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와일드

	만일 당신이 어떤 도시를 사랑한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뒤라도 그곳으로 돌아왔을 때, 당신의 영혼뿐 아니라 몸까지도 은연중에 그 도시를 알아보고, 혹 구슬픈 눈발이 처연하게 흩날리면 당신의 두 다리가 절로 당신을 옛날에 사랑했던 그 언덕으로 데려다 놓으리라는 사실뿐이다.
페이지 : 27(내 이름은 카라)

터키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해 본다

오르한 파묵 노벨 문학상 수상자란다 하지만 나는 첨 들어봤다. 얼마전에야 이 사람 소설이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팔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장 마음에 끌린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책을 선택했다.

난 미스테리한 것을 좋아하니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이 매혹적일 것 같았다.

16세기 후반 터키 이스탄불의 세밀화가들의 삶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베네치아로 대변되는 서양 화풍의 영향을 두려워 하면서도 초상화와 원근법으로 집약되는 그들의 화풍 화가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화풍에 끌리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그 시대의 세밀화가들의 오랜 시간에 걸친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 서로에 대한 애정과 질투 등이 녹아져 있다.

그 와중에 카라와 셰큐레의 러브 스토리도 있고 그렇다. 하지만 사실 러브 스토리로 보기엔 좀 무리가 있다.

내가 보기엔 카라 혼자 사랑한 것 같다. 물론 셰큐레가 카라에게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랑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있는 셰큐레에겐 일순위가 아이들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카라가 아닌 누구여도 별 상관 없었을 것 같은, 그러니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물론 누가 죽였는지 나오지는 않지만 어차피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다지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많은 시간 세밀화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다양한 전통을 풍부한 예를 들면서

사실 난 세밀화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이슬람 문화쪽엔 아는게 별로 없으니;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세밀한 묘사는 사실 좀 지루하다; 게다가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이라 머릿속에 한번도 보지 못한 세밀화가

그려질 리가 없다; 나는 그런 인간인 거다.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이 나랑 비슷했나 보다 그러니 이 작품의 2권은 9쇄와 1권은 23쇄니;

 

신 위주의, 신 우위의 세계에서 인간 위주의, 인간 본연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세계로의 이행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에니시테는 누구보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고 술탄을 설득하여 그러한 화풍의 책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물론 철저하게 서양의 그 사실적인 화풍을 모방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화풍과 서양의 화풍을 조화시켜 새로운 오스만 제국의 화풍을 탄생시키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조화에 있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설픈 조화의 시도의 결과는 실패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점차 그 조화가 조화로워질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물, 문명, 문화가 들어오게 되면 배척-> 무조건적인 수용과 모방 -> 전통과의 조화를 통한 발전 이 단계를 거쳐 나간다고 본다.

이 책에서 담고 있는 것도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서양은 개인주의 사회이고 동양은 집단주의 사회의 경향이 강하므로 터키는 그러한 동 서양의 만남이 이뤄지는 곳이므로

어찌 보면 사고방식은 동양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인간을 중시하는 경향, 개인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더 늦게 나타났고 더디게 수용되었으리라.

 

 

화가는 화가나름대로 자신의 화풍을 창조하고 싶었고, 다른 화가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단순히 예전의 화풍, 거장들의 화풍을 충실하게 재현해 내는 것이 아닌 누구라도 자신을 알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신만의 인간다움을 드러내기 보다는 특별히 튀지 않는, 종교에 의해, 집권자들에 의해 자신만의 개성이 오랜 시간 억눌렸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다 읽었음에도 그렇게까지 매혹당하지 못했다.

세밀화가에 대해 내가 생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세계 그 시대의 문화적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었을텐데...

서양 화풍을 단순히 배척하고 안 좋은 것으로 규정하지 않은 점은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근대화의 상징, 더 발전된 것으로 규정하지 않은 점도

이분법적인 사고는 이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

터키문학, 노벨상, 오르한

	해란이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물었다. 연기가 붉은 물결 위로 고요히 내려앉는가 싶더니 바람결에 흩어졌다.
페이지 : 83

겨울이다

끌리는 제목 대설주의보를 골랐다.

언젠가부터 단편을 많이 읽고 있다. 어쨌거나 읽기 시작했다.

보통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지만 대설주의보는 대설주의보부터 읽어보고 싶었다.

오랫만에 읽는 한국 문학

확실히 한국 문학은 다르다 외국 문학과는

번역이 아니라는 게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

눈은 따스한 느낌일 수도 있고 고요하고 쓸쓸하고 가슴 시린 느낌일 수도 있다.

대설주의보는 당연히 후자일 거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가슴이 어느 정도 뚫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 두 남녀가 나온다.

해란과 윤수

그들은 어찌보면 사소한 오해로 멀어지고 헤어지게 된다.

여자는 따져 묻지 않았고 남자는 적극적으로 해명하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 사실이 오해라면 남자가 적극적으로 해명하리라 믿었겠지 구차하게 자신이 따져 묻기가 싫었을테니

남자는 물어 보면 해명하리라 생각했겠지 물어보지도 않는데 내가 굳이 먼저 해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을지도

아니면 여자는 이미 결론 내리고 남자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만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런 일은 혼자서는 해결이 안되고 전화로도 해결이 안된다

한번만 만났더라면 쉽게 풀릴 수도 있는 문제였을텐데

 

어쨌거나 그들은 여느 커플처럼 그렇게 조금은 허무하게 헤어졌다.

헤어져서 서로 계속 그리워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가슴 속에 서로가 가라앉아 가끔씩 수면 위로 떠올랐겠지

그들이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했었으면 가끔 그리운 채로 남았겠지만

해란은 남편과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채로, 아이도 없었다(그녀는 아마 남편과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윤수는 몸 몇 번 섞은 여자와 결혼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상태였다.

해란이 먼저 윤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기를 이제라도 잡아달라는 듯이, 노골적으로 말로 뱉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신호였다.

윤수도 그 신호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선뜻 그 신호에 답하지 못한다. 생각이 너무 많았던 탓일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랍시고 그럴 때도 있고 그저 두려워서 그렇기도 하고 용기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다.

생각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문제지만 생각때문에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도 문제 아닌가

그래서 또 그렇게 둘 사이의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다 윤수는 그들 사이의 문제의 그녀덕에 해란이 자살기도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 밤 백담사를 향해 해란을 만나러 갔다. 신호에 뒤늦게 응답하기 위해서

이 작품에서 3번 백담사에 가는데 첫번째는 함께 평온한 행복을 느낄 때 갔었고, 두번째는 일본에서 우연히 해란이 윤수를 보고 전화를 한 뒤 처음 재회했을때 갔었으며,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마침내 서로에게 두려워하지 않고 발을 내딛을때 간다. 두번째때는 서로에게 다가갈까 말까 망설이다 다시 뒷걸음치고 마는 걸로 끝이 났다.

윤수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해란에게로 곧장 가리라 마음 먹던 날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버스 막차가 끊기고 그 날 안으로 자신을 기다리는 해란에게로 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핸드폰마저 불통이 될 정도의 대설이었다.

여관에서 자고 그 다음날 해란을 만나러 가도 될텐데 윤수에게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흘려 보낸 것이다.

자신을 내내 기다리고 있었을 해란에게로 한 시라도 빨리 가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은 해란도 마찬가지였다보다. 윤수는 백담사 입구에서 걸어 올라가던 길에 해란을 만난다.

오랜 시간을 지나 극한 상황을 뚫고 만난 두 사람이 부디 앞으로는 오해없이 오해가 생기더라도 그 때 그 때 풀어 버리고 행복하길 바라본다.

이제 더 이상 눈은 차갑지가 않게 느껴진다.

 

한국 문학은 역시 특유의 서정성과 애수, 비애를 가지고 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인가 보다.

감정 이입이 가장 잘 되는 드라마가 역시 우리나라 드라마인 것처럼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윤대녕의 문체는 간결하다. 내가 좋아하는 문체이다. 서정적이지만 약간은 건조한 듯한

감정이 너무 풍부해서 나를 숨막히게 하지도 않고 장황할 정도로 세밀한 묘사로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게 과부하를 걸지도 않는다.

윤대녕이 좋아질 것 같다.  

윤대녕, 한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