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하며 말이 많았던터라 그 이유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는 증명된거나 다를바 없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해 덥썩 집어 들었다. 막상 읽을라 치니 추리소설에 한 번, 그것도 총 691장의 만만찮은 분량에 또 한 번 망설여졌었다. 펼쳤다 이내 덮었다를 수차례 반복하며 덜컹댈 내가 팔짱을 끼며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2013년 '이 미스테리가 대단하다'의 영예의 1위, 2013년 '일본 서점 대상' 2위라는 후광을 달고 있는 이 책을 안 읽고는 못 베겼다. 특히나 <64>라는 타이틀은 궁금증을 무차별하게 증폭시키기에 부족함이없었다. 이 책의 특이사항을 미리 고하자면, 여느 추리소설과 비교를 금해야 할 것이다. 지능수사로 최첨단 장비들을 나열해놓고 심리를 여과없이 들쑤시고 일촉즉발의 상황을 긴박하게 중개한 뒤 종말엔 범인을 잡는 쾌거를 기록하는 일련의 과정이 빼곡하게 기록된게 아니란 말이다. 소재 그대로 투명하게 '형사'란 직업에 만전을 기한 책이다. 더군다나 집필기간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보다 완벽한 작품을 수면위로 끄집어내기 위한 그 노력과 디테일에 대한 집착과 집요의 결과물, 저자의 치열했던 10년의 증거물품을 들이민 것이다.
모두 한 때다. 홍역을 치르는 것이다. 언젠가 아유미도 깨달을 것이다. 어린 시절 실수를 저질렀을 때처럼 혀를 날름 내밀며 태연하게 돌아올 것이다. 그렇고말고. 그 애가 진심으로 부모를 미워하거나, 슬프게 할 일을 저지를 리 없다.
얼추 유추해볼 수 있겠다. 딸아이가 가출을 감행한 아버지의 독백이다. 자신을 쏙 빼닮은 얼굴에 마구잡이로 주먹세레를 퍼붓고는 죽고싶다는 가슴이 쩍 갈라지는 말을 내뱉고서 어디론가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17세 '아유미'를 둔 아니, 잃어버린 '미카미'란 배태랑 형사가 주인공이다. 에두를것 없이 미리 밝혀두자면, <64>는 14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쇼와 64년(1989년) 쓰라린 패배감과 굴욕감을 맛보게 했던 D현경 최대 난제, 7세 여아가 유괴되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현재 딸을 잃은거나 진베없는 형사 '미카미'가 14년 전 딸을 읽은 피해자의 사건을 파헤친다라. 공소시효가 채 1년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분명 안타까운 것을 사실이나 다소 무모하게도 비춰질 수 있는 이 사건을 구태여 들춰내려는 까닭의 시작엔 청장시찰이 있었고 그림자엔 형사부 부장직 가 있었고 끝엔 털어낼수록 더 지저분하게 달라붙는 먼지를 말끔히 제거해내기 위한 몸부림정도가 있었단걸로 치부해두겠다.
여튼간에 홍보담당관이라는 '전과'를 달고 있는 미카미형사는 경무부의 끄나풀쯤으로 내몰려 박한 대우를 받았다. 덕분에 그 어느곳에서건 '알지 못하면 새어나갈 이유가 없다'란 타당성을 주장하지만 결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정보를 차단 당했다. 미카키형사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철저하게 경무부의 개가 되어 주겠다며 64사건의 피해자 유족이 경찰에게 등을 돌린 까닭을 알아내어 그를 설득해 성공적인 청장시찰의 팡파레를 울리기 위해 담당형사들을 차례대로 찾아가기에 이른다. '아직 영혼까진 팔아넘기진 않았습니다.' 매몰차게 내쳐진 미카미형사가 뱉을 수 있는 말은 정녕 이 말 밖에 없었으리라. 지독하게 고독한 외로움의 끈을 질끈 다시 동여맸다. 64 사건 직후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방밖으로 나오지 않는, 온 몸으로 온 마음을 다해서 14년형을 받고 있는 가키가마에게 첫번째 편지를 썼다. '자네가 어디있는지 말해주게. 내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겠네.' 곧이어 두번째, '자네 탓이 아니야.'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14년 전에 보고가 올라왔다. 형사부장은 은폐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택반이 꽁꽁 숨겨둔 비밀이 이제 와 나타난 게 아니다. 사건 당시부터 형사부의 수장은 녹음 실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밖으로 불거지지는 않았다. 고다 메모를 묵살했다는 뜻이다. 아니, 우루시바라의 행위를 옳은 판단이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용기 있게 고발한 고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 이는 아무도 없었고, 고다는 곧바로 사직했다. 그에 반해 은폐를 지휘한 우루시바라는 승승장구해 서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조직적인 은폐. D현경이모두 한통속이 되어 진실을 은폐했다. 그것이 '고다 메모'의 정체였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분명 순식간에 불거진 실수임에도 쏟아질 힐난과 책망을 감당키 어렵다는 간사한 판단이 모두의 안녕이란 명목으로 진실을 눈 가리고 아웅했던 것. 범죄에서 비롯된 실수를 막기위해 경찰은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만 것이다. 사건은폐는 엄연한 범죄다. 폭포수 같은 밀가루와 날계란 세례를 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정의사도는 나락으로 추락해버렸다. 문득,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났다. 거짓말의 최대 적은 시간이다. 그래, 시간. 이 캐캐묵은 사건 또한 14년의 시간이 흘러 만천하에 까발려진 것이다. 청장시찰이 코앞이다. 불과 하루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미카미형사는 형사부로 복직될 미래의 자신과 홍보담당관인 지금의 자신 사이에서 내면의 충동이 일어나 한바탕 난리를 겪고 있던 찰나에 별안간 머리위에 폭탄이 떨어졌다. 64 사건의 루트를 그리는 모방범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딸은 작은 관에 들어 있다.' 온 몸의 전율이 돌았다. 흡사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이거지 싶었다. 한동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무진장 애를 먹었다. 명성에 버금가는 걸작이다.
조직에서 이기는 건 그런 이들이다. 비밀을 흘리지 않고 오롯이 가슴에 품은 이들이 살아남는다. 자신의 비밀을, 남의 비밀을 입 밖에 낼 때마다 패배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