어쩔 수 없이 대필업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설정되기 마련인데, 그는 그런 게 없다. 그냥 밥벌이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가 뭘하고 싶어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가 했던,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는 더 그럴듯하고 근사한 일을 하고 싶었다는 정도의 뉘앙스만 느껴질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더 공감이 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 꿈이 좌절되어서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슬프지만 그 하고 싶은 일조차 없는 이들이 더 서글프다.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동교동, 서교동 일대의 세밀한 골목길 풍경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그와 같이, 또는 내가 그가 되어 그 일대를 걷고 단골 포차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고 그의 반지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게 나에게 온전히 다가올 수 있었던 것도 이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태인이와 그, 그의 아내의 연결고리가 좋았다.

태인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아내, 아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태인이, 그 둘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자책하던 그, 무엇을 주었는지는 준 사람은 모른다며 감싸 안아 주던 아내, 아내 대신 그의 곁을 지키게 될 태인이의 환생 몽이까지.

한 줄 평을 해 보자면,

진돗개가 아니어서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며 자신의 본성과 달리 다른 개들과 죽을 힘을 위해 싸워야 했던 태인이와 못난 자신이 싫어서 세상에 싸움을 걸고 따스하게 감싸 주는 아내에게 괜히 시비 걸던 그가 닮아 보이면서 안쓰러웠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그 둘한테 괜찮아, 괜찮아. 라며 부드럽게 달래 주는 아내가 있어 참 다행이다. 아내(들)은 종우형의 말처럼 메시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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