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멕시코 최초 이민자들의 굴곡진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소설

멕시코까지 이민간 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김영하가 이것을 쓰기 위해

관련 문헌 자료도 조사하고 직접 멕시코까지 방문했었다고 본 것 같은데

암튼 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제목만 보고 고른 거였다 늘 그렇듯이 최소한의 정보만을 가진 상태로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동인문학상 심사평에서 말하듯이 싸구려 감상주의와 허무맹랑한 영웅중의로 첨철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서서히 나라를 잃어가는, 땅이 없어 먹고 살기 막막했던 백성들, 국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있던 길을 그리 많지 않았다.

청나라도 아니고 러시아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고 하와이도 아닌 멕시코란 어디 붙어 있는지, 배를 얼마나 타고 가야 되는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머나먼 남의 나라 땅까지 가야했던 슬픈 운명을 가졌던,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래도 꿋꿋한 생명력을 이어나가며 계약 기간이 4년을 멕시코의 농장에서 버티지만

그들은 그 땅에서 이방인에 불과했다. 그렇게 멕시코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조선은 국권을 빼앗겼다. 더 이상 조선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돌아갈 곳을 잃고 나라의 존재도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내 나라를 지키는 일도 아니고 용병으로서 남의 나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그렇게 하나 둘 죽어나가는 그들의 운명을 보고 있자니 나라 잃은 설움과 겹쳐서 더 서글프게 느껴졌다.

처음 도착했을 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조선인들은 황제가, 그들의 조국인 조선이 그들을 구해주리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이미 조선의 국력은 다해 가고 있었고 황제는 나라의 존폐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 관계도 없는 멕시코의 이민자 천여명의 운명에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국은 국민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질 못했던 것이다.

양반들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등 도움도 안되는 글만 써댈 뿐이었고

남편, 아들을 위해 살기 보단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던 연수의 꿈이 짓밟히고

누군가는 멕시코 농장주의 권력에 빌붙어서 삶을 영위해 나갔고

이정이 연수를 놓은 후 마음의 지주로 삼았던 조장윤은 이정을 포함한 자기만 믿고 사지로 따라간 이들 전부를 버리고 도망쳤다.

자기는 이런 곳에서 죽기엔 아직 할 일이 많다는 합리화를 하면서, 가장 비겁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되도 않는 헛된 꿈을 꾸다 현실에 부딪히게 되자 현실과

싸우기는 커녕 결과적으로 자기만 살겠다고 동포를 버리고 믿음을 저버렸다. 그런 인물이 무슨 해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지원한다는 말인가! 위선이 아닐 수 없다. 그저 허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정은 딱히 목적의식이 있어서 남의 나라 혁명전선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남자들만의 세계에 매료되었을 뿐이다.

그가 연수를 잊지 않았더라면, 연수를 다시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살았더라면 그렇게 과테말라 띠깔에서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텐데

어쨌거나 조선에서 멕시코로 이민을 간 많은 이들이 변화를 겪었고 변질되기도 하였지만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그들 본성이 그래서라기보다는 시대가 그들을 그렇게 몰아간 탓이 크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국가가 가난할 때는 권력도 없고 재산도 없는 이들의 삶은 가장 빠르고 처절하게 망가져 가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어 보였기에 그들은 배를 탔다. 하지만 낙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세상 물정도 모르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동안

굳게 닫혀 있었고 지식인들도 제대로 알지 못한 세계 정세를 글도 제대로 모르는 농민, 어부, 군인들이 잘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세상의 거친 풍파에 가장 먼저 당하는 이들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들이다. 보호가 필요하지만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겉으로는 자발적 선택에 의한 이민이지만 등 떠밀려 간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희망 없는 땅에서도 힘을 모아 미비하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일부는 얻어 내기도 하였다.

소나 돼지처럼 채찍에 맞아가면서 일하는 것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패배주의에 무릎 꿇지 않고, 체념하거나 절망하거나 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묵묵히 일하였고 결국엔 대부분이 자유로운 신분을 되찾게 된다. 그 부분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끈기, 근면, 긍정적인 삶의 자세 등을 엿보았다.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남의 나라 땅에서 그렇게 덧없이 죽어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간 과거에 대해 알아야 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특정 계층에게만 특권이 모두 돌아가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열린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더럽고 역졉지만 자신이 발 디딘 땅을 결코 떠나지 못한다. 돈도 없고 먹고 살 길도 없는 것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가 이 역겨운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 역겨움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역겨움을 견디는 것이 저 황량한 세계에 홀로 던져지는 두려움을 견디는 것보다. 두려움의 크기만큼 넓고 깊게 번지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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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설계하는 설계자들과 그 설계대로 청부 살인해 주는 암살자들이 나오는 이야기

흥미롭지 않은가! 난 이런 주제를 좋아한다.

417페이지에 해당하는 묵직한 분량
난 대체로 두꺼운 책을 좋아한다. 읽는 맛이 있어서

어쨌거나 두툼해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술술 읽혔으니 말이다.

래생은 쓰레기통에서 태어나 5살때 도서관장 너구리 영감에게 입양되어 암살자의 인생을 걸어간다.

그의 인생은 본인이 선택했다기 보다는 주어진 대로 받아들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주변에 온통 그런 사람들밖에 없었고

달리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녀원의 고아원에서 계속 자랐거나, 다른 정상적인 가정에 입양되었더라면 그가 암살자가 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래생은 사랑을 알지 못한다.

래생의 인생이 한번 변화를 겪을 뻔 하였던 적이 있다. 큰 실수를 저지르고 공장에서 지냈던 몇 개월동안

그는 한 여공을 만났고 속옷 사는 일을 낭비라고 생각해서 싫어했던, 지극히 실용적인 그 여자가 꽤나 마음에 들어 같이 살림을 차렸지만,

결국 원래 있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가정을 이루고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을 그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것을 겪어 본 적도 없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숱한 사람들이 그렇게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사는 것을 그는 할 수 없었다고 본다.

그렇게 살고 싶었겠지만. 이번생에서는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

래생은 삶에 큰 애착을 두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무탈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일테니.

그는 항상 외로웠지만 사랑을 몰랐기에

사람을 죽이고 돌아와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무력감만을 느꼈다. 래생이 생각하기에, 암살자들 위에는 너구리 영감이나 한자 같은 브로커들과 설계자들이 존재하고 설계자들 위에는 권력자들이 존재하지만, 설계자들을 없앤다고 해서 권력자들을 없앤다고 해서 그 시스템이 무너진다고 보지 않았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체할테니. 시스템은 한번 생성되면 고유의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해서 돌아가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체념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시스템에 대항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라는 마음으로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체제에,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래생은 미토라는 설계자의 조수를 만나게 된다. 미토는 그 시스템에 의해 희생되었다. 부모를 잃고 동생의 다리를 잃었다.

악착같이 살아서 누구나 꿈꾸는, 희망차고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듯한 의대에 입학하게 되지만 미토는 그 길을 걸어가지 않고 그 시스템을 부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토가 영웅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를 달성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의 생명도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괴물을 잡기 위해 뛰어다녔으나 어느 날 자신이 그 괴물이 되어 있었다는 자조적인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수단의 정당화까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수단까지 정당했다면 너무 이상적이지 않은가.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으니 소설도 그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녀가 그 괴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그 점을 알고 본인만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써 자신을 합리화시키지도 않는다. 그런 점이 그녀에게 엿볼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아닐까 싶다.

미토에 의해 래생은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자신이 속한 그 세계를 다시 보게 된다.

말로는 실패할 것이라고 그런 것 따윈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쩌면 조금은 그 세계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하면서. 그는 무력감을 벗고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게 된다. 돈을 받지 않고 최고의 암살자인 이발사와 대결하고, 한자의 장부를 가져오고 너구리 영감에게서 받은 책을 미토에게 건네준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한자에게 30억을 요구하고 불러낸 것은 미토가 벌일 일에 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일까?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 거기로 간 걸 보면.

미토가 래생을 선택한 이유는 래생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여지없이 이 시스템 안에 들어와서 희생된 자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나 권력, 욕망, 사람 등의 이유로 그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그저 갈 곳이 없고 외롭고 사랑을 몰라서 그 안에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지막 설계에 동참해 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래생이 전혀 연관관계가 없을 것 같아 보였던 편의점 알바생 여자인 미토와 5년간 개들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으나 뜨개질만 하고 전혀 눈에 띄지도 않는다고 보았던 사팔뜨기 사서, 이발사와의 관계가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도 꽤나 흥미로웠다.

털보, 이발사, 추, 한자. 너구리영감, 래생, 그림자 등이 청부업과 관련된 자들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악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하기 어려운 것은 그 시스템이 암묵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침묵한 우리에게 연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그러한 시스템이 없었거나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무관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용기 있게 대응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서 굴러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지 않은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면 쉽게 외면하려 한다. 모르는 척하거나 실제로 모르는 이들도 많다. 귀찮기 때문이다. 인간이 경제적인 인간이라면 그러는게 당연하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데 적극적으로 나선들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주 작은 편이고 손실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인간은 경제적인 인간을 뛰어 넘어야 한다. 인간이 경제적인 인간에 머무르는 한 이러한 시스템은 영원히 깰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과적으로 시스템에 희생된 자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서글픈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그 모든 것을 다 떨쳐내고 빛의 세계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힘은 매우 미약하지만, 미약한 불씨 하나가 큰 불로 번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미토가 하고자 했던 것은 그 작은 불씨였다.

래생에 의해 그 불씨가 이미 커져 나가고 있었다.

주인공인 그는 어렸을때부터 죽기 전까지 병원 신세를 많이 진 인물이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고 죽을때 혼자였다.

그가 낳은 딸 낸시가 아니었으면 장례식장은 더욱 초라했을 것이다.

그는 육체적으로 아직 건강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헌신적이었던 두번째 아내인 피비에게 거짓말을 거듭했고 큰 상처를 주었다.

성적 욕망 하나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서. 여자인 내 입장에서 봤을때 좀 한심했다. 남자들은 다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 조그만 구멍이 그리 좋아 그런 뻔히 내다보이는 결말을 향해 치달은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결혼을 하면 열정이 사그라 드는게 당연한데, 아내는 그 열정 없이 남편이 주는 따뜻함으로 살 수 있지만 남편은 그럴 수 없었나 보다.

내가 남자가 아니니 이해를 해 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 생물학적 욕구가 얼마나 거세길래 그런걸까...30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아프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형인 하위에게서도 등을 돌린다. 본인도 유치하고 어이없다는 걸 알면서도

형의 건강한 육체를 질투하고 시기했다.

전부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가족 해체의 완료

피비가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직장 동료들이 하나둘씩 사그라져 가고 자신의 마지막 수술을 앞두고서 그는 드디어 깨닫는다.

자신이 첫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들에게 줬던 상처, 그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그를 용서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피비가 겪었을 고통, 마음의 상처를 알게 된다.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은 그런 존재일까? 죽기 전에야 겨우 자신의 과오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는 존재?

육체적으로 나약하고 정신적으로 나약한 보통 사람인 그에게 연민과 감정 이입이 되어야 감동적일터인데

나는 그가 그렇게 혼자 죽었어도 연민의 시선을 보내지지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해가 넓어지긴 했지만 난 여전히 성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윤리성을 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결벽증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고.

그런 생물학적 욕망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아직 매력적임을, 아직 건강함을 증명받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놓치면서까지 그렇게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인생을 더 살아봐야 되나 보다.

	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결국 이렇게 되는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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