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그가 살고 있는 바다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첫번째 소설은 나는 여기가 좋다"이다.

이제 그만 섬을 떠나 육지에서 살겠다는 아내의 폭탄선언에 한평생 섬에서 살면서 배타고 고기를 잡던 한 남자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야이기다. 왠지 저자는 그 남자 입장에서 감정 이입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난 그 남자의 아내한테 감정 이입이 되었다. 지금까지 아내가 남자를 위해 자신의 성향을 희생하였으니 이제는 그가 자신의 성향을 희생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한 쪽으로만 일방적으로 취향이나 성향을 강요하면 관계가 부러질 수밖에 없다. 아내는 남자가 배를 너무 사고 싶어하길래 차마 말을 못하였을 뿐이다. 섬세한 남자였다면 눈치를 챘겠지만 그런 섬세한 남자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그 남자 입장에선 아내의 폭탄선언이 청천벽력처럼 느껴질 것이다. 여자는 말을 안해도 알아주길 바라고 남자는 말을 안하는데 어떻게 아냐고 한다지...

어쨌거나 첫번째 소설은 나에겐 그냥 그랬다.

두번째 소설은 밤눈

눈 오는 날 막걸리집 주인 여자는 홀로 온 말수가 적은 손님을 상대로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주먹만한 함박눈 오는 것을 보고 주먹밥이라고 한참을 바라봤던 일, 참다못한 아버지가 토끼라도 잡아오겠다며 꼬박 하루동안 고생해서 잡아온 건 알고보니 남의 동네 개였다는 일, 그리고 자신의 사랑에 대해...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같이 사느냐 따로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너그러워지고 웃음이 싱끗싱끗 나오면 성공이라고 한다.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꼭 함께 하지 않아도 괜찮다...그가 사랑한 남자는 딸린 식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 남자와 계속해서 함께 할 수 없었고 처음부터 시한부로 만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서로 많이 그리워했겠지만 그 후로 한번도 연락한 적 없었는데 얼마전에 그 남자가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의 아내인지 자식인지를 떠나 보내고선. 그런 일이 있고 보면 보통 다시 만날 법도 한데 둘은 만나자고 하지 않는다. 그 때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리움까진 어떠지 못하는 것일테다. 7년 만에 듣는 목소리가 얼마나 반갑고 안 좋은 일을 당한 그 남자가 얼마나 눈에 밟혔겠는가. 세월이 흐르면서 옅어졌을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져버려 이렇게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그 남자로 인해 처음으로 눈이 따스하다고 느꼈으니)은 모르는 낯선 이에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그의 속내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두번째는 마음에 들었다. 고요한 밤 사락사락 내린 눈이 쌓여 있는 적막한 골목길의 작은 막걸리집이 그려진다.

다섯번째 소설은 가장 가벼운 생

정처없이 떠돌았던 나그네같은 인생을 살아온 한 사내의 이야기이다. 손노인이 그렇게 떠돌아 다닌 것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죽음에 대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결국 비참하게 객사해 버린 아버지의 마지막 임종 순간을 지켜 보면서 그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그렇게 죽지 않기 위해서 떠돈다. 그러던 와중에 아들이 생기지만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아직 정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죽음을 피해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정착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들을 위해 열심히 농사를 짓고 번 돈은 고스란히 보내준다. 한번도 본 적 없고 딱히 정이 있어 생긴 아들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피붙이가 하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는 충분히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갈 이유 하나쯤은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그 아들이 손노인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다행스럽게도 원망과 눈물 한 바가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에게 낯설기만 하다. 아들은 그저 이제 더 이상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하러 왔을 뿐이다. 손노인은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안다. 지금까지 자신을 삶에 붙들어 놓은 이유가 이제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나중에 아들하고도 마찬가지로 제대로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지나온 그의 삶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손노인은 그의 아들 곁을 지켜주진 못한 것은 그의 아버지와 같았지만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면에서는 진일보하였다고 생각한다. 손노인은 이제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유산으로 남기고 떠날 것인데, 그의 아들은 자신의 아들과는 그런 관계를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동일한 정성을 쏟은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작든 크든 나에겐 모두 같은 가치를 지닌다. 키운 내가 먼저 무시해선 안된다고 한 손노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마음에 드는 소설이다. 장터에서 애호박 팔고 혼자서 경운기 타고 내곡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손노인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집에는 뽀족한 화강암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가 손노인을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나머지는 아직 다 안 읽었지만

충분히 매력 있는 소설집이라고 생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