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독백한다. 엄마의 좋은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를 속일 수 없는 마지막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_엄마가 조금씩 사라진다 :)

 

 

 

 

#_곁에 있으면 스치고 멀리 있으면 비춘다 :)    

 

 

남성 잡지 GQ korea 편집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충걸씨가 2002년 발간해낸 책,《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개정증보판이다. 10년이란 세월을 덧입혀서 완성되었다고 하니 기대가 남달랐다. 신호등이 없던 장소에 신호등을 놓듯이, 엄마를 구전하는 이야기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걸 문득 깨닫게 한 의무적으로 써내려간 글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지금껏 세상에 나온 눈물샘을 자극하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엄마의 투철한 희생정신의 기록이 아니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늘 옆에 있는 사람'이란 비유가 딱 맞아떨어지겠다. 뭐랄까. 한 편의 다큐멘터리, 인간 극장과도 같았다. 서슴없이 투명했고 불가피한 통제였다.

 

소탈하고 소소하기 짝이 없다. 겉멋만 잔뜩 든 일회용 글이 아니었단 말이다. 왠만하면 '엄마'가 내걸어진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만화까지도 줄기차게 외면을 해왔다. 단지 슬프다는 충분히 내겐 납득이 갈만한 이유에서였다. 엄마때문에 슬픈 게 싫어서가 아니다. 가슴 절절해지고 회상에 젖게 하고 눈물 콧물 쏙 빼버리는 그 순간이 숨이 막힌다. 간과하고 지내왔단 것에 대한 힐난을 마지 않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바뀔 성질머리도 아닌데 자꾸만 몰아세운다는 기분을 떨쳐낼 수 없기도 하고.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아마 '엄마의 정면 얼굴에 대한 뚜렷한 관찰과 어딘지 엇박자이되 묘하게 리듬이 딱딱 맞는 두 사람의 즐거운 생활, 쾌활한 연주에 가깝다'는 평 때문이었으리라.

 

다만 서로가 호감을 내는 학습에 서툴렀을 뿐이라고 일축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당연시 되었던 위급한 순간 '엄마'의 외침이 어느 순간 의문점을 가지게 했다. 드러나지 않을뿐이지 전혀 부족함이 없고 하자 없는 사랑이건만 안타깝게도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그랬듯 역시나 엄마를 비추고 있으니 말이다. 여느 가부장적인 시스템에 취해계신 아버지들과 다를바 없이 무뚝뚝했고 관심이 없는 듯 보였고 말 수가 적었다고 한다. 속에서만 자식을 애지중지 품고 계셨단 게다.

 

  술을 마시는 방법은, 작은 술잔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검열하는 것과 같다. 남들과 다른고 싶다는 마음의 요구야말로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와 비슷하니까. 그런데 갑자기 애원이 섞인 것 같은 마음이 밀려 왔다. 나는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더 많이 축적하고 싶었다. 슬퍼하는 모습은 많이 봤으니 더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왜 엄마의 즐거운 얼굴엔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걸까. 왜 엄마가 마신 술은 벽에 걸린 그림처럼 근심과 기쁨을 함께 보여주는 걸까. (P.40) 술잔으로도 엄마을 비춰보는 저자의 갸륵한 마음이 녹아내렸다. 엄마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건, 내겐 꿈이고 곧 성공이다. 저자의 인생이 '어떻게 하면 엄마를 기쁘게 해드릴까,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서 분리되지 않으면서 독립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의 두파트로 나뉘어 졌다고 하면 난 '어떻게 하면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란 과녁을 꼿꼿이 세워두고 세상을 향해 총대를 매고 있다. 고역스러운 연습을 거듭하고 애꿎은 날씨에 잠시 멈췄다가 다시금 초점을 맞추어 겨냥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란 말이다. 가난한 형편에 명품백 같은, 엄마에게 행복은 사치품에 불과 했기 때문에 그 행복을 손에 쥐어주고 싶다.

 

  전에는 엄마와 사는 게 행복한 이유는, 내가 그 여생의 마지막 목격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 말곤 누구도 그럴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구경꾼이 아닐까? 방바닥에 놓인 엄마의 손, 맥없이 놓인 그 팔은 두툼한 양감으로 덮여있었다. 그건, 알아차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가만히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어디에서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P.137) 권한이라고 해야 되나. 엄마에게 짜증낼 권한, 밥해달라고 투정부릴 권한, 속상하다고 붙잡아놓고 큰소리내어 울어재낄 권한, 그리고 사랑을 독차지할 권한. 단연 일순위는 나이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단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엄마니까',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야 하고 내가 기준점이 되어야 한 다는 것을 마땅하다 여겼다. 그 틀은 희미해졌다 뿐이지 아직 여전히 완벽하게 매몰되지 않았다. 수일내로 환기시켜야할 케케묵은 먼지에 지나지 않다. 자꾸만 목을 칼칼하게 만드는.

 

"나에게 청춘은 없었어. 오직 고난뿐이었어." 누구든 자기 꿈을 충분히 이룰 수 있겠냐며 그렇지만 당신에겐 꿈은, 꿈을 꿀 가치도 없었다며 이제서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은 저자 어머니의 발설이다. 사실, 충격 이다. 청춘은 없었다고 단언할만큼 그 인생의 한편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게 바로 '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엄마의 삶 가운데 지금 소중한 건 무엇일까? 있다 해도 그걸 즐길 수 있을까? 엄마는 왜 조금만 힘을 주어도 휴지처럼 찢길 것 같을까? 엄마가 생수병을 들고 나하고 오래 걸어 다닐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피로를 모르던 육체를 소모시켰으니 신체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러나 엄마가 받아야 할 대가를 빼앗은 건 세월이 아니라 나였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단 게다. 저자 역시 같은 굴레를 맴맴 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들에게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겠단 심보로 내뱉은 말은 아니었겠지만 괜시레 찔렸다. 엄마 인생에 모래주머니처럼 대롱대롱 달려 발목을 잡아 끈건 아닌지. 충분히 더 앞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여력을 회수해버린 건 아닌지. 그러다가 엄마 인생에서 나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버리면 어떡하지란 생각에까지 치달았다. 한시라도 빨리 엄마에게서 빛바랜 청춘을 소환해주어야 겠다는 강한 의지가 샘솟았다.

 

 

 

 

 

어렸을 적부터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가 줄곧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착하게만 자라다오." 세뇌라도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바람처럼 또 엄마가 그래왔던것처럼 착하게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사실, 한 번씩은 나도 독불장군이라도 되는 양 껄떡거리며 못되게 굴어보고 싶었다. 올곧은 삶 속에서의 일탈처럼, 사춘기 시절의 반항처럼 말이다. 허나 결국 그러지 못했던 건 이제껏 '착한 사람'으로 등 떠밀려 살아와왔던 게 순간의 우발적인 선택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그 여파를 감당 키나 할 수 있을까 싶어 서겠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버리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다. 단연 그로 인한 불이익이 뒤따를 것이고 다시 착한 사람으로 복직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고 봐야 되겠다 싶었다. 어찌 보면, 보이기 위한 연극에서의 마당놀이에 불과하고 해서 가면을 벗어 재끼고 그 무대를 내려오면 그만일 것을 이제껏 지켜봐와주신 분들의 성은이 망극하여 내내 딴따라로 사는 것과 별 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마라' 첫 부제부터 마음을 틀어 쥔다. 항상 남에게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건 잘못된 믿음이고 자신에게 주어야지만 남에게도 줄 수 있다고 한다.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가슴에 새겨야 될 만큼 충분히 옳다 커니 싶은 말이다. 어느 순간엔가 콩 한쪽은 아니더라도 빵 한 쪼가리라도 있으면 나눠 먹어야 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기적이라고 생각됐다. 설령 내가 밥을 먹지 않아 무지하게 배를 곯아대고 있던 참이고 다른 이는 배에 두둑이 기름칠을 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억지로라도 베풀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고질병을 앓고 있는 걸까. 충분히 찰흙을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빚을 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말에 휘둘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단단하게 굳도록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작은 충격에 견디지 못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사태에 이를 지경이다. 노선을 바꿀 필요가 시급하단 생각이 이제야 머리 위에서 불꽃을 튀겨댄다.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단 말이 있잖는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닐 테다. 명심 또 명심해야겠다.

 

불만이 있는데도 왜 다들 가만히 있는 걸까? 왜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걸까? 왜 그런 상황이 될 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는 걸까? 엉망진창이 된 상황을 바로잡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도저히 참기 힘든 상황인데도 참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어떤 일이나 인간관계를 잃을까 봐, 그보다 더 좋은 일이나 사람을 만나지 못할까 봐 두려워 불편하고 해로운 상황이라고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P.168) 

누구나가 그러하듯 감정은 버젓이 있고 살아온 환경은 다르며 그렇기에 성격이나 습관, 가치관은 다르기 마련이다. 해서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 어떤 이에겐 상처가 될 수도,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충돌하여 이길 가능성도 적잖이 있지만 그 자체에서 오는 충격을 감당 키가 힘들어 일단 피하고 본다.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 한 두 자동차 중 어느 한쪽이 기다리거나 후진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마음이 자꾸만 긁혀서 선명한 스크래치 자국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 깊이 좀 더 깊이 패도록 수수방관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차라리 본인의 의지완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약자라면 적어도 등신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수행하는 자였다면 분명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을 정도의 끈질기게 참을성을 보여준다. 과연 의지의 한국인이다 싶을 정도로. 불을 밝히기만 한다면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는 게 길이건만, 자꾸만 어둠 속으로 자처해서 기어들어간다. 술이나 담배나 마약처럼 가히 독하게 마음먹지 않고서야 끊을 수 없는 극심한 '착한 사람' 중독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고 망연자실할 필요는 없다. 달리 방법이 없다는 개풀 뜯어 먹는 핑계일랑 집어치우고 공허한 마음속에 울려퍼지던 메마른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간단하다. 저자가 내던진 질문에 나와 소통을 하며 착실히 답을 달면 된다. 특히나 내 속을 샅샅이 뒤져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꿰뚫어보고 있어 뜨끔하게 했던 질문은 '무언가가 당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였다. 무더운 여름 날 그늘 밑에 팔자좋게 드러누워 누가 밥이라도 떠먹여주길 바라고 있는 심보인걸지도 모르겠다. 좀처럼 움직일 생각일랑은 하지 않고 배는 고프니 입만 벌리고 있단 게다. 언젠간 누가 와서 해줄거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서. 가장 마음에 든 질문은, '자신이 되어야 할 목록에는 무엇이 있는가'였다. 자신이 해야할 일은 이제껏 수도없이 써왔지만 정작 되어야 할 것엔 공란이었던 것이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습관의 목록이란 것도 있었는데 게중에 '자신에게 러브레터를 쓰라'와 '확언의 창고를 만들어라'도 책을 덮고 바로 실천할 일순위로 눈도장을 찍어 뒀다.  

 

현재의 아름다움을 알고 싶으면 급하게 순간을 지나 결승선으로 뛰어가려고 하지 마라. 가만히 앉아 있어라. 앞으로 인생 속에 쟁여 넣을 것들에 흔들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이 당신에게 주는 질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

 

   

인생의 어느 순간, 빛나는 것을 보게 되면 나머지 인생 동안엔 그 그림자에 붙들려 살아야 하는 것 같아. 일단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 우리는 평생 그 아름다운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사람에게 첫인상이 있듯, 책 또한 그러하다. 이 책을 발견한 순간, 책표지에서 풍기는 묘한 마력에 휩싸였다.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란 말에 다소 파격적인 반삭을 한 뒤통수가 있었으니 단연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을뿐더러, 뭔가 심오한 저자의 세계가 커피향처럼 진하게 베여 있을 것이란 어림짐작도 들게 했다. 저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작가이고 이번이 첫 소설집이라고 한다. 사실, 이 대목에서 살짝 김이 새나가 버렸다. 은연중에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이 시동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독이 몸서리쳐지게 싫어 발버둥을 쳐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것을 끝없이 갈망하고 욕구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의 짤막한 인생의 한 페이지씩을 '고독'이란 맞물린 양념장으로 한데 버무린 책이다.

 

<고독의 발명> 애당초 시인의 아내로 살게 해주겠다는 청혼을 하였기에 이따금씩 아내의 볼멘소리가 그의 귓가에, 가슴팍에 무자비하게 내려꽂힌다. 난 당신의 아내가 되었는데, 당신은 언제 시인이 될 건가? 당장이라도 머리 깎고 산속에 들어가서 고독을 씹으며 시에만 매진을 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무엇보다도 고독을 원하는.

"그냥, 좀…… 기다려줄래?"

"뭘?"

"그냥, 뭐든."
아내는 쌩하니 돌아섰다. 그는 아내의 등 뒤에 대고 속으로 말했다. 미안해.

이 대목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한때, 자꾸만 재촉해대는 통에 제대로 된 길을 선택하지도 못한 채 1 막을 내려 버린 안타까운 내 삶이 투영되어 녹아내린 듯 했기 때문이다. 그게 뭐가 되었건 간에 상관없었다. 다만, 날 믿고 기다려주길 바랐었던 것이다. 아마,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엄복태가 아내에게 바란 건.

 

한때는 그에게 눈부신 빛이었던 시인들이 이제는 그에게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고, 얼른 그럴듯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 엄복태의 고백이다. 시인이 되길 갈망하지만, 시를 쓰지 못한다. 보는 사람도 이리 답답한데 본인은 오죽할까 싶었다. 곧잘 하던 일도 주목을 받고 칭찬을 받게 되면 부담감이 곱절로 부풀어올라 결국엔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커져버리는 판국인데 잘해야 한다고 다그쳐대는 마음일랑 견뎌낼 재간이 있을까. 것도 그렇지만, '그럴듯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다는 구절이 알량한 수법을 쓰려다 딱 걸린 것처럼 부끄럽고 후회스럽게 했다. 돌이켜보니 나 또한 어김없이 앞선 이들의 지독하게 평범한 수순을 밟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대학 선배로부터 이름 없는 잡지사에 등단할 기회를 거머쥐게 되어, '자, 이제 당신을 시인의 아내로 만들어준 거다!'라는 상상에 허우적거리기까지 했지만 결국 도돌이표를 찍고서 다시금 고독에 얼굴을 묻는다.

갑자기 아내가 읊었던 뮈세의 시가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생각하자 정말 눈물이 났다. 양준의 말대로 그동안 줄곧 울고 싶었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복태는 그것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진실인 것처럼 진심을 다 해 울었다. 한참을 꺼이꺼이 우는데, 휴대전화의 알람이 울렸다. 못다 한 내 마음을, 못다 한 내 마음을……. 고독해질 시간이었다.

 

물론, 다른 단편들도 맛깔난 저자의 글솜씨에 별 탈 없이 재밌게 정독했지만 게중에 <고독의 발명>이 가장 여운이 길었다. 아마 고독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 또한 진득하게 녹아있어 짙은 사색에 젖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다 보니 외로움이 만개했더랬다. 길을 가다가 한 번, 버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한 번,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또 한 번 그렇게 드문드문 예기치 못할 때에 급습을 해대는데 처음엔 적잖이 당황스러웠고 이내 주체할 수 없이 슬퍼지다가 괜찮아지길 반복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지만, 다들 그렇게 실타래처럼 엮어져 있는 것 같은데 그 가운데 나만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저버리지 못했었다. 그때는 그랬다. 외로움이 날 옭아매기라도 하는 양 괴로웠고 또 두려웠다. 이따금씩 덩그러니 놓인 공허함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동요가 되어 출렁출렁 거리는 건 여전하지만 분명 예전과는 사뭇 다른 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 작정하고 고독을 씹으려 들진 않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길들여질 턱도 없겠지만. 다만 최대한 우아하고 부드럽고 겸허하게 고독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말이다.