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침묵은 팩션 소설로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다빈치 코드의 열풍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팩션 소설 시장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팩션 소설의 부흥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고 천 년의 침묵은 그러한 가운데 탄생한 작품이라고 보여진다. 

천 년의 침묵은 예전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의 비밀에 대한 상상을 원천으로 삼고 있다. 소재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면 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정리 중 하나가 아닌가. 그 정리에 숨겨진 비화가 있다면? 흥미진진할만한 이야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 보니 이야기가 평범하였다. 지루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빨려드는 재미도 없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엉성하진 않았지만 너무나 전형적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동안 유발되는 호기심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좀 빤히 보이는 진행이라고나 할까...이런 소설은 풀어나가는 방식이 독자를 확 끌어당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점이 좀 아쉬웠다. 드라마 대본이었다면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지만 소설로써는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경우 현자(피타고라스)라든지 현자의 아내, 죽은 디오도로스, 디오도로스의 동생 아리스톤 등 전형적인데다가 평면적이어서 인물의 매력이 부각되지 않았고 이러한 점이 작품이 더 진부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한 권으로 되어 있어 분량 문제도 있었겠지만 이미 수준 높은 팩션 소설에 의해 높아진 눈높이에는 부족해 보이는 작품이었다.

볼테르의 캉디드를 읽었다. 캉디드는 철학 소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낙천주의자인 캉디드가 독일의 툰더 텐 트롱크라는 남작의 성에서 쫓겨나 콘스탄티노플에서 정착하여 헛된 형이상학을 버리고 공동체의 토대를 만들 때까지 여러 곳을 다니면서 겪게 되는 온갖 일들이 주된 내용이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 대부분은 말도 안되는 엄청난 불운을 거듭해서 겪게 된다. 캉디드는 종교 재판에 의해 죽을 뻔하다 살아났고 남작의 아들, 남작의 딸인 퀴네공드, 라이프니츠의 철학(그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최선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대표하는 캉디드의 스승인 팡글로스까지 죽을 고비를 몇번씩 넘기게 된다. 여기서는 누가 누가 더 불행한가 내지는 얼마나 더 불행한 지경에 이를 수 있는가를 대결하는 듯이 불행의 연속들이 우연적으로 펼쳐진다. 캉디드와 마르탱(비관주의자)이 유토피아인 엘도라도에 잠시 있었던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여기서 볼테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우선 세속적이고 부패한 교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섭리대로 되어 있다. 라는 낙관주의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비관주의에 찬동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부조리를 철저하게 보여주면서 부질없는 희망따윈 치워 버리고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버티면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노동을 제시하고 있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와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권력을 쟁취하고 부와 명성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며, 차라리 농원을 가꾸는 것이 부조리에 반항하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이방인의 해설서(?)에 해당된다고 하는 시지프 신화를 읽었다.

시지프 신화는 카뮈가 쓴 에세이로 크게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한 인간, 부조리한 창조, 시지프 신화, 부록으로 카프카의 작품 해설 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지프 신화를 읽으면서 이방인에서 모호했던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이방인에서 마지막 주인공이 그토록 완강하게(그는 원래 그런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는데도)신의 품 안에 (손쉽게)안기기를 거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내세의 희망따위에 매달려 도피하는 방법으로 부조리를 극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카뮈의 관심사는 부조리 자체가 아니라 부조리의 궁극적인 귀결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부조리는 일단 명확하게 인식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과 세계의 비합리성간 간극에 의해 부조리가 생겨난다.

그리고 귀결은 "아무 생각없이 생활의 연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결정적인 각성일 수도 있다. 각성 끝에 시간과 더불어 결말이 오는데 그것은 자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원상 회복일 수도 있다. "p.28 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자기 기만이 될테니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결정적인 각성 후에는 부조리에서 빠져나오든가 아니면 그곳에서 버티면서 살아가야 한다. 빠져나오는 방법으로 카뮈는 육체적인 자살과 희망을 검토한다. 육체적인 자살은 답이 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자살로 인해 인간의 열망이 사라져 그 간극에서 오는 부조리가 폐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새적인 삶에 대한 희망의 경우 철학적 자살, 도피, 비약 등으로 지칭하면서 세계의 비합리성을 신격화하여 부조리를 치유하기를 원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것은 부조리의 본질에 위배되며 정당한 귀결이 될 수 없다. 또한 카뮈는 카프가의 소송과 성에 대한 비평을 하면서 카프카의 작품이 부조리의 문학이 아니라 많은 실존주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내세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 문학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카뮈는 부조리에 대해 명철하게 의식하면서 희망을 갖지 않은 채 그 세계에서 반항하며 사는 것이 부조리의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반항은 인간과 그 자신의 어둠과의 끊임없는 대면이며 항구적이다. 반항은 인간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현존함을 뜻한다. 인간은 매일매일 명증함을 통해 운명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부조리는 죽음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며 나의 자유는 한시적이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이다. 카뮈는 여기서 양의 철학을 도출해 내는데, 여러 곳에서 인용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치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판단이 중요하므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자신의 삶, 반항, 자유를 느낀다는 것, 그것을 최대한 많이 느낀다는 것,그것이 바로 사는 것이며 최대한 많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뜨거운 열정으로! 인간은 주어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소진하겠다는 열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p.91

 

우리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다. 미래에는 나아지기를, 행복해질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한다. 희망 없이 살아가기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현세에가 아니면 내세에서라도 아무 고통 없이 행복하리라고 말이다. 신이나 종교는 그래서 생겨났을 것이다. 이에 대해 카뮈는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며 깨어나라!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부질없는 환상이나 희망에 기대지 말고 현실의 부조리를 명철하게 의식하여야 하며, 그 후에 밀려오는 허무감에 비관하여 자살을 택하지 말고 희망이 없기에 돈이나 권력, 명예, 도덕적인 잣대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더욱 열정적으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애써 회피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회피하면서 사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깨어나고 싶어진다. 좌절하고 괴롭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